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분당 수내역 인근의 한 빌딩。지하층의 한 널찍한 사무실에 넥타이 정장차림의 50,60대 신사들이 속속 들어섰다。50여명의 중·장년과 초로의 남성들로 금세 꽉 찬이곳은‘분당 색소폰 클럽’。칸칸이 마련된 연습실에선 다양한 멜로디의 색소폰 소리가넘쳐났다。
2년 전 이 클럽에 가입한 이현구 풍림산업 부사장(55)은 매주 화요일‘정모(정례모임)’에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개근생’이다。육군 주임원사 출신 이상익씨(71),환경부 국장을 지낸 뒤 동물병원 원장을 하고 있는 김만호씨(69),단국대 부동산·건설대 학원장 김병량씨(51) 등 사회 경력과 나이는 제각각이지만‘색소폰 중독’이란 공통점을 가진 클럽 친구들과 정모 외에도 수시로만나 각자 터득한 연주법 등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회사에서 줄곧 R&D쪽에서 일해왔는데,머리가 터질 것 같은 스트레스로 한참 고생했습니다。골프를 해도 그 압박감을 해소할길이 없었죠。그러다 지인이 색소폰 연주하는 걸 봤는데‘이거다’싶더군요。제가 지금껏 해 온 선택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아내와 색소폰인 것 같아요.”(이 부사장)“옛날엔 색소폰 불면 폐병 걸린다고 그랬잖아요。난 협심증도 있고 나이도 많고 해서 처음엔 두려웠지。그런데 웬걸? 병원 의사가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시작하라고 하잖아。나이 들어서야 색소폰을 알게된 게 후회스럴 정도죠.”(이상익씨)
동호회 3년새 80곳 생겨
색소폰에 빠져드는 한국 남성들이 늘고 있다。40,50대를 주축으로 한 색소폰 동호회가 최근 2∼3년 사이 전국 각지에 80곳이나 둥지를 틀었다。덕분에 작년 색소폰 수입액은 934만달러로 2000년에 비해 4배가량 급증했고,색소폰 교습소와 함께 서울 강남과 분당 일산 등엔 반주 시설을 갖춘‘악기 연주방’이 잇달아 들어서는 등 관련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완전 초보’도 3개월 만 배우면 한 곡 정
도는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익히기 쉬운 데다‘중년의 고독’을 표현하기엔 색소폰만한 악기가 없는 게 중·장년을 넘긴 남성들이 색소폰에 빠져드는 이유다。
○색소폰,한국 중년 남성을 사로잡다
중·장년 남성들의 색소폰 열풍을 단적으로보여주는 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각종 동호회。2003년 10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분당 색소폰 클럽(http://cafe.daum.net/saxophonephil)은 이제 4년차일 뿐이지만‘중견 클럽’으로 꼽힌다。
색소폰 수입.. 교습소 급증
이 클럽의 이규항 원장은“분당만해도 동호회가 4개고 학원까지 포함하면 10곳에서 색소폰을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온라인 동호회‘색소폰나라(www.saxophonenara.net)’는 5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동호회。회원 중 820명을 대상으로 표본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가 4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박세일 동호회장은“매일 1500여명씩 신규 회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연간 색소폰 수입액은 △2000년 231만달러 △2004년 492만달러 △2005년 700만달러 △2006년 934만달러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올 4월까지 누계는 395만달러。올 전체로는 1977년(1000달러) 첫 통계를 낸 이래 처음으로 1000만달러를 넘을 전망이다。`서울 낙원상가의 악기 전문 수입업체 코스모스악기의 나호천 전무는“매출 규모로는 피아노가 워낙 고가라 여전히 1위지만2005년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악기는 색소폰뿐”이라고 말했다。
○왜 색소폰인가?
