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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심이명 眞心異名 (7)
曰 離妄名眞이요 靈鑑曰心이니 楞嚴經에 發明此心하니라
왈 이망명진 영감왈심 능엄경 발명차심
或이 曰 但名眞心가 別有異號耶잇가
혹 왈 단명진심 별유이호야
曰 佛敎祖敎에 立名이 不同하니 且佛敎者는
왈 불교교조 입명 부동 차교불자
菩薩戒에 呼爲心地하니 發生萬善故요
보살계 호위심지 발생만선고
般若經에 喚作菩提하니 與覺爲體故요
반야경 환작보리 여각위체고
華嚴經에 立爲法界하니 交徹融攝故요
화엄경 입위법계 교철융섭고
曰離妄名眞(이망명진)이요 靈鑑曰心(영감왈심)이다.
진(眞)과 심(心) 그래서 진심(眞心)!
離妄(이망) 망을 떠났다.
망령된 것. 잘못된 것. 거짓된 것. 이것을 전부 떠나서 없어진 그런 상태를 이름해서 참다운 것 眞(진)이라고 한다. 그렇죠. 진짜에는 가짜가 없죠. 가짜가 있으면 진짜가 못되지요. 그러면 온갖 가짜 배기란 가짜배기는 전부 다 떠나버린 상태에서 오롯이 진만 남은 거지요. 그것을 진이라고 하고
靈鑑曰心(영감왈심)이다 그랬어요.
감은 거울 鑑(감)자입니다 거울은 비치는 작용을 한다.
신령스럽게 비치는 것을 가로대 마음이라고 한다.
신령스럽게 비치는 것, 지금 여러분들이 조용히 그냥 듣고만 있지 만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또 이 보조스님이 뭐라고 했는지. 또 글을 제대로 해석을 하는지. 또 글의 내용을 알고 하는지. 환히 비추고 있어요.
여러분들 낱낱이 한 사람 한 사람도 전부 영감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비추는 것이 뭐라고 할까? 감지기라고 할까요? 이 (鑑)감자는 감지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전부 감지하고 있는데 몸의 감지기는 뛰어나다 보니까, 그래서 靈(영)자를 붙이는 거예요. 아주 신령스러운 감지기예요. 靈鑑(영감)!
이 마음자리 같은 뛰어난 센서는 이 세상에 없어요. 어떤 무엇을 갖다가 과학적으로 만들어 놓아도 이런 감지기 같은 감지기는 세상에서 못 만들어요. 이것은 만들 수 없는 감지기입니다. 靈鑑(영감)! 아주 신령스럽게 비치고 있는 거죠.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 표현이 아주 간략하면서도 좋죠.
우리 마음! 우리가 막연하게 진심! 마음 마음 마음 하지만은, 무엇을 하는 것이 마음이냐? 영감 한다 이거예요. 영감! 영감이 마음이다. (ㅎㅎㅎ~) 영감! 신령스럽게 감지 한다. 환히 비추고 있다 이겁니다.
胡來胡現(호래호현)하고 漢來漢現(한래한현)이라 그래요.
호나라 사람이 오면 호나라 사람 비추고, 한나라 사람이 오면 한나라 사람 비춘다. 거울이 큰 거울이 있다 이거예요. 키가 작은 사람이 가면은 작은 사람을 비추고. 큰 사람이 가면 큰 사람을 비추고. 남자가 가면 남자를 비추고 여자가 가면은 여자를 비추고 흑인이 가면은 흑인을 비추고. 백인이 가면은 백인을 비추고 황인종이 가면은 황인을 비추고 하나도 안 속여요.
빼먹지도 않고 더하지도 안 해요. 거울은 절대 더하거나 빼먹거나 그렇게 안 해요. 그리고 또 양귀비가 와서 비추고 갔다 칩시다. 좀 예쁜 사람 비추었다고 잠깐 더 붙들어 주지도 안 해요. 가버리면 없어요.
또 옛날에 천하에 악독한 사람이 와서 설사 와서 선다고 해서 안 비추어 주지 안 해요. 나쁜 놈이니까 나는 못 비추어 줄란다 그것도 없어요. 그냥 그대로 환하게 비추어요. 영감! 신령스럽게 비추는 거죠. 불교는 조사 스님들의 어록 같은 것도 자꾸 보고. 또 물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 안에도 핵심은 역시 그렇습니다.
