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띠끌란에서 보라카이 섬까지 연결해 주는 벙커. 이 배를 타고 호핑투어도 나갑니다. 크기도 여러가지. 나름대로 꾸민 모양새와 이름도 가지가지. 사진 속 바다의 짙푸른 부분이 산호군락입니다.)
(필리핀 국내선인 아시안 스피리트사 경비행기 앞에서.)
제2일
오전 7시. 일어나서 대강 씻고 아침식사.
베이뷰팍 호텔은 미국대사관 바로 맞은 편에 있다.
그냥 우리처럼 하루 묵어가기에는 나쁘지 않다.
중국 호텔 처럼 냄새가 좀 나는데... (습한 냄새)
신혼 여행이 아니라면 뭐, 크게 신경쓸만한 정도는 아니다.
동남아 지역에선 흔한 냄새이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그러나 여행의 첫날밤인데..신혼여행이라면 '뭐, 이래. 우리나라 여관 같잖아(?)' 하고 생각하실 분도 더러는 있으실지 몰라서...
조식 부페는 칭찬할 정도는 아니라도 먹을만 했다.
필리핀 식과 아메리칸, 우리는 워낙 뭐든지 잘먹는 커플이라서 사실 점심 부페 먹듯이 많이 먹었다.
즉석에서 오믈렛을 만들어주는데 재료도 선택할 수 있고...
그것만 기억에 남네...
조식후 호텔에서의 팁은 안주어도 된다.
우리는 프론트에서 호텔택시 쿠폰을 300페소에 사서 부르고 체크아웃했다.
전날 밤, 600페소인가...맡기라고 하는데(객실 내 물품 사용료 명목으로. 안 쓰면 퇴실할 때 다시 돌려준다.) 돈이 없어서 마스터카드 긁고 싸인만 안했는데 그 영수증도 도로 찾았다.
싸인을 안했으니 무용지물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것 잘 챙겨야한다.
패키지로 가면 새벽부터 몰아치는 바람에 아침을 걸르기도 한다는데...천천히 해도 안늦는다.
오전 8시. 국내선 공항 도착.
택시기사 팁 20페소.
그리고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수속과 짐부치기등 모든 것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 대신 해버린 필리핀 총각, 공항직원인줄 알았는데...맞나?
암튼 팁을 요구하길래 20 줬더니 더달라고 해서 10 더줬다.
보라카이에서는 팁 요구도 거의 없지만 주는 것에 대해서 액수가 어쩌구 하는 경우도 없는데 확실히 마닐라에서는 팁을 줘도 보는 앞에서 얼만지 확인하고...무섭다.
보라카이에서 만난 에릭이란 필리피노 친구도 마닐라는 무섭다고 하였다.
인심도 각박하고, 공기도 나쁘고...
국내선 대기실은 우리나라 시외버스 대합실만 못하다.
그런데 넘 춥게 에어콘을 틀어놔서 핫쵸코 한잔 사먹으려고 했는데 그나마도 안팔고 마일로를 마시라고 했다.
맛없는 마일로. 15페소.
참, 국내선에서 200불 환전했다.
49.8페소를 쳐준다.
국제선보다 훨 낫다.
총 9,960페소를 얻다.
공항이용료가 1인당 100페소 있었구...
아시안스피리트, 무지하게 오래오래 연착해서 10시 비행기를 거의 11시에 타고 출발.
국내선 공항에서 거의 3시간을 멀뚱멀뚱 앉아 허비한 거다.
마닐라에서 보라카이로 가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큰 비행기(타이항공, 국내에서 예약 가능) 타고 깔리보 공항에 간다음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까띠끌란에 와서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방법,
또 하나는 우리가 이용한 방법인데 경비행기 회사인 아시안 스피리트사나 씨에어사의 비행기를 타고 까띠끌란으로 바로 가서 배를 타는 것.
두번 째 방법이 2시간 정도 절약되는데 경비행기라 위험하다고 첫번째 방법을 쓰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탄 아시안 스피리트, 갈 때는 안전했다.
과자랑 음료도 주고.
