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있습니다.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차라리 지루하다고 해야 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그에게 생일 선물이 도착합니다.상자 안에는, 이제 껏 시도해 본 적도 없고 그 동안 도덕적으로도 입어 보기를 꺼려했던 그런 종류의 옷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그 옷을 수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힘 입고, 용기를 내어 서서히 자신의 몸에 걸치기 시작합니다.그 옷이 귀신같이 맞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껏 스스로 인식했던 정체성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거울에 선 또 다른 자신과 싸우기 시작 합니다.그로 부터 그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잊혀졌던 비밀의 게임 속을 탐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신비 하고도 괴이한 현실이 닥쳐 옵니다. 거울 속의 사내가 현실을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까지 서서히 점령 합니다.심지어 세상 사람들 마저도 자신이 아닌 거울 속 사내에게 동요되고 오히려 그를 인정 하려 합니다.이윽고,그는 거울 속의 또 다른 그와 자신의 존재를 맞바꾸었음을 깨닫게 되고 되 돌아 보지만,이미 거울 속에는 영원히 갇혀 버린 자신의 모습만이 남겨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자신을 거울 속의 또 다른 존재와 맞 바꾸며 살고 계신지요.
이와 비슷한 종류의 시나리오를 가진 외화들도 더러 있습니다.이것은 그저 미스테리 소설 속 허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여러분 자신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아가 겪고 있는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단편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야기 속에 배우 김래원과 경민이 있습니다.
빛이 없는 우주의 근원 속에는 먼지가 모여 에너지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발생된 작은 씨앗이 별이 되어 생성되는 과정처럼 인간의 존재에도 어떤 진리의 법칙이 존재 합니다.마치,수학공식 처럼요.
자,이제 김래원이란 배우의 눈 부시도록 밝은 의식의 세계로부터 블랙홀과 같은 그 자아의 통로를 거쳐 칠흙 같이 어두우며 우주처럼 드넓은 그의 무의식 속을 탐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안에 잊혀졌던 우리 존재의 일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곳은 우리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와의 교감을 이뤄낼 수 있는 모든 영혼 교합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울러,경민이란 케릭터가 성공하게 된 배경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김래원의 거울 속 경민
인간은 수 많은 자아를 갖고 태어 납니다.
최초 별이 생성 될 때 처럼,그것이 한데 뭉텅그러진 혼돈처럼 덩어리를 이룹니다. 그리고 자라 나면서 자아가 질서를 갖게 되고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사회와 도덕이라는 공통의 테두리 안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자아가 자연스럽게 거세되어 갑니다. 문제는 거세된 자아가 무의식 속에 살아 있다는 것 입니다.
한 마디로,래원과 경민의 관계를 설명 하자면,경민은 오래 전에 거세된 래원의 일부입니다.
유난히도 그 뿌리가 깊고 밑 둥이 커다란 경민이란 존재가 그의 무의식의 바다 속에 아직까지 존재해 있던 것이죠. 래원은 자신의 무의식 속을 뛰어들어 경민을 발견 합니다.그리고 그의 밑둥에 가느다란 줄기를 연결하여 접 붙이기를 시도합니다.그렇게 수면 밖으로 나온 경민의 존재가 놀랍게도 아침마다 이슬이 맺히고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 기적 같은 현상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이것은 신 내린 그의 연기에 대한 표면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제가 분석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배우 자신이 겪었을 자아의 단편을 추상적인 시각으로나마 탐구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자아에 관한 설명을 간단히 올리자면, 20세기의 사상가로 인간의 정신 구조를 정의한 프로이드,그가 정의한 자아는 흔히 셋으로 나뉩니다. 이드(본능),에고(자아),슈퍼에고(초자아). 이드는 무의식계에 속하는 본능적인 충동의 저장고입니다. 에고는 이드가 바깥 세계로 방출하려는 에너지의 통로를 지배하는 곳이며 슈퍼에고는 신으로 향한 영혼의 의지가 담긴 양심,도덕이라 부르는 자아의 이상입니다..
