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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Böll의 카토릭 교회 비판에 대한 평가들 Ⅲ. 회의와 갈등 |
Ⅳ. 결론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
Ⅰ. 서 론
Böll은 生存時 서독 Pen-Club회장과 뒤이어 국제 Pen-Club회장을 역임하고 노벨 문학상을 위시한 여러 비중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독일국내는 물론이고 서방세계와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에서도 폭발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읽혔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저명하고 生前에 독일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과는 相反되게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면에서 극단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오찬반(好惡贊反)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를테면 소위 “人間美學論(Ästhetik des Humanen)”에 바탕 둔 그의 문학이 도덕과 양심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그는 예술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도덕군자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예술과 양심은 별개의 차원일 수 없다는 논리로 앞의 주장을 반박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그가 작품에서 구사한 언어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과격하여 예술가에게 허용된 언어구사의 한계를 넘었다는 일부평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러한 언어구사는 허구세계를 다루는 작가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이러한 Böll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은 그의 카토릭 교회의 비판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첨예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평자들과 독자들은 그의 비판을 反교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쪽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고 중립적 입장은 극히 드물다. 이 같은 평가의 양극현상은 같은 비평가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점에서, 그리고 기본노선을 같이 해야 할 카토릭系 신문잡지들 또한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연구자는 이처럼 Böll작품의 평가를 둘러싸고 야기된 쟁점중에서도 그 정도가 가장 심하고 그 파장 또한 가장 큰 그의 카토릭 교회의 비판에 대한 여러상이한 평가들을 비교 분석한 후 나름대로의 평가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Ⅱ. Böll의 카토릭 교회 비판에 대한 평가들
Joachim Günther가 ꡔAnsichten eines Clownsꡕ의 출판을 계기로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다른 비평들을 소개한 글에서, “Böll이 언젠가 문학사에서 다루어 질땐,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고 심각한 한 章이 될 것이다”1)라고 하고 Albrecht Beckel이 “Böll에 대해선 비평이 결코 한 목소리가 아니다”2)라고 지적한데서 단적으로 드러나 있듯이, Böll의 카토릭 교회 비판에 대한 평가는 심한 양극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카토릭 교회와 그 신도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ꡔAnsichten eines Clownsꡕ를 두고서 “증오로 가득찬 反카토릭 선전책자”3)라는 주장과 “현대문학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4)라는 극도로 相反된 평가가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양극현상은 “같은 비평가에 의해 내려진 종래의 평가와 그 뒤의 평가가 서로 모순되고 일치되지 않아”5)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체로 Böll의 문학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Marcel Reich-Ranicki가 Böll의 사후엔 “그는 신앙심 깊은 카토릭 신도였다. 바로 그 때문에 카토릭 교회와 일생동안 다투었다. 그는 결국 그 교회로부터 탈퇴했으나,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 교회로부터 결코 이탈하지는 않았다”6)고 한 것은 바로 그런 보기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Böll의 교회비판에 대한 양극현상 내지 다양성은 ꡔDie Zeitꡕ紙가 ꡔAnsichten eines Clownsꡕ의 출판을 계기로 여러 상이한 평가와 의견을 편집 보도한 것에 잘 나타나 있다. ꡔDie Zeitꡕ紙는 8명의 저명한 비평가의 글과 다른 잡지들에 실린 글들을 발췌 수록하고 많은 독자들의 의견도 함께 소개한 후 “우리들은 독자들에게 이것으로 각자가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 이제는 이 소설을 읽는 것만이 도움이 될 것이다”7)라고 최종적인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러한 ꡔDie Zeitꡕ紙의 보도에 대하여 Bernd Balzer가 “그것은 칭찬할 만한 객관적인 처리인 한편 또한 일종의 속수무책의 표현”8)이라고 했듯이 Böll의 카토릭 교회의 비판에 대한 평가는 극히 다양하고 양극현상으로 특징지어진다.9)
이런 현상에 대하여 당사자인 Böll 자신은 “나의 작품들 중에서 ‘Ansichten eines Clowns’만큼 오해받고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사랑의 이야기일 뿐이다.”10)라고 했는데, 이 작품을 둘러싼 쟁점이 Schnier에 의한 카토릭 교회와 그 신도들에 대한 비판에서 연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단지 사랑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이 같은 주장은 우리를 매우 당혹하게 만든다.
Böll의 카토릭 교회 비판에 대하여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부정적인 평가중의 하나는 그의 비판이 카토릭 교회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외면한 체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Marcel Reich-Ranicki는 “Schnier는 카토릭 敎界에 대하여 그 전의 주인공들보다 양적으로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는 오로지 증상들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11)라고 하였고 Friedhelm Baukloh는 더욱 구체적으로 “Böll의 작품은 카토릭 교회의 부차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시비로 본질적인 것이 가리워질 위험에 처해 있다.”12)고 하였다.
