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힘껏 쓰고 살살 일했다 (시사인 [52호] 2008년 09월 05일 (금) 23:15:08 장영희 전문기자) <시사IN>은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17대 국회에 대한 실증 분석을 시도했다. ‘투입-산출’ 분석 기법을 빌려 국회의 생산성 수준을가늠해본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투입된 비용에 비해 산출물의 수준과 질이 만족스럽지 않다.
“대의정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라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말은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9월1일 제278회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김 의장은 국회의원에게 싸우지 않고, 놀지 않고, 말이 앞서지 않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를 갖자고 호소했다. 18대 국회는 3개월 가까이 개원조차 못했다.
흔히 국회를 ‘민의의 전당’ 혹은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말하지만 국민에게는 그런 지칭이 낯설다. 그보다는 파행·공전·유회·몸싸움·날치기·호통 치기·말꼬리 잡기·중복 질의 따위 국회의 온갖 부정적 행태를 꼬집는 말에 익숙하다. 헌정사에서 ‘통법부’로 불리는 13대 이전 국회는 물론 그 이후에도 파행이 빚어진 탓이다. 이것은 국회가 한국 사회 각 분야의 갈등과 이해의 대립을 앞장서 해결하기는커
녕 종말처리장으로서의 기능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낳았고, 국회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민이 국회에 지불하는 돈은 많은데 국민에게 해주는 일은 별로 없다는 비난도 산다. 국민은 국회를 ‘고비용 저효율’ 조직으로 여긴다.
<시사IN>은 의정감시 활동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더불어 17대 국회에 대한 실증 분석을 시도했다. 17대 국회의 생산성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투입·산출 분석’ 기법을 빌렸다. 투입은 대한민국 국민이 국회라는 입법기관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총비용으로 봐야 하지만, 국회사무처 예산 가운데 국회의원 299명에게 들어가는 직접 비용만을 분석 대상으로 했다. 즉, 의원 세비와 보좌진 8명의 인건비, 의원 모두에게 똑같이 지원되는 여러 명목의 비용을 합산했다. 상임위와 본회의 경비 같은 간접 비용과 예산정책처와 도서관 등 보좌 기구의 예산도 제외했다.
의정 활동의 산출물은 의원이 만들어낸 예산조정 결과, 법안심사 결과, 국정감사 활동 결과를 합한 개념으로 파악했다. 법률안을 제안·심의·의결하고 예산의 심의·의결과 결산 심의를 통한 재정 통제 기능을 수행하며,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을 국회가 수행해야 할 본원적 기능으로 보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측정하려면 투입 비용에 대한 산출물의 비율을 파악해야 하는데, 세 가지 본원적 기능에 투입되는 각각의 비용을 가를 수 없어 계량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출물의 질과 내용으로 생산성 수준을 가늠해볼 수는 있다고 본다.
국
회의 성과를 경제 잣대로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공익 증진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가진 조직의 산출물을 계량화할 만한 분명한 측정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양적 평가를 시도해본 것은 이것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추동해 궁극적으로 민의의 전당으로 기능하게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선량 잘못 뽑으면 4년간 20억원 낭비 대한민국 국민은 2007년 국회라는 입법기관을 유지하기 위해 3943억원을 지불했다. 국회사무처(3554억원)와 국회도서관(278억원), 국회예산정책처(111억원) 지원 비용이다. 매년 예산이 늘어나므로 그 전해의 예산은 2007년보다 적겠지만, 국민이 17대 국회(2004~2007년)를 굴리는 데 지원한 예산은 적어도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이 연간 한 의원에게 쓴 직접 비용은 4억8940만원. 의원 299명에게 1441억원이 투입된 것이다. 17대 국회 4년간 의원 한 명에게 19억5762만원, 전체에는 5764억4022만원이 들어갔다. 국회의원 한 명을 잘못 뽑으면 20억 가까운 혈세를 낭비하는 셈이다.