경비행기를 타고 낮게 비행한다는 새로운 경험이 즐겁기만 했다.
대기실에선 몇 쌍의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을 봤는데 단체 패키지로 온 모양인지,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둘만 덜렁 와서 왔다갔다 하는디 자랑스럽게 프로스펙스 가방을 옆구리에 맨 걸로 봐서 한국인이 틀림없어 보이구 도대체 어디서 뒹굴다 나타난 개 뼈다구냐...하는 듯이.
그도 그럴것이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대기실 안에 80프로는 현지민들.
그리고 나머지 관광객들 중 반 이상은 코 큰 민족들.
그들은 거의가 혼자서, 아니면 아예 4인 가족 함께다.
그리고 동양인이 있다면 우리 두사람과 그 단체 신혼여행객들 뿐이었다.
단체로 와서 벌써 친해졌는지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화장실도 같이 손 잡고 간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상황 하나.
코 큰 민족들과 일본인은 어딜 가나 기다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있다.
하다못해 신문이라도.
그러나 한국인들은 우리를 포함, 단체 객들도 서로 종알종알 떠들거나 흘끔흘끔 다른 객들을 살피거나, 할 뿐이다.
여러분. 우리도 책을 많이 읽읍시다.
그리고 내 눈에는 엄마 아빠 아이들 함께 자유롭게 떠나온 서양 사람들이 참 부럽고 보기 좋았다.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휴가 기간도 길겠지?
부럽다~.
일본 사람들은 주로 동료나 친구들이 그룹을 지어서 다닌다.
중국, 한국 사람들은 주로 가이드를 앞세운 단체 객들.
여행을 다니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렇듯 참 재미있는 특징들이 다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찍는 것도 그렇다.
지지퍼그를 비롯해서 동양사람들, 사진 찍는 것 진짜 좋아한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 사진 찍는 것 별로 못봤다.
특히 보라카이 같은 휴양지에서는.
그들에겐 대자연의 품에 안겨 놀고 쉬고 느끼는 게 그림을 남기는 것 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서양 예찬론자라서 사대주의적 발상을 남기는 것은 절대 아님.)
정오, 까띠끌란 공항에 내려서 트라이시클을 탔다.
그냥, 공항 문을 열고 나오기가 무섭게 누군가 짐을 들고 태운다.
아무말 안하고 있다가 내리면서 50페소 줬다.
트러블은 없었다.
마닐라에선 지프니, 보라카이에선 트라이시클이 대표적인 운송수단이고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지프니는 지프차를 버스처럼 개조한 것,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는 택시처럼 개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두에서 배표와 공항이용료 1인당 19.5페소 그런데 둘이서 40페소 내면 1페소는 당근 안거스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10-20페소짜리 지폐가 동이났다.
따라서 더이상 누구에게도 팁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남편탱이, 퍼그는 짐 사수에 들어갔다.
아무도 우리 짐을 들어주지 못하게.
팁을 주지 않아도 되게.
이츠오케이를 반복하면서...
그런데 처음 벙커(이동 수단인 '배') 탈 때, 더구나 우리 벙커는 낡은 배라 하드케이스를 머리에 이고 혼자서 올라타는거,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리 둔탱이처럼 수영에 약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물에 대한 무서움이 있기 땜에 더욱...
팁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웬만하면 여러분은 약간의 팁을 준비했다가 포터에게 주고 짐을 들게 하기를 추천한다.
오후1시. 골드크라운 비치리조트 체크인.
(우리가 묵었던 골드크라운비치리조트. 당시 우리돈으로 4만원도 안되었으나 가격대비 끝내주게 좋았던 집.)
아! 배타고 들어오면서 처음 만나는 보라카이, 환상이다.
괌하고는 비교가 안돼.
골드크라운은 스테이션3 에서 내림 바로 앞에 있다. (기다란 보라카이 섬에는 선착장이 셋 있어서 스테이션 1, 2, 3으로 불린다. 1부터 3쪽으로 순서대로 점점 값이 싼 숙박과 식당이 늘어서 있는 편이다.)