핵심은 이 이전과 우주의 근원이 무엇이냐? 근본이 무엇이냐? 그 근본을 이야기 하려면은 모든 지엽적인 것은 다 해결된다. 근본을 찾아 들어 가보니 결국은 뭐냐? 마음이더라 이겁니다. “마음이 근원이 되나니, 그래서 이 마음이 하는 대로 모든 세상 사는 바뀐다.” 법구경 첫 구절에도 그 마음 문제 아닙니까?
남방 불교에 그야말로 아함부 경전에서 제일 많이 읽히는 경전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대승불교권 이지마는 그래도 아함부 경전에서 제일 좋은 경전 법구경은 누구나 다 읽는다고요. “마음이 우선이 되고 마음이 주인이 된다.” “마음이 착한 일을 따르면 모든 복이 그를 따른다. 마치 수레가 소를 따르듯이” 소가 끌면은 수레가 그 뒤에 따라가듯이 틀림없이 그렇게 따른다는 거예요.
“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고 주인 이다.” 우리 인생이나 이 세상 근원 자리는 전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에는 전부 그 근본인 마음의 문제에 아주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보조스님도 진심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우주와 인생의 근본인 이 진심! 이 문제에 집중적으로 여기서 분석해 들어가는 그런 내용이죠. 그쯤 되고 보면은 불교가 ‘아~ 불교는 마음공부 하는 종교다. 마음 깨닫는 종교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그러면은 마음을 그렇게 중요시 했느냐? 우주와 인생의 근본이니까. 근본 해결 하면은 그 다음에 지엽은 나중에 저절로 해결이 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이 맞는 말이 예요.
괜히 지엽을 붙들고 아무리 늘어져봐야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해요. 근본이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근본부터 해결해야 모든 해결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틀림없는 거죠. 그러니까 아주 불교가 참 바로 본 거예요.
嚴經中(능엄경중)에 發明此心(발명차심)하니라.
능엄경 가운데서 이 마음을 발명했다.
환히 그것을 이야기 했다.
능엄경은 역시 앞에 기신론과 더불어 스님들이 공부하는 교과 중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능엄경의 발단이 여름 해제 날! 부처님의 제자 아란존자가 혼자 걸식하러 갔다가 어떻게 잠깐 탈선할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어요. 탈선하는 일이 생겼는데 나중에 부처님 앞에 불려가 가지고
“너는 수행하러 왔고 날 따라서 이렇게 출가를 해서 어찌 그렇게 탈선을 하느냐? 그래서
“도대체 뭐 때문에 너가 출가를 했느냐? 출가한 이유부터 다시 따져보자.” 이렇게 부처님이 어떤 꾸중과 어떤 교훈이 섞인 그런 뜻에서 그렇게 묻습니다.
“출가한 마음을 어째서 내었느냐?" 부처님이 그런 질문을 하죠. 그것은 일상적인 말하자 면은 꾸중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질문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란존자가 “부처님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나가지고 그래서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났다고? 그래 물론 내 얼굴을 봤다고 하자, 그러면 마음을 내었다고 하는데 그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어디 있느냐? 눈은 너의 얼굴에 있다 치자. 그것은 세 살 먹은 아이들도 다 아니까,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이 그것을 꼬투리를 찾아서 묻는다고요.
다시 이야기 하면은 부처님이 물어요.
“너는 뭐 때문에 중이 되었느냐?”
“부처님의 훌륭한 모습에 거기에 반해 가지고 출가를 할 마음이 났습니다.”
“그래? 내 훌륭한 모습을 보고 출가를 했다니, 그러면 내 훌륭한 모습을 본 너의 눈은 얼굴에 있는데, 눈을 통해서 보고 마음이 났다고 하는데 그러면 눈은 알겠다. 그러면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이제 파고 들어가요.
그래서 능엄경이라고 하는 참 철학적인 이론이 그 때부터 전개가 되면서, 소위 유명한 칠처징심(七處徵心)이라, 일곱 곳에서 마음을 아란존자가 대답을 합니다. 대답을 하고 부처님은 계속 그것을 꿰뚫어요 틀린 말이니까. 뭐라고 하느냐?
“내(內)․외(外)라 그래요.” 처음에 안에 있다 그래요.
“마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니까,
“아이~ 부처님, 마음이 몸 안에 있지 않습니까?”그래요.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누구라도 몸 안에 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요.