그의 비판이 본질에서 벗어나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문제삼고 있다는 주장은 Böll이 신앙인임을 고백하고 있으면서도 그 신앙의 핵심인 하느님과 같은, 이를테면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Böll의 작품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는 기이하게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하느님을 안믿는 카토릭 신도인가?”13)라고 한 Klaus Harpprecht의 빈정거리는 듯한 어투는 그런 사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Böll이 비록 카토릭에 관한 문제를 그의 작픔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해도 그의 관심사는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에 있지 않고 현실에, 즉 이웃사랑의 구현에 바탕두고 있다는 논리로 Böll을 옹호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Böll 자신도 Ekkehart Rudolph와의 인터뷰에서 “소재로서의 카토릭은 나의 지리적인 출생지에서 비롯했다.(…) 이 지역은 이를테면 카토릭 풍경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실을 단지 물질적 의미에서 보고 있을 뿐이다.”14)고 하고 또 다른 글에서는 “나에겐 독일 카토릭은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로 하는 소재 즉, 한 줌의 흙일뿐이다”15)라고 했다. 카토릭은 그에겐 단지 작품을 쓰기 위한 소재일 뿐이라는 이 말은 소재라는 글자가 지니고 있는 광범위한 의미를 생각하면 카토릭에 관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으나 그의 다른 글들,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작중인물들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그가 다루고 있는 카토릭은 신학적 차원이 아니고 현실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Marcel Reich-Ranicki도 “Böll은 카토릭 신자이고 카토릭 신자들이 대부분 그의 작품의 중심점에 위치하고 있고 카토릭 교회의 전례들이 그의 많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카토릭 그 자체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나 토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작품들의 토대로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모세서 3권에 나오는 이 한마디 말로 충분할 것이다”16)고 하여 Böll이 비록 카토릭과 관련된 것들을 그의 작품에서 많이 다루고 있어도 그의 관심사는 결코 신학적 차원이 아니고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Böll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녀들의 종교교사가 아주 분명한 어조로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그리고 성경에 쓰인대로 무엇무엇 하지 말라고 말하듯 하는 것을 기독교 문학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17)고 하여 그가 작품에서 카토릭을 다루고 있어도 결코 신학적 차원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은 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가 비록 소재로서 카토릭을 그의 작품에서 많이 다루고 있어도 프랑스의 카토릭 작가 Bernanos의 인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 인간 영혼속에 내재하고 있는 선(Gott)과 악(Satan)의 투쟁이라던가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인 죄와 구원, 부활과 영원한 생명과 같은 문제는 작가로서의 그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René Wintzen과의 인터뷰에서 Böll이 “성사를 기계적으로 해버리는 것으로서 영혼이 구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성사가 구체적인 것 이를테면 빵, 포도주, 사랑, 형제애 등과 같은 감각적인 체험과 연결되었을 때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18)고 한데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그의 관심사는 교리신학적인 차원이 아니고 이른바 〉성사의 감각화 Versinnlichung des Sakramentes〈말하자면 복음정신의 구체적인 실천에 있다. 그래서 그의 작중인물들은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형이상학적인 신학에 관한 이론적인 토론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예컨대 Schnier에겐 길고도 거창한 토론의 주제는 그 명칭이 뜻하는 것과는 달리 내용은 공허할 것이 뻔함으로 지루하고 괴로울 뿐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사회속에서의 가난〈 이라는 〉그날 저녁의 주제〈로 넘어갔다. 그것은 내 일생중 가장 괴로운 저녁이었다. 나는 종교적인 대화가 그렇게 긴장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und dann erst ging man zum 〉Thema des Abends〈 über 〉Armut in der Gesellschaft, in der wir leben〈. Es wurde einer der peinlichsten Abende meines Lebens. Ich kann einfach nicht glauben, daß religiöse Gespräche so anstrengend sein müssen.19)
그러므로 Böll의 작품엔 말이나 이론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복음정신을 구현하는 많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고 이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인물들이다. 형식적으로는 손색없는 신앙인인 Franke부인과는 대조적으로 참신앙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ꡔUnd sagte kein einziges Wortꡕ의 Käte Bogner, 러시아인 포로에게 자비심으로 커피를 대접하는 ꡔGruppenbild mit Dameꡕ의 Leni의 경우가 전형적인 보기일 것이다. Böll은 Leni의 헌신적인 행위가 어떻게 성사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를 세밀히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성사의 감각화〈의 구체적 보기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씻고 있는 모습은 벌써 하나의 도전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그것이 성배(聖盃)인양 그렇게 씻고 있었다.(…) 그러고서는 커피주전자 있는데로 가서 그 속에 남아있던 커피를 다시 잔에 따랐다.(…) 그녀는 그 러시아 사람에게로 침착하게 가지고 가서 〉자 드세요〈라고 말했다.
