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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 꿈이여 다시 한번
9월 8일 조헌모
또 몽롱하다. 온몸이 나른하다. 눈을 감으면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의 기억과 상상력이 두둥실 몸을 띄워, 손오공이 구름 타고 나르듯, 나를 며칠 전 구운몽(九雲夢)의 현장으로 순간이동을 시킨다.
트레일의 정점에서 “이제 가면 언제 올까, 꿈이여 다시 한번!”을 읊조렸던 바로 그 곳, 요세미티 계곡의 상공에 나는 다시 서 있다.....
황금이 만능(萬能)의 신(神)으로 추앙 받는 미국 땅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보호의 정신이 살아 숨쉬도록 그 씨를 퍼뜨린 존 뮤어의 족적이 배인 곳.
그러나 알고 보면 무려 6천년동안이라는 세월을 이 곳 일대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삶을 일구며 존뮤어보다도 더 지극히 대자연을 공경했던 native american들의 슬픈 역사가 서린 곳.
더 거슬러 올라가면 1만 5천년 전 오늘의 모습으로 굳어지기 전까지, 빙하시대와, 그너머 까마득한 억겁의 시절 동안 지각이 용트림하며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치며, 융기와 침강을 반복했던 유구한 진화의 사연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그 곳에 나는 다시 서 있는 것이다.....
상상으로 다시 그곳에 오른 내가 며칠전의 나의 모습을 내려다 본다.
발 디딜 곳이 별로 없어 보이는 화강암의 통 절벽 하프돔으로 치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그 살 떨리는 광경! 나는 내색은 안 했지만 사실 멈칫했다. 젠장,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을 돌려야하나?
그저 우물쭈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는데 , 한쪽 발을 절룩절룩 거리는 어느 미국 노인네까지 성큼 절벽을 향해 나서는 게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며 나선 나도 어느 사이에 양손에 쇠줄을 잡고 깎아지른 듯한 화강암 절벽 난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한 줄을 걸치고 나니 용기 백배, 두려움은 씻은 듯 가시고 담담하게 밑을 내려다보는 여유마저 생겨났다. 이거 별 거 아닌데 괜시리 겁먹었잖아?
한 발, 또 한 발, 발바닥 전체를 바위에 디디라는 신인섭의 말을 새기며 아찔한 허공을 밑으로 하고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비로소 두 눈이 확 트였다.
아, 다 올랐다, 끝이로구나..! 4박 5일 마지막구간의 종착지, 아니 나로서는 4차에 걸친 존뮤어트레일의 하이라이트였다.
선두로 올랐던 전배균차장은 내가 숨을 헐떡이며 오르자 전례없는 칭찬의 말을 건넸다. Historical Day입니다요!
그랬다. 말로만 듣던 요세미티의 Top을 걸어서 올랐다는 자부심으로 나도 잠시 부풀어올랐다.
고도는 8,842피트.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빙하의 침식과 지각의 침강등으로 그 주변 지역일대가 훨씬 낮은 탓인지 돔의 꼭대기에 서니 Glacier Point, El Capitan, Nevada Fall 등 명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찌 가슴이 부풀어오르지 않으랴!
뭐니뭐니해도 산행의 절정은 그 정상에 오르는 것이요, 목표는 그 뒤 하산까지를 아무 탈 없이 자신을 추스르며 내려가는 것. 이제 남은 것은 무릎보호대로 둘러싼 왼쪽무릎의 통증을 견디며 이겨내는 것뿐인 듯 했다.
_______하산길_______
오르기보다 내려가는 것 이 더 힘들다고 했던가, 하산 또한 고행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백운대나 인수봉, 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처럼 힘 좋고 생기발랄한 청춘남녀, 아베크 족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올라오다 굳은 표정으로 내려가는 나를 마주치고 묘하게 쳐다봤다. 산행출발 전날 밤 산책길에 밟은 날카로운 금속에 입은 상처도 욱신거렸다.
그런데 웬걸,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景)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하반신은 무거웠어도 연신 고개를 돌려 그 경관을 뇌리에 주워 담기 바빴다.
아스라이 멀리 보이던 계곡은 골짜기 굽이굽이마다 수천년 묵은 이끼더미를 뭉텅이로 드러내며 나를 반겨준다. 무성한 숲을 헤치고 돌아가는 계곡 사이로 언제는 왼편, 또 언제는 오른 편에서 휘돌아 흐르는 멀시드(Merced) 강줄기를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굽어 보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구분, 그 잣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태고(太古)의 이끼냄새가 진동했다. 태곳적, 그 야생(野生)의 사상(思想).....!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있을리 없고, 국가와 국민, 민족의 구별 또한 있을 리 없던 그 시절........
