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인 딸이 모처럼 아빠와 엄마와 함께 순천만 정원과 순천만 갈대숲을 가고 싶다고 하여 순천에 살고 있는 이모부와 이모님도 뵐 겸 쉬는 날을 잡아 순천에 있는 정원과 갈대숲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병원에서 쉬는 날인 2014. 5. 15~17일까지가 가장 적당하겠다는 딸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동안 집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해 온 세 살짜리 외손자인 홍지우를 승용차에 실고 목요일(15일) 오후 4시 30분에 서울 아산 병원으로 출발하였으나 예상하였던 시간보다 30분이나 지체되고 말았다
전라도 순천까지는 서울에서 5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오후 5시가 넘는 시간이 되어서야 아산병원에서 전라도 순천으로 출발하다보니 대략 밤 10시가 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미리 “뜰애 펜션(http://www.뜰애펜션.com/)”을 예약하여 놓았다.
서울에서 출발할 무렵까지만 하여도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적당하여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천안 논산 간 민자 도로를 통과하면서 날씨가 점점 어둑어둑해지더니 장수 순천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부터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허기가 들고 기진맥진하여 저녁식사를 먹기는 하여야겠는데 고속도로 상 휴게소에서는 왠지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래전에 구례 강남 가든 식당에서 친구들과 송이버섯과 야채로 된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 구례 화엄사 입구 쪽에 있는 구례 강남가든 식당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집사람은 미더운지 이곳은 시골이고 산골이라 미리 식당으로 전화를 하여 식사가 되는 건지 확인하여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을 나에게 하였으나 나는 건성으로 흘려버렸고 워낙 유명한 식당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다.
구례읍에 거의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읍 소재지를 제외하고는 주변 농촌들이 이미 한 밤중이나 된 것처럼 인적이 드물고 고요와 적막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승용차는 구례 읍 강남가든 식당 쪽으로 꺾어 들었으나 우리가 지나가는 곳은 가로등도 없었고 지나치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곳에서 과연 이 시간에 식당이 운영될까 싶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미리 식당에 전화를 해보고 올 것을 하고 생각하면서 집사람 말을 듣지 않고 내 주장만을 관철시킨 것이 은근히 후회되기 시작하였다.
구례읍 강남 가든 식당에 도착하여보니 아니나 다를까 식당은 이미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채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리 구례화엄사가 관관지고 많은 관광객이 드나든다 할지라도 농촌지역이기도 하고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여자의 감성이 남자를 능가할 때가 있다는 집사람의 자신 넘치는 말을 듣고 나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는 듯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구례 마산면에서 황전면에 있는 황전 식육 식당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황전 식육 식당은 널리 알려져 있는 축협 직영 식육점으로 좋아하는 소고기 부위를 직접 고객이 사서 바로 식육점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구워서 술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육점 겸 식당이었다.
소고기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겠지만 안심과 안창살은 전국 어디에 가도 비교우위에 있을 마큼 맛이 좋았으며 오래전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각나 황전 식육 식당을 찾아가고 있었다.
황전 식육 식당은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기 때문에 술시가 약간 지나가고는 있었으나 술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황전 식육 식당을 그려보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밤 08:30분을 약간 넘어서고 있었지만 황전 식육 식당은 불이 밝혀져 있었고 열려있는 식당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식당 안에서 들려오는 취객들의 담소가 더없이 흥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소고기를 판매하는 식육점의 홀과 가판대가 불이 꺼져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걸어가 식육점의 문을 두드려보니 문은 이미 잠 겨져 있었고 21:00 이후는 폐점한다는 짤막한 메모가 붙여져 있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없이 승용차의 방향을 순천시로 돌리고 서서히 직진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하루의 일진이 거의 맞아 떨어진 것이 없어 육체적으로는 피곤하고 힘은 들었으나 마음은 들뜬 상태여서 마지막 종착지인 순천시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되면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지면서 순천시에 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아 나는 마누라와 딸 그리고 외손자 홍지우를 데리고 미리 예약한 “뜰애 펜션”에 들어가 과일과 우유로 저녁을 대신하려 하였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밤 10시가 약간 넘어서고 있어서 밖으로 나가 간단한 먹거리를 찾아보려 하였으나 평일이라서 그런지 거의 식당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하려 하고 있었으며 농부가 피곤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취하여 고개를 끄떡거리는 것처럼 순천만 갈대숲 주위 마을의 전등들은 한 개 두 개 꺼져가고 있었다.
“뜰애 펜션”에 들어서자 사장님과 사모님은 마치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주 편안하게 예약한 A1 실로 인도하였다.
여장을 풀고 곧바로 “뜰애 펜션”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니 순천만 갈대숲의 하늘은 초등학교 시절에 미래 희망을 꿈꾸며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었던 청명한 하늘과 유사한 하늘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옛 추억을 다시 일깨우게 하여 너무 기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때 전라도 대덕고등학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작은 소도시라 전세방을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어쩔 수 없이 폐가나 다름없었던 구가를 얻어 전세로 살고 있었다.