헤르만 헷세의 문학작품에서는 주로 이드와 슈퍼에고를 대변할 수 있는 극 상반된 케릭터가 대조를 이루며 등장합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연약한 자신을 데미안으로 성장 시키며, -지와 사랑-에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지적이고 본능적인 두 존재가 주인공으로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
현대 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도 이 상반된 케릭터가 함께 등장한 예는 무척 많고 옥탑방에서도 경민은 본능적인 인간형이고 동준은 지적인 인간형을 뜻합니다. 또한,래원 자신도 지적인 나르치스에 해당하며,경민은 본능적인 골드문트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세개의 자아가 일반적인 인간형이라면,지금 현 시대의 아티스트나 배우는 최소 세개 이상의 자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극단적으로 정신분열,즉,싸이코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세개 이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은 예술을 탄생 시킬 수 없다.- 이것은 국내 저명한 예술철학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연기력이 빼어난 배우들을 무당들이 일컷는 말이 있습니다.신가머리…라고. 바로 내림 굿을 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혼령을 빨아들이고 뱃는일에 능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배우가 신 내림 처럼 새로운 혼령을 빨아 들이는 과정에서 그 혼령은 정말 생판 보도 듣도 못한 낯선 것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한 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이 순수 에너지로 전환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혼령도 우주 속을 멤 도는 먼지와 같이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도 우주 속 기의 흐름에 한 몫을 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 또한 우주의 축소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따라서 생소한 영혼이라고 믿는 또 다른 얼굴은 무의식 속에 이미 존재해 오던 것 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를 접한 측근들의 말들을 미루어 짐작컨데,김래원은 분명,현실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자아가 아주 견고한 인간임에 틀림 없습니다. 선이 아주 정리가 잘 된 인간 형이죠.흔히,일찍이 철이 들고 나름대로의 진리의 선이 분명하며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타입입니다.이런 타입은 겉보기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일면을 갖고 있으며 말이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가 낚시가 취미라는 사실이 제겐 무척이나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아 속 수면 깊이 존재하는 무의식과 차분히 대화를 이루려는 일종의 영혼 의식과도 같은 존재에 대한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무의식 속에 수 많은 자아를 갖고 있는 특별한 존재들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주가 되진 않습니다. 사실,자신과의 싸움이 누구보다 치열할 수 밖에 없기에 늘,자신을 돌아 보고 수 많은 자아를 다독이느라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구 보다도 자신에 대한 열정과 자의식이 아주 강한 타입입니다.
그가 그토록 철철 넘치는 끼를 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연기라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너무도 크게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배우를 하지 못했다면,싸이코와 같은 면모를 숨기는데 한계가 있을 정도로 그는 수 많은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면 숨겨진 그의 또 다른 얼굴들이 그의 존재와 자아를 점령하고도 남을 듯 하지만 현실 속에선 거의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미 래원이란 존재는 그가 선택한 연기의 인생을 통해서 무의식의 우주 속에서 빛을 가진 고귀한 별처럼 자아를 일궈냈고 혼돈도 이미 자리를 잡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은 상태라 수면 속의 혼령들이 두터운 그를 꿰뚫고 점령하지는 못합니다. 단,연기가 그를 떠나지 않는 한은요.
존재라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인데,이것을 참고 다독이기 시작하면 그 내재된 에너지는 원자폭탄 못지 않은 위력을 갖습니다. 그는 연기할 때 마다 그 참았던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김래원의 경민이 조차도 사실은 셋 이상의 영혼으로 빚어진 케릭터 입니다. 작가도 감독도 카메라로 분출되는 그 혼령들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경민을 연기할 때 말초신경을 저려오던 그 짜릿한 쾌감 속에는 분명,엑스타시가 살아 있습니다.
예술작품에서 엑스타시-절정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이것은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정확히 산의 정상에 오른 흥분의 상태에서 붓을 놓아야 에너지가 영원히 간직됩니다.산을 다 내려오고 나면 눈에는 말끔하나 아무런 감흥도 없는 이발소 그림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따라서,좋은 예술작품은 있어도 잘 그린 예술작품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미완성도 대작이 될 수 있는 것이죠.절정의 감정이 살아 있는 한, 그것이 바로 완성의 선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 입니다. 옥탑방 고양이도 어찌 보면 아쉬움의 끝을 알 수 없는 미완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연륜이 있는 소위, 상도 몇 개 거머 쥔 주연급 연기자들이 훌륭한 테크닠으로 화면을 치장하는데,이 절정의 감흥을 느끼게 해 주는 멋진 연기자는 거의 없습니다.오히려,구수하게 주변을 멤 도는 조연만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말끔한 대사,카메라를 보는 정확한 시선,스크린이나 TV프레임을 가득 메우는 화려한 몸 동작들…이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엑스타시 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애초 그 천재성을 타고 난 배우에게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태생에서 부터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이들을 신이 내린 연기자라고 하는데,개인적으로 그런 감흥을 받았던 배우는 중국의 공리,미국의 사뮤엘 잭슨, 한국의 송강호나 설경구… 암튼,많진 않습니다.
