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위클리(Guardian Weekly newspaper) 2009. 1. 30. 보도
[번역] 다음카페 <크메르의 세계> 카페지기
강제조업 : 캄보디아에서 온 해상노예들
Forced to Fish : Cambodian Sea Slaves
보수를 더 준다는 말에 속아 태국 국경을 넘은 캄보디아 남성은, 곧바로 인신매매 폭력조직에 납치되어 남지나해의 타이만에 떠 있던 불법조업 어선으로 팔려갔다. 초언 치엉 리(Chorn Theang Ly)는 지난 2년 동안 무장 감시꾼의 통제 아래 바다에서 살아야 했다. 이하는 잘 살아보겠다던 그의 꿈이 악몽으로 변한 과정에 대한 증언이다.
한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촬영 : Brian Harris)
저는 캄보디아 안롱 크런(Anlong Khran) 마을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와서는, 태국에 가면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고향에서 우린 직접 쌀과 야채를 재배하며 살았었죠. 일년에 고작 200달러 정도 벌었어요. 그런데 이 남자는 우리가 태국에 가면 그보다 훨씬 많이 벌게 해준다는 거였죠.
그래서 우리 일행 12명이 태국 국경을 넘었습니다. 우린 그 남자에게 태국 돈 7,000바트(한국돈 약 27만원 정도)를 줬는데, 국경통과에 3,000바트고, 그 다음은 한달 치 월급을 주기로 한 겁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회사에 소속되어 강가에서 제방 축조를 할 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훨씬 대우가 좋을 거라고도 했죠.
우리가 태국에 도착하자, 그는 우릴 어떤 집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잠겨버렸고, 우리 모두 한 방에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팔려간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모두들 여러 가지로 도망갈 궁리를 해봤지만, 돈은 물론이고 여권과 증명서도 없었으니, 갈 데라곤 아무 데도 없는거예요.
거기서 밤을 꼬박 샜죠. 새벽 4시쯤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우릴 어선에 팔았고,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알게 된 겁니다. 우린 인신매매를 당한 겁니요. 너무 늦게 알아 아무 대책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힘이 쭉 빠지더군요.
바다에 나가자 우리 모두 바다 병에 걸렸는데, 얼마나 지독한지 저는 피까지 토했습니다. 일행 모두가 합심하고 의지해서 일단 한달 치 임금을 받을 때까지만 견디기로 하고, 그 후 캄보디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주는 우리가 적어도 3년은 일해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제야 이런 일을 위한 커다란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좀 더 선량한 선주들은 8개월 내지 10개월 정도 있으면 해안에 정박하고 임금도 계산해줍니다. 그러나 악덕 선주들은 3년 동안 바다에 발을 묶어놓고, 임금은 물론 동전 한 닢 주질 않습니다.
선상 생활은 정말 안 좋았어요. 우린 일만 해야 했고, 그저 한 양동이 정도의 음식과 물만 먹었죠. 큰 조업을 하는 날은 잠도 안 자고 하루를 꼬박 일하면서, 잡은 생선을 썰거나 내장을 꺼내는 일을 했죠. 행여 찢어진 그물이라도 있으면, 밤에도 서너 시간은 잠을 못 자고 수리를 했습니다. 가끔씩 다른 배 한 척이 와서, 잡은 고기들을 가져가고 물과 식량을 대주곤 했습니다. 육지를 보는 일도 드물었죠.
내 눈으로 살인도 목격했습니다. 배 안에는 태국인 선원 세 명이 있었고, 모두 무장을 한 상태였습니다. 선장은 우릴 육체적으로 학대하곤 했습니다. 초기에 그는 저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때리곤 하더군요. 때로는 커다란 오징어 뼈나 조개껍데기로 때리기도 했죠. 제가 본 사람도 맞아서 갑판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사람이 와서 총으로 쏴 죽인 후 바다에 버리더군요.
우리는 끊임없이 선장을 죽이고 배를 해안으로 댈 계획을 짜곤 했어요. 하지만 선원들이 총을 가지고 있어 실행에 옮길 수 없었죠.
그 첫 번째 배를 떠나 또 다른 어선을 타게 됐는데, 결국 거기서 2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에 배가 태국 해안에 닿았을 때 저를 좀 보내달라고 설득했더니, 트럭에 태워 국경 근처에 내려주더군요. 그리고 다시금 처음의 그 매매업자를 통해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태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그 가혹함과 거짓에 대해 이야길 해도 믿질 않고 떠나 버리더군요. 문제는 이곳에 일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우린 나무를 베서 태운 후 숯을 만들어 돈을 법니다. 하지만 정부는 환경보존을 이유로 금지시켜버렸죠. 우리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겠습니까?
• 초언 치엉 리의 증언 정리 : 캄보디아에서 Jonathan Gorv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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