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로서 가장 많은 녹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의 경우 전곡 녹음은 이 음반이 처음이다. 그가 연주회에서도 이 곡을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초인적인 작업이며, 어떤 첼리스트도 이 곡을 일상적으로 연주 할 수는 없다."라는 언급을 할 정도로 그는 이 곡을 부담 스러워 하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조곡이 무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만약 가장 무곡적인 연주를 선택하라면 이 음반일 것이다. 그의 연주는 가볍고 탄력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기도 하다. 심지어 무곡이 아닌 전주곡들에서도 그러하다.
2. 피에르 푸르니에
(DG 419 359-2GCM2, ADD, 녹음연도: 1960년 12월)
1960년 녹음된 이래 30년이 넘도록 푸르니에의 음반은 고전적인 연주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이 어둡고 장엄한 연주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가장 진지한 연주이기도 하며 당당하게 다가 오기도 한다. 연주의 특징중 하나는 분산화음으로 이루어진 곡들에서 베이스 라인이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는 것을 들을수 있다. 1번의 전주곡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 수 있다. 이는 리듬의 중심음에 큰 액센트를 주는 그의 습관 때문인데, 강조하는 엑센트에서 유난히 강하게 현을 긁는 편이다. 그의 연주는 상당한 무게와 어두운 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다른 무곡보다 사라방드가 가장 그의 스타일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라방드는 근엄하며, 우리가 바흐의 음악에서 종종 느끼곤 하는 어두운 고독감으로무터 퍼지는 감동이 담겨있다.
슈타커의 음악은 각 곡의 분위기에 따라 연주의 큰 기복이 없으며 보편적인 취향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연주라고 생각된다. 우선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유연하게 흐르는 레가토로 특징 지워진다. 클라이맥스의 성급함이 조금 가볍다는 느낌을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1번 전주곡의 분산화음을 이어가는 그의 연주는 노래하는 듯 하고 5번의 전주곡에서도 환타지 풍의 전반부가 특히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한편 고음이 강하여 다른 곡과 성격이 다른 6번의 전주곡에서는 이음표를 많이 적용시키지 않는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모든 곡에서 조심스럽고 서정적인 사라방드가 주목을 끈다.
무반주 첼로 조곡의 연주에서 카잘스의 음반을 어떻게 빠뜨릴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그가 이 곡을 발견하여 대중화 시키고 연주의 전통을 만들어갔다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만약 이 연주가 카잘스가 아니라 설령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첼리스트에 의한 연주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무너지지 않을 만큼 이 연주는 신선하며 경이롭다. 지금처럼 많은 세션의 편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서 SP의 잡음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첼로의 낑낑거리는 잡음이 자주 들리기는 하지만 이런 외적요인이 이 연주에 내제하는 위엄을 가리지는 못한다.
첫 곡을 보자면 레가토와 함께 풍부한 루바토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 이 연주가 작위성에 빠지지 않는 것은 카잘스가 곡을 이루고 있는 선을 따라가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레가토를 빈번히 사용하면서도 호흡의 완급으로 무곡의 운동감을 촉진하고 있다. 2번과 5번 등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카잘스는 상당히 격양된 해석을 보인다. 반대로 3번의 알레망드에서는 '피터와 늑대'에 등장해도 어울릴법한 흥겨운 분위기이다. 이 음반의 깊이와 신선한 해석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 같지가 않다.
