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 Argentina´ 는 영화 에비타(Evita)에 삽입된 노래이다.
영화배우 마돈나가 테라스 난간에 서서 한손을 치켜들고 숨막히는 열정으로 노래하는
´Don´t cry for me Argentina´ 항상 아르헨티나를 생각하면
나에게는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상의 한부분이었다.
수년 전에 영화를 본 기억이 나는데 다른 건 잊어버려서 별로 생각이 안나지만
이 장면 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잊혀지지 않아
아르헨티나를 생각할 때마다 영상이 주는 어떤 미묘한 서정이 흐르곤 하였다.
먼저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부인이었던 에바페론의 일대기이다.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나이트클럽의 댄서와 삼류배우를 전전하던
에바 마리아 두아르테(마돈나가 열연)가 대통령 영부인이 되어 3
3세의 꽃다운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펼쳐나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영화의 내용이다.
5월 광장과 대통령 관저 까사 로사다
영화 에비타의 배경이 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통령궁은
영화 속에서 마돈나가 군중들을 바라보며 ´Don´t cry for me Argentina´ 를 열창하는 장소로 나온다.
오늘은 글 서두에 `테라스 난간’이라고 표현한 그 장소,
대통령 관저와 열정의 여인 에바페론이 잠들어 있다는
레콜레타 묘지엘 가서 에바페론을 연기한 영화배우 마돈나가 아닌,
실제 주인공 아르헨티나의 여인 에바페론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과 열정
5,18 광주의거와 금남로 도청앞 광장을 생각나게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
대통령 취임, 데모 집회, 축구의 승패와 연관하여 일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 메워지는,
이름도 낯익은 그 광장의 중앙에 대통령 관저가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집 앞에 서니 아니나 다를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2층 중앙 난간에 보이는 자그마한 테라스이다.
영화속 마돈나가 직접 저 장소에서 노래를 열창한 건 아니겠으나
무대가 된 너른 광장과 테라스를 바라보니
세월을 거슬러 광장에서 수많은 인파가 에비타를 합창하는 가운데
대통령 부인 에비타가 꼭 저 자리에서 영화마냥
´Don´t cry for me Argentina´ 를 열창이라도 할 것만 같다.
대통령 관저의 2층 베란다가 오른쪽에 보인다.저기서 에비타가 열창을 했을까?
1873년부터 94년에 걸쳐서 스페인 로코코풍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는 대통령집은
전체가 핑크색으로 칠해져 카사 로사다(Casa Rosada) 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현재도 절대적인 신봉자를 거느리고 있는 페론 대통령 정권 당시(1946~1955, 1973~1976)에는
에비타와 나란히 서있는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하여
전국에서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5월광장에 몰려 들어
“페론, 페론”, “에비타, 에비타”를 실제로 합창했다고 한다.
이미 영화로, 뮤지컬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영향도 크겠으나
에바페론의 삶을 새삼 들여다보니 참 대단한 매력을 지닌 여인이긴 하다.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사생아로 태어나서
나이트클럽 댄서로, 삼류배우로, 라디오 성우로, 한 나라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가,
끝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말기 진단을 선고 받고
33년이라는 삶을 마감할 때가지
끊임없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나간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과 열정이 그렇다.
더 의미있는 것은 그런 하층계급 출신이었기에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만큼이나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약자였음을 잊을 수 없었던 에바는
권좌에 있으면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기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불평등을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아르헨티나 전역에는 의료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만든 무료 병원인데
에바페론이 영부인일 때 다 토대를 마련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무료종합병원 한곳에 한국에서 선교를 나오신 수녀님이 계셔서
그분의 도움으로 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이런 곳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만도 40여 군데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무료병원이라고 하면 시설이나 서비스가 안 좋은 병원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가 않고 일반 병원과 같은 개념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우리가 간 곳은 역사가 100여년 된 병원이었는데
수술환자를 비롯해서 산부인과 정신과 등 각종 병동에서 아픈 사람들이 진료를 받고 있었다.
일찍 나와 줄만 서면 된다고 하니 돈없고 아픈 사람들에겐 구원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많이 묻혀있는 레콜레타 묘지.
또 한쪽에서는 에바 페론이, 경제상황이 좋던 그때 당시 모은 기금으로
이런 무료병원을 지을 게 아니라,사회간접시설에 투자해,고용창출을 꾀했더라면
지금의 아르헨티나 경제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릇 모든 세상사가 찬반 양론이 있고,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법이므로,
이런 말이 더 솔깃하게 들어올 수밖에 없겠다.
에비타의 묘지가 사후에도 가장 인기
에바페론이 잠들어 있는 레콜레타 묘지로 갔다.
1882년에 만들어진 레콜레타 묘지는 시내 한복판,
사방 150m에 불과한 작은 묘지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묘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깊은 묘지라고 한다.
그런데 에바페론의 묘지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묘지들을 구경하면서 너무 놀랐다.
이 묘지에는 모두 6,400개의 납골당이 있는데
무슨 묘지들이 그렇게도 웅대하고 멋스러운 조각 장식들로 만들어져 있는지
도대체가 묘지인지 무슨 전시된 예술작품인지 구별이 안가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나라를 다니며 아름다운, 개성있는 묘지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곳 레콜레타 묘지처럼 하나하나 화려하고 큰 규모의 묘지는 처음 보았다.