16대 국회(2000~2003년)에는 4년간 4459억원(2003년 기준으로 단순 합산), 의원 1인당 16억원가량이 투입되었다. 13~15대 국회에는 각각 1330억원(1988년과 1989년의 경우 자료가 없어 1990년과 동일하게 가정), 2084억원, 2647억원이 투입되었다. 국회의원 수는 299명으로 변동이 없으니 이 기간에 의원당 평균 4억원, 7억원, 8억9000만원이 투입되었다. 갈수록 투입 비용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 노동자보다 100일가량 일 덜해 국회의원은 일반 노동자보다 100일 덜 일해 직접 경비만 5764억원을 쓴 17대 국회의원은 4년간 965일 국회 문을 열었다. 연간 241일 정도 개원한 셈이다. 문을 열어놓았다고 이 기간에 전부 일한 것은 아니다. 실제 일한 것은 4년간 570일, 연평균 142.5일이다. 개원 동안 59%만 일한 셈이다. 주 5일 근무하는 평균적인 노동자(240일)보다 국회의원이 100일가량 일을 적게 한 것은 틀림없다. 물론 이 수치는 본회의와 위원회(상임위+특별위+소위)가 열린 날과 시간을 측정한 것이므로, 국회의원의 활동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다. 지역구 민원을 듣고 정당 활동을 위해 투입한 시간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감안하지 않았다. 임동욱 교수(충주대·행정학)는 “의정 활동의 생산성을 가늠해보려면 우선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세 가지 본원적 기능에 집중해 계량화하는 것이 맞다”라고 지적한다.
17대 국회는 회의로 8369시간10분(소위 제외)을 썼는데, 이것만 보면 16대 국회(9319시간41분, 특위와 소위 제외)보다도 덜 일했다. 투입비용 대비 회의 시간의 비용을 계산해보면 한 명의 의원은 한 시간에 23만356원을 썼다. 16대(17만5252원)와 비교하면 17대 국회의원은 덜 일하고 더 쓴 셈이다.
본회의 개최 횟수가 개원 일수의 18%(16대는 17%)밖에 안 되는 것도 눈에 띈다. 17대 국회는 본회의를 하는 데 671시간35분을 들였는데, 이것을 일수로 환산하면 28일밖에 안 된다. 의안 대다수가 국회의 최종 의사결정 기구인 본회의에서 별다른 논의 없이 매우 신속하게 통과된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의원 발의 법률안이 폭증했다지만… 17대 국회가 그 이전 국회에 비해 크게 다른 점으로 의원 발의 법률안이 폭증했다는 것을 꼽지 않을 수 없다. 16대(1912건)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6387건에 달했다. 의원당 21.4건(16대 6.4건)의 제·개정 법률안을 낸 셈이다. 가상준 교수(단국대·정치학)는 사회적으로 의정활동 평가에서 입법활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국회 입법지원 조직이 강화되었으며, 의욕에 넘친 새내기 의원이 국회에 대거 입성한 것에서 법률안 폭증의 이유를 찾았다. 17대 국회는 접수된 6387건 가운데 1350건을 가결했다. 그러나 폐기 처리된 것이 2001건에 이르며, 임기 동안에 처리가 안 되어 폐기 처리된 법률안도 2944건에 달한다. 국회가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입법권을 적극 행사한 것은 그동안 정부에 짓눌려왔던 국회의 입법 주도권을 되찾고 무엇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법률에 적극 반영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고무적 현상이다. 하지만 가결 비율(21.1%)이 정부 제출 법률안(51.1%)에 크게 미달하며, 16대 국회(27%) 때보다도 못하다. 이에 대해 함께하는 시민행동 채연하 팀장은 “17대 국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법률안을 쏟아냈고, 폐기 처리가 많다는 점에서 그 질도 낮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국회사무처의 한 관계자도 “이전 국회에서 폐기 처리된 법률을 슬그머니 다시 들고 나오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조악한 법률안이 접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 차원의 입법 보좌 기능이 여전히 취약하고 대부분의 의원실이 자체 생산능력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법률안이 폭증한 것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본회의 개최 일수가 그전 국회보다 늘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안이 폭증한 것은 그만큼 한 회당 처리 량이 많았고 졸속으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18대 국회의 경우도 17대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크다. 이미 제출된 법률 제·개정안이 676건에 이른다. 각종 규제를 완화 혹은 폐지하거나 조세 감면과 관련한 법률안이 무더기로 발의되었다. 18대 국회가 17대보다 나은 환경에서 출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입법조사처가 가동되고, 예산정책처가 각종 법안의 재정 분석이나 비용 추계 등을 도와주는 등 입법 보좌 기능이 개선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법률안이 지나치게 많이 발의되는 것은 쓸데없는 처리 비용을 높일 뿐이다. 절대량이 의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중요한 것은 법률안의 ‘질’이다. 또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률을 제·개정하거나 논란이 많은 법률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을 생산성을 낮추는 행위로 볼 수는 없다. 가결률이 낮은 것도 법안 심의 과정에서 거르고 거른 결과라면 책할 이유가 없다.