도착하자 웰컴드링크로 그 말로만 듣던 망고쥬스가 나오고 신혼 여행객인 척 하자 방도 좋은 놈으로 준다.
호텔 대만족, 적당히 이국적인 분위기의 실내(무지 넓다.)와 층계 있는 욕조가 있는 넓은 화장실.
그리고 잘 꾸민 정원.
또 프론트에서 식당을 통과해 뛰어 나가면 바로 앞이 바다.
단점은 비치로드의 끝이기 때문에 잉글리쉬베이커리, 니기니기 등 유명한 식당을 이용하려면 무지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 (이런 식당들은 스테이션1 쪽에 위치하고 있음.)
그러나 비치콤버 등의 바와 몇몇 좋은 식당들은 스테이션3 근처에도 많다.
그리고 밥 먹으러 스테이션1 쪽으로 걸어 가도 되고 걷다가 지치면 뭔가 타고 이동해도 된다.
인력거나 트라이시클.
오후 2시.
우리는 짐을 풀고 '씨러버스'라는 저렴한 식당에 가서 콜라, 망고쉐이크, 시즐링슈림프, 닭고기와 감자와 파인애플의 샐러드를 먹었다.
총250페소 + 팁20페소.
보라카이에서는 둘이서 맛있게 먹고 우리돈 만원을 넘기지 않는 식사가 흔하다.
시즐링슈림프는 어려서 넘 지겹게 먹던 붕어조림과 비슷한 양념에 별로 맛없게 먹었고 샐러드는 맛있었다.
나는 슈림프보다는 프라운을 기대하고 보라카이에 간 사람이라 다음날 부턴 모든 식사를 왕새우(프라운)로 해결.
여기가 천국이로다.
오후3시.
우리는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식당에서 길거리에다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바에 앉아 필리핀의 명물 망고쥬스(30페소)와 산미구엘 맥주(25페소)를 마셨다.
이 곳이 맥주 가격은 보라카이에서 최강이다.
무지 싸다.
밤에도 이 가격이 유지된다.
바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처음 우리가 낸 돈에 거스름돈을 100페소나 더 얹어 준 걸 우리가 솔직히 얘기하고 돌려주자 고맙다며 서비스가 좋았다.
우린 팁도 안줬다.
100페소를 준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탈리파파 시장(보라카이의 유명한 시장입니다요!)을 구경하고 (저녁때가 다 되어 별 것 없었다.) 거기서 트라이시클을 잡아탔다.
트라이시클이 다니는 뒷골목은 현지민들이 사는 동네이기도 한데 트라이시클의 말도 안되는 매연 땜에 숨도 못쉰다.
그 공해 때문에 안타까웠다.
보라카이도 점점 오염되는게 아닐까 하고.
오지랍이 넓어서 걱정하는게 아니라 그만큼 보라카이의 자연은 누가 보아도 아깝도록 아름답다.
여기서 프라이데이스 리조트까지 30페소에 갔는데 그 트라이시클의 이름은 '봉봉'이고 기사는 '에릭'이라고, 가는동안 쉽게 친해졌다.
저녁식사를 마칠 시간에 맞춰 태우러 오겠다고 하길래 팁10페소를 얹어 주었다.
프라이데이스 앞, 그 외진 곳에서 저녁식사 후 트라이시클을 타려고 기다리면...아마 무서웠을거다.
가로등도 없고, 인적도 없고, 프라이데이스에서 트러이시클 타는 길까지 야산과도 같은 공터를 통과해야 하고...
저녁5시.
프라이데이스(보라카이 최고의 리조트)의 해피아워였다.
맥주, 칵테일을 한잔 값에 두잔 준다.
'보라카이 블루'라는 칵테일 2잔과 산미구엘 아이스 2병을 마시며 석양을 바라보며 우린 둘다 취해갔다.
최고급 리조트 답게 직원들 무지하게 친절하고...
저녁시간이 시작되자 우리는 진열대에서 싱싱한 왕새우와 폭찹을 골라서 바베큐해 먹었는데 우리 퍼그가 먹은 폭찹도 넘 맛있었다.
