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게 다시 올립니다.
2. 프랑스에서 경험한 사회보장 혜택
유럽에서 살아본 세 번중 사회보장 혜택을 실제로 받아본 경우는 1985 ~1986년 프랑스에서 대학원 학생으로 살 때였다. 벨기에와 독일에서 근무할 때는 한국과의 이중과세 방지협정에 따라 현지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고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했다. 프랑스 거주시에는 일을 할 수 없는 학생 신분인 데다 거주기간이 짧아 접해본 사회보장 혜택이 다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받았던 사회보장 혜택이 파리의 아름다움보다 더 충격적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첫째, 대학교육과 관련된 복지 혜택은 내·외국인 모두 대학원도 학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85년 당시 1년 대학원 등록금이 학생회비, 체육관 이용료, 500매(?) 복사기 이용권 등을 포함 총 4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숙사비와 학교 식당 밥값은 정부 보조 등으로 후진국이던 한국의 유학생 입장에서도 매우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학교 식당의 식사는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제대로 차려 먹는 점심·저녁식사를 기준으로 제공하고 있어 맛도 괜찮고 술만 없는 양식 풀코스였다. 전식, 샐러드, 스프, 스테이크 등 본요리, 후식 등으로 구성되어 양이 아주 넉넉하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음식을 모두 받으면 다 먹기 어려워 한 가지 정도는 빼고 받았다. 여기에다 빵은 무제한 공급되어 일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저녁식사때 빵을 많이 받아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둘째, 아동과 관련된 복지혜택은 거의 완벽할 정도였다. 당시 딸(만 3세)과 아들(만 1세)이 있었는데 큰 애는 유치원(ecole maternelle), 작은 애는 탁아소(cliche)에 다녔다. 유치원과 탁아소는 붙어있었고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정도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비용은 무료였고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점심을 먹이고 오후에는 낮잠까지 재워서 집으로 보내주었다. 유치원과 탁아소는 가정주부의 육아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주었다.
또한 애들에게는 매월 양육비가 지원되었다.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학생에게는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자녀양육 보조금은 둘째에서 셋째 애로 갈수록 지원금액이 급격히 커져 애가 셋이면 양육보조금만 갖고도 한 가족이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애가 다섯이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할 정도라고 하였다. 자녀양육 보조금은 소득 수준, 재산 수준과 무관하게 지원되며 외국인도 합법적으로 프랑스내에 입국한 시점부터 지급되었다. 당시 애가 셋이 있는 한국상사 주재원이 프랑스에 온지 1년쯤 지나 자녀양육비 보조를 신청하였는데 입국 이후 자녀 세 명의 양육비가 한꺼번에 나와 소형차 한 대 값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음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복지제도는 더 완벽하여 주변의 결혼한 유학생들이 많은 혜택을 받았다. 언제 임신했는지, 프랑스내에서 임신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임산부의 진료, 출산관련 병원비는 무료였다. 임산부에게는 정해진 진료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뱃속의 태아를 잘 키우라고 태아양육비(임신보조금)도 지원된다. 또 출산 직전에는 유모차, 애기 옷 등 신생아 용품을 살 수 있는 비용이 지원되었다. 또 신생아가 특이 체질이어서 고가의 특수 분유만 먹어야 되는 경우(당시 한국 유학생 부부의 실제 사례) 분유 값도 지원대상이다.
여기에다 금전적 지원은 아니지만 애들과 관련된 흥미있는 경험이 있다. 지역 사회보장 부서에서 내게 어떤 카드가 발급되었는데 불어 실력이 짧아서인지 어디다 쓰는 카드인지 알 수 없었다. 프랑스 친구에게 보여주니깐 내가 어린애가 둘이기 때문에 애들을 동반하고 역이나 박물관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 간 경우 줄 설 필요없이 맨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카드라는 것이다. 즉 새치기 허용카드인 셈이다. 돈 들이지 않으면서 실질적 혜택을 주는 좋은 지원제도라고 생각된다. 한국도 도입하면 어떨까한다. 애가 있는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배려를 볼 때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애를 낳기만 하면 되고 기르는 것은 국가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지원 덕분으로 프랑스의 출산율은 1,000명당 13명으로 한국(9명)보다 크게 높고 선진국중 거의 최고 수준이다.