5. 안너 빌스마
(SONY S2K48407, DDD, 녹음연도: 1992년 1월)
빌스마는 카잘스 이후 꾸준히 다루어 온 무반주 첼로 조곡의 해석을 보다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빌스마는 정격연주자 이지만 정격연주자로 한정 짖는 것은 그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첼리스트에 있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하는 것은, 자신보다 10배정도 뛰어난 대가와 체스를 두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빌스마는 이야기한다. 초보자는 대가의 절묘한 속임수가 담겨있지 않은 것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즉 연주자는 선입견과 그 작품에 대해 배워온 지식에 묶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지적하고자 한다. 작곡가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지금의 악보는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며, 결국 우리는 그 곳에서 아주 큰 해석의 여백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우선 빌스마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특이하다. 첼로이긴 하지만 보통의 바로크 첼로도 아니며 1701년 제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서 벨기에의 세르베가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일반 첼로보다 상당히 큰 편이고 거트 현을 사용하는 데다 아주 낮게 조율되어 있어 그 울림이 무척 인상적이다. 음반 표지에는 세르베만 언급되어 있지만 6번을 연주할 때는 비스펠베이(빌스마에게 사사 받았다)와 마찬가지로 다섯 현을 가진 비올론 첼로 피콜로를 사용하고 있어서 낮은 피치와 더불어 다른 연주보다 여유있는 소리가 울리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거트현이 가져오는 고풍스러운 매력도 간과할 수 없다.
빌스마의 프레이즈는 부드럽고 곡선적이며 울림이 풍부하다. 각 사라방드에서는 무거운 고독이 없는 반면 부드러운 서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브라토를 사용하는 않는 것도 고풍스러운 서정성을 이끌어 내는데 한 역할을 한다. 그의 부드러움은 비극적인 2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곡의 전주곡이나 사라방드에서 클라이맥스로 만들어가는 빌스마의 능력이 두드러지며, 미뉴엣은 특별히 우아하다. 마찬가지로 어두운 5번에서는 취향에 따라 악기의 음색이 너무 낙천적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음색의 특징으로 4번 전주곡 중간의 환상곡 풍 경과부에서는 바흐의 오르간 곡을 듣는 느낌을 가지게도 한다. 가벼운 곡들에서도 장식음을 가볍게 처리하여 세련된 흥취를 만들며 적절히 스타카토를 활용하여 리듬이 탄력적이다.
이상은 무반주 첼로 조곡에 대한 추천음반 5장이었습니다.
아래에 소개해 들리는 기존 음악잡지에 실렸던 무반주 첼로 조곡에 대한 음반평을 모은 것입니다. 무반주 첼로 조곡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들을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내용들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이니 음반 구입에 참고자료로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토르틀리에는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가능한 한 텍스트에 충실하고자 한다. 보잉은 충분히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투박하리만큼 두터운 소리(녹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때로 파이프 오르간 소리로 느껴질 만큼 장중한 사운드로 다가온다. 그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견고한음의 구조물을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템포도 비교적 느릿한 편. 모음곡3번의 끝곡인 지그를 들어보면 그런 성향은 더욱 확연하다. 비슷한 시기에 녹음된 야노스 슈타커(머큐리)의 빠르고 발랄하고 노래하는 듯한 연주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소리의 질감도 슈타커 쪽이 훨씬가볍고 밝은 편이다. 보잉이 시원시원한 요요마의 연주(소니)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토르틀리에의 연주는 명상적이고 그윽한 쪽이다. 서두르지 않고 음하나하나를 소홀치 않게 짚어 나가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건주의가 느껴진다. 영혼의 기쁨을 노래하는 춤곡이라는 시각의 해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요컨대 이 첼리스트의 연주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모음곡 4번의 사라방드에서 특히 그런 느낌이 진하게 전해져 온다. 그렇기에 토르틀리에의 신심깊은 연주는 생기의 부족이라는 반대급부가 뒤따른다. 전체적으로 퍽이나 느릿한 템포, 개인적인 감정표현이 절제된 해석, 모든 곡에 대한 일관된 접근 방식 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이 곡 안에 잠재된 다양한감정들을 끄집어내지 못한 요소로 작용해 시간이 흐를수록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을 준다. (조윤)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들은 그 내용과 감정적 깊이에 있어서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시대양식과 관습적인 음악어법이 유달리 강조되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무반주 모음곡을 작곡하는 순간 바흐는 협연자와 청중이라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의 상상력과 개인적인 고백을 무한대로 표출해 냈던 것이다. 이렇게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들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 중 가장 개인주의적인 장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바로크 시대 속에 자리잡은 낭만주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연주자에 따라 해석의 깊이와 의식의 표출에 많은 차이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히데미 스즈키와 로버트 코헨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색채감과 짜임새를 바흐 음악에 투영시킬 줄 아는 훌륭한 연주자들이다.