Es war schon provozierend, wie sorgfältig sie das tat,(…) aber sie spülte sie, als wärs ein heiliger Kelch(…) ging zu ihrer Kaffeekanne,(…) bringt sie seelenruhig dem Russen,(…) 〉Bitte sehr.〈20)
Enid Macpherson이 “Böll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소박한 기독교 정신에 바탕 둔 사회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사랑, 온유함, 동정심과 자비, 경애와 상호존중과 같은 기본원칙의 토대위에 구축되어 있다.”21)고 한 것도 Böll의 관심사는 신학적 차원이 아니고 기독교의 기본적인 덕목의 실천을 통한 인간성 회복, 이를테면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Böll 옹호자들은 한마디로 “Böll작품의 중심사상은 산상수훈”22)이지 교리문답서가 아니라는 논리로 Böll의 교회비판이 본질을 도외시한 지엽적인 것이라는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또 다른 Böll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교회에 대한 그의 비판이 원한과 증오의 발로라는 것이다. 예컨대 Heinz Beckmann은 ꡔAnsichten eines Clownsꡕ를 두고서 “이 작품에서의 제일 큰 관심사는 대부분 카토릭 신도들에 대한 피상적인 원한의 수집”23)이라고 하여 Böll의 교회비판을 교회와 그 신도들에 대한 원한의 표출로 받아 들였고, Helmut Braem역시 “지엽적이고 근시안적인 입장에서 가한 측면공격”24)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카토릭 교도들을 두고서 “구역질난다.”25)고 하고 더 나아가서 “성직의 대표자들이 창녀부족을 한탄한다해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26) Schnier의 말이나 ꡔFürsorgliche Belagerungꡕ에서 Zelger가 어떤 신부를 두고서 “비열한 돼지”27)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Paul K. Kurz는 같은 대상을 두고서 “진정한 종교는 아무데서도 공격받지 않았으며 단지 그 종교의 이즈러진 모습과 교회대표자들이 세속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성향과 야합하는 것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있다.”28)고 하여 위의 부정적인 평가들과는 극히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Böll 자신도 1976년 René Wintzen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들이 자신에게 사유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어떻게 사상가가 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사상가이어야 할 신학자도 물론 그러하다”29)고 하여 신학자는 물론, 사상가의 범주에 들 예술가에게 사유의 제한을 가할 수 없다며 그의 全方向으로 향하고, 때로는 과격한 비판을 합리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포하고 있는 Böll의 교회비판에 대한 평가를 내릴려면 Böll이 심하게 비판한 “소설에서의 현실들은 Schnier의 견해라는 필터에 의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30)는 사실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Böll의 교회비판을 무조건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로 부정적인 시각일변도에서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Schnier의 비판을 필터없이 字句대로 받아들인 성급하고 단순한 판단일 수 있음으로 일정한 침전과정을 거쳐 그의 비판의 참뜻을 가려내어야 할 것이다.
Ⅲ. 회의와 갈등
Böll은 ꡔKunst und Religionꡕ(1959)이라는 글에서 “예술의 신비가 해명되지 않는 한 기독교 신앙인에겐 단 한가지 기구만이 남는다. 그것은 바로 양심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양심과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두 양심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인이고 동시에 예술가인, 그러면서도 맹목적인 신앙인이 아닌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그런 갈등이 생기게 된다.”31)고 하여 기독교 신앙인이며 동시에 예술가인 그런 관계속에서 겪게 되는 자신의 갈등을 고백한 바 있다. H. E. Holthusen은 이러한 갈등을 “신앙에서는 성인이며 예술가로서의 자기의무에 얽매인 천재 사이의 긴장관계”32)로 풀이하여 그같은 갈등은 예술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고, Heinrich Moling은 “신앙인이며 또한 예술가인 자는 두가지 양심의 옛부터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33)고 하여 이러한 갈등의 보편성과 역사성을 지적하였다. 숙명적인 신앙인이며 동시에 예술가인 Böll에게도 이러한 갈등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의 주인공들은 거의 다가 근본적으로 운명적이고 또한 예정된 신도들”34)인데도 Fred Bogner처럼 교회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서성대기도 하고35) Ernst Grobsch처럼 교회에는 늘 나가면서도 신부쳐다보는 일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오늘날에도 교회에 나가지, 비록 신부를 쳐다보는 일이 견디기 힘들긴 해도.
und ich gehe noch heute in die Kirche, auch wenn ich den Anblick eines Pfaffen nur schwer ertragen kann.36)
이러한 신앙인과 예술가사이의 옛부터의 긴장관계는 신앙인인 예술가가 처해 있는 시대상황, Heinrich Moling의 말을 빌리면 “기독교적 현실 christlicher Wirklichkeit”37)에서 연유하고 있다.