셋째, 의료와 관련한 복지제도도 매우 훌륭했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국민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의료보험 가입자는 치과 일부, 성형수술, 1인용 병실 등을 제외하고는 무료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28세 이하인 경우 매우 저렴한 학생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당시 필자는 30세가 막 넘어 보험료가 꽤 비싼 일반 개인보험을 가입하여야 했으나 소득이 없고 애를 포함,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의료보험료를 국가에서 내주는 제도가 있어 실제 보험료를 내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것은 기본권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의료보험과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병원의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을 의무로 보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프랑스 의료보험에 가입되기 전에 필자가 공부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심한 위경련이 생겨 대학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었다. X-Ray 촬영, 피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와 링겔 주사 등의 치료를 받고 하루를 병원에서 보냈다. 몸이 괜찮아지고 병원비 걱정도 되고 해서 퇴원을 서둘렀다. 담당의사는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니 더 병원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공부해야 할 것이 있다고 우겨 퇴원하였다. 담당의사는 개인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다시 아프면 즉시 전화하고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퇴원을 위해 병원 1층 접수처(우리나라 병원과는 달리 1~2명만 있었다.)에 퇴원한다고 하니 알았다고 잘가라고만 하였다. 병원비가 걱정이 돼 프랑스 의료보험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접수처 직원이 의아한 눈초리로 보더니 입원할 때 집주소를 적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집으로 청구서가 갈 것이라 했다. 퇴원후 프랑스에서 오래 산 한국인 유학생에게 물어보니 청구서가 오면 돈이 없어 병원비를 낼 수 없다고 써서 돌려보내면 된다고 하였다. 그 도시의 유학생들중에서 병원비를 내 본 사람이 없으니 나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병원비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죽는 사람도 있을 때였는데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넷째, 주거비 보조제도로 주택임차료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프랑스 거주시 학교 근처 민간주택 임대회사로부터 침실 2개, 거실, 주방 등이 있는 서민아파트를 월세로 어렵게 얻어 살았다. 공공임대 아파트나 학생 아파트보다는 세가 조금 비쌌지만 임차료의 60% 정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부담이 크지 않았다. 임차료 보조(allocation lodgement)는 대상자의 소득과 거주지역,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소득이 낮을수록, 비인기 지역일수록 지원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이와 같은 임차료 보조제도 이외에 장기임차 보장, 임차료 인상률 제한, 엄격한 강제퇴거 조건 등 세입자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세입자 보호장치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일부 부정적 영향도 있다. 대표적인 부정적 영향은 돈이 없는 사람이 민간 임대주택의 세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입자가 임차료를 미납한 경우에도 동절기나 세입자중 어린애나 노인이 있는 경우 등에는 강제퇴거가 어렵기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까다롭게 고른다. 프랑스에서 집주인은 앞으로 세를 얼마나 올릴까하는 생각보다 세입자가 세를 꼬박 꼬박 잘 낼 것이냐가 더 큰 관심꺼리이다. 집주인은 집이 비어있어도 외국인 유학생 등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세를 잘 놓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1년 정도의 생활을 끝내고 임대주택 관리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니 관리인은 세를 제 날짜에 잘 내주어서 매우 고맙고 다시 프랑스에 와 살 일이 있으면 자기 회사의 임대주택을 다시 이용하란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사회보장제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880년대 독일에서 비스마르크에 의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질병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 등이 체계화된 사회보장제도의 시작이었다. 이어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유사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였고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유럽 사회보장제도의 황금기는 통상 1970년대 중반이었으며 1980년대 이후 조금씩 축소되면서 조정되고 있다. 필자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던 1985~1986년의 프랑스 사회보장제도는 이미 과거 좋은 때보다 많이 축소된 상태였다. 복지제도를 완비한 1970년대 중.후반 프랑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00-8,000 달러 정도 였다. 한국에서 복지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43,000 달러, 한국 21,000 달러로 한 나라의 복지제도 구축은 경제력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고 나라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냐에 달려있다. 즉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미국식 모델,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경쟁과 복지를 절충하는 서유럽국가식 모델중에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