예산 수정률 매년 엇비슷, 형식적 심의 예산 심의와 관련한 산출물은 증액과 삭감액을 합한 수정액(예산 변동액)과 수정비율로 파악했다. 삭감과 증액 모두가 예산심의 활동이기 때문에 총변동액을 파악하는 것이 순증감액을 보는 것보다 정확한 산출물이 될 수 있다.
17대 국회는 2005년을 빼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액을 감액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예결위에서 감액 수정한 것은 일반적 경향이다. 증액은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뜻하므로 국회가 꺼린다. 16대 국회에서도 2004년만 소폭 증액했을 뿐 나머지 3개년은 정부안보다 줄었다. 그런데 해마다 수정 비율이 마이너스 1%도 안 되는 엇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은 국회의 예산 심의가 형식적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예결위원 50명이 예산안을 심의하는 데 20일가량 투입한다는 것은 이런 의구심을 한층 높인다. 15대 국회 말에 국회법을 개정해 16대 국회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가 연중 운영되는 상설 특별위원회로 바뀌었지만 실제로 심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은 매년 11월께이다. 예산 심의보다 훨씬 더 형식적이라는 결산 심의가 통상 8월에 진행된다. 결산 심의는 거의 대부분 원안 의결되기 때문에 산출물이 없다시피 하다. 결산 심의가 끝나면 국회는 곧 회기 100일의 9월 정기국회에 들어간다. 그리고 10월부터 20일 남짓 국정감사가 시작되므로 8월께 행정부에서 국회 의사과에 접수된 예산안을 11월이 되어서야 예결위원은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예결위원은 겸직하기 때문에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동안 상임위 활동을 하느라 예산을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한 입법 심의관은 “인력과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전문성이 부족한 예결위원이 수치와 제목만 나열된 정부 예산안에서 문제 사업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 등 보좌 기구의 활성화 없이 예산 심의의 진전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귀띔한다. 20일 동안 500개 감사하니 부실할밖에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핵심 기능인 국정감사는 1948년 제헌 헌법에서 처음 채택한 이후 24년간 시행되다 1992년 개정 헌법(유신헌법)으로 폐지되었다가 18년 만인 1988년 부활했다. 국정감사 역시 저생산성을 면치 못한다. 짧은 기간에 많은 피감 기관을 감사해야 하는 데다 정기국회와 맞물려 준비할 시간도 부족한 탓이다. 여기에 행정부가 자료 제출을 늦추거나 부실한 자료를 주면 최악의 국정감사가 될 요건을 모두 갖춘다. 차분히 정책의 문제를 짚고 시정을 요구하거나 개선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할 국정감사가 의원의 호통치기나 재탕 삼탕식 질의에 그치는 악습이 끊이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열악한 국감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17대 국회는 한 개 피감 기관을 감사하는 데 평균 3시간 안팎을 투여하며 겨우 20일 동안 500개 안팎의 피감 기관을 그야말로 ‘훑었다’. 주마간산 격으로 보는 데도 숨이 찰 지경이다. 예산정책처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정책 감사를 할 수 없다며, 이렇게 지적한다. “20일 동안 그 많은 피감 기관을 몰아서 따질 일이 아니다. 연중 상설 국감이 되어야 한다. 장관이 업무 보고할 때 묻고 그때마다 당시 현안이나 정책 방향에 대해 개선안을 찾는 것이 국정감사의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2007년의 피감 기관당 감사 시간이 더욱 줄어든 것도 눈에 띈다. 17대 국회에서 가장 길게 감사했던 2004년(3시간46분)에 비해 2007년(2시간33분)은 1시간 이상 줄었다. 연이은 대선과 총선이라는 정치 변수가 가뜩이나 부족한 감사 시간을 갉아먹은 것으로 짐작된다. 2007년이 2006년에 비해 감사 시간 수, 피감 기관당 감사 시간, 시정 건수, 피감 기관당 시정 건수 등 모든 면에서 저조한 것도 선거의 영향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7대 국회는 투입 비용에 대해 산출물이 신통치 않은 ‘고비용 저효율’ 국회였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초선 의원이 60%가 넘는 등 의욕을 갖고 출발했으나 거의 회기 내내 국회 운영의 발목을 잡은 정쟁이 생산성을 낮추는 주범이 되었다. 18대 국회도 전도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18대 국회는 고유가로 고통받는 서민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를 2개월 넘게 미루는 등 민생을 외면했다는 공분을 산다. 국민에게 질 높은 의정 산출물을 내놓지 않는 한 18대 국회는 더 추락할 곳도, 퇴로도 없어 보인다.