산미구엘 레귤러로 4병을 더 나눠 마시고.
이 모든 것이 1,040페소. 팁100페소. 비싸다.
그러나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아직도 싸다.
참, 우리의 여행 목적은 1. 잘 먹기 위해서. 2. 에메랄드빛 바다를 위해서. 3. 다른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서.
늘 그렇듯이.
저녁7시 반.
프라이데이스에서 나와 무시무시한 공터를 통과해 트라이시클 도로 쪽으로 술기운에 갔다.
과연 그가 약속을 지켰을까 하면서...
저쪽에서 에릭이 헤이~! 소리를 지른다.
반갑다.
우린 첫마디가 "저 길 되게 캄캄하고 무서웠다~."라고 소리질렀다.
에릭에게 내일 호핑투어를 하고 싶은데 소개해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그는 로렌조리조트(스테이션 1 쪽의 고급 리조트) 옆에 있는 작고 에쁜 깔리로얀 비치의 유일한 식당, 관광객들이 호핑투어중 점심 바베큐를 위해 들르는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싶은 것 등을 상세히 얘기하고 후한 가격으로 에릭에게 호핑투어 예약을 부탁했다.
찰스바 앞에 내려서 30페소와 역시 10페소의 팁을 얹어주고 헤어져 우리는 그야말로 밤 호핑을 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마셨다.
'Shenna' (구 Gold sun)라는 곳에서 맥주 산미구엘 슈퍼드라이 2병.
갈릭 슈림프(프라운이 나옵니다.) 와 감자튀김.
팁 포함해서 총 300페소.
우리가 갔을 때는 여기가 제일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고리오스'라는 식당의 길쪽으로 난 크레페 코너에서 프레쉬프루트 크레페와 맥주두병. 130페소.
'비치콤버' 바에서, 맥주 두병과 담배 하나 (100과 35페소).
춤도 출 수 있는 곳이라 맥주 값이 비싼 편이었다.
보라카이의 거의 모든 식당과 바, 나이트클럽 등은 에어콘이 안되어 있고 바닥은 모래 사장이다.
야외에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전망은 물론 하루에도 일곱번씩 색깔이 변한다는 푸른 바다.
참 좋다.
값싸고.
맛있고.
보라카이의 낮에는 필리핀 아이들이 그들의 최고 놀이터인 바다에서 산다.
관광객들과 같이 수영하고 벙커(보라카이의 바다를 오가는 배)가 들어오면 뱃머리에 매달려 질주도 한다.
밤이 되면 이 아이들이 땅콩 따위를 들고 술마시는 관광객들 사이를 돌며 판다.
맛있는 안주를 먹고 있으면 하나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먹으라고 했더니 금방 여러 아이들이 몰려와서 한 접시를 아작을 낸다.
새우 머리까지 다.
그리고 이렇게 구걸인지 장사인지 알 수 없는 저들만의 호핑을 다닐 나이가 아직 덜 된 더 어린 꼬마들은 곳곳에서 모래를 파서 촛불을 심어놓고 근사한 손그림을 모래위에 그린다.
보라카이의 어린 예술가들에게 한푼 투자하라는 말을 잊지 않고...여기에 1페소짜리 5페소짜리 동전을 넣어준다.
낮의 아이들이나 밤의 아이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티없이 밝고 예쁘다.
그리고 건강하다.
제3일
오전 8시. 아침식사.
필리핀식과 아메리칸식 중에 고를 수 있다.
뭐, 아침은 그냥 아침이니까 가볍게 먹는거지 기대하진 않는 게 좋다.
먹고 있는 중에 벌써 에릭이 찾아 왔다.
다시 한번 계약 내용을 확인하고 특히 예의 그 새우를 많이 사라고 일렀다.
1000페소를 에릭에게 주었다.
그길로 에릭은 탈라파파 시장에 가서 새우, 닭고기, 돼지고기, 수박, 사과, 망고를 사고 파인애플은 서비스로 얻었다고 좋아하며 돌아왔다.