악기론에 입각해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를 꼽으라면 스즈키가 첼로의 육중한 질량감을 십분 활용하는 데 반해, 코헨은 자신만의 섬세한 조각술을 펼쳐 보이기 위해 첼로 음색의 부피감을 능숙하게 증감시킨다. 스즈키의 연주에는 들을수록 깊게 와닿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보잉마다 깊은 호흡이 불어넣어져 있고, 내면의 고통스런 감각까지 어루만지는 고행자의 자세가 엿보이고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강하게 조여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두툼한 울림과 묵직한 질량감이 통렬한 감정의 모자이크와 세련되게 맞물려 있는 것이다. 철저히 개인적이고도 학구적인 공간의 연출 -- 이것만으로도 그의 오랜 연습과 노력은 증명되는 것이다. 듣는이의 마음을 쥐어짜는 소탈한 감정주의와 진지한 학구성, 여기에 강인한 의지력을 포용하고자 하는 열정어린 뉘앙스가 스즈키 연주의 특징이다.
코헨의 스타일은 스즈키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스즈키에 비해 코헨은 건축술적인 조형감에 보다 많은 정성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스즈키의 연주가 내면의 깊이를 순간순간 감지하는 데서 구조를 파생시키는 것이라면, 코헨의 연주는 정해진 진행방식의 기승전결을 일단 스케치하고 여기에 감정의 분출을 배분하는 기질을 드러낸다.
스즈키보다는 코헨의 연주를 들으면서 분명한 모양새를 파악하기가 용이했다면 그것은 분명 코헨의 해석관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때문에 코헨보다는 스즈키가 창출하는 표상을 암기하기가 더 어렵다. 전반적인 색채감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스즈키의 연주가 어두운 색감과 무거운 질량감으로 피부를 눌러온다면 코헨의 연주는 보다 밝고 명징한 이미지로 바로크의 균형감을 추구한다. 6개의 모음곡 중에서 두 연주자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3번의 ‘프렐류드’를 예로 들어보자. 템포 설정과 리듬의 추진력, 곡의 끝부분에 연출되는 성부의 배분,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외관상의 화려함과 극적인연출에 자신감을 보이는 코헨의 연주도 설득력이 있지만, 음표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숨결과 생명력에 강한 믿음을 보이는 스즈키의 직관도 만만치 않다. '음악은 느낌이요, 나의 고백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첼리스트 스즈키가 훌륭한 연주자라는 생각이 든다. 진한 슬픔과 비애감, 절실한 울림의 증폭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스즈키의 연주를, 곡에 대한 구조적인 정보와 양식적 이해를 위해서는 코헨의 연주를 권하고 싶다. 스즈키와 코헨은 무곡이 지닌 보편적인 율동감과 대중적인 생명력을 달리 운용하고 있지만 모음곡 5번의 '사라방드'에서처럼 두 사람 모두 깊은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두 음반 모두 오랜 노력을 기울인 역작임이 증명되고 있다.