Böll이 처한 “기독교적 현실”중의 하나는 그가 “금방 영세받은 Kongo의 흑인이 서양이라는 어휘에서 제일 처음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혹은 중국인 그리스도교 신도가 Ausschwitz라는 최대의 묘지를 갖고 있는 〉기독교인의 유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궁금한 일이다. 나는 8억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이 세계의 모습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38)고 한데서 명백히 나타나 있듯이, 이웃사랑을 표방하고 있는 기독교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만행이 아무런 제지없이 저질러진 사실이다. 구체적으로는 Vatikan당국이 Hitler정권의 만행을 저지하기는커녕 이들과 최초로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서 이 범죄집단과도 같은 정권을 누구보다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만행을 방조하기조차 한 것이다.
ꡔBillard um halb zehnꡕ에서 Schrella가 Robert에게 “너희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왜 그가 행한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가?”39)라고 항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에서 그런 만행이 아무런 제지없이 저질러진 사실에 대한 Böll 자신의 의문이자 회의이고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기본덕목인 이웃사랑이 실천되었더라면 그와 같은 엄청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그의 안타까운 심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방송극 ꡔDie Spurlosenꡕ에서 Brühl신부가 범법자들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듣지도 않고 아무것도 보지도 않은 것처럼 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카토릭 교회당국이 범죄집단의 만행을 묵인방조하는 바로 그 모습의 재현이다.
나는 마치 나의 귀가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나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하도록 애쓸 것이요.
Ich werde versuchen so zu sein, als ob meine Ohren nichts gehört und meine Augen nichts gesehen hätten.40)
Böll은 카토릭 교회가 범죄집단에 의해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사실은 외면한 체 절박했던 그 시대 상황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지엽말단적이거나 Böll의 입장에서 보면 한낮 사치한 미학적 취미에 젖어 있은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가 ꡔBrief an einen jungen Katholikenꡕ이라는 글에서 한 신부에 의해 주관된 피정모임에서 “Hitler와 反유태주의, 그리고 명령과 양심사이의 갈등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41)고 하고 뒤이어 “U신부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대표되고 있다고 보여지는 독일 카토릭 교도들은 수십년 이래로 예배의식의 완성과 취미의 고양이외엔 어떤 다른 걱정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42)고 한데서 그러한 그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Schnier가 포도주를 둘러싼 카토릭 신도들의 도락적 취미에 대하여 不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작가의 분노와 항의를 대변하고 있다.
카토릭 신도들의 미리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소름이 끼칠 일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세세한 설명없이 그냥 무턱대고 좋은 포도주를 마시지 못한다. 그들은 그 포도주가 얼마나 좋은 것이며 또 왜 좋은가를 어쨌든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Es ist grauenhaft, was in den Köpfen von Katholiken vor sich geht. Sie können nicht einmal guten Wein trinken, ohne dabei irgendwelche Verrenkungen vorzunehmen, sie müssen sich um jeden Preis, 〉bewußt〈 werden, wie gut der Wein ist, und warum.43)
Böll은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교회 당국자들의 미학적인 취미의 고양을 고발한데 이어 교회 당국이 그 시대상황으로 보아 결코 절박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는 성모랄의 해석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는, 본말이 전도된 처사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다. Böll의 입장에서 보면 카토릭 교회가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사실은 접어두고, 도덕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다, 도덕하면 곧 성모랄과 연관시키고 그것은 곧 금기로 인식되어 온 카토릭 교회의 오래된 관행을 그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성적인 위험이란 더 근본적인 문제점들과 비교하면 아주 하찮은 것”44)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술한 ꡔBrief an einen jungen Katholikenꡕ의 서두에서 “(카토릭에서는) 도덕은 늘 성도덕과 동일시 되어왔다.(…) 이 같은 도덕에 대한 일방적 해석때문에 전 유럽의 카토릭이 줄잡아 100년 넘게 고통당하고 있다.”45)고 하여 카토릭 교회의 성도덕에 대한 과민하고 편협한 해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교회에서 죄악시하는 소위 “육체적 욕망, das fleischliche Verlangen”에 대하여 “이른바 육체적 사랑과 또 다른 사랑으로 사랑을 구분짓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고 허용될 수도 없는 일이다. 결코 순수한 육체적인 사랑도 없고 순수한 비육체적인 사랑도 없다. 이 두가지 사랑은 어느 한쪽이 다른쪽보다 적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제나 섞여 있는 것이다.”46)라고 하여 육체적 사랑이란 개념자체를 거부하였다. 물론 이것은 카토릭 교회가 Hitler의 만행은 못본척하면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인 성도덕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린 처사에 대한 그의 항의이다. 少女들에게 동정녀 Maria를 우상화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Schnier의 다음과 같은 말은 Böll의 의도를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나는 수녀원에 갈려고 않는 소녀에게 동정녀 Maria를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을 치명적 오류하고 생각한다.
