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Republic of Turkey)
터키는 18세기 오토만 제국 당시부터 러시아의 팽창주의와 대결해 왔다. 유엔이 북한의 남침에 대한민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후, 터키정부는 유엔군에 참전하여 1개 보병여단을 한국에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터키 육군 당국은 터키 육군 제 28보병사단 예하 제 241보병연대와 제 2기갑여단 예하 제 2포병대대를
기간으로 새로운 여단을 편성하였으며, 터키 제 8군단 예하 제 4군관구에서 공병, 수송, 의무, 병기, 통신 등
의 지원부대를 차출, 여단에 추가하여 독립적인 작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타신 야즈시 Tahsin Yazici 장군 휘하의 5,090명의 군인들로 구성된 제 1터키여단은 1950년 9월 25-27일
이스켄데룬에서 출항하여 1950년 10월 17-19일 부산에 도착하였고, 일주일간 미국제 무기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미 육군 제 2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터키군은 1950년 11월 26-30일 현재 북한에 위치한 군우리에서 적군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중공군의 전진을 막으며 지연전을 감행하다가, 12월 영등포 부근에서 철수를 중지하고, 미 육군
제 9군단 제 2보병사단에서 작전을 수행한 후, 다시 미 제25사단의 작전지휘 아래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군우리
전투에 대해서 터키여단에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하였다.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던 1951년 1월 25-27일의, 서울에서 남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의 용인
김양장리 전투를 매우 중요한 승리로 이끌었으며, 김양장리 전투 이후 터키부대에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이 수여되었다. 또한, 미국도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하였다.
1951. 2. 13일 터키 제 1보병여단은 안양에서 미 제 1군단 예비로 체류하다가 서울 서남쪽 미 제 25사단 35
연대가 확보 중인 진지로 이동한 뒤 한강도하 작전에 참여한 바 있고, 4. 22일 적의 춘계공세에 장승천 전투
에 참여하였으며, 5. 17/18일 양일간 적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 적 86명을 포로로 하고, 5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7. 17일에는 철의 삼각지대에 있는 김화 서북쪽을 방어하고, 11월에는 제 2터키여단으로 부대
가 교체되고, 12월에 다시 군단 예비가 되었다.
1952. 2. 20일 제 2터키여단은 미 제 25사단과 함께 미 제 10군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어, 단장의 능선 지역에
서 지루하고 소모적인 진지전을 벌이는데, 이 기간 중에 Sandbag Castle 전초지역에서 적을 향해 진지를
두더지처럼 파고 들어가 적의 전방 15m 지점까지 진출, 유개호를 구축하고 그곳을 방어하여, 전 UN군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52. 8. 20일에는 제 2터키여단이 제 3터키여단과 교대하여 본국으로 귀국하였고, 3여단은 미 25사단의 지
휘통제 하에 계속 전투임무를 수행하다가 10. 31일 미 25사단과 함께 미 제 9군단 예비로 전환되고, 이후 철의
삼각지대에서 진지전을 벌인다. 53. 5. 58~29에는 Nevada 전초전을 벌여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이
(the Legion of Merit) 수여되었다.
1953. 7. 7일 미 25사단이 미 1해병사단에 진지를 인계할 때, 터키 제 3여단은 미 제 7해병연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미 제 1군단 예비가 되어, 제 4터키여단과 교대를 실시하였고 8월에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한편,
6월부터 소강상태였던 전쟁은 7. 27일 휴전을 맞이한다.
휴전 이후 터키군은 1971년까지 그 수가 점점 줄기는 했어도 계속 한국에 주둔하여, UN군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71년 6월 27일 마지막 터키군인 "영광의 소대"가 한국에서 철수하였다.
전쟁기간 중 터키군은 연인원 14,936명의 장병이 참전하였으며, 약 14개의 중요한 전투에 참여하여 721명의
터키군이 전사하였으며 2,147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실종 175명, 포로 234명, 비전투부상 346명 등 3,628명
의 인명손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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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터키여단 |
1950. 9.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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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터키여단 |
1951. 8.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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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터키여단 |
1952. 7.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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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터키여단 |
1953. 7.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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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 노획한 장비를 살피는 터키군.
사진 가운데 : 고지에 깃발을 세우는 터키군.
사진 아래 : 1951. 2월 제 1터키여단의 병사.
옆의 사진을 보면 부대마크가 원형바탕이다.
터키군 부대마크는 초기에 사각형 바탕이었다.
나중에 원형의 바탕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여단별로 다른 것인지, 단지 시기적인 문제인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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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전쟁기념사업회, 《한국전쟁사》5권, 행림출판, 1992. pp 579~580.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