그리고,경민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김래원이란 배우가 있습니다. 그럼,그가 옥탑방에서 보여 준 엑스타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저는 경민이가 된 그의 절묘한 표정 연기를 보면서,번지점프를 볼 때의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습니다.
김래원은 고도가 아주 높은 상공 위에 떠 밧줄에 몸을 메 답니다.줄은 허름해 보입니다.첨엔 자신을 주목하는 이도 없습니다.떨어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접고 용기를 냅니다.그리고 수면 위로 떨어져 곤두박질 칩니다.그 수면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경민이죠.
번지점프를 하는 모습을 가까이 본 적 있으십니까. 출발지점이 발끝과 맞닿았을 때,발가락 끝에서부터 저려 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 밑부터 열기가 식어 올라 옵니다.그리고 심장은 두 방망이 치죠.앞은 캄캄하기만 합니다.떨어지는 순간 심장이 챙하고 부서집니다. 떨어질 때 붙는 속도도 장난 아니지만,다시 솟구쳐 오를 때 데롱 거리며 균형을 잃은 육신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죽음을 경험합니다. 와우!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옵니다.두려움과 공포의 사지를 용기 있게 지나 온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경이로움,그리고 밧줄 끝에 메달려 고통스러워 하는 그 표정의 단면들은 정말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자아 내고도 남습니다. 써커스를 볼 때의 감동처럼,숨은 시간 동안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견디며 갈고 닦았을 시간과 과정들이 함께 녹아 있기에 그 모든 용기와 기술에 갈채를 아낄 수가 없는 것이죠.
경민은 애초 한 없이 불안하기만 한 인간존재의 본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케릭터 입니다.그럼에도 선이 정리되지 않은 빈틈에서 터져 나오는 그 매력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습니다. 케릭터의 70%이상이 기획된 테두리 안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그렇다고 그 역에 모두가 래원처럼 굵은 터치를 갖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경민을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장동건이 했다면 자못 이지적 이었겠고,정우성이 했다면 카리스마는 있었을 것 이지만 귀엽고 상큼하진 못했을 것 입니다.이정재가 했다면?권상우가 했다면? 구색은 맞을 듯도 싶지만,쎅시하면서도 귀여운 양면의 느낌이 충분했을까요? 원빈이나 장혁이 했다면,반항아가 됐을 것이며,김민종이 했다면 건달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차태현이 했다면 귀엽기는 했을 것인데,쎅시함이 없으니, 엽기적인 그 놈쯤 되지 않았을는지…옥탑 시작부터 팬을 자청하던 안재욱이 했다면 마스크에서 부터 느물느물한 분위기, 대사 잘 엮었을는지 몰라도 훤칠한 키에 잘 빠진 몸 전체에서 풍기는 래원의 경민처럼 트렌디한 느낌은 불가능 했겠죠.
암튼,어느 누구도,그토록 다면적이고,번지점프의 높이 만큼 느껴지는 굵은 선을 표현해 내지는 못하였을 것 입니다.
그가 한 경민의 연기에서 굵은 선을 이루는 요소는 이 밖에도 많은데,
첫번째,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캐릭터 자체가 매력적 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고
두번째,래원과 경민과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경민이 되고서도 늘 고뇌하는 그의 모습들을 화면 안에서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나 좀 봐 주라…응?’하며,비굴하게 메 달린다.-무릎 꿇고 정은에게 애원할 때, 지금까지 작가가 표현한 데로 경민의 가벼움을 일관하기 위해 비굴함을 강조하였는데 래원은 여기서 자신의 진지함을 보여 줍니다. 심지언,그 갈등의 표정들은 이제 막 참 사랑을 깨닳고 진정한 남자가 되 가는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세번째,래원과 경민은 자아가 극 상반된 정반대의 케릭터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바람둥이가 바람둥이 역할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기름 칠한 바퀴처럼,메끈하게 잘 굴러갔을 것 입니다.그러나 때론 윤활유가 넘쳐 시간이 갈수록 느끼해 지겠죠.그것도 심하면 유통기한 지난 버터처럼 역겨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론,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다소 무거운 듯한 김래원이 쏠리는 데로 행동하고 무책임하며 한 없이 가벼운 경민을 연기 합니다.