Ich halte es nur für einen verhängnisvollen Irrtum, einem jungen Mädchen, das nicht ins Kloster gehen will, die Jungfrau Maria als Vorbild anzubieten.47)
Böll은 신학생들에게 소위 육체적 욕망을 저지시키기 위해 어떤 식단이 효과적일까를 두고 수녀와 식당지배인이 협의하는 거북한 장면에 대한 Schnier의 서술을 통하여 성적인 문제에만 과민하게 집착하는 교회의 처사를 희화화하고 있다.
그들은 확실히 그 곳에서 밤낮 〉육체적 욕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어떤 수녀가 부엌에 앉아 식단표를 올려 놓고 지배인과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둘은 마주 앉아 비록 그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하지만 식단표에 적힌 모든 음식을 두고 저것은 욕정을 저지하고 또 다른 것은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그런 장면이 오히려 명백한 외설인 것이다.
Offenbar denken sie dort Tag und Nacht nur an das 〉fleischliche Verlangen〈, und irgendwo in der Küche sitzt sicherlich eine Nonne, die den Speisezettel aufsetzt, dann mit dem Direktor darüber spricht, und beide sitzen sich dann gegenüber und sprechen nicht darüber, aber denken bei jeder Speise, die auf dem Zettel steht: das hemmt, das fördert die Sinnlichkeit. Mir erscheint eine solche Szene als ein klarer Fall von Obszönität.48)
그에게 처해진 또 하나의 다른 “기독교적 현실”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복음정신이 도대체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하는 회의이다. 경쟁을 전제로 한 시장경제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가치질서와 이웃사랑을 표방하는 기독교정신은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Böll은 1978년 Paris에서 가진 공개토론 석상에서 “당신이 카토릭 신자이고 사회주의자일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지 않고 반대로 카토릭 신자이며 자본주의자일 수 있느냐?라고도 질문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일보 전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49)고 하였는데 이 말은 자본주의 사회질서와 복음정신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그의 깊은 회의와 부정적인 생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ꡔFrauen vor Flußlandschaftꡕ의 Katharina의 다음과 같은 말은 복음정신과 양립하기엔 너무나 추악한 자본주의 사회질서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 다녔을 때와 은행에서 일했을 때 나는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며 어디로부터 되돌아 오는가, 세곱, 열곱, 백곱이 되어서: 그것은 석유, 무기, 양탄자와 아가씨들이지요. 그 아가씨들은 끊임없이 구역질하지 않기 위해 취하거나 마약을 먹지 않을 수 없고 또 구역질하지 않으려고 취했기 때문에 다시 구역질하게 되지요.
Und doch-beim Studium habe ich so manches erfahren, auch, als ich in der Bank arbeitete-wo das Geld so hingeht und von wo es zurückkommt, verdreifacht, verzehnfacht, verhundertfacht: Öl, Waffen, Teppiche und Mädchen, die sich besaufen oder betäuben müssen um nicht ständig zu kotzen, und die dann kotzen, weil sie sich besoffen haben, um nicht zu kotzen…50)
이처럼 경쟁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질서는 곧 경쟁상대자인 이웃을 적대시 하는 것이니 이웃사랑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정신과는 근본부터 공존할 수 없음으로 자본주의 질서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교회는 Böll의 입장에선 도대체 납득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질서가 이웃을 적으로 보는 경쟁원리를 포기하면 존립자체가 불가능하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웃사랑을 포기한 교회란 더 이상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신앙인이자 예술가인 Böll의 갈등 즉 그가 처한 또 다른 하나의 〉기독교적 현실〈인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기독교적 현실〈을 막시즘을 원용하여 극복해 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51) 그는 Hans. J. Schultz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종교적인 개념의 인간화와 막스적인 개념의 인간화를 결합시켜야 한다. 나는 이 두 개념이 양자택일될 성질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과 형제애란 궁극에 가서는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와 같은 인간화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사회주의 사회속에서 말하고 있는 〉계급없는 사회〈란 〉형제애〈라는 말과 같은 것이어야 함에도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52)고 하여 기독교의 〉형제애〈 즉 이웃사랑을 막시즘의 〉계급없는 사회〈속에서 구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고 또 기대하였다.
