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의 일화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우리들의 선택
(황희 정승의 일화)
집의 하녀 둘이 싸우다가 황희 정승에게 다가와 하소연을 하였다.
한 하녀가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황희 정승이 말하였다. "네 말이 옳구나."
그러자 다른 하녀가 자기의 말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황희 정승이 들은 후, "네 말도 옳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둘이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은 틀려야지요." 그러자 황희 정승은 말했다. "당신의 말도 옳소."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최고의 존경받는 대왕 세종을 도와 500년 조선의 황금시대를 연 명 재상 황희의 일화는 소통과 화합의 관점이 강조되는 요즈음에도 그 교육적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한편, 우리 앞에 선택해야할 두 갈래 길이 있을 경우에 대한 프로스트의 시 또한 성서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를 연상시키는 뜻 깊은 교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길은 생명의 길이고, 다른 길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 된다면, 황희 정승의 일화와 프로스트의 시가 시사하는 교훈은 심각하고 엄중하게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적을 만들지 아니하는 ‘處身의 達人’ 쯤으로 황정승을 평가하거나, 아니면 어느 쪽도 편들지 아니함으로써 ‘保身의 方便’ 이 되는 교훈으로 저 일화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지도자의 무책임으로 평가절하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세상만사 어느 하나의 길만이 옳은 길이라고 한다면 지도자는 마땅히 자기 보신과 처신에만 유념할게 아니고, 바른 길을 제시함이 매우 중요하고 바른 처신이 될 것이다. 그래서 거개의 성인군자들은 대중들로부터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바른 길을 가야한다고 교육해왔던 것이다.
한편, 우리 통일가는 참가정의 분화에 따라 현재 3갈레의 길 중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할 처지에 있다. 각자는 자기의 판단과 신심에 따라 가고자 하는 하나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 지금까지의 관행을 중요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관성의 법칙에 따른다고 할까, 오랜 기간 신앙해 왔던 그리고 많은 동료들이 가고 있는 길(이른바 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지금까지 따라왔던 그 길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분은, 얽히고설킨 사람(신앙의 동지들)들과의 관계성을 들 수 있다. 1세들은 거개가 30년~60년 동안 맺어왔던 인연들인데다 현재 가정연합의 조직과 관련된 관계성이 새로운 길에 대한 선택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성 때문에 하늘의 참된 길을 외면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메시아이신 당신을 배척하는 모세를 믿는 구약의 지도자와 성도들의 완고한 신앙태도를 질타하시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강조하셨겠는가! 구약성도와 지도자들은 ‘먹고 사는 문제’와 기존 사회관계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움 때문에 결국 하늘이 준비하여 보내신 메시아를 하늘의 바른 길이라 생각하고 십자가의 길로 몰아갔던 것이다.
절대 유일 영원 불변의 메시아로 신앙해 왔던 참아버님께서 성화하신지도 6년여...통일가는 지금 3갈레의 길에서 하나의 바른 길을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봉착해 있다. 결단코 황정승의 일화처럼 ‘너도 옳다’가 아니고, 생명의 길 하나를 택하면 다른 둘은 사망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 재림 메시아는 영원히 한분이시다. 그 분의 말씀과 본보기의 행동 외에 다른 판단의 기준은 없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