그는 자기 엄마 가게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요리도 직접 해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탈 배에 연결해주고 사라졌다. 물론 장봐온 음식 재료들은 배에 싣고, 우리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사기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랬나...?
우리가 빌린 배는 제임스라는 선장과 어려보이는 남자 조수 한명이 함께였는데 둘다 수줍음이 많고 순수해 보였다.
보통은 이렇게 두 사람이 배에 함께 하는데 선장과 조수는 주로 가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 이름은 메리 주 앙.
돈을 넉넉히 주어서 그런지 약속한 그대로 아니, 그 이상 좋은 투어가 되었다.
첫번째, 푸카쉘 비치라는 곳에 갔는데 제임스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얼마나 오래 머물것인지 물어보고 원하는대로 하라고 강조해 주었다.
말그대로 우리는 배 한척과 그에 따른 인력을 하루 동안 전세 낸 것이었다.
보라카이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호사를 해보랴.
갑부가 되기 전에는.
푸카쉘 비치, 보라카이 내에서도 아주 깨끗한 비치다.
처음 화이트 비치를 보고 야, 진짜 맑고 예쁘다, 했는데 이날 여러군데 다녀보니 진짜 더 맑은 곳이 많고 화이트비치는 이미 오염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실제로 물에 황색 조류가 내내 끼어 있어 수영하기에 좋지만은 않았다.
푸카쉘 비치에서 산호와 조개를 줍기도 하고 수영도 하는데 아이들이 병에 모아 담은 푸카쉘을 사라고 계속 따라다닌다.
(푸카쉘은 한때 보석으로 취급되기도 했던 가운데 구멍 뽕 뚫린 하이얀 조개다. 목걸이를 만들면 넘 예쁘다. 이 푸카쉘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이곳의 이름은 푸카쉘 비치.)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인데 지지가 여기 바닥에 널린게 다 그건데 돈주고 사냐고 하자 그건 알아듣는다.
우리가 수영하는 동안 먹으려고 한국에서 가져간 쿠크다스 한상자를 제임스에게 주었는데 그걸 보고 그러는 걸까?
아이들이 계속 따라다니며 조개껍질을 열심히 주워 지지 손에 올려주고 그러길래 한국과자 좀 줄까 했더니 예스. 몇 개 주니까 고맙다고 하면서 받고 계속 따라다니며 같이 조개를 주웠다.
신랑은 푸카쉘은 줍지말자, 얘들한테는 주워서 파는 상품인데 우리가 많이 주워가면 어떡하냐 하는데
그러고 보니까 아이들이 주워서 지지 손에 쥐어주는 것은 역시 상품가치가 좀 떨어질 듯 싶은 모래가 많이 박힌 것들이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따라다닐 때 나는 이거 주워주고 나중에 돈 내놓으라고 할 셈인가, 하고 당황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정말 순수하고 예뻤다.
그저 for you 라고 얘기하면서 내게 조개를 주워 주었다.
그곳을 떠날 때는 저들이 먼저 손도 흔들어주고.
그런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상술로 오해하다니
역시 지지는 이미 찌들고 오염된 인간인가.
그곳을 떠나 앙골 포인트에서 스노클링.
구명조끼 입고 하다보니 (아주 깊어요) 팔과 조끼가 마찰이 되어 아프고 퍼그는 키가 커서 발가락이 산호 바위에 살짝 닿아 찢어지고...
사태가 그런지라 금방 철수 했다.
제임스는 고기가 별로 없어 그러는줄 알고 (실제로 별로였다)
우리를 코랄 가든 포인트로 데려갔다.
아까와는 달리 주위에 다른 호핑 배들도 없고 한적한 곳이었다.
그가 먼저 뛰어들어 고기가 많은지 확인하더니 우리 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정말 친절하고 양심적인 동시에 진심으로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제임스, 한국인 식당 'K's'에서 일한 적도 있다는 그를 보라카이 떠올릴 때마다 추억하게 된다.
그곳은 이름답게 10피트 이상 되는 발 아래로 아름다운 정원과 큰 물고기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
다음은 라우렐 섬.
일본인 소유의 개인 섬이라는데 사람들이 많이 들른다.