“의정활동 열심히 하면 망한다.” 20년차 ‘국회의원급’ 보좌관의 말이다. 그는 국회 생산성을 취재한다는 기자의 말에 “경제시장의 투입 및 산출 메커니즘과 정치는 다르다”라며 일갈했다. 다소 지나친 표현일지 몰라도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의정활동의 핵심인 법안 처리와 예산심의, 국정감사를 충실히 하는 게 평가의 잣대라면 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그 대표 사례가 손봉숙 전 의원이다.
정치인의 이익은 그 표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고 그래야 재선·삼선·다선의 꿈을 이룬다. 국회의원이 늘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이 원하는’이라는 말 속에는 사실 ‘내가 표를 얻을 수 있는 국민’이라는 말이 감춰진 셈이다. 정치시장에서 국회의원과 유권자는 가면을 쓰고 싸움을 벌인다. 공익(국민 보편)과 사익(특정 집단)의 길항 속에 갈등의 조정은 순전히 국회의원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맡겨진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대선 때 기자를 만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정치판을 진흙탕이라 그러고, 정치판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해진다고 그러는데 나는 반대로 본다. 역사와 민족을 위한 가장 지고지순의 소명과 가치가 가장 밑바닥의 욕망, 즉 권력욕과 엉켜서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 잘하던 사람도 정치로 오면 사회적 페르소나(가면)를 벗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본질이 다 드러나는 것이지 망가지는 게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격을 지켜내고 일관성을 지켜내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투입과 산출이 다른 정치시장의 왜곡을 개선하려면 평가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최근 추진하려는 국회 제도개혁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선거의 평가가 과연 국회의원에 대한 총체적 평가인가.” 학계나 NGO를 중심으로 의정평가를 하지만 이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높다. 법안 발의 수 등의 양적 평가가 도리어 졸속, 날림 법안을 양산하는 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17대 어떤 초선 의원은 과거 법안들을 찾아내 ‘폐지안’을 무더기로 발의하는 수법의 숫자 부풀리기로 최우수 의원이 되기도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듯’ 자동 폐기된 17대 법안들을 자구와 명칭만 바꿔 재발의하는 일은 18대 국회 들어 더욱 극성을 떤다.
법안 가결률로 따지면 대한민국 국회의 생산성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17대 국회 법안 가결률은 의원 입법안 21%, 정부 입법안 51%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 의회의 경우 2007∼2008년 2월 기준(110대 국회)으로 상원 입법안은 1.9%, 하원 입법안은 2.8%에 그쳤다. 그렇다면 미국 의회의 생산성은 형편없는 수준일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초동 단계에서 80%가 걸러진다.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엄청난 논쟁이 벌어진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가결률이 떨어지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법안 등이 더디게 혹은 적게 처리되는 것을 비생산적이 아니라 도리어 생산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정치시장의 특징이다. 정치는 타협과 합의라는 ‘비효율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 “민주 국회? 아직도 통법부” (시사인 [52호] 2008년 09월 05일 (금) 23:19:30 박형숙 기자)
18대 국회 한나라당 비례대표 ‘꼴찌’(22번)로 당선한 이정현 의원. 25년 당직자 생활 끝에 마침내 금배지를 달았다. 1987년 이후 ‘민주 국회’ 20년을 지켜본 이정현 의원의 평가는 냉정했다. 한마디로 “전체 200조원에 이르는 예산안을 읽어낼 능력이 안 된다”라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 법안을 의례적으로 통과시켜주는 군사독재 시절의 ‘통법부’가 사실상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개혁 세력이 의회 세력을 교체했다는 기대를 안고 출발한 17대 국회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민주노동당의 활약’을 성과로 꼽았다.
