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차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회사로고가 새겨진 빨간 천막이 보이는 어린이집 앞으로 빠른 걸음을 걸었다. 오늘은 내 관리구역에서 무료학력진단 테스트를 빌미로 회사 홍보가 있는 날이다. 학교 수업이 있어서 그렇게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었다.
세 개의 천막 밑으로 대여섯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홍보지와 새로운 회원을 위한 선물이 쌓여 있었다. 야외 수업과 어머니들 상담으로 어느덧 날이 어두워져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데 테이블 위로 작은 두 손이 매달렸다. 뒤이어 남자 아이의 얼굴이 올라왔고 그 뒤로 아이 엄마인 듯 임신 중인 여자가 걸어와 섰다.
준두, 4살이란다. 아직 한 번도 가정방문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며 아이엄마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글 수업을 받아보고 싶다는 상담을 하고, 아파트 동과 동 사이 차도를 건너 놀이터 앞에서 다른 아이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준두 엄마를 보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선물들이 신기한 듯 그 자리를 못 뜨는 준두 곁으로 다가갔다.
“준두야 선생님 손잡고 엄마한테 갈까? 자!”
저녁 시간이 되자 아파트 도로에는 귀가 차량들의 라이트가 번뜩였다. 길을 함께 건너 주려고 내민 손을 못 본 척 준두는 뒤돌아서서 차도를 건너려고 걷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주변의 차들 보다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준두 걸음걸이에 더 신경을 쓰며 옆에서 손도 못 잡고 차도를 건넜다. 그러고는 엄마 옆으로 다가가자 다른 곳을 보며 나를 외면했다. 놀이터에는 태권도 도복을 입고 방금 학원 차에서 내린 초등학교 1,2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 서넛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는데 준두는 어느새 그 곁으로 다가가 섰다. 아이 뒤를 따라온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했다.
“어머니 차도 건널 때 위험해서 준두 손을 잡으려는데 몇 번을 말해도 못 들은 척 준두 혼자 건너 왔어요.”
“아, 준두는 원래 손 안 잡아요. 뭐든 자기 혼자 하길 원해요. 다리가 저래서...... 선생님 하고 수업도 잘 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이에요. 잘 부탁드릴게요.”
형이 되면 태권도 학원을 보내주기로 엄마와 약속했다는 준두의 왼쪽 다리는 의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4살짜리 남자아이 준두를 처음 만났다.
새로 인계 받은 지역이라 어수선하고 나름대로 바빠서 삼일이 지난 후에야 수업시간을 상의 하려고 준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하혈이 있어서 병원에 입원 했다는 말을 하며 당분간은 수업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회원엄마한테 들은 얘기로는 준두도 엄마 뱃속에서 기형이 되어 태어났다고 한다. 이제 4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부터 자기의 몸이 남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 안타까웠다.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수업을 하려니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준두 일은 까맣게 잊혀졌다. 게다가 올 여름은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로 한층 더 뜨거웠던 것 같다. 경기가 있는 10일 동안 주민들의 함성으로 아파트는 저녁마다 들썩였고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식당 TV에서도 언제나 올림픽 경기와 메달 상황을 떠들어 대서 올림픽 전에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방송 되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 뿐인가 메달이라도 따면 그 상황을 몇 번씩 재방송으로 볼 수 있었고 선수들의 고생스러웠던 순간들 또는 가족들과 인터뷰 장면까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듯 공중파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의 제일 큰 스타라면 역시 수영선수 박태환일 것이다. 그는 5살 때 천식을 치료할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천식 치료를 넘어 세계 1,2위를 다투는 수영선수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무덥기만 한 여름도 올림픽이 끝나면서 서서히 식어가던 일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빨래를 걷어들고 들어와 소파에 앉아 옷을 개면서 TV뉴스를 보았다. 장애인들의 올림픽인 페럴림픽이 끝났고 우리나라의 메달 성과는 금메달 10개를 비롯해 총 매달 수 31개로 13위라고 한다.
패럴림픽? 언제 시작했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아들이 물어 왔다. 금메달을 따면 연금이 얼마나 되냐고. 한 달에 100만원쯤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렇게 답해주고 그 외에 포상금이 별도로 있어서 종목마다 받는 금액이 다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장애인 올림픽에서도 똑같은 연금을 받느냐며 또 물어왔다. 순간 나는 잠시 머뭇하다가 스포츠니까 당연히 같은 금액을 주지 않을까라고 답을 했다. 그때 옆에서 컴퓨터를 하던 남편이 ‘아마 다를 걸’ 하며 말을 받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올림픽경기와 같은 페럴림픽에서 차별을 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는 반박했다.
그러자 아들이
“그럼 네이버에 물어 볼까? 엄마”
한다. 결과는 남편의 말이 맞았다. 장애인 올림픽인 페럴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올림픽에서 받는 금액의 80%를 연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연한 걸 뭘 찾아봐.”
“뭐가 당연해요?”
“인기가 없잖아.”
이건 또 뭔 말인가. 인기가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일게다. 페럴림픽이 열리는 동안 간간히 뉴스를 통해서만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 경기 중계조차도 보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궁금했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관심이 없기는 피차일반일 텐데 내 가슴 속에서는 언짢음이 밀려왔다. 언짢은 마음에 남편에게 따지듯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올림픽 메달연금을 차별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장애 인들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차별 받는 일이 많은데 스포츠 경기에서조차 그래야 한다 니 말이 안 되잖아요. 포상금 같은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본 적으로 정해진 연금은 같아야 한다고 보는데......”
“기본적으로야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걸 어떡하겠어.”
페럴림픽이 언제 개막했는지, 어떤 선수가 어떤 종목에서 메달을 땄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정책적으로는 공평해야하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에 의해서 이 사회는 반듯하게 돌아가고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의족을 한 채 달리기를 하던 선수의 모습을 보며 4살짜리 준두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개던 빨래를 마저 개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듯 주방으로 향했다.
9월도 중순을 넘어서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날도 아이들 방문수업을 하느라 바쁘게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는 층수 버튼을 누르는데 현관입구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외치며 배부른 여자와 남자 아이가 걸어 왔다. 아슬아슬 걷는 걸음이 어쩐지 낯이 익었는데, 아! 준두였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때서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는지 밝은 얼굴로 준두엄마는 인사를 했지만 준두는 역시 나를 외면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몇 마디 안부만 주고받았고 다시 연락하겠노라며 준두네와 헤어졌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슬쩍 뒤 돌아 보는 준두 눈빛에 안타깝게 바라보던 나는 뭔가 들킨 듯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콧날이 오똑하니 제법 잘 생긴 얼굴이란 생각이 스쳤다. 2,3년 후면 태권도 도복을 입은 준두의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
몇 일전 남편과 나누었던 페럴림픽 금메달 연금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페럴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받는 연금이 차별이 있다는 사실이 옳지 않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그 당사자들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눈빛과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도움을 받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단단해 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을까. 나 역시 단지 몸이 좀 불편할 뿐이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더라면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지만은 않았을 텐데. 생각부터 차이를 두고 있었다면 금메달 연금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 들였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 준두가 어느 누구의 손도 안 잡고 걸으려고 했던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오늘 나의 눈빛이 그렇게 가르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걸음이 무거워졌다. 어쩌면 준두는 처음 만나 나와 같이 차도를 건넜을 때부터 내 마음을 알아 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