사뭇,낯선 경민의 옷이 보는 이에게도 진정 새 옷처럼 풋풋하게 느껴집니다. 그 자신도 새롭고 시간이 갈 수록 신이 납니다.본능 속에서 도사리고 있던 또 다른 자신에게 다시 없을 기회라고 다짐하며 최선을 다해 경민에게 흠뻑 빠져 봅니다.
누가 보아도 아직 인생에 대해서 배울 것이 더 많고 철 없는 경민을 그가 연기했을 때 이제껏 아류를 찾을 수 없었던,신선하고도 상큼한 느낌은 이제 막 걸음마를 위해 발걸음을 막 떼기 시작한 아기처럼 귀엽기만 합니다.
그의 눈 웃음 가득 퍼지는 그 천진한 미소를 어느 배우가 연기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미소에 속아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되는 쪽제비,그지,날랄이 과인 경민에게 수 많은 여성들이 두 손,두 발, 다 들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래원은 그렇게 대한민국 여인네들의 이상형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고 만 것입니다.
무의식 속 자신이라 할지라도 오래 전에 밑 둥이 베어지고 잊혀졌던,일부일 뿐인 그것에 접을 붙이고 죽은 줄 알았던 뿌리 속에서 물을 끌어 올려 꽃과 열매를 피워 낸 후,이제는 경민이 세상을 범람하기 시작 합니다.
누구도 뚫고 나가기 어려운 사각 프레임의 화면 속을 그 카리스마와 엑스타시의 열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채로, 언제나 다시 보아도 감동할 수 밖에 없는, 눈 부신 경민이란 존재가 아름다운 한 편의 클래식처럼 영원히 존재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2.경민이란 캐릭터가 성공하게 된 배경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와 스타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그 사회가 원하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 동안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왕자 콤플렉스에 가려져 눈 가리고 아웅하던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을 깨고-옥탑방 역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등장한 경민으로 인해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남성관과 여성들의 이상형 마저 뒤집히고 탈바꿈하는 현상을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김래원이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스타가 된 배경 또한 분명,이 시대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한 면이 있었습니다.
경민은 경제적 사회적 양 측면에서 혁신적인 성공을 거둔 아이콘입니다. 따라서,이를 경제적,사회적 측면으로 나뉘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적 측면을 먼저 보면,
모든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언제든 패션과 유행이 창조될 준비를 합니다. 각 장르와 내용에 맞춰 철저하게 케릭터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조형적 조화를 여러 각도로 시도하고 색깔을 입힙니다.여기에 케릭터가 입어 낼 패션 아이템을 선정한 후, 배우가 케릭터를 성공적으로 입어냈을 경우,또 많은 이 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인기를 얻었을 경우에는 그 보다 더한 광고는 없습니다.
유행의 핵을 이루는 유럽의 파리,런던 시장에서도 늘 새로운 패션 리더를 발견하고 홍보를 하는데 있어서 사력을 다 합니다.특히,사회가 원하고 유행을 가시화 시킬 수 있을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이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패션은 사실 유럽 쪽 서방 세계에서 물이 흘러 들어 오는 열악한 한국의 현실이지만,새로운 주인공을 찾았을 경우에는 유럽의 그 곳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파급효과는 가히,상상을 초월합니다.
그의 외모 분석에서 잠깐 언급 했듯이,새로운 패션 리더로서 메트로 족의 표상으로 떠 오른, 데이비드 베컴이 영국에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제 김래원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가치와 효과의 예를 들면,그의 트레이닝 룩이 압구정 거리를 뒤 덮었다는 우스울 수도 있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죠.
