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읍성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 번 찾아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휴일을 맞아 별일도 없고 하여 마침내 길을 나섰습니다.
청도읍성은 청도군의 중앙부라 할 수 있는 화양읍에 있는 성입니다. 청도읍성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고려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성은 석축(石築)과 토축(土築)을 혼합해서 쌓았다고 하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객관(客館), 유향소(留鄕所), 군기고(軍器庫) 등의 건물과 청덕루(淸德樓), 죽서루(竹西樓) 등의 누정(樓亭)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원래 토성이었던 청도읍성이 지금과 같은 석성으로 된 것은 선조 23년(1590년)부터 선조 25년(1592년)사이의 일입니다.
청도읍성의 규모에 대해서는 <화안문헌고(華按文獻考)>에 둘레 1,570보(약1,800m)에 벽고(壁高)는 5자 5촌(약1.65m), 여첩(女牒: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몸을 숨기고 적을 치는 곳)은 600측이라 하였습니다. 현재 읍성의 둘레는 약 1.8km이므로 이 기록과 거의 일치합니다.
옛 지도를 보면 청도읍성 성곽에는 동, 서, 북으로 3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3문 가운데 서문을 무회루(撫懷樓)라 불렀습니다. 선조 23년(1590년)부터 선조 25년(1592년)사이에 읍성을 크게 개축했으나, 임진왜란을 당해 성내 건물 및 동·북문루가 모두 불에 탔습니다. 동문은 숙종 34년(1708년)에 군수 임정이 재건하고 봉일루(捧日樓)라 이름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없어지자 정조 22년(1798년)에 군수 김이교가 옛 터에 중수했습니다. 그리고 고종 7년(1870년) 군수 김도근이 남문인 진남루(鎭南樓)를 신축했습니다. 한편 북문루는 군수 유비 재임시인 1665년~1671년에 세워진 뒤 임진왜란 때 동문루와 함께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 뒤 중건이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18세기말 제작의 <해동지도>와 19세기 각종 청도군 고지도에도 북문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청도읍성의 규모와 시설은 대체로 16세기 이후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읍성의 성곽과 내부 공공 시설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성곽의 훼손뿐만 아니라, 동, 서, 남, 북의 4문이 모두 철거되었고, 성내 신작로 개설로 말미암아 간선도로 변화와 함께 객사의 좌익사가 훼손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성벽 일부와 동문의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청도읍성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을 하면서 옛 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옛 지도를 보면 세세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청도읍성의 대략적인 모습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복원된 북문을 보면 그 형태가 옹성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옛 지도에선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이것은 이런 부분까지는 생략하고 그려진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북문루인 공북루(拱北樓)를 한 번 볼까요?
옛 지도인 <해동지도>에는 당시 공북루가 분명히 성내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느 때부터 북문루를 공북루라고 불렀는지 그 자세한 내력은 잘 모르겠습니다.
북문 옹성의 성벽 위를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옛 성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을 발굴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이곳도 복원되지 않을까 하고 짐작해봅니다.
청도읍성에서 북쪽 성벽이 가장 많이 복원되었습니다. 북쪽 성벽 앞으로는 자그마한 연못을 여러 곳 만들어 놓아 마치 공원처럼 보입니다. 여름철이 되어 이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면 그 모습 또한 볼 만할 것입니다.
북쪽 성벽과 동쪽 성벽이 서로 만나는 곳엔 '각루'라는 성곽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각루와 북문 사이에는 '치성'이 있는데, '치성'은 꿩의 지혜를 빌린 것이라고들 합니다. 꿩은 제 몸을 풀숲에 숨기고 머리만 내밀어 밖을 내다보며 위험을 살피는데, 성곽에서도 꿩처럼 적의 동태를 살피고자 이처럼 돌출된 부분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동쪽 성벽 곁에는 숱한 비석들이 늘어서듯 서 있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보진 않았으나 아마 공덕비 같은 것이겠죠.
동문지에서 끊긴 성곽 안쪽을 보면 토사로 쌓아올린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읍소재지를 관통하는 도로로 지금 동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동문이 있었던 흔적들은 길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청도석빙고가 있는 곳에서 청도향교 쪽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쪽 성벽 일부가 아직도 길가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청도읍성은 아주 일부만 복원되었습니다. 언젠가 동쪽 성벽 나머지뿐만 아니라 그 외 부분도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어 청도읍성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되면 청도읍성은 청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