이달 초 한 대기업에서 정년 퇴임한윤재우씨(55·경기도 일산 가자동벽산부동산 대표)는“직장 생활하
면서 색소폰 연주에 대한 갈망이 많았다”며“인생의 희로애락을 장중하게 표현하고 달래줄 악기 중에 색소폰만한 게 또 있겠느냐”고 되물었다。분당색소폰클럽의 원도희 공연기획실장은“기타는 왕년에 한번쯤 다 쳐봤을 것이고 피아노나 다른 목관 악기는 배우기에도 어렵고 한마디로 폼이 안난다”고 말했다。
폼 나고 배우기도 쉬워요
동호회에 가입해 연 회비 10만원 정도만 내면 하루종일 자기가 원할 때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도 색소폰 인구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서울 청담동의 재즈클럽인‘원스인어블루문’의 임재홍 사장은“박희열 희경건설 대표,이영건 경일종합유통 대표 등 요즘엔 색소폰 부는 CEO들도 늘고 있다”며“한국 사회도 색소폰 열풍을 시작으로‘1인 1악기’가 보편화돼 있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을 곧 따라가게 될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박동휘/장성호 기자 donghuip@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분당색소폰클럽’동호회원들이 경기도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한 근린공원에서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초보자는 알토 색소폰 무난
중국산 40만원선 구입 가능
▶▶ 처음 배운다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구입도 할수 있는 색소폰은 소프라노,알토,테너색소폰 세 종류다。소프라노는 클라리넷과 비슷한데 케니지가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고,알토와 테너가 구부러진모양의 전형적인 색소폰이다。처음 연주하는 사람은 알토 색소폰으로 시작하는 게 무난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소프라노는 고음 컨트롤이 어렵
고,테너는 악기가 커서 호흡량이 많이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걸 살까
=시중에서는 40만원대에서부터 수백만원짜리에 이르기까지다양한 종류의 색소폰이 판매되고 있다。보급형은 4∼5년 전만해도 슈퍼톤등 대만제가 주종이었으나 최근엔 중국제가 저렴한 가격과 애프터서비스를무기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다만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 전문 악기수입상이 아닌 단순 무역상들이 판매하는 중국산 색소폰은 애프터서비스를받지 못해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 가격에 집착하기보다는 색소폰 관련 사이트,동호회,검색사이트 등을 참고해 어느 정도 검증된 악기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현재 보급형으로 많이선호되고 있는 중국산 브랜드로는 프란츠,미드웨이,에본느,레전드,미와자키 등이 있다。40만원 전후면 구입이 가능하다。중가 색소폰의 가격은 대략 100만∼200만원 선。킹,콘,번디셀마,B&S,야마하100,야마하275 등이 주요 제품이다。고급형으로는 프랑스산 셀마를비롯해 야마하 고급형,야나기사와,줄리어스,캐논볼 등이 있는데 가격은 300만∼800만원가량。
입문단계에서부터 신제품을 사기보다는 낙원상가 등에서 중고로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신제품 대비 60∼70% 선으로 쓸만한 색소폰을고를 수 있다。다만 마우스피스는 좋은 걸로 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대부분 악기 구입 시 동봉된 마우스피스는 음색이 떨어질 뿐더러 배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메이어 등의 하드러
버(고무,플라스틱 재질) 마우스피스를 사는 게 좋다고。
○어디에서 배우나
=색소폰 학원을 다닐 경우 한 달 강습비가 수도권에선 15만∼20만원,지방은 10만원 선이다。1주일에 평균 2회,회당 한 시간 정도 지도를 받는다。개인레슨의 경우 한 달수강료가 대략 20만원 선이고 강습시간은 학원과 비슷하다。전문가들은 한두 달간은 학원 등에서 기초를 배운 뒤동호회를 이용하길 권하고 있다。어느정도 실력이 되면 동호회 차원의 연주공연 등에도 참가할 수 있다。월 회비는 5만∼10만원 선이다。
박동휘/장성호 기자 donghuip@hankyung.com 도움말=박세일 색소폰나라 동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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