화진포 성(城)
김형도
신록(新綠)의 6월은 마냥 하늘이 푸르건만 우리의 마음은 왠지 숙연해진다. 현충일, 6‧25, 오랫동안 고난의 역사를 짊어져 온 우리의 산하 속속히 스며든 외침의 흔적과 전쟁의 상흔(傷痕)이 새삼 가슴에 사무쳐 오는 계절이다.
지난 6월 6일, 고교동창 일행이 건봉사를 참배하고, 6․25 당시 북한 땅이요 김일성의 별장이 있었던 화진포를 찾았다. 버스에서 모두가 현충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하자며, 6‧25 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방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진포에 도착했다.
저 멀리 태백산맥이 능 마루를 이루어 병풍처럼 받치고, 신록이 절정을 이루는 산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 앞으로 화진포 호수가 아취형의 멋있는 다리를 경계로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연결되고, 잔잔한 호수 변을 따라 훤칠한 소나무 숲이 푸름을 내 뿜고 있다. 깨끗한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맑은 동해 바다가 수평선까지 펼친다. 해수욕장 바다 가운데 거북처럼 생겼다하여 금구도(金龜島))라 부르는 바위섬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전설이 서려있다. 분재 모양의 숲이 있는 이 바위섬은 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다.
별장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화진포의 전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해송(海松)이 우거진 언덕에서 갑옷 입은 소나무 사이로 눈부시도록 푸른 바다와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동해 연안에는 해송이 우거진 곳이 많지마는 이곳 호수와 해변 사이 소나무 군락(群落)은 동해안 제일로 아름다운 솔이 우거진 숲이다. 나무 하나하나가 분재(盆栽) 모양의 멋있는 소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게다가 신록의 싱그러운 향기(香氣)까지 내뿜고 있다. 지난 동유럽 관광 길에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 호수와 주위를 둘러싼 만년설의 알프스에 매료되어 넋을 잃은 적이 있다. 그곳 에 뒤지지 않는 경관으로, 신(神)의 작품이라도 이렇게 신비스러울 수 있을까?
이곳은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이었다. 원래 별장은 원산에 있었는데 일본군이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원산에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그 곳 선교사 휴양촌을 헐고서 남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경관이 수려한 이곳에 다시 신축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해안 절벽 위, 울창한 송림(松林) 속에 1938년 독일인 건축가 H ․ Weber가 설계하여 신축한 우아한 건축물로 유럽의 작은 성(城)과 같다 하여 ‘화진포 성(城)’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45년 이후 북한 귀빈 휴양소로 운영되고, 김일성과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형제가 하계 휴양을 했던 곳으로, 당시 지상 2층 지하 1층의 별장이었다. 이 별장을 다시 개축하여 역사 안보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2층은 전시실이고 3층 옥상은 전망대이다. 6․25 전쟁 당시 남북의 대치상황과 전쟁의 전개과정, 김일성 출생의 연역과 가계도, 유품,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호수 건너편 언덕에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1954년 신축되고 61년에 폐쇄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어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건물에 대통령 내외분의 영정과, 침대, 옷, 가구 등은 그 분의 검소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이후부터 6․25까지 역사 속의 인물들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는데, 특히 이박사의 녹음 육성 연설은 애국 국민들을 격려하고, 힘을 불어주는 내용으로 일행들을 숙연케 했다.
전쟁의 아픔을 같이한 우리 세대는 잊혀져가는 6․25를 다시 상기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후손인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누란의 위기에서 한국을 구해 준 우방들의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는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통령 아들까지 받쳤다. 제24 사단장 딘소장이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당시 86kg 의 체중이 2개월만에 58kg 으로 줄었다. 밴프리트 장군이 아들을 잃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아들을 바쳤다. 크라크 UN 사령관도 아들을 받쳤다. 워커중장이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해병 1 항공사단장은 父子가 참전하여 아들 해리스 중령이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 장성 아들이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한국 땅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당시 지도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변방 한국에 파견되어 장열이 전사했다. 5만 여명이 죽고 3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들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전후 복구 작업과 경제 재건을 지원하여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그런 은혜도 망각하고 일부 국민들은 그 우방을 냉대시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하면서 일어나는 건건 마다 문제시하고 심지어 적대시까지 한다. 몇 년 전에 일어난 미군 장갑차에 치어서 사망한 두 여학생에 대한 전국적인 촛불 집회는 누굴 위하는 일인가? 그 학생들은 깊이 애도해야 하지만 교통사고 등 비일비재한 현실에 그것을 빌미로 반미 선동까지 한다는 것은 그 학생 부모들도 원치 않는다. 우방들은 은혜도 모르는 국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일이 이라크에 파병된 우리 장병들에게 일어났다면 국민의 감정이 어떠했을까? 두 여학생 문제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자명할 것이다.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는 판초를 입고 전진하는 전사들의 조각상이 있다. 배낭을 메고 우의를 걸치고 총을 손에 들고 비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본 우리 국민들은 그 감정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름 모를 나라에서 자유평화 수호라는 명분아래 목숨을 바쳤다. 심지어 대통령 아들, 장군의 아들까지 전사했던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 민족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무엇일까?
우방들의 한국 국민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멀어져가고 한국에서 철수하려고 한다. 수백만의 목숨의 대가로 지켜온 조국임을 망각하고, 동일민족끼리라는 명분을 내 세우는 적대국의 계략에 빠지고 있다. 또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의 기본(基本)마저 흔들리고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며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후손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엔 나라의 장래가 너무 암담하다. 하지만 그들을 깨우치게 할 책임이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있지 않을까?
화진포 성(城)을 둘러보면서 전쟁 당시 양쪽 진영의 최고 사령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한 사람은 팔팔한 젊은 나이로 전 국토를 황폐화 시키고 수백만의 국민을 희생시킨 주역이며, 다른 한 사람은 노령의 독립투사로 ,비록 상대편의 계략과 침공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대비를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을 지킨 주역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주역의 별장이 이곳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아마 이들의 영혼도 지하에서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 것 같다.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同族相殘)과 유례가 없는 권력세습(權力世襲)까지 한 주역이 지하에서라도 민족(民族)과 회생당한 영령(英靈)들 앞에 사죄를 하고, 또 권력을 물려준 후계자에게 진정 겨례의 염원(念願)이 무엇인지 깨우쳐 준다면 슬피 숨져간 영혼(靈魂)들에게 위안이라도 되지 않을까?
★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지는 인류사(人類史)에서 평화는 영원한 화두(話頭)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명제(命題)이고,
★ 6.25의 참극을 겪은 나라로서 전쟁의 상흔(傷痕)과 교훈을 역사에 남기고,
★ 6.25 전쟁은 비극이지만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울려나오는 <임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 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 갈 길도 임의 길이기에 ……>로 시작되는 <아내의 노래>의 선율(旋律)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2007년 6월 김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