집이 폐가나 다름없었던 구가여서 마당은 곳곳에 움푹 페인 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고 배수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항상 땅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은 저수지나 다름없이 물이 고여서 징검다리를 놓고 마당을 건너야 하였으며 밤에 큰딸과 작은 딸이 깜깜한 어둠속을 뚫고 화장실에라도 가려하면 우리 가족은 전쟁을 치러야 하였던 곳이기도 하였다.
비가 온 후의 밤이면 집 마당의 물웅덩이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댔고 작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한 두꺼비는 독을 품은 채 부엌이나 토방, 마루를 가리지 않고 올라와 먹이가 없나 여수고 있었으며 두꺼비와 뱀들은 서로 영역을 넓이기 위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야생말처럼 뛰어다니며 자연과 함께 동고동락 생활을 같이 하였던 2년 동안의 기간은 우리 가족들에게 가장 풍요롭고 행복감을 안겨주었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밤하늘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을 헤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행복과 미래를 키워나갔던 2년 동안의 짧은 기간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킨 곳이 “뜰애 펜션”옥상이었다.
순천만 갈대숲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터키 카묵 칼레(목화 성)에서 보았던 청명한 하늘과도 흡사하였고 카파도키아 석굴의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휘황찬란하여 하늘의 별과도 구분하기도 어려웠던 터키의 자연 경관과도 비슷하였다.
배가 고프기는 하였으나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어 행복감 속에 추억에 잠겨있었는데 “뜰애 펜션” 사장님이 올라와 악수를 청하면서 아주 포근하고 다정하게 웃으시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를 주시면 즉각 해결해 드리겠다는 말을 하였다.
이 한마디로도 나는 충분한 보상을 받는 듯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뜰애 펜션”을 예약 한 것이 더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우리가족이 저녁 식사를 못한 것을 알고 즉각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소고기 안심을 사가지고 올라와 바비큐 용기에 굽기 시작하였다.
황당한 행동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두 분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순수하고 포근하며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바비큐 용기에다는 소고기 안심을 굽고 참외를 깎아왔으며 식탁에는 갓 뜯어온 상치와 된장과 밥이 올라와 있었다.
주인 안사장님이 구운 소고기 안심을 상치위에 놓고 된장을 젓가락으로 떠서 소고기 안심에 얹은 다음 상치를 싸서 먹으니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쌈밥마을 식당에서 먹었던 쌈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주인인 바깥 사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듯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고 몸들 바를 몰라 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오셨다.
주인인 바깥 사장님은 웃으며 ‘저희 “뜰애 펜션”에 오신 것을 대단히 환영합니다. 이 소주는 제가 그냥 제공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더니 소주병을 들고 빈 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소주 한 잔을 받아든 나는 따뜻한 정감에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오는 동안 저녁식사를 굶는 것이 아니가 생각하였는데 “뜰애 펜션” 사장님과 사모님의 따뜻한 배려로 소고기 안심을 사다 주셔서 황전 식육 식당에서 먹지 못한 고기를 “뜰애 펜션”에서 대신하여 먹을 수 있어서 즐거웠고 주인 바깥 사장님의 재치 있는 소주 한 병의 무료제공은 평생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분위기 전환의 금상첨화였다.
펜션에서의 휴식은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하였으며 침실의 이브자리나 거실은 아주 깔끔하였다.
며칠 전에 다녀왔던 경북 울진 백암 온천은 침대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방이 협소하고 방안의 공기가 탁하여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이곳 순천시 “뜰애 펜션”은 거실이 넓어 창문을 열면 바로 순천만 갈대숲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자연 속의 공간에서 비둘기 지저기는 소리와 갈매기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며 딸과 어린 지우의 행복해하고 해맑은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더없이 즐거움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순천만 갈대숲에 들린 후 순천만 정원을 방문하였다.
순천만 갈대숲 사이의 목책 다리 위를 거닐며 기어 다니는 짱뚱어와 게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초등학교 시절의 동심 세계로 돌아간 듯 마음은 평화롭고 상쾌하였으며 그지없이 행복하기만 하였다.
갈대숲 사이사이 갯벌위에 성을 쌓아 놓은 게들의 둥그런 집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숫자가 많았으며 조금의 영역이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게들의 성을 지켜보고 있는 짱뚱어의 시선은 무서우리만치 살벌해 보였다.
게들의 반응이 없어서인지 짱뚱어는 살금살금 기어가 게의 성을 몸으로 뭉개기 시작하였으며 숨이 막혀서인지 게는 갯벌 속에서 기어 나와 짱뚱어와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치열한 싸움은 10분이 지나 20여분 가까이 지나갔고 힘이 부쳐서인지 게와 짱뚱어는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더니 햇볕을 쬐며 한가하게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작은 생물들이었지만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간들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 살짜리 지우의 눈에는 이러한 광경이 새로운 우주의 탄생이었으리라 생각되어 가슴 깊은 곳에 강한 인상으로 남겨 두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순천만 갈대숲을 구경하고 다시 순천만 정원으로 갔다.