이런 묘지는 전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듯하다.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의 부와 명예를 자랑하듯 그
중에 70여개의 묘가 이 나라의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우리도 들어가는 입구에서 에비타의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며 공부를 한 후
구경을 하기 시작했으나 구불구불 난 미로 같은 길에
저마다 한껏 멋을 내며 우뚝우뚝 솟은, 무슨 저택이나 교회처럼 생긴 납골당 때문에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어디가 어디인지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레콜레타 묘지에서 항상 가장 많은 꽃이 꽂혀있는 곳이다
마침 인부들이 레콜레타 묘지전체의 보도석을 교체하는 공사를 하다가
우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에비타의 묘지를 찾지 못해 이 인부들에게 물어오면
이 인부들은 일하다 말고 수도 없이 이들을 에비타 묘지까지 안내해주곤 했다.
정식 이름이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페론’인 에비타의 묘지는
‘당연히’ 페론가의 묘지에 합장돼 있는데,
남편인 페론 전 대통령보다 더 유명해,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흑영석의 이름판 앞에는
생전의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운 꽃들이 놓여 있다.
레콜레타 묘지 안에는 13명의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유명인사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그 중에도 에비타의 묘지가 생전의 유명세마냥
50여년이 지난 사후에도 가장 인기있게 보였다.
사람들이 에비타의 묘지 앞에 가장 많이 서 있다.
남미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시대,
아르헨티나의 화려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초호화판 묘지에
지금은 말없이 잠들어 있는 에바페론.
실제 주인공 에바페론보다는 영화배우 마돈나의 열정적인 연기와 노래로
가슴속에 더 강하게 남아있던 에비타를 그녀의 묘지 앞에서,
수북히 쌓인 붉은 장미꽃과 함께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영화 에비타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죽음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에비타의 신화.
이제 다시 영화를 본다면 사후에까지도 추앙을 받고 있는 에바페론의
불꽃 같은 인생역정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바로 이 이름이 붙어있는 에비타의 주인공 에바페론의 묘지이다
<부록> 영화 및 뮤지컬 ‘에비타’에 대하여 :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의 이야기를 그린 앤드류 로이드의 뮤지컬이 원작이다. 에바 페론이 사망한지 21년후인 1973년. 작사가 팀 라이스(Tim Rice)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에바 페론의 신화적인 삶에 강렬한 영감을 얻어 자신의 황금콤비이자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er)를 찾는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끝낸 직후였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팀 라이스의 대본을 읽고 흥분에 싸여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전설적인 뮤지컬 `에비타´는 이렇게 탄생했다. 1978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영국에서 뮤지컬 에비타를 초연하였다. 당시 영국에서만 2,900회를 상영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공연된 뮤지컬 에비타는 7개 부문의 토니상을 휩쓸었다.
알란 파커 감독이 이 뮤지컬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뮤지컬이 처음 공연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1979년 프로듀서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가 마침 에비타의 영화화를 알란 파커에게 의뢰했으나 파커는 당시 뮤지컬 페임(Fame) 준비에 한창이던 때라 에비타는 영화로 만들어질 기회를 잃어버렸다. 거의 20년 동안, 알란 파커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에비타는 결국 1994년 프로듀서 앤드류 벤저(Andrew Vanja)의 의뢰로 알란 파커에 의해 영화화하기로 결정되었다. 1996년작이다.
영화 에비타의 한 장면
벅시 맬론(Bugsy Malone), 페임(Fame), 더 월(The Wall),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 버디(Birdy), 엔젤 하트(Angel Heart),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 등 잇달은 관심작을 내놓은 알란 파커는 에비타 역에 마돈나, 후안 페론 역에 조나단 프라이스, 그리고 비판적이고 브레히트 연극적인 나레이터로 등장하는 체 역에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주연으로 등장시켰다.
영화 `에비타´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도 세계의 어디에선가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의 히트넘버들을 웅장한 스크린 음향시스템에 의해 재현해 놓았다는 점. 특히 페론의 대통령 당선직후와 에바가 암에 걸려 죽기 직전, 두번에 걸쳐 나오는 마돈나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젠티나´는 압권이라 할만큼 감동적이다.
영화개봉 후 전세계에 에비타 패션열풍을 몰고왔을 만큼 마돈나의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열정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든다. 이 영화에서 마돈나는 율동 외에는 볼 것 없다던 세간의 평을 비웃듯 뛰어난 가창력과 영혼이 서려있는 듯한 열연으로 `에비타´의 신화를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영화 `에비타´는 78년에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와는 또다른 면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8천만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 투입됐으며 할리우드 최고 세트 디자이너들은 4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도시 전체를 세트로 세운 것 외에도 연인원 2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엑스트라 동원으로 관심을 끌었다.
96년 촬영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진 칸영화제 프리뷰 상영당시 각국 영화계 인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일찌감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영화 `에비타´(Evita)는 97골든 글로브 3개 부문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의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사람은 한번 죽고나면 그뿐인가?-그렇지 않다는 것을 에비타의 묘지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