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덕천동으로 옮기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건물로 1880년경에 지었다.
대문채와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이 크고 격식을 갖추고 있다. 대문은 솟을대문에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는 크고 화려한 집으로 주인이 머물던 곳이다. 오른쪽에는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에 안채가 있다. 안채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거칠게 만든 문짝 위에 빗살무늬의 빛받이 창을 달았다.
각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는 등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영조(英祖) 때 만석(萬石)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祖上)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建立)되었다. 대문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안채, 사당(祠堂)으로 구성(構成)되어 있으며, 각 건물이 모두 장대하고 격식(格式)을 갖추고 있다. 대문은 솟을대문에 홍살(紅箭)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건물로 주인이 거처(居處)하던 곳이다. 우측에 작은사랑이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交窓)을 달았다. 각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空間)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주택(上流住宅)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첫댓글 대구고06 심... 2007년 사이버학습 7월호 방송고 세상 시 태 묻힌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당선 원고입니다. 08.06.28 21:33 아름다운 글 방게시판올린글 옴겨습니다..축하합니다..
멋진 글이네요.진달래 개나리보다 더 밝은 봄이 오게하자라는 말은 희망을 애기하는거 겟죠.
학우님께서 좋은 글이라고 칭찬하시니까, 부끄럽지만 고맙씁니다. 송소고택 클릭하시어서 99칸 고택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