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중앙일보 기사 내용입니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7703
--------------
디자인 스튜디오 ‘crosswalk lab’의 김경욱(39) 대표. 그는 566돌을 맞는 한글날을 앞두고 주목받는 인물이다. 올 2월 한글을 이용해 세계적인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것도 애플 iPad 2, BMW M6, 삼성 스마트 TV 등과 함께 최고상에 해당하는 ‘골드 부문’이다. 예쁜 서체를 개발한 성과는 아니었다. 대신 새로운 한글 입력 방식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구텐베르크의 후손들로서 활자·인쇄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한글의 독특한 조형을 잘 살린 인터페이스가 매우 인상적”이라며 호평했다.
수상작은 한글이 획으로 이뤄진 글자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굳이 커다란 컴퓨터 자판이 없어도 조이스틱 하나만 있다면 한글 입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현시킨다. 가령 스틱을 ㄱ ㅣ ㅡ ㄴ 순으로 움직여 ‘간’을 만들 수 있다. 단 ‘곤’이라는 글자도 이렇게 형성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에 같은 획수와 순서로 만들어지는 글자들을 미리 저장해 놓은 뒤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물론 많은 글자를 빠른 속도로 쳐야 할 땐 키보드 방식, 혹은 천지인 방식이 더 효율적이죠. 하지만 서너 글자의 검색어 정도만 입력할 때나, 자판 장착이 힘든 카메라·TV리모컨·시계 같은 작은 공간에선 ‘획으로 쓰는 글씨’가 훨씬 낫습니다.”
그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1999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2010년까지 NHN 미국 지사의 디자인 그룹장, 일본 지사의 디자인 센터장으로 해외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해외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듯’ 아이디어 역시 5년 전 미국에서 처음 생각해 냈다. 평소 공병우·최정호·안상수·이찬진·민병걸 등 한글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던 분들의 작품들을 보거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말의 특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계기였다.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문가로서 컴퓨터와 한글을 보다 친숙하게 이어주는 역할에 주목했다. “한글 사용자를 최대한 배려한 체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가령 키보드 안쪽에 있는 ㄹ, ㅎ 자음은 한글에선 가장 자주 쓰이는 글자는 아니죠. 알파벳 키보드에 구겨 맞춘 한글을 보다 보니 뭔가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계속 갖게 됐죠.”
수상 이후에도 그는 ‘획으로 쓰는 글씨’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 중이다. 상용화가 급선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러브콜이 많지는 않다. 많은 이가 키보드 입력 방식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자가 많은 탓에 키보드 입력을 영어 발음으로 해야 하는 중국·일본 쪽에서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글에 빠진 그는 우리말에 ‘약점’도 있다고 귀띔했다. 복잡한 획수지만 그림으로 바로 인지되는 한자와 달리 한글은 모양을 보고 뇌에서 소리로 전환해 읽어야 읽힌다는 것. 그래서 뇌 작동 부분이 다르고 인식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얘기였다. “한글이 우수하다고만 하면 발전이 있겠어요. 이런 단점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보완해 나가느냐가 다음 숙제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