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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始習熟한 愛欲恚癡가
무시습숙 애욕에치
纏綿意地하야 暫伏還起호니 如隔日瘧하나니
전면의지 잠복환기 여격일학
一切時中에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하야
일체시중 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
痛自遮護언정 豈可閑謾으로 遊談無根하야
통자차호 기가한만 유담무근
虛喪天日하고 欲冀心宗而救出路哉리오.
허상천일 욕기심종이구출로재
但堅志節하야 責躬匪懈하며 知非遷善하야
단견지절 책궁비해 지비천선
改悔調柔어다.
개회조유
勤修而觀力이 轉深하고 鍊磨而行門이 益淨하리라.
근수이관력 전심 연마이행문 익정
長起難遭之想하면 道業이 恒新하고
장기난조지상 도업 항신
常懷慶幸之心하면 終不退轉하리라.
상회경행지심 종불퇴전
如是久久하면 自然定慧圓明하야 見自心性하며
여시구구 자연정혜원명 견자심성
用如幻悲智하야 還度衆生하야
용여환비지 환도중생
作人天大福田하리니 切須勉之어다.
작인천대복전 절수면지
반갑습니다.
2월 8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계초심학인문' 어제에 이어서 오늘은 무시습숙無始習熟한 애욕에치愛欲恚癡가 전면의지纏綿意地하야 라고 하는 것부터 할 차례입니다.
여기서부터 이하는 정진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출가 수행을 결심한 사람은 출가한 그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저 정진, 정진, 정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 공부를 위한 정진도 물론 열심히 하지마는 또 공부가 어느 정도 되며는그 다음에 공부한 것만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소중하고 값진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그런 전법의 일에 열심히 정진하는 것, 이것은 자기 공부를 위한 정진보다 어쩌면 더 값지고 소중하고 더 필요한 정진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오래 했다 하더라도 완전하게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것이고요, 남을 가르치면서 남의 앞에 서서 그 동안 공부한 것을 전하는 그런 과정에서 자기 공부가 훨씬 더 되거든요.
그러니까 승속을 막론하고 불교 공부를 어느 정도 했다고 하며는 그게 어느 정도라고 하는 그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 말이라도 좋습니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자기가 납득하고 또 거기에 자기 확신을 갖고 확신이 섰다며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 이게 꼭 필요하죠.
부처님의 이 가르침 참으로 소중하고 참으로 값진 것이라며는 이 값진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자꾸 많이 나눠야 되겠지요. 나눈다고 이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나누다 보면 더욱 자기 공부가 불어나요.
다른 물질은 나누면 나눠줘버린만치 줄어들지만 부처님 공부라고 하는 거, 진리에 대한 공부는 공부하다 보며는 아무리 나눠줘도 공부한 것이 자꾸 불어납니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 좋은 일이죠. 여기서는 정진을 독려하는 그런 내용인데
무시습숙無始習熟한 애욕에치愛欲恚癡가 전면의지纏綿意地라
무시라고 하는 것은 무한히 오랜 세월 이전부터, 익히고 익힌 애욕에치愛欲恚癡, 애착과 욕망과 어리석음, 이런 모든 것들, 탐진치 삼독이죠.
삼독을 위시해서 백팔번뇌, 팔만사천 번뇌에 이르기까지, 그런 여러가지 참 우리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마음이 작다 보니까 조그마한 것을 가지고 애착하고, 거기에 어떤 욕심을 품고, 그러한 씀씀이, 그런 마음 씀씀이가 또 어리석음이고 그렇죠.
그거 이제 턱 놓아 버리고 대수롭지 않게, 대범하게, 이렇게 생각할 줄 알며는 그게 정말 지혜로운 삶이고 그럴텐데. 그런 우리가 작은 것에 애착하고 욕심을 내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한 그런 것들이 의지에 얽혀 있다 이거요.
마음 땅에 얽혀 있다, 의식의 땅 속에 얽혀 있다. 이것이 교리적으로 이야기 하며는 우리가 안 이 비 설 신 의, 전 오식을 통해서 받아들이죠. 다시 말해서 오근을 통해서 받아들여서, 제 육 의식, 의식에서 그것을 모아가지고 칠식을 거쳐서 저 팔식 안에 갈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장식藏識, 감춰서 창고처럼 그런 역할을 하는 그런 식이라고 해서 장식藏識이라고도 하고 아뢰야식阿賴耶識, 소위 무몰식無沒識, 없어지지 않는 식이다, 그렇게 해요.
우리가 탐진치 삼독을 짓든, 또는 보시행을 하고 육바라밀을 닦든간에,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는 신구의 삼업을 통해서 하는 행위는 모두가 제 팔 아뢰야식에 다 갈무리가 됩니다. 그게 의지죠, 의식의 땅에 얽혀 있어서,
잠복환기暫伏還起호니,
잠깐 엎드려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이거요, 좋은 말 들을 때는 탐 진 치 삼독도 사라지고 일체 시기심 질투심 등등, 참 없어야 마땅할 그런 번뇌들이 사라진 것 같지요.