공간적으로는 저 드넓은 대양(大洋)을 노니는 연어나 고래등속의 바닷물고기에게 양의 동서(東西)가 있을리 없고, 시간적으로는 원시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동(東)을 깔보고 내려다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천박함이 상반(相反)의 반발을 낳고 그래서 동서가 상쟁(相爭)하는 양 보일뿐, 기실 둥그런 지구에서 동이 서가 되고 서가 동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인간들이 만든 문명을 조롱하고 있었다. 아니, 기실은 그 문명에 조롱당하는 나의 모순이 서러워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에덴의 동쪽은 어디인가
에덴의 서쪽은 어디인가
나는 한 마리 연어,
내가 가는 곳이 고향.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그리워 가는 곳이 어디인가
시원(始源)의 그리움은,
해 저물 녘 내 머물적에
다 왔다 여겨지는 곳.
그곳에서 그리움이 멈출적에,
나 쉬리라.
언젠가 내가 여기 있었다
웬지 모를 눈물에 두 뺨 적셔질 때,
그냥 그곳에서
귀향(歸鄕)의 고단함을 풀고
나 쉬리라.
에덴의 동쪽은 어디인가
에덴의 서쪽은 어디인가
시원을 찾아
거슬러 거슬러
그리움찾아
고향찾아
내건너 강건너
바다가 보일 때
웬지 모를 눈물에 두 뺨 적셔질 때,
나의 시신(屍身)이 그렇게
풀어 헤쳐질 때,
내 어릴적
내 살던 고향이려니,
시원(始源)의 그리움을 오롯이 안고
그냥 그렇게, 그곳에서.
나 쉬리라,.
_______연어_______
한국전쟁의 전란통에 피난을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부모님이 나를 낳은 곳은 항도 부산. 그리고 잔뼈가 채 굵기도 전에 서울로 올라가 자라게 된 내겐 사실 애틋한 마음의 고향이 없는 탓일까, 요세미티 계곡에서 느닷없이 고향생각이 난 것이 기이했다.
아마도 길고 긴 하산 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푹 빠져 들었던 대자연의 품이 아늑한 고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저만치 벗어난, 우리의 유년(乳年), 그 아스라하게 까마득한 고향..... !
요세미티 계곡을 아예 거처로 정하고 한동안 살았던 우리 트레일의 주인공(?) 존뮤어의 고향은 바로 숲이었고 우주였다.
"The clearest way into the universe is
through a forest wilderness."
_ John Muir_
어쩐 일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그 고향_ 향토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우주적, 철학적 의미의 그곳을 잃어버린 이 땅의 주인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수의 재야 사학자들은 그들과 우리는 사실 종족적 뿌리가 같은 몽골리안이며, 지금은 러시아땅에 속해있는 북부 중앙아시아의 바이칼호수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추위를 피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흩어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엉덩이에 이른바 몽고반점이 있는 것 등도 그 증거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겐 조상들의 애처로운 역사가 또 겹쳐지게 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하산길에 저 높이 보이는 그 유명한 엘 캐피탄의 거봉(巨峯)을 바라다보며 그런저런 부질없는 상념을 하는 사이에 4박 5일, 그 꿈결 같았던 트레일의 마지막 장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꿈이여, 다시 한 번.!....
계곡 골짜기엔 계절이 어느덧 가을임을 일깨우는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눈에 익어 유심히 살피니 덩치만 클 뿐 한국의 단풍나무와 흡사한 매이플이었다. 그러나 어찌 한국의 가을 단풍, 그 알록달록 울긋불긋 오색빛 잎의 색깔을 따라오랴, 아기자기한 것만큼은 한반도의 산세가 으뜸이구나 싶었다.
__________캐시드럴 피크, 동이 부동(同而不同)의 조화_____________
그 전 날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뜻하지 않게 멀찌감치에서 구한 막영지를 떠나 목표지를 향해갈 때 펼쳐졌던 기막히게 푸른 하늘. 기막히다 못해 촌스럽게, 하얀 무늬 하나 없는 파란 천을 펼쳐놓은 듯, 청청(晴晴)한 하늘이었다.
그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러울 정도로 고요하게 펼쳐져있는 Mono Lake에선 짠 내음이 물씬 풍겼고, 그곳 또한 Native American들이 평화롭게 살던 곳임을 팻말을 보고야 알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통하는 한 입구를 지나
차에서 내린 것이 오전 9시 반. 한국으로 치면 오대산 월정사로 향하는 길과 분위기가 흡사한, 그늘 많은 산세가 반가왔다. 이미 해는 중천(中天)에 떴지만 어찌 그리 거목(巨木)에 고목(古木)이 많은지, 무성한 숲나무들과 그 잎새들이 반사하는 태양빛을 내리 쪼이며 걷던 중 왼편 하늘에 치솟은 범상치 않은 봉우리들!
