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하여 있는 석도는 온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며 겨울에는 춥지 않고 여름에는 무덥지 않아 동방의 하와이라고 불린다. 자연풍경이 아름다운데 다양한 세시풍속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 이 지역의 매력이다. 산과 바다와 해변이 잘 어울려 있는 가운데 낚시를 할 수 있고 등산도 할 수 있어 관광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석도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예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무역거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또 문화교류와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손중산선생은 "건국방략"에서 두 번이나 석도를 언급하였다. 석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31Km에 달하는데 총 면적은 188.5㎢이고 인구는 약 14만에 달하며 위해 영성(榮城) 지구에 속한다. 이 곳에는 산동성급의 개발구가 있고 주국북방에서 제일 큰 어항이 있으며 청나라 건륭년간에 만들어 놓은 천후궁이 있는가 하면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간의 우의의 상징으로 되는 적산 법화원이 있고 한중 두 나라 사람들의 우호적인 교류와 협력의 상징인 장보고 기념탑이 있다.
이 곳에서는 집집마다 꽃을 기르고 있어 꽃동네라고 불린다. 또 사람마다 서예를 즐기고 그림을 잘 그리며 기석을 수집하기를 즐기는 민간풍습이 있다. 어민축제 때가 되면 북을 치면서 크게 기념 행사를 벌인다. 여기는 또 해물요리로 유명하다. 석도에서는 여러 가지의 조개와 새우요리를 맛볼 수 있을 뿐더러 직접 바다에 나가 바다 낚시를 하거나 어선을 따라 나가 고기잡이를 하여 신선한 해물을 그 때에 맛볼 수 있어 좋다.
장보고기념탑(張保皐紀念塔)
장보고 기념탑은 적산법화원의 북쪽에 있는데, 1991년 한국성신여대 교수, 세계한민족연합회(世界韓民族聯合會) 회장 최민자(崔珉子)교수가 적산법화원에 왔다가 한민족의 선각자 장보고 대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1994년 7월 24일에 준공되었으며, 탑의 설계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한•중 양국의 친선이 영원함)가 더욱 깊다고 하겠다. '장보고기념탑 (張保皐紀念塔)' 여섯 글자는 김영삼(金永三) 전대통령의 친필휘호이다. 적산법화원은 역사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한•중 양국 국민의 친선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의 북쪽에 위치하여 있는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만들어지기 시작한 당나라 때 교동지역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 사원인데 당회창 년간에 파괴되었다. 기재에 따르면 적산법화원은 신라사람 장보고에 의하여 만들어 졌는데 여기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적산 주위는 원래 온통 붉은 색으로 덮여 있었는데 적산신이 바다로 출항하는 배들을 보호하여 주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적산신에게 와서 평안을 기원하였다고 한다.성당시기 신라사람 장보고가 용역에 응하여 무녕(지금의 서주)에 와서 군의 장령으로 있었는데 용감하게 작전을 하여 많은 당나라 장군들의 사랑을 받았다. 후에 신라로 귀국한 그는 청해진의 대사로 있으면서 당나라와 "해상 실크로드"를 열어 유명한 해상무역가로 되었다. 장보고는 적산신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해상무역의 번영을 기원하고 상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견지에서 법화원을 설립하고 스님을 초청하여 불경을 읽게 하였다. 처음으로 초청된 명승은 천대종파의 스님으로 그가 읽었던 불교 경전은 "법화경"이었으므로 이 곳을 "적산법화원"이라고 하였다.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때 벌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는데 많을 떄 이곳에는 30여명의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비용은 장보고가 지출하였으며 많을 때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불경을 들으러 왔었다고 한다. 당 개성4년(839년) 6월에 일본의 명승인 원인법사일행이 불경을 구하러 당나라에 왔었는데 이 적산법화원에서 2년 9개월 체류하였었다. 현지의 관리들과 스님들의 도움으로 그는 당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순조롭게 불경을 구할 수 있었다. 일본에 귀국하여 원인법사는 당나라 사람들의 정성어린 관심을 잊을 수 없어 "入唐求法巡禮行記"를 썼는데 책은 적산법화원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에 적산법화원은 멀리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원인법사의 제자들은 이를 기념하여 일본 교토에 "적산법화원"을 세웠다. 1987년 일본의 학술계의 지명인사가 적산에 와서 고찰, 답사를 하면서 영성시 인민정부 대외판공실의 도움으로 이 법화원을 새롭게 보수하였다. 이에 선후로 200만 위안을 투자하였다.
새롭게 보수하는 과정에 상급 관계부문과 국제인사들의 관심과 방조를 많이 받아왔는데 지금 법화원의 면적은 5000㎡ 쯤 된다. 건물은 모두 당나라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구조는 "入唐求法巡禮行記"에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 대웅보전은 뒤로 산을 끼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며 한가운데 석가모니의 상을 모시고 있다. "大雄寶殿"이란 간판은 전국정치협상회의 부 주석이며 전국불교협회 회장으로 있었던 조박초 선생이 쓴 것이다.
석도 적산법화원 입장권
입장료는 1인당 80위엔이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입장시는 별도 요금을 받습니다.
더운 날씨에는 자동차로 입장 하는게 편리하고 내부에 유료 전동카가 있어 이용 할 수도 있습니다.
교통편은 일반버스는 노후되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승용차 렌트는 기사포함 400-500, 봉고차는 500-600원 이고
약 1시간 소요됩니다..
CITY TOUR 를 이용하는게 저렴하고 편리 합니다.
주로 관광 할 장소로 법화원, 관음전 (분수쇼 하는곳), 영성민속관, 수석전시관, 적산명신,등이 있습니다.
장보고 기념사업회 발행 팜프렡
관음보살 (분수쇼 하는곳)
관음보살은 높이가 약25m 중량 약 200 ton 의 거대한 조형물로 매일 11시 오후 2시30분에 음악 분수쇼가 있습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분수쇼가 진행 하는동안 보살이 회전하며 여러 가지의 상징적인 연출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