지난 1984년, 첫 무반주 첼로 모음곡 레코딩으로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던 요요마가 거의 15년 만에 두번째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의 음반을 발표했다. 이번 음반은 상당히 오랫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여섯 편의 영상물이 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요요 마가 말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 >
-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제가 바흐의 모음곡에서 특별히 느끼는 점은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는 저만이 느낀 것이 아니겠죠. 이 곡들은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의 기본적인 힘을 향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첼리스트에게 독주 레퍼토리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이 작품을 네 살 되던 해부터 한 번에 두 마디씩 익혀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의 지적이며 감성적이고 영적인힘들은 일생에 걸쳐 제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 다시 이 곡들을 녹음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1991년 보스턴의 법관 마크 울프가 신학자이자 의사면서 오르가니스트였고 탁월한 바흐 연구가이기도 했던 알버트 슈바이처 심포지엄에 저를 초청했습니다. 슈바이처는 바흐를 '회화적인' 또는 '그림을 그리는 듯한' 작곡가로 묘사했더군요. 저도 그런 점을 느끼던 차였죠. 바흐 작품에 묘사된 회화적인 성격들이 제게 '바흐로부터의 영감'이라 이름붙여진 이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더해 주었습니다. 이 음반은 전체 프로젝트의 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지요.
"모음곡들을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협력 속에서 재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바흐로부터의 영감' 프로젝트의 근간이었죠.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 속에는 18세기의 건축가 조바니 바티스타 피라네시도 포함되는데, 저는 상상 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 셈입니다. 각각의 공동작업에서 새로운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예술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신뢰의 발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예술가들은 저와 함께 각각의 모음곡의 음악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그 본질이 또 다른 예술적 형태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 나갔죠. 이러한 모든 공동작업들이 전체 6부로 구성된 영상으로 촬영된 것입니다."
- 함께 작업한 각각의 예술가들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정원 디자이너 줄리 모아르 메세르비와 저는 모음곡 1번을 자연과 관련해 탐구했죠. 메세르비의 표현에 의하면 이 곡이 '음악의 정원'이라더군요. 모음곡 2번에서 영화감독 프랑수아 지라르드는 참신한 공간들에 대한 탐험과 앞서 말한 화가 피라네시의 작품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죠. 모음곡 3번을 위해 안무가 마크 모리스는 새로운 춤을 선보였죠. 모음곡 4번을 위해 아톰 에고얀 감독은 음악이 인간의 품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하나의 작품을 촬영해 주었습니다. 5번에서 가부키 배우 타마사부로 반도는 이 작품의 짙은 우수와 초월적인 느낌을 표현해 주었어요. 우리는 여기에 '희망을 위한 투쟁'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6번을 위해서 아이스 댄서인 제인 토르빌과 크리스토퍼 딘은 유쾌하고도 광활한 느낌의 아이스 댄싱을 보여주었습니다."
-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 만족하시는지요.
"저와 함께 일한 예술인 모두는 그들의 예술의 한계를 넓혀나갔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흐가 단선율 악기를 위해 폴리포니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전통적인 한계를 넘어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공동 작업들은 이 작품에 대한 이해,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의 문제 등으로 저를 더욱 자극했죠. 또한 바흐의 음악이 무용과 영화, 정원 디자인 등 다른 예술 분야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저의 일생 중 가장 흥미로운 경험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문화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오히려 무엇이 가장 값진 유산인가 끊임없이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모음곡들을 15년 전에 처음으로 녹음한 적이 있죠. 하지만 저는 현재 이 작품들을 재녹음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배운 것들을 반영한 새로운 해석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우리가 작업하면서 느꼈던 바흐로부터의 영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군요."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 피터 비스펠베이(첼로)
* 채널 CCS 12298 (2CD, DDD)
2월 28일 두번째 내한 공연을 가진 첼리스트 비스펠베이.
