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빙거왕조 (王朝) (Merowinger dynasty)
프랑크왕국 전반기(前半期)의 왕조(481-751)
프랑크족의 일파 살리족(族)은 민족 대이동기에 라인강을 건너 톡산드리아로 진출하였다. 당시 프랑크족은 많은 소국(小國)으로 나누어져, 각각 소왕(小王)에게 지배되고 있었는데, 브뤼셀 부근에 있던 데스파르굼의 왕 클로디오가 세력을 떨쳐 메로빙거조의 최초의 왕이 되었다.
그의 아들이 왕조 이름의 근원이 된 메로베츠이다. 또 그의 아들 힐데리히 1세 때, 이미 살리족의 통일은 상당히 진전되고 있었던 것 같다. 481년, 그 뒤를 이은 아들 클로비스 1세는 살리족 뿐만 아니라 리브라족·카마비족까지도 병합하여서 프랑크왕국을 건립하였으며, 루아르강 유역에 남아 있던 로마인 세력을 멸망시키고(486), 서고트 왕국과 부르군트왕국을 쳐 알라만족을 정복, 갈리아 남부에서 남서독일에까지 세력을 확대하였다. 또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교황과의 제휴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망(511) 후, 왕국은 4명의 아들인 토이데리히 1세·클로도머·힐데베르트 1세·클로타어 1세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형제는 대외적으로는 협력하여 부르군트왕국을 멸망시키고 서고트왕국을 피레네산맥 너머로 몰아내어 바이에른족·튀링겐족을 복속시키는 등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분국(分國) 상호간의 내분을 되풀이하였다.
그 후 클로타어 1세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그의 사망(561) 후에는 또 다시 4명의 아들에게 분할되어, 특히 아우스트라시아분국왕(分國王) 지게베르트 1세와 네우스트리아 분국왕 힐페리히 1세와의 대립은 전국적인 내란으로까지 발전하여, 힐페리히의 아들 클로타어 2세에 의해 재통일(613)되었다고는 하나 국내 호족(豪族)들의 세력이 현저하게 강화되었고, 실권은 호족층의 두령(頭領)인 각 분국의 궁재(宮宰)의 손에 장악되었다.
특히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카롤링거가의 대두가 현저하여 피핀(中) 때에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직을 장악했고, 그 아들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푸아티에의 싸움(732)에서 침입해 온 이슬람군을 격파하여, 사실상의 프랑크왕국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이같은 기반 위에서 그의 아들 피핀(小)은 쿠데타를 감행, 최후의 메로빙거 국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새로이 카롤링거조시대를 열었다.(751년)
카롤링거 왕조 (王朝) (Carolingian dynasty)
750-887년에 서유럽을 통치한 프랑크 왕조.
이 명칭은 가장 유명한 샤를마뉴(카를) 대제를 비롯해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샤를(카를)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에 기인한다.
계보는 메츠 주교 아르눌프 및 아우스트라시아 지역의 대호족 대(大)피핀으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아르눌프가(家) 또는 피핀가라고도 부른다.
아르눌프의 아들 안제기젤과 대피핀의 딸 베거 사이에 출생한 중(中)피핀이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宮宰)가 되어 카롤링거가 부흥의 기초를 닦았다. 중피핀은 687년 테르트리의 싸움에서 노이스트리아를 격파, 전프랑크왕국의 궁재가 되었고 그 서자 카를 마르텔은 732년 투르·푸아티에 싸움에서 에스파냐로부터 침입한 이슬람교도를 패주시키고 카롤링거가의 권위를 확립하였다.
그 아들 소(小)피핀은 751년 메로빙거 가의 이름뿐인 국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카롤링거왕조를 열었다.
피핀은 제91대 교황 자카리아스의 승인을 얻어 정당성을 부여받았으며 이로부터 카롤링거왕조와 교황권의 제휴가 시작되었다. 카롤링거왕국은 소피핀의 아들 카를대제 때 최성기를 맞이하여 서쪽은 피레네산맥에서 동쪽은 엘베강까지, 북쪽은 북해에서 남쪽은 중부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대부분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였다.
800년 카를은 교황 레오 3 세에 의하여 로마황제로서 대관되었으며 고전문화의 부흥에도 힘써, 앨퀸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후세에 카롤링거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카를대제의 아들 루이1세가 죽은 뒤 제국은 3명의 자식들에게 분할되었다. 장자 로타르는 로트링겐·부르군트·이탈리아와 황제위(皇帝位)를, 차남 루트비히는 동프랑크를, 막내 카를 2세는 서프랑크를 상속하였다.
그 뒤 로타르혈통이 단절되자 로트링겐은 동·서프랑크왕국에 분할되고(메르센조약), 동프랑크의 카롤링거가는 911년 루트비히유아왕(幼兒王)의 죽음으로, 서프랑크의 카롤링거가는 987년 루이 5세의 죽음으로 단절되었다.
그 결과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콘라트 1세를 거쳐 작센왕조의 독일왕국이, 서프랑크왕국에서는 카페왕조의 프랑스왕국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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