지도엔 그 이름을 Catheral Peak라 부르고 있었다.
10분을 가서 보니 다른 모양, 30분을 걷다 쳐다보니 또 다른 모습, 한 시간 여를 가다 바라다보니 아하, 저래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구나, 대원들이 저마다 해석을 내놓는데, 뾰족한 성당의 첨탑과 종루(鍾樓)등을 연상시키는 연봉(連峯)들은 마치 성의(聖衣)를 걸쳐입은 사제가 성서(聖書)를 손에 들고 읽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이어져 시야에 들어오는게 아닌가!
그 옆의 Echo Peak도 마찬가지, 걸으면서 쳐다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요, 바라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데, 더 높이 오를수록 둔갑의 조화를 보이관(壯觀)이 펼쳐졌다.
기실은 하나의 사물이 보는 이의 시점(視點)과 보는 각도(角度)에 따라 달라보이는 것이니, 同而不同이요,不同而同!
대자연은 우리에게 영어로 치자면 Oneness와 Diversity사이의 차이가 별것 아니라며 말없이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런지.....
한참을 가 Catheral Pass에서 그 절경을 바라다보며 허기를 달래고 얼마를 걸었을까, 가없이 펼쳐지는 Tuolumne Meadows의 이른바 timber line은 거장(巨匠)이 그린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앞서가는 대원들을 멀리서 바라다보니 그림 같은 평원 속으로 그 일부가 되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_______모닥불 지피며 선 불침번_______
문제는 물, 생명수인 식수(食水)였다.
평원이 빨아들인 것은 우리가 아니라 물줄기....!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역시 치밀한 이충남 등반대장.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위해 우리는 물가의 막영지를 찾는데 골몰했고, 동작이 날래기로 따를 사람이 없는 신인섭과 체력좋은 전차장이 나머지 세명을 기다리게 해놓고 수색에 나섰다.
그 날, 친우 인섭은 얼마나 멀리까지 더 좋은 장소를 찾아 헤맸는지, 체력이 전과 같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하는 말을 털어 놓았다. 공동체를 위해 체력소모를 마다하지 않는 인섭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아우야! 너도 이제 틈나는대로 운동 좀 하거라.)
요세미티 행을 하루 앞둔 그 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던 산꾼이자 잠꾼인 인섭도 그 날 따라 밤 11시 반까지 버티더니 침낭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들어 간 시각은 새벽 한 시.
그날 밤 나는 평생 지펴본 것의 몇배가 되는 모닥불을 홀로 남아 연신 지폈다.
언제 다시 이렇게 오랫동안 불을 지펴 볼까, 짙은 어둠속에서 새빨갛던 불쏘시개들이 하얗게 재가되어 사위어 가는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나는 고교 학창시절 배웠던 만해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떠 올렸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_______Ansel Adams Wilderness에서_______
또 하루를 거슬러 올라 회상의 나래를 편다.
Ansel Adams라는 이름을 팻말에서 보았을 때의 벅찬 기쁨이 되살아난다. 사진예술에 관해 문외한인 나도 그의 사진첩을 한 권 갖고니와, 비록 흑백사진시대의 인물이긴 하나 사진계의 전설이라고까지 불리우며 아메리카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명을 사진작품에 담으며 명성을 쌓은 그 또한 존 뮤어에 버금가는 자연주의자가 아닌가!
14살의 나이에 요세미티의 장관을 처음 접하고 나서 받은 감동으로 70평생을 그 지역 일대의 숨은 아름다움을 카메라렌즈에 담았다는 Angel Adams. 후세인들이 그를 기려 아예 Angel Adams Wilderness라고 이름부친 곳은 바로 John Muir Wilderness의
북서쪽에 연해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각도 그대로 바라다본 즉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저 산정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저 흰 눈은 눈이로되 그저 범상한 눈이 아니고, John Muir와 Angel Adams 두 사람은 모두 미국인이로되, 나는 그렇지 아니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꾸었던 바로 그 꿈은 미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져야 할 꿈이고, 꿈꿀 만한 가치가 있는 꿈이 아닌가......
존 뮤어 트레일.!
아직도 온 몸이 몽롱하고 나른한 가운데 과거를 거닐던 회상을 접고 이제 미래의 꿈을 가다듬을 때가 된 듯하다.
말년에 쓴 그의 글귀 하나를 마지막으로 옮긴다.
Now, I must turn toward the lowlands, praying and hoping
Heaven will shove me back again.
나 이제, 내려가야만 하리. (그러나) 기도하며 바라건대,
하늘이 나를 다시 이곳(wonderful wilderness)에 올라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산행을 함께 한 모든 대원들과 정성을 다해 먹을 것, 마실 것을 장만하고 픽업을 해 주신 Giant Lee, 하선생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