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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40년 이전 모교 전경 > |
아마 70년대 이전이나 80년대초 이전에 졸업한 졸업생까지는
기억에 남아 있을듯한 함열초등학교(당시 함열국민학교) 교사校舍 전경입니다.
고향을 그리며 가끔은 까까머리 단발머리 친구들과 함께
뛰고 달리며 운동장을 누비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내곤 미소를 떠 올려 봤슴직한
우리의 꿈의 요람 '함열초등학교 (http://www.hamyol.es.kr/)'
제가 졸업할 당시(1970년도 제40회)만 해도 재학생이 학년별로
각5개반, 한 반에 70여명,
전체 약 2,000 여명이 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4개반, 한 반에 35 명 정도..
채 1,000명도 안되더군요.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반 오후반 나눠 등교하고
그러고도 교실이 부족하여 시커멓게 아부라칠(죄송.. 일본말)한 판자 교실..
여기 저기 황소 바람이 송송 들어 오는 교실밖 시멘트 복도
(복도가 아니라 현관이라야 맞겠죠)에 회푸대 종이 깔고 앉아 수업받던 시절....ㅜ.ㅜ
한 겨울에도 난방이 있을 수 없었지요.
구.교사 전경사진 오른쪽 끝 교실 2개의 중간 벽은 개폐가 가능해서
졸업식이나 영화 관람을 해야 할 때는 벽을 트면 훌륭한 강당이 되었었지요.
그곳에서 봤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슬픈 영화가 기억 나네요....ㅡㅡ;;
그쪽 후문 밖(면사무소쪽 나가는 길)에 쬐꾸만 매점 하나가 있었고
그 앞엔 어린이 키 만한 높이에 손때로 까만 때와 굵은 공이로 두툼하게 배가 부른
프라타너스 한 그루가 한 여름엔 울창하게 번성한 가지와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줬었습니다.
지금은 급식으로 전 학생이 혜택을 보지만
그 때는 극빈 가정 학생에게만 지급했던 미국 원조 우유가루..
이거 잘못 먹으면 목구멍에 칵! 막혀 숨도 못쉬고 죽을 뻔 한적..
당시 학생들은 한 번 쯤은 경험했을 가난했던 시절 얘기입니다.
이걸 물에 개어 쪄 놓으면 그런 돌덩어리가 없었죠..
한 덩어리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이빨로 갉아 먹고 다녔습니다. 달짝찌근했었죠.^^
그후에 옥수수죽... 그 구수한 향기..
바께쓰(..ㅡㅡ;; 또 일본말)에 배급 받아 와서 노오란 양은 변또(헉.. 또 일본말..ㅡㅡ;)에
받아 후루룩 후루룩 짭짭....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그걸 조금 남겼다가 방과후 숙제 안해 온 놈들 남게 해서 청소시키고
그 남은 죽을 쬐꿈씩 나눠 줬었어요.
그거 먹구 자파서 매일 매일 숙제 안해 가서 매 맞고 그거 얻어 먹구..ㅜ.ㅜ
눈물 젖은 옥수수죽... 어찌 이런 추억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가슴 저린 속담이 생각납니다..ㅎㅎㅎ~~
지금은 차로 5분여 정도면 왔다 갔다 하는 등하교길....
그 4키로 길을 6년 동안 지각 한 번 안하고 걸어서 출석한 모범생 구자정..^^
근디......(야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익이형이랑 귀정이형 한테 꼬심 당해서 이틀인가..
'중간치기(요즘은 땡땡이라 하죠)' 했다가
아버지 한테 빨가 홀딱 벗겨 놓고 마자 디질뻔 했던 아픈 기억..
이제는 그 사랑의 매질도 해 줄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것이 더욱 가슴을 후빕니다..ㅜ.ㅜ
'갈미재' 울창한 아카시아 숲... 조금 지나면 옆으로 '공동 묘지'..
대낮에도 혼자 걷기엔 등골이 서늘했던 기억도 납니다.
조금 가면 과동(과꼴) '벌판' 그리고 그 아래 '범방죽'..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 겨울 양쪽으로 환하게 터진 이곳 지나칠라치면
귓때기가 떨어져 나가는것 같았습니다.
또 한 여름엔 조금만 물이 차도 모래 길인지라 길 한토막이 싹뚝 잘려 나가
구루마(.. 지겹구만 일본말..ㅡㅡ;;)도 못 댕기고 저학년 동생들은 업혀서 건네주던
따뜻한 형들과 누나들의 등에서 느껴지던 체온.. 다시 한 번 느껴 보구 싶습니다..
와리 가까워 지면서 면소재지 풍경을 느끼기 시작 할 수 있는 곳.. '말패기'
여기 들어 서면 멀리 함열역 석탄 기관차 소리.. 칙칙폭폭.. 그 소리가 참 그립네요.
당시 '학선골'이 등교길이 제일 멀었었습니다.
군사정권시절에는 조직.. 단체.. 등등 참 많았었죠.
동네별로 애향단을 만들어 학선골 애행단 깃발 들고 2줄로 등하교 하던 기억..
당시엔 흔치 않았던 버스가 지나 칠 때는 손을 흔들어 주라는
예절 교육도 지금은 생소하네요
교장 선생님이 탔던 버스가 지나치는데 손 안흔들었다구 조회 시간에 혼났던 기억..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네요.. ㅎㅎㅎ~~
그래도 멀리 사는 학생들은 절대 지각 없었지요.
바로 학교 담 밑에 사는 '낡은터' 동네 친구들.. 이눔들이 지각 많이 했었죠.
버스 타고 학교 댕기는 딸래미들 얘기 들어 보니 예나 지금이나
담밑에 사는 눔들이 지각하는건 변치 않는 모양이드라구요... 쩝...ㅡㅡ;;
옛추억이 끄집어 내질라는지요..
후배님들이야.. 먼 얘긴지.. 하는 분들도 있을꺼구..
더러는 조각난 파편 추억이라도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한잔 드시면서
고향을 그리고 옛추억을 반추하는 여유로움 한 번 가져 보시라구
생각나는대로 주절거려봤습니다.
(당시에는 애나 어른이나 일상처럼 썼던 일본말들..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 도움될까해서
하기 싫은 일본말이 몇개 들어 갔네요 용서 하시길...ㅡㅡ;;)
함열초등학교 제40회 6학년 4반 구자정 (당시 담임샘 정한서 샘)
첫댓글 오라바니~ 난 45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