그러나 신앙고백을 했을 뿐아니라 자신은 결코 막스주의자가 아님을 거듭천명한 그로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여 근본적으로 기독교 그 자체를 인정않는 막시즘의 수용에는 한계가 있었음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는 이처럼 막시즘의 원용에 의한 이웃사랑의 구현을 희구하는 한편, 교회가 자본주의 사회질서속으로 끌려들어오는 현상, 이른바 교회의 세속화를 예의주시하고 경고하였다. 그에 의하면 유독 독일에만 존재하는 교회세가 이 같은 세속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예컨대 그는 René Wintze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 같은 교회세제도를 아무런 제한없이 글자그대로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있고 포주로 비교하겠다. 나는 이 같은 비유를 철회하지 않겠다. 신앙적인 문제를 법제화하고 국고화하고 물질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고전적 유물론이다. (…) 교회는 오로지 물질적으로만 생각할 줄 알고 정신적으로는 생각할 줄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53)라고 하여 교회세라는 제도로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극단적인 표현과 비유로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법에 의하여 모든 신도들에게 소득에 준하여 일정액을 부과하고 강제징수(원천징수)하는 것은 신앙이란 정신적인 차원과는 너무나 걸맞지 않다는 그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이처럼 정신적인 차원을 법제화함에 따라 교회는 당연히 세속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사무화(Bürokratisierung)될 수밖에 없고 그 업무에 종사하는 성직자들도 따라서 세속적인 여타 직업인들과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Schnier의 눈에 비친 고위성직자 Sommerwild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Sommerwild를 보면 요양소 관리자나 콘서트의 악장, 구두공장의 섭외부장, 세련된 유행가가수 또는 잘 팔리는 유행잡지의 편집장일 수도 있으리라는 인상을 나는 늘 갖고 있다.
Bei Sommerwild habe ich immer den Eindruck, daß er genausogut Kur-oder Konzertdirektor, Public-relations-Manager einer Schuhfabrik, ein gepflegter Schlagersänger, vielleicht auch Redakteuer einer 〉gescheit〈 gemachten, modischen Zeitschrift sein könnte.54)
그러나 Böll은 이처럼 카토릭 교회와 그 신도들을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의 답에서 “그리스도가 없는 이 세계의 모습은 더욱 무시무시하다. 그리스도가 없는 역사의 밋밋한 로울러가 이 세상위를 굴러가 버렸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였겠는가? Baal, Mammon 등과 같은 온갖 잡신들의 지배를 받는 그런 세계가 되지 않았겠는가?”55)라고 하여 교회에 대한 그의 깊은 속마음으로부터의 애정을 표시하였고 Marcel Reich-Ranicki와의 인터뷰에서도 “어떤자가 아무리 악의에 찬 비방을 한다해도 우리들은 공산주의와 카토릭을 떨쳐 버릴 수 없다”56)고 하여 이처럼 카토릭 교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고 교회의 기본정신이 자본주의 시장원리와 일치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교회와 결별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갈등은 많은 그의 작중인물들을 통해 구체화되어 있다. 예컨대 ꡔBillard um halb zehnꡕ의 호텔수위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공산주의와 카토릭은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한 Böll 자신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 너도 한때는 공산주의자였던 일이 있었겠지. 그렇다면 갑절로 조심하게. 나역시 한때는 공산주의자이기도 했고 카토릭 신자이기도 했지. 이런 일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네.
Vielleicht bist du auch mal Kommunist gewesen, dann sei doppelt vorsichtig. Ich bin’s auch mal gewesen, und katholisch war ich auch. Das geht nicht raus aus der Wäsche.57)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에 갈 필요성이 없음을 느끼는 자신을 두고서 미쳤다고 생각하는 ꡔFrauen vor Flußlandschaftꡕ의 Ernst Grobsch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러한 갈등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또한 이 작품이 Böll의 遺作임을 상기하면 이러한 갈등이 그의 필생동안 지속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미쳤어. 가장 미친 짓은 내가 이따금씩 교회에 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바로 지금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이네.