제임스가 내려서 제1, 제2 동굴(크리스탈 동굴)에 함께 가주고 안내해 주었다.
뭐, 사진 찍을 곳을 많이 만들어 두었던데 우리는 안찍었다.
이미 닳고 닳은 관광지마냥 자연에 어울리지 않게 설치해 놓은 울긋불긋한 인공 조형물, 우리는 싫었다.
동굴은 볼만 했다.
제1동굴은 그 안에서 수영과 스노클링 가능하고 제2동굴은 몸을 동그랗게 구부리고 기어서 컴컴한 통로를 지나면 바다가 나오는게 특이했다.
이런 동굴들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설명으로는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무지 특이한 동굴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입장료 1인당 150페소.
그리고 깔리로얀 비치로 향했죠.
라우렐 섬 가기전에 잠깐 들러 에릭에게 음식 재료를 넘겼었다.
아담한 비치에 근사한 탁자, 그 위에 바나나 잎을 식탁보처럼 깔고 에릭이 바베큐해 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장식되어 나오고 마늘을 넣고 볶은 필리핀식 볶음밥과 음료수.
음식이 너무 많아 우리는 새우만으로도 배가 불렀는데 이 순진한 뱃사람 두명은 우리가 먹는 동안 집에 가서 밥먹고 오겠노라며 한사코 우리 음식을 나눠먹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하고 에릭하고 음식이 많아 다 버리게 되었다.
버리면 아까우니까 남은 거 먹자고 사정끝에... 우리가 일어나 식당 뒤쪽으로 사진찍는다고 가버리니까 그제야 와서 먹는다.
그곳에서 키우는 돼지랑 닭들 구경하고 있는데 에릭이 오더니 따라오라고 하면서 로렌조 리조트 뒷길로 데려가 여기가 사진 찍을 곳이 많다고 했다.
진짜 많긴 많다.
아름다운 리조트다.
뿐만 아니라 이 리조트에는 바다로 바로 다이빙 할 수 있는 계단이 여러곳 마련되어 있어요.
비치 쪽이 아니라 절벽 쪽에 계단이 있어 여기를 내려가 다이빙 하면 바로 스노클링 하는거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위한 얘기지만.
그리고 호텔 정원에 성모동산도 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라 여기서 잠깐 기도도 했다.
필리핀 사람들 거의 가톨릭 신자라 어디서나 묵주를 휴대한 사람들, 호텔 안에도 대부분 성모 동산이 있고, 비행기 대기실 안에도, 택시를 타도...그런게 우리한테는 좋았다.
사람들도 다 한 가족처럼 느껴지고.
점심을 다해갈 무렵 에릭과 에릭의 동네친구들 모두 모여 같이 사진도 찍었다.
한국에서 온 신혼여행객들도 여러 커플 도착해 점심을 먹던데 보니까 모두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한명은 신랑, 한명은 가이드겠지.
그리고 하나같이 랍스터를 쌓아놓고 먹고 있다.
평생 한번 뿐인 허니문인데 둘만의 허니문이 아니라 가이드라는 낯선 사람과 붙어다니는 허니문이라...나라면 싫을텐데.
패키지 여행객을 비방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패키지를 가끔은 이용하니까) 우리 여행 문화도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은 자주 하게 된다.
그곳을 떠날 때 에릭이 식당 테이블 차지라고 150페소를 청구했다.
여기서 에릭에 대한 좋은 인상 살짝 구겨졌다.
1000페소 주면서 더이상 차지는 아무것도 없다, 라우렐 섬 입장료 제외하고는.
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아침에 테이블 차지 얘길 하긴 하더만...
남들보다 넉넉하게 1000페소나 줬는데 그정도는 포함시키지...
에릭에게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그의 주소까지 받아들고 다시 배를 타고 출발.
에릭에게는 다시 오면 너에게 호텔 예약을 부탁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순박한 제임스 일당을 보자 에릭과 비교되어서 더 호감이 가고...
우리는 그냥 사람없는 조용한 해변, 되도록이면 동쪽 비치(화이트 비치는 서쪽이다.)로 가고 싶다고 하자 제임스가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가는 중에 유명한 악어섬 포인트에서 스노클링 한번 더.