그에게서는 '두 얼굴을 가진 아티스트'라는 느낌을 받는다.비스펠베이 스스로는 빌스마의 영향을 부인하려고 애쓰지만, 바로크 첼로로 연주하는 바흐, 하이든에서는 빌스마의 영향이 크게 드러나고, 모던 첼로로 연주하는 드보르자크, 슈만, 힌데미트 등에서는 비스펠베이 나름대로의 이지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의 연주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서로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물론 이는 같은 사람의 연주이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바로크-고전의 세계가 낭만-현대에 비해 우위에 있는데, 그런 탓에 비스펠베이는 바로크-고전, 특히 바흐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비스펠베이가 두번째로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이런 상호 영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바로크 첼로를 사용한 원전연주지만, 낭만주의의 어법을 상당부분 도입한 절충적 연주를 펼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연주는 완벽한 원전연주이다. 1710년산 바로크 첼로에 거트 현을 달아 녹음한 것도 그렇고, 모음곡 5번의 스코르다투라 조현이나 6번의 비올론첼로 피콜로의 사용도 그러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이 연주는 원전연주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낭만적 연주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이라는 기준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첫번째 녹음보다 템포 루바토의 사용도 늘어났고, 다이내믹의 폭도 약간 넓어졌다. 전반적으로 템포도 빨라졌고 풍성한 느낌을 주고 있어, 원전연주가 줄 수 있는 경직성은 크게 완화되어 있다. 비스펠베이는 지난 2월호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이 신 녹음에 대해 '보다 인간의 감정 표현에 충실한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구 녹음과 신 녹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장함축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음반을 다 듣고 나서야 필자는 왜 비스펠베이가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비스펠베이의 첫 녹음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시작되었고, 그 후 비스펠베이는 바로크-고전과 낭만-현대를 오가며 많은 곡들을 연주, 녹음하여 레퍼토리를 늘려왔다. 그러는 동안에 낭만-현대 레퍼토리를 연주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흐 곡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녹음도 더 좋아졌다. 풍성한 잔향이 잘 포착되어 있고, 또 거트 현의 까칠까칠하면서도 여린 음색도 남김 없이 잡혀 있다. 적극 추천할 만한 연주. (윤정열)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 6곡
* 피에르 푸르니에(첼로)
* 아코드(Accord) 206 372 (ADD)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의 성서'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많은 첼리스트에게 평생에 걸친 도전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만큼 이 음악에 대한 해석도 천차만별이고, 연주 스타일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전통을 이룩한 파블로 카잘스 이후, 정력적이고 힘찬 바흐를 들려준 폴 토르틀리에와 선율적인 연주를 들려준 모리스 장드롱, 그리고 하나의 음표마다 섬세한 뉘앙스를 살려 연주한 로스트로포비치 등이 그 전통을 이어갔다. 현대에 들어와서 바흐의 해석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비교적 젊은 세대인 미샤 마이스키는 밝고 유려한 바흐를 들려주고, 프랑스 태생의 첼리스트 장 막스 클레망은 악보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해석으로 파격적인 바흐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피에르 푸르니에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어떤 특성을 지녔다고 말할수 있을까? '첼로의 황태자'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그의 연주는 고아한 향기가 넘치며, 귀족적인 기품과 높은 격조를 지녔다고 평해진다. 그래서 그가 1960년대 초에 아르히브에서 내놓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카잘스 이후 최고의 연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소개되는 음반은 이보다 몇 해 전인 1959년에 녹음된 것으로, 더욱 충만한 에너지로 바흐의 음악을 섬세하고 표정적으로 묘사하는 연주다.
이 음반을 들으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무반주 단선율을 입체적이고 다성적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푸르니에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의 프레이징과 다이내믹 설정은 결코 즉흥적인 감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 곡에 대한 구조적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 그리고 '정지'와 '운동'이 적절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변화무쌍한 연주를 들으면 앞으로 나올 선율이 어떻게 표현될지 묘한 기대감을 갖게 되며,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더 배가된다.단선율 속에서 몇 가지 성부를 끄집어내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계층적으로 파악하여 각 악구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그의 연주는, 지성적인 연주의 표본이 된다. 그러나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것은, 구조적 중요도에 따라 계층적으로 분절된 각 악구들이 놀랄 만큼 매끄럽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구별된 악구들은 음색과 음량의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숨으로 연주된다. 멜로디는 결코 끊기는 법이 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활의 압력과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의 뛰어난 테크닉에 힘입은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바흐 음악을 보는 그의 깊고 넓은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푸르니에가 들려주는 바흐는 미세한 구조에서부터 전체적인 통일성에 이르기까지 이 음악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바탕을 둔 명연이라 할 수 있다. (최은규)
● J.S.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 장 막스 클레망(첼로)
* 데카 DD 5183/460 045-2 (ADD)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악보 속의 음표를 실제의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역시 스타일의 문제이다. 스타일을 결정하는 기준은 연주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곡가의 의도에 중요성을 두는 연주자라면, 작곡가의 전기나 자필 악보에 나타난 기호들을 세밀히 조사함으로써 그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결정할 것이다. 원전 연주는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경우이다. 이러한 음악가들은 음악 작품이란 작곡된 바로 그 시점에서 이미 완성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시대의 연주 방식에 따라 음악의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음악 작품이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연주자의 주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는 연주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악보란 세밀하게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다.