부처님이 그것을 낱낱이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 보니까, 마음이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 예요.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면 몸 밖에 있습니다.”그러면 몸 안에 있을 것 같으면은 부처님 말이 그래요.
“그러면은 몸 속부터 창자부터 보고 차츰차츰 밖으로 나오면서 이해하고 봐야 될게 아니냐? 그런데 왜 창자부터 못보고 바깥부터 보느냐?” 이런 좀 억지 섞인 그런 어떤 질문을 하면서까지 전개 돼요.
“사실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러니까 나중에 아란존자가 나중에
“아 그러면 내가 생각해 보니까 마음이 몸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것도 또 아니고 또
“작은 근이라고 해서 바로 눈 밑에 있는 것 같다.” 또
“어두운데 있는 것 같다.” 또
“수소합처 근과 견이 합하는 그런 곳에 있는 것 같다.” 또 “그러면 일체무착이다. 마음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들으면 그럴듯한데 그런데 그 말도 아란존자가 궁해서 하는 대답이기 때문에, 일체무착이라는 말도 결국 틀려버려요.
그래서 어쨌든 마음에 대해서 능엄경에서 이 마음을 밝혔다. 발명했다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마음을 찾아 들어가는 이야기가 이렇게 쭉 이렇게 전개되지요. 전개되 가지고 결국은 모든 것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일체 근(根)이 됐던지 육근(六根)이 됐던지 육진(六塵)이 됐던지 간에, 이것은 인연(因緣)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이라. 전부 우리의 마음 그 자체다.” 결론은 4권 거기까지 발전이 되는데, 그래서 능엄경에 한 4~ 5권까지가 이 마음을 밝히는, 마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그런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능엄경 중에 다른 경에서도 마음 이야기가 많지 만은 특히, 능엄경에서 마음을 드러내게 하는 내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능엄경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또 거기 바사이 왕이라고 왕이 한 분 등장하는데, 그 분은 나이가 석가모니세존 하고 나이가 같다고 그래요. 능엄경이 육십 이세 때 설해진 것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느냐? 늙지 않느냐?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 없어지느냐? 없어지지 않느냐?” 이 문제를 가지고 바사이 왕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또 그 안에 있다고요. 그런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바사이 왕이,
“이 몸은 지금 육십 하고도 또 이세가 되었다. 육십 이세가 이렇게 되어서 차츰차츰 젊을 때 보다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지금 완전히 쭈그러져 가지고 늙은 모습이 그야말로 참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렇게 늙어졌고,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내 몸이 변화해 오는 것을 가만히 열 살 때.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마흔 살 때. 이렇게 변화해 오는 과정을 가만히 추적해 보니까, 틀림없이 내가 얼마 안가서 없어질 것으로 안다. 왜냐? 변하는 것은 없어지니까 그래서 없어질 것으로 안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몸은 그런 것이라 하고, 그래 바사이 왕 입장에서 마음도 역시 몸 따라서 그렇게 없어질 것이 아니냐? 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런 이야기를 해요.
“대왕이 간지스강을 언제 봤느냐?” 그래서
“세 살 때인가 보았다.”고 그래요.
“그래, 그 후에 또 몇 살 때 보았느냐?” 그러니까,
“열 살 때도 보았고. 스무 살 때도 보고.
수시로 많이 봤다.”는 거예요.
그러면 간지스 강을 보고 지금 육십이 넘어서도 간지스강을 보는데, 그 때 세살 때 간지스강을 보고 그 본다는 사실! 또 그 다음에 지금 육십이 되어서 볼 때의 본다는 어떤 실체! 그것을 “견정”이라 그래요. 보는 알맹이! 정은 정의로울 정자, 견정! 보는 정기는 달라지지 않지 않느냐? 몸은 달라지지마는 견정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지 않느냐? 보는 것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겁니다. 눈은 좀 흐리다 하더라도 눈이 흐린 것 하고 보는 어떤 정기! 그것하고는 다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견정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것은 곧 마음이라는 뜻이 예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은 말하자 면은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지 만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이렇게 결론을 지으면 그렇습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고 결국 변하지 않는 것만 우리가 확실히 이해한다면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그리고 변하지도 않는다. 견정!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야기로부터 능엄경에서는 마음의 문제를 어떤 경전보다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죠. 그래서 여기서 능엄경 중에 이 발명을 했다.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진심! 거짓된 것이 떠난 것을 진이라고 하고 신령스럽게 비추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 아주 그것을 잘 기억해야 되겠네요. 그래야 진심직설! 제일 중요한 말이 진심이라는 말이니까. 그 다음
或이 曰 但名眞心가 別有異號耶잇가
혹 왈 단명진심 별유이호야
다만 진심이라고만 이름합니까?