“정책에 대한 원칙과 색깔을 가지고 정당의 존재가치를 부각하면서 언행일치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노동당의 활동이 국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와 상관없이 정당 본연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그가 말하는 국회의 생산성에 관한 정의는 간단하다. “국화빵 기계에서 국화빵이 나와야지 붕어빵이 나오면 잘못된 것 아닌가.” 국회의원 본연의 구실, 의정활동에 충실하자는 얘기다.
------------------------------------ 국회 사랑받으려면 의정평가 더 꼼꼼히 (시사인 [52호] 2008년 09월 05일 (금) 23:18:39 가상준 (단국대 교수·정치학))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의정평가도 실적이 아닌 내용 위주로 바뀌고 비례대표의 충원 과정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의 불신이다. 각종 지표를 통해 드러났지만 2006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정당·자치단체·검찰·법원·경찰·노조·대기업·언론·군대 중에서 국회의 신뢰는 2.95점으로 가장 낮았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신뢰도(4.0점)보다 낮은 수준이다. 국회가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기보다는 사익과 정파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국회가 신뢰받기 위해서는 제도화와 전문화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비례대표 의원 선정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는 1위 당선자 외에는 모두 사표가 되는 소선거구제의 약점을 보완해 소수자의 목소리도 국회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또한 지역구 대표로만 구성되어 있을 경우 의회의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구 관리와 선거에 대한 부담이 없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의회에 진출시켜 국회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과연 본래의 취지에 맞게 비례대표제가 실시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 가운데 법안 발의,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출석이 저조한 의원이 많다는 점은 비례대표제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가 다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가령 법안에 대한 지나친 양적 평가가 내용을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의원들의 발의 현황을 시민단체가 공개하면서 의원들이 발의 내용보다 ‘실적’에 집착하는 부작용이다. 의원들의 입법활동이 강화되려면 몇 가지 조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실 법안이 제출되지 않도록 의원이 발의한 법안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가결 여부에 중점을 두어 조사해야 한다. 또 발의한 법안이 중요 정책 사안에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국회법 개정 혹은 문구 수정에 관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특히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부분 개정 법률안인지 제정 법률안 혹은 전부 개정 법률안인지 차별을 두어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안이 예산 또는 기금상의 조처를 수반하는 경우라면 시행에 따르는 소요 비용의 추계를 같이 제출해야 할 것이다.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의의를 두다보니 감당할 수 없는 소요 비용 때문에 통과가 어려운 내용을 담은 법안이 많다. 공청회와 청문회 개최 여부도 법안 평가의 주요 항목이다. 공청회와 청문회가 어느 정도 열렸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법안 심의가 얼마나 심도 깊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고 법안의 중요성도 평가할 수 있다. 비례대표 선정 과정 개선해야 법안에 관련된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평가하려면 상임위원회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법안에 대해 심사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의원이 소속 상임위원회에 출석했는지, 법안과 관련해 어떠한 발언을 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의원들의 상임위원회 출석은 당연하지만, 출석하는 경우에도 전혀 발언하지 않고 출석에만 의미를 두는 이도 많다. 법안 발의에만 치중하지 말고 상임위원회 관련 법안에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지에 따라 의원의 입법활동을 전반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끝으로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위한 입법지원 체계가 잘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2004년 국회에 예산정책처가, 2007년에는 입법조사처가 신설됐지만 늘어나는 의원들의 입법 지원 수요를 맞추려면 현재 인원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한 각 상임위원회에서 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는 전문위원의 충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