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에는 도오(道悟: 748~807) 스님에 대하여 우저우(婺州) 둥양(東陽) 사람으로 속성은 장씨(張氏)며, 14세에 출가하였고, 25세에 캉저우(杭州) 죽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는 처음 경산 국일(徑山 國一) 스님을 찾아 5년 동안 시봉하다가 대력(大歷) 연간(766~779)에 종릉(鍾陵)에 가서 마조(馬祖) 스님을 찾아뵙고, 3년 후 석두 희천(石頭 希遷: 700~790)의 문하에 들어 그의 법을 이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달관(達觀: 989~1060) 스님이 지은 「오가종파집(五家宗派集)」에는 도오 스님이 마조 스님의 법을 계승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남악 회양(南嶽 懷讓: 677~744) 스님의 법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문헌마다 차이가 있어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늠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의 전법 제자가 숭신(崇信) 스님이라는데는 별 이론이 없다.
도오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천황사 일주문 밖에 떡집이 하나 있었다. 그 떡집 주인은 날마다 자기 아들을 시켜서 떡 열개씩을 천황사의 도오 스님께 보내 드렸다. 스님은 떡공양을 받을 때마다 그 중에서 한 개씩을 떡을 가져온 소년에게 주면서 말했다.
“너에게 이 떡을 주는 것은 자손을 위하여 공덕을 짓게 하려는 것이다.”
떡장수의 아들은 스님이 번번이 똑같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것이 궁금하여 참을 수 없었던 나머지 하루는 용기를 내서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스님, 저희 집에서 가져온 떡을 늘 제게 도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가져온 것을 너에게 도로 주는 게 무엇이 이상한고?”
“그러면 자손을 위하여 공덕을 지으라는 말씀은 무엇인지요?”
“알고 보면 쉽고 모르면 영원히 어려운 말이다.”
소년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님이 내려 주신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떡장수 아들은 도오 스님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다. 도오 스님이 그에게 법명을 지어 주면서 말씀했다.
“너는 숙세(宿世)에도 선근을 숭상하였는데, 지금도 또한 그것을 잘 신(信)함으로 숭신(崇信)이라는 법명을 주노라.”
그때의 사미승이 나중에 크게 선풍을 휘날린 그 유명한 용담 숭신 선사다.
한 가문에서 스님이 나오면 스님이 불도를 닦은 공덕으로 3대가 지옥고를 면하고 정토에 난다는 말이 있는데, 도오 스님은 소년이 스님이 되어 자손을 위해 공덕을 짓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셨던 것 같다.
아무튼 일개 떡장수의 아들이었던 소년은 천왕사에서 출가하여 도오 스님을 시봉하면서 성심으로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오 스님은 몇 해가 지나도 숭신을 직접 불러 무엇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숭신은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참다 참다가 하루는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소승은 출가하여 스님을 모신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만 스님께서는 한 번도 소승에게 불법의 대의나 선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자 도오 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선요(禪要)를 설하지 않은 때가 없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고?”
“스님께서 언제 소승에게 선요를 설해 주셨단 말씀입니까?”
여태껏 하루도 깨우쳐 주실 것을 바라지 않은 날이 없건만 단 한 번의 가르침도 못 받았는데, 매일 가르쳐 주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것을 몰랐단 말이지. 자, 들어보아라. 네가 차(茶)를 다려다 주면 내가 정중히 받아서 마시고, 네가 밥을 차려다 주면 내가 너를 위하여 맛있게 밥을 먹고, 네가 조석으로 절을 하면 내가 너를 위하여 응접(應接)치 않더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를 위하여 설하지 않았다니 어인 말인고?”
숭신은 은사 스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골똘하게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있는 숭신에게 도오 스님이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였다.
“보려거든 직하단적(直下端的)을 보아라. 조금이라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을 하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 될 것이다.”
직하단적이란 즉시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뜻이다. 숭신은 스승의 언하(言下)에 천년의 어둠 속에 광명이 쏟아지듯, 막혔던 의문이 일시에 사라져 일체초연(一切超然)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증득하였다고 한다.
깨치는 것은 말끝에 곧 깨치는 것이지, 생각하여 알려고 하면 벌써 어긋난다. 그렇게 바로 깨우치고 나니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숭신이 물었다.
“어떻게 지켜 가오리까?”
하니, 도오 스님이 게송을 읊었다.
稔性手錄 隨綠放曠
但盡凡情 別無聖解
생각대로 오락가락 인연 따라 지내 가라,
범부의 생각을 없앨 뿐 성인의 마음 따로 없다
도오 스님의 가르침은 달리 말하면 평상심이 곧 도라는 뜻이다.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는 일상의 삶속에 곧 도가 있다는 말이다. 자칫하면 이 말을 오해하여 수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되는대로 내키는대로 살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서는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는 것이다. 거슬리지 않아야 자재를 이룬다.
첫댓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