아니면 따로
異號(이호)!
다른 이름이 있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진심이명(眞心異名)이지요. 진심의 다른 이름인데 그러니까 어떤 마음은 하나지마는 또 여러 가지 공릉이 있어요. 여러 가지 격이 있고 여러 가지 능력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따라 가지고 이름을 달리 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曰 佛敎祖敎에 立名이 不同하니
왈 불교조교 입명 부동
佛敎(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
祖敎(조교)는 조사의 가르침!
그야말로 부처님과 버금가는 그런 훌륭하신 그런 견성 도인들이 그런 가르침을 조교라 이렇게도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에 이름을 세운 것이 부동하다. 같지를 않으니,
且佛敎者(차교불자)는
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菩薩戒(보살계)에
보살계경에! 이것은 법망경에!
보살계를 설하는 그런 보살계에 말하되,
呼爲心地(호위심지)하니
불러서 심지라 한다. 마음 땅이라 한다.
그래서 "마음 땅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라는 그런 말을 했다고 했는데, 보살계에서는 심지라는 말을 잘 써요. 마음 땅이다. 왜 마음 땅이라고 했는가?
發生萬善故(발생만선고)요
발생만선하기 때문이다.
萬善(만선)!
온갖 착한 일. 온갖 좋은 일.
그것을 발생하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 땅이라 한다. 왜냐? 지금 땅에서 온갖 풀이 온갖 생명이 다 솟아서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봄에는 신기하죠. 그렇게 딱딱한 땅, 그렇게 참 삭막하고 거친 땅에도 봄이 되면 여축없이 그냥 온갖 식물이 다 돋아나고 뚫고 올라와서 꽃을 피우고 참 신기하죠. 그래서 마음 땅이라 한다.
그렇듯이 우리 마음 땅은 아무리 참 차갑고 차가운 그런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 온갖 착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요 악하다. 그 사람은 냉정하다. 무슨 목석 같다. 뭐 별별 우리는 순간적인 어떤 성격을 가지고 그런 표현을 하지만은, 상황이 되면은 온갖 그런 착한 일을, 보살행을 할 수가 있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땅 위를 밟고 다녀도요, 가을부터 겨울에 너무 밟아놓으면은 도저히 풀이 자랄 수 없을 것 같죠, 그래도 봄이 되면 용캐도 밟아놓은 바로 그 자리에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식물이 있다고요.
납작한 것 빼짜구라 하나? 뭐 그런 것들하며, 또 뭐예요 상사초? 그것도 참 신기해요. 그것도 보면은 다니면서 항상 밟아 가지고 딱딱하게 세멘트처럼 굳게 되었는데, 그렇게 연한 것이 그것도 뚫고 올라 온다고요. 참 신기해요.
그러니까 사람이 한 때 성격이 조금 안 좋고 뭐 딱딱하고 차고 그냥 그렇다손 치더라도요. 어느 계기가 되면은 아주 봄 날씨같이 따뜻하고 아주 춘풍같이 부드럽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런 계기를 못 만들어줘서 그래요.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면은 누구나 그렇게 봄바람 같은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거예요.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그 부드러운 풀 보세요. 이치가 그래요. 여기 보십시오.
發生萬善(발생만선)이라도
만선은 발생한다.
좀 때가 안 되고 계기가 안 되어서 그래요. 그것이 안 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이 본래로 그런 것으로 아예 그렇게 그만 치부를 해버려요. 아예 저 사람은 몹쓸 사람, 저 사람은 평생 목석 같은 사람. 잘 알고 보면은 목석이 아니 예요. 심지! 보살계에는 마음 땅! 발생만선! 그 다음에
般若經(반야경)에는 喚作菩提(환작보리)라.
환자는 부를 喚자 앞에 호는 부를 호! 심지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도 돼요. 이것도 환자도 역시 같은 뜻인데 보리라고 부른다. 보리라면은 각이지 않습니까? 깨달을 覺(각)자! 깨달을 覺자의 뜻이거든요. 각이라고 부른다.