Ich bin verrückt-und das Verrückteste ist, daß ich jetzt, wo ich manchmal das Bedürfnis habe, in die Kirche zu gehen, nicht mehr gehen werde.58)
Daniel Stern이 ꡔAnsichten eines Clownsꡕ를 두고서 “기독교 사회가 서구에서 나찌의 등장을 막지 못했고 또 시장경제 가치 이외엔 아무것도 숭배받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회속에서 기독교가 번창하고 있고 형편에 정직한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도임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59)라고 평한것처럼 과격한 표현으로 카토릭 교회와 신도들을 공격하여 큰 물의를 일으킨 Schnier는 기독교국들로 구성된 유럽에서 나찌의 만행이 묵인 방조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와 복음주의가 일치하기 어려움에도 간단히 카토릭 교회와 결별할 수 없는 작가 자신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Böll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의사에게 가서 심장과 소화기능 및 순환기관 등의 이상유무를 확인받고 의사가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판정하면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안심하고 만족해서 돌아가듯이, 기독교 신자들도 기독교 신자가 쓴 작품으로부터 전통적으로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확인, 이를테면 그들의 행복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확증을 기대하고 있다.”60)며 이러한 갈등은 쉽게 극복될 수 없고 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도들은 그들의 신앙도 그들의 의사로부터 확인받은 그들의 건강상태처럼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고 믿고 있고 따라서 그들의 신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신앙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극력 회피해 왔다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그는 “기독교 신앙인인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는 수많은 재능들을 다 갖추고 있는 연인처럼 비이자 햇빛이며 장미이자 다이나마이트며 무기이자 형제이고, 그 작가가 구사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엔 〉의사가 말하지 않고 감추어 버린〈,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죽음이 깃들어 있다.”61)고 하여 의사가 비록 자기에게 건강을 확인하려고 하는 환자에게 죽음을 감춘다 해도 결코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교의 문제점 역시 없는 것처럼 침묵하고 덮어둔다고 해서 그 문제점들이 결코 없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이처럼 그는 문제점들을 없는 듯 덮어둘 수 없고 끊임없이 들추어내야 할 입장이므로 ꡔLe Mondeꡕ紙의 Jean-Louis Rambures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카토릭 작가라는 칭호를 거부해 왔다.”62) 주치의들이 그들의 환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정기적으로 확인을 해 주듯, 카토릭 신앙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싶어하고 그들의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그로서는 당연히 그러한 칭호를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Heinrich Moling이 “Böll이 ‘Brief an einen jungen Kartholiken’과 ‘Ansichten eines Clowns’를 발표한 뒤로는 그의 카토릭에 대한 태도가 불명료한 것 이상으로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63)고 지적한 바대로 이러한 갈등은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Schnier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작가 자신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토릭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덮어두지 않고 이러한 갈등의 극복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는 점에서도 작가 자신의 대리역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Albrecht Beckel이 “‘Ansichten eines Clowns’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인물들은 실천하는 신앙인들이며 교회로 특징지어지고 세례받은 자들의 단체에 소속하고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는 결코 의문시하지 않는다.”64)고 한 것처럼 과격한 비판을 가한 Schnier조차도 신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 또한 격렬히 교회를 비판했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교회를 저버릴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태도와 일치하고 있다. Marie와 더불어 미사에 참석한 후 성당의 분위기를 기록한 다음의 구절은 Schnier가 카토릭 신앙 그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적대적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여러번 마리와 함께 성당에 갔다. 그곳은 아주 따뜻했고 나는 늘 스팀장치 위에 앉았다. 성당안은 아주 조용했고 바깥거리의 소음도 끝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성당은 쾌적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겨우 7~8명만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무기력속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어떤 일로부터 살아 남은 자의 이 조용하고 서글픈 모임에 속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Manchmal ging ich auch mit Marie in die Kirche. Es war so schön warm dort, ich setze mich immer über den Heizungskanal; es war auch vollkommen still, der Straßenlärm draußen schien unendlich weit weg zu sein, und die Kirche war auf eine wohltuende Weise leer: nur sieben oder acht Menschen, und ich hatte einige Male das Gefühl, dazuzugehören zu dieser stillen, traurigen Versammlung von Hinterbliebenen einer Sache, die in ihrer Ohnmacht großartig wirkte.65)
Albrecht Beckel이 이어서 “Schnier는 카토릭 교회에 관해서는 동경과 거부 사이에서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66)고 하여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을 모순된 태도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된 태도란 비록 교회가 많은 문제점과 비판받을 소지를 지니고 있다해도 숙명적인 신앙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정과 기대때문에 교회를 간단히 저버릴 수 없는 작가 자신의 갈등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Ⅳ. 결 론
Böll은 생존시에 노벨 문학상을 위시하여 여러 비중있는 상들을 수상했고, 서독 및 국제 Pen-Club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매우 영향력 있고 저명한 작가였는데도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호오찬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실정이다.