그의 경제적인 가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신이 내린 완벽한 그의 몸빨은 당분간 유행의 대명사 처럼 쉽게 그 자리를 내어주지 못할 듯 싶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은, 항상 그 시대가 원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했을 때 이루어집니다.
IMF당시에는 류시원씨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남성상으로 부각이 되었었죠. 가장이 직장을 떠나고 가정과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성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갈등으로 인해 닥친 서민들은 삶과 고통을 덜어 줄 새로운 환기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류시원씨의 한 없이 부드러운 이미지와 언제고 뒤에서 외조를 아끼지 않을 듯한 차분함이 높은 인기를 샀습니다. 남녀의 역할이 바뀌고 더 이상은 가부장적 권위만으로 남편과 가장의 위치를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 시점, IMF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이 시대에,우리들에게 경민은 어떤 존재일 까요?
수 많은 이들이 그에게 모든 시선과 갈채를 보낸 이후에도 히트 메이커로서 아직까지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이유, 물질만능과 사회 부폐,빈부의 격차와 이혼율 증가로 가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혼란스럽기만 한 시대에 마지막으로 그 정체성을 찾고자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보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겉 멀쩡하고 뛰어난 잠재력과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온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한 몸에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아직도 철 들지 않은 그러면서도 미워하고 버릴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병든 한 단면처럼,사회를 썩히고 있는 소수 권력과 기득권의 더러운 물이 흘러 들어 가정이 혼란에 빠지고 인간성이 밑바닥에 있는 지금, 그 모든 문제의 추상적 실체가 되어 경민이란 인물이 한국 사회에서 극복 해야만 하는 하나의 이슈가 되어 떠 오른 것 입니다.
즉,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든 고통을 끌어안고 이 난국을 극복해 보기 위한 정은이들의 몸부림인 것이죠. 이미 가슴에 숯,재만 남았을,또는 그렇게 살아 가야만 하는 기혼과 미혼 여성들의 눈에 경민이가 선이 정리되지 않은 빈틈에서 한 없이 쏟아지는 그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살짝,콩깍지를 씌워 준 것입니다. 어차피,견뎌야 할 어두움 속 고통을 망각할 수 있도록 달콤한 환각제가 되어 준 것이죠.
뿐만 아니라,직장 하나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어 버린 이 난국에 본의 아니게 경민이 되어 버린 수 많은 훌륭한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더 이상은 신데렐라가 되어 유리구두나 찾고 요술 마차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는 현실을 넘어,이제는 그지,날랄이,빈데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의 골치꺼리들을 차라리 사랑으로 감싸 안고 씩씩하게 걸머지기로 한 정은이 처럼,아직은 깨끗한 사회와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는 소수 바른 이 들의 치열한 생존본능이 옥탑방 속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제작 측에서,이런 부분까지 기획된 것 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코끼리 뒷 걸음질 치다 밟은 식의 사은품 까지 얻게 된 것이죠. 처음부터 성공한 인터넷 소설을 등에 업고 충분한 기대와 반향을 얻어 시작했으며, 내용 속 표절 시비 또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불 질러 놓고 도망 간 듯한 그들의 아쉬운 태도가 안타깝긴 하지만,그래도 찌르긴 제대로 찌른 듯 합니다.
이조 시대부터 매서운 시집살이에 꼬마 신랑 키우며 인내만을 강요 받았던, 또는 시절이 이렇게 흐른 아직까지도 참지 않으면 비난 받는, 여성을 보는 구태의연한 시각이 변함 없는,현실과 사회 속에서 궁궁하게 빛도 없이 웅크리고 살던 우리들의 정은이가 당당하게 퀸카들을 제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며,
금기사항처럼 어둠 속에서 밀폐되어 언제까지 썪고 비난 받았을지 모르는 동거가 비록 빙산의 일각이나마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뜨거운 감자처럼 세상 밖에 떠 오른 동거를 주제로 한 옥탑의 기획과 주,조연급 연기자들과의 조형적으로도 훌륭했던 조화,그의 신 내린 연기력이 단지 운이 좋다거나 우연의 일치만이 아니었음을 느낍니다.
그 안에 23살 김래원이란 배우의 영혼의 불꽃이었던 경민이 있었기에 그의 눈 부시도록 빛나는 날개의 실체가 진정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