장 막스 클레망은 전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연주자이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의 첫 프렐류드를 듣는 순간부터 그 비범한 연주에 빨려들게 된다. "음악에서 한 가지 위험한 것이라면,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클레망의 연주는 자유롭다. 그에게 있어 음악이란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는 악보에 새겨진 음 높이와 대강의 리듬만을 따를 뿐 다이내믹과 템포, 비브라토를 매 순간 변화시킨다. "아름다운 소리보다는 개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 자신의 연주관에 따라 그는 거칠고 굵은 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음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려올 것인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연주한다. 원전 연주의 엄격한 주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듯 그의 주법은 철저하게 비정격적이다. 그는 세 음이나 네 음으로 이루어진 코드를 한 번에 연주하지 않고 둘 씩 나누어 연주함으로써 고음악의 주법을 거부하고, 활을 현에 밀착시켜 연주해야 할 부분에서도 활의 튀어오르게 하는 스피카토 주법을 서슴지 않는다. 바흐 음악에서는 되도록 피해야 할 굵고 폭넓은 비브라토를 남용하는가 하면, 왼손의 터치가 너무나 강해서 연주시 잡음이 날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확실히, 우리에게 바흐 음악의 색다른 음향을 들려줄 뿐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감동을 경험하게 해준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의 첼리스트, 장 막스 클레망. 그는 1910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몬테 카를로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로 활동하던 중 세계적인 지휘자 토머스 비첨의 눈에 띄어 국제적인 독주자로 활약했다. 1959년에 데카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인 루아조 리르에서 발매된 클레망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녹음은 그의 마지막 레코딩으로서 당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국내에서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클레망의 독특한 음악을 국내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은규)
●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 야스아키 시미즈(테너 색소폰)
* APRO AP CP 1018
현대예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존작품의 기본적 표현방식 외에 다양한 접근방식을 찾는 것이다.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첼로, 비올라, 플루트,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는 것으로부터 마스카니의 ‘간주곡’을 성악곡인 '아베 마리아'로 둔갑시키는 수법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배경에는 너무나도 많은 음악가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지마나의 개성적인 표현법을 찾아야 음악인으로서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준엄한 시대적 명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 음반은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 것이다. 첼로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발상이지만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탄탄한 테크닉 없이 이러한 발상은 불가능하다. 결국 화려한 테크닉 위주의 연주가 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가 개입된 현대의 음반시장에서는 이러한 단순논리로 살아남기 어렵다. 나름대로의독특한 접근방식이 있어야 하고, 미학적 혹은 철학적 당위성이 요구된다. 색소폰을 연주한 야스아키 시미즈는 바흐의 단선율 음악에 내재된 화성적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이를 따라가는 방식을 취했다. 녹음 장소의 잔향에 의해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는 새로운 음들은 앞의 음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타나 누적되어 화성적인 효과를 창출한다. 이로써 아주 모던한 느낌의 바흐가 탄생했다. 색소폰은 비교적 감정이입이 쉬운 악기이기에 연주자들마다 자신의 개성적인 소리를 낸다. 그렇기 때문에 색소폰에 내재된 고유한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이 음반을 통해 색소폰만이 갖는 정결한 소리를 듣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