순천만 정원은 우리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는 가지각색의 식물과 꽃들을 전시하여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은 전통적인 음양오행 사상을 담고 있다고 들었는데 조경학의 진수를 보는 듯 놀라움과 감탄을 연발하게 하였다.
순천만 정원은 세계 각국의 정원을 만들어 놓고 정원수와 희귀식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웃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꽃과 정원수를 둘러보며 식물의 종류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더니 소풍 나온 많은 중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에콰도르 인이었는데 키가 작달막하고 피부색깔이 약간 검은 것으로 보아 남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에콰도르 문화 전령사로 보였다.
에콰도르 문화 전령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감정이 풍부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 가까이 가서 들어보았더니 문득 실크로드 카라반들의 노래 소리를 듣는 듯 슬픈 애환을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어 분위기가 숙연하여지기도 하였다.
색다른 악기를 가지고 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 가락은 약간의 슬픔이 깃든 듯 우수에 싸이게 하였고 세 살짜리 지우가 노래 소리에 흠뻑 빠져버리는 행동을 목격하고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외할머니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린 지우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하였던 탓인지 지우의 노래를 듣는 자세가 평소에 예사롭지 않았었다.
가끔 농협 하나로 마트를 가거나 성지 순례를 갈 때는 울고 하여서 달래느라 어린이판 CD를 들려주곤 하였는데 조금 성장하더니 노래가 나오는 CD를 들려주면 울다가가도 혼자서 흥얼거리며 노래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신통해하게 생각하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순천만 정원 에콰도르 문화 전령사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감정이 풍부하여서인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었으나 꼼짝 않고 노래 소리에 폭 빠져버린 듯 이상한 행동을 보고 어느 한 분야에만 빠지지 않도록 교육을 다양하게 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우리 가족은 영국과 독일 등 서양의 정원수와 꽃들을 바라보며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었다.
순천만 정원 중앙에 꽃동산이 있었는데 꽃동산 주위는 연못보다는 크고 저수지보다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으며 물웅덩이 가장자리에는 거위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하고 한적하여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하여주고 있었다.
꽃동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나선형 모양의 둘레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만 하였으며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의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 놓아 부딪치거나 충돌 사고는 없을 듯 보였다.
꽃동산의 정상은 마치 영국의 선바위의 제단을 그대로 모사하여 놓은 듯 신비감이 들었으며 내려오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집트 고왕조 때 쿠프왕의 피라미들를 연상하게 하였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하여 모래를 피라미드 높이까지 쌓아놓았던 모래 위를 애급 노동자들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꽃동산 정상 깃발이 흔들리고 있는 곳은 분명 베일에 싸여 있는 제단이거나 순천시와 관계있는 신비스러움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비성을 찾기 위하여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 나는 지우를 데리고 기어이 정상에 올라갔다.
그러나 정상은 역사적 가치가 별로인 꽃동산 조성과정의 사진들과 순천시와 관련된 그림들만 부착되어 있어서 실망을 안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꽃동산 설립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꽃동산의 존재 이유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순천만 정원을 식물과 꽃들의 잔치로만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당국의 안이한 발상이 아쉽기만 하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은 역시 베일에 감추어진 신비로움이 가미하고 있어야 아름다움이 극대화 되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곤하였던 몸을 이끌고 “뜰애 펜션”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다음 오후 7시경에 만천하민물장어 전문집을 찾아갔다.
만천하민물장어 전문집은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어서 주인장과는 구면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맛과 친절만으로 영업의 운을 거는 집이었다.
약간 배도 고프고 어느 정도 피곤이 풀렸던 터라 소주한 잔이 달콤하기도 하였고 목을 적시고 넘어가는 감촉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3인분을 먼저 시켜 먹고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세상은 아름다우며 유구하리라 느껴졌고 행복의 기준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이 들었다.
2014년 5월 20일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할 지상낙원이며 무릉도원인 잃어버린 지평선 탐방에 나선다.
비단 티베트 라사에 이르는 차마 고도는 아닐지라도 1,000m 이상 고도를 오른다는 것을 생각하며 인생의 마지막 고도를 1,000m 이상의 무릉도원과 맞추고 싶었다.
딸이 행복하게 살아주고 외손자가 밝게 자라주니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몸이 건강하고 마누라와 천수를 누린다면 이것이 운명이며 자연의 섭리리라 생각을 하면서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모처럼만에 행복을 안겨준 “뜰애 펜션” 사장님 부부의 따뜻한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건강과 사업의 발전을 기원하였다.
정어구이 3인분을 더 주문하여 소주를 기울이면서 길고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우 손을 잡은 채 승용차에 올라 서울로 향하였다.
☞뜰애 펜션 : http://www.뜰애펜션.com/
순천시 순천만길 574-1
순천시 순천만길 대대동 40-6
H.P 010-9603-2004 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