Böll문학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비평가들의 주장은 그의 문학이 도덕과 양심의 지나친 부각으로 예술성이 손상되었고 그의 비판이 너무 무차별적이고, 그가 구사한 언어 또한 예술가가 지켜야 할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평가들은 “인간의 인간화”를 예술의 지상과제로 표방하고 있는 Böll의 입장에선, 예술과 도덕이 별개의 차원일 수 없고 과격한 표현은 예술가의 특권이랄 수 있는 일종의 과장기법으로 字句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평가의 다양성 내지 양극성은 그의 카토릭 교회의 비판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교회 관계자들과 일부 평자들은 교회에 대한 비판이 본질에서 크게 이탈한 사소하고 지엽말단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교회와 신도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Böll은 反카토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에 대하여 Böll지지자들은 Böll의 관심사는 교리 신학적인 차원이 아니고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에 있다는 논리로 그의 비판이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더 나아가 그는 결코 反카토릭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작품들을 “사목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Böll의 교회에 대한 비판을 단순히 이처럼 호오찬반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작가적 양심과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사이의 갈등과 양립감정의 표출로 보아야 할 것이다. 2천년동안 기독교 문화가 지배해 온 서구에서 Hitler정권에 의해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이 저질러졌음에도 이웃사랑을 표방해 온 카토릭 교회는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이들과 외교관계를 남먼저 수립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위를 방조한 것이 그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가 쉽게 극복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갈등은 경쟁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질서와 이웃사랑을 표방하는 복음정신이 도대체 공존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경쟁원리를 배제한 자본주의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이웃사랑을 포기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토릭 교회가 이처럼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고 소유의 진리와 복음의 진리가 결코 양립할 수 없음에도 숙명적인 신앙인인 그로서는 그렇다고 간단히 교회를 저버릴 수 없었음이 그의 갈등의 근본배경이다.
그의 카토릭 교회에 대한 비판은 따라서 비판을 통한 이러한 갈등의 극복을 위한 시도이고 그리스도화 된 사회에서 “인간의 인간화”를 이룩해 보려는 그의 염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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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Heinrich Bölls Kritik der katholischen Kirche
- Ist Böll anti-katholisch?
Hoh, Min-Ho
Die Rezeption der Werke Heinrich Bölls, der als Literatur-Nobelpreisträger und Vorsitzender des Pen-Clubs der BRD und später des internationalen Pen-Clubs zu den einflußreichsten deutschen Nachkriegsautoren gehört, schwankt zwischen den Extremen der euphorischen Zustimmung und der totalen Ablehnung.
Die Gegner lehnen in den Werken Bölls vor allem die Überbetonung der Moral und des Gewissens ab. Auch wird seiner Literatur eine zu pauschale, ungerichtete Kritik, sei es beispielsweise an der Leistungsgesellschaft im allgemeinen oder an der Kirche, und auch seine grobe Sprache, die im Ausdruck zu wenig künstlerisch gestaltet sei, vorgeworfen.
Die Anhänger Bölls hingegen verteidigen die teils schonungslose und übertrieben brutal wirkende Sprache als ein Vorrecht des Künstlers, die man als eine Technik des Schriftstellers akzeptieren und etwaige Übertreibungen nicht allzu wortwörtlich nehmen sollte. Weitaus wichtiger sei das dahinter liegende Anliegen Bölls, nämlich “die Menschwerdung des Menschen” als höchste Aufgabe der Kunst. Böll meinte dazu: “Kunst und Moral können nicht verschiedene Sache sein.”
Die gegensätzliche Beurteilung der Werke Bölls tritt bei seiner Kritik an der katholischen Kirche besonders klar zutage. Die Würdenträger der katholischen Kirche und einige Kritiker werfen Böll vor, daß seine Kritik an der Kirche zu punktuell und kleinlich sei, wodurch sie sich vom Wesentlichen und den umfassenderen theologischen Problemen entferne. Bölls Kritik sei lediglich ein Ausdruck des Hasses und des Ärgers gegen die Kirche und die Gläubigen. Mit einem Wort, Böll sei anti-katholisch.
Die Anhänger Bölls hingegen betonen, daß das Hauptinteresse Bölls nicht theologische Fragen, sondern vielmehr die Verwirklichung und tatsächliche Praktisierung der Nächstenliebe seien. In diesem Sinne ist er nicht anti-katholisch, seine Werke könnten sogar als pastorale Texte gelesen werden.
In der Kritik an der Kirche zeigt sich der tiefe Konflikt und die Ambivalenz zwischen dem Künstler und dem Gläubigen Böll. Dies ist der Ausdruck für die Unvereinbarkeit, daß gerade in Westeuropa, einem jahrtausend alten vom Christentum geprägten Kulturraum, Greuel wie Ausschwitz stattfinden konnten und von der Kirche nicht verhindert wurden. Ein weiterer Konflikt entsteht durch die Inkompatibilität der kapitalistischen Gesellschaftsordnung, deren Wesen die Konkurrenz und das Besitztum ist, und der Wahrheit des Evangeliums mit seinem Ideal der Nächstenliebe. Der Schriftsteller Böll kann als schicksalhafter Gläubiger nicht auf die unterstützende Rolle der Kirche bei “der Menschwerdung des Menschen” verzichten. So ist seine Kritik an der Kirche lediglich der Versuch, die grundlegenden Konflikte zu überwinden, und zugleich der Ausdruck seiner Hoffnung, daß sich “die Menschwerdung des Menschen” und das Wesen des Christentums, nämlich die Nächstenliebe, sich am Ende angleichen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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