제임스 말이 코랄 가든은 큰 물고기가 있고 악어섬은 작지만 숫적으로 많은 물고기들이 있단다.
정말 그렇다.
TV에서 본것 처럼 작고 예쁜 물고기떼가 눈코 앞으로 지나간다.
하지만 바닥의 랜드스케이프는 코랄 가든이 최고였다.
산호 지형의 아름다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코랄 가든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탐비산 비치.
작고 아무도 없는 비치.
단 한명의 사람도 개도 없는 이 비치를 전세낸 듯 여기서 우리는 수영을 하고 해변 근처까지 오는 물고기들을 보고 산호를 줍고 몇 시간이고 물속에서 놀았죠.
제임스와 말없는 청년도 스노클링을 하고 먼 바다까지 수영을 해서 나가고 우리 넷 모두 그렇게 한가로이 즐겼다.
평화로웠다. 정말...
이게 평화로구나 싶었다.
넷이 똑같이 그렇게 한가로이 바다와 놀고 5시가 가까워 우리는 돌아가기로 했다.
꼬박 하루를 즐긴거다.
온몸은 새빨갛게 타고.
배에 오르자 제임스는 수줍어하면서 커다란 소라고동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바다에서 땄다고.
어쩐지 깊은 바다까지 잠수해서 나가더라니만.
우리는 고맙다고 오바해서 호들갑을 떨며 받았다.
수줍은 청년도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그 맑은 눈.
여지껏 내가 본 눈 중에 가장 맑다.
가슴에 그 웃음이 각인된다.
이어서 제임스는 조그마한 소라들을 갑판 위에 올려 놓고 보라고 하는데...
으아! 첨 봤다! 살아있는 소라.
바닥을 기어다니는.
달팽이도 아닌...그것.
이번에도 사진을 찍고 요란을 떨며 호응해 주었다.
멀리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숙소앞에 도착.
퍼그가 객실에 돈을 가져오려 뛰어간 사이 제임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름도 이때서야 물어보았다.
한국인 식당에서 일했고 볼링장 사장아줌마(한국인)에게서 김치찌개등 한국 음식 만드는걸 배웠다며 오징어볶음을 제일 좋아한다나.
고추가 필리핀 칠리 보다 안매워서 좋다고 하길래 청양 고추를 안먹어보고는 한국 고추 안맵다 소리 하면 안된다고 한 뒤 한국인 관광객들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현지에선 한국인 가이드에 대해서 나쁜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150페소짜리 음식이 있으면 150달러로 계산해서 팔고 호핑투어도 이런저런 커미션 다 떼고...
20명 투어면 1인당 200페소만 내도 되는데 1000페소 이상씩 받는 경우도 있고...
아마 보라카이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최고 부자일 거라며.
퍼그가 돈을 쥐고 돌아왔다.
만족스러운 투어와 호의에 감사하며 약속했던 1000페소에 팁 150페소를 얹어주고 헤어졌다.
돈 아깝지 않은 하루였다.
그림 같은 바다, 물고기떼, 산호, 좋은 사람, 아이들...그 속에 우리도 하나가 되었던.
오후6시.
숙소에 들어와보니 아침에 50페소 팁을 두고 나가서 그런지 발 수건까지 한장 더 와있고 침대시트도 더 예쁜 걸루 갈아놓았다.
뭐, 아침에 배게 밭에 조금의 팁을 두는 건 기본 에티켓인데...
우리는 '달리사이' 식당까지 걸어가서 175페소짜리 부페를 먹고 맥주2병, 콜라 한병, 망고쥬스 한잔을 더해 두사람 총 450페소를 썼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 돌아와 아주 일찍 잠들었다.
퍼그는 등은 너무 타서 아프고 산호에 찔린 발가락에선 역한 냄새와 고름이 나서 이 상처부위들을 피해 아주 이상한 포즈로 곯아떨어졌다.
(우리가 만났던 친구 에릭의 트라이시클, '봉봉'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