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 천년 맞이 有感
정석준(경주불교 중고등학생회/ 청년회 지도법사)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보름 후면 한 세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21세기가 시작되는 동시에 새 천년이 열린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2,000년의 역사적 의미는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수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 프랑스 등,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은 새 천년 맞이 준비에 야단법석울 떨고 있다.
새해가 2,000년이라는 것은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하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달력은 한 가지만 잇는 것이 아니다. 유대교의 헤부력으로 치면 새해는 5,760년, 이슬람력으로는 1,420년, 대만의 민국력으로는 89년, 일본의 헤이세이(平成)력으로는 12년, 단기로는 4,3333년, 불기로는 2,543년이 된다.
자신들의 연호를 고집하는 일본이나 대만이 새 밀레니엄을 준비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미 서구의 문화권 속에 들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전세계가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이란인들은 그레고리력에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2,000년은 그들의 계산법에 따라 1,379년일 뿐이다.
힌두교가 지배적인 인도에서는 다신교인데다가 해석도 다양하기 때문에 다중적(多衆的)인 역법이 있다. 어떤 역법에 따르면 2,056년이지만, 또 다른 역법에 따르면 1,921년이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단지 거대하고 끝없는 시간의 소용돌이 중 한 순간일 뿐이다.
서기 1,000년이 되던 해, 유럽에서는“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는 성경 말씀을 믿고,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하여 큰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근세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고, 제7일은 안식하였으므로(창세기), 인간의 역사는 6,000년 이내에 끝장난다."고 주장하고, 예수 재림 연대를 안식교를 창시한 밀러는 1,843년 3월부터 1년 사이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증인을 창시한 리젤은 1,914년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이후 끊임없이 종말론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장막전선· 일월산기도회· 천국복음 전도회· 다베라 세계선교회 등에서, 종말론을 주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킨 바 있다.
서기 2,000년을 몇 일 앞둔 요즈음에는 종말론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고,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다시 시작이라는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뭔가 희망적인 미래를 설계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걱정이 앞서는 것이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니, 변화에 가는 세상에 적응해 나가기도 힘들고,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향락주의 배금주의가 판을 치며,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이른바‘살아남기 콤플렉스’때문에 인간의 삶은 점점 각박해 지고 고달프기만 하다. 물질적으로는 예전보다 풍족해 졌으나, 정신적 빈곤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새해에는 새해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새 천년 맞이에 너무 부산을 떨지 말고 ‘나는 누구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자신을 조용해 반추해 보고 열린 마음으로 새 천년을 맞이하였으면 한다.
(경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