與覺爲體(여각위체)요.
각(覺)으로 더불어 체가 되기 때문이다.
覺(각)! 깨달음으로 더불어서 그 본체가 되기 때문이다. 뭐가? 진심이 그렇다는 거예요. 진심을 두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달리 부르는 경우를 지금 설명하고 있어요. 우리 마음을 보리라고도 해요. 심지라고도 하고…
화엄경에는 뭐라고 했나?
立爲法界(입위법계)하니
세워서 법계라고 한다. 법계를 삼는다.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 이런 뜻인데 세워서 법계라고 한다.
왜냐? 왜 진리의 세계라고 하느냐? 우리 마음을
交徹融攝(교철융섭)하는 까닭이다.
交徹(교철)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사귀어서 사무쳐 있다.
교철이라는 말은요, 여기서 예를 들어서 형광등 불이 여러 개 있어요.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형광등 불빛. 왼쪽에 있는 형광등 불빛이 전부 이렇게 뒤섞여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이 빛은 오른쪽 형광등불빛인지 왼쪽 형광등 불빛인지 전혀 분간이 안돼. 그러나 분간이 안되면서도 분명히 여기는 오른쪽에서 비쳐오는 형광등 불빛. 왼쪽에서 비쳐오는 형광등 불빛. 이것이 다 따로따로 있어요. 그러면서 한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교철융섭입니다.
교철(交徹)!
사귈 交(교),사무칠 徹(철), 사귀어서 사무쳤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 각각 다른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됐을 때 교철이예요. 융섭이라고 하는 것도 교철과 좀 다른 뜻으로 원융하게 서로 포섭하고 있다.
첫댓글 離妄名眞이요.靈鑑曰心이요. 거짓된것을 떠나고 신령스럽게 비추는것을 진심이라 한다.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_()()()_
如來藏妙眞如性...無影樹님 감사드립니다..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감지하는 그것.....감사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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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것이 떠난 것을 진이라고 하고 신령스럽게 비추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고맙습니다. _()()()_
呼爲心地하니 發生萬善故요... 감사합니다..._()()()_
염화실에 올라 있는 능엄경 제 15회에서 28회까지에 七處徵心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파사익 왕과 부처님 과의 대화 역시 29회와 30회에 올려져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_()()()_
呼爲心地하니 發生萬善故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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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이 하는 대로 모든 세상 사는 바뀐다."_()()() 제마음또한 조금씩조금씩 강해지려합니다. 감사합니다
담연님^^*...._()()()_
마음이 근원이 되나니, 그래서 이 마음이 하는대로 모든 세상사는 바뀐다.... 마음등불_ ((()))_밝힙니다. 無影樹님 감사합니다^^
無影樹 님!!~~존경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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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고 주인 이다.”..._()()()_감사합니다..^^ㅋ
'괜히 지엽을 붙들고 아무리 늘어져봐야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해요. 근본이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근본부터 해결해야 모든 해결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틀림없는 거죠. 그러니까 아주 불교가 참 바로 본 거예요.' _()_()_()_
'변하는 것은 없어지고 결국 변하지 않는 것만 우리가 확실히 이해한다면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거짓된 것이 떠난 것을 진이라고 하고 신령스럽게 비추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 _()_()_()_
'뭐 별별 우리는 순간적인 어떤 성격을 가지고 그런 표현을 하지만은, 상황이 되면은 온갖 그런 착한 일을, 보살행을 할 수가 있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수처황청황. _()_()_()_
'사람이 한 때 성격이 조금 안 좋고 뭐 딱딱하고 차고 그냥 그렇다손 치더라도요. 어느 계기가 되면은 아주 봄 날씨같이 따뜻하고 아주 춘풍같이 부드럽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똑 같은 물이지만 온수도 되고 냉수도 되고, 커피도 되고 녹차도 되고...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풀의 이치~ 인간의 심지 그리고 발생만선. 오늘도 좋은 가르침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_()_()_()_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고 주인이다.....
無影樹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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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음이 우선이고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고 주인 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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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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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이 이 세상의 근본이고 주인 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交徹 ... _()_
眞心直說 - 無比스님 眞心直說 法門 錄取 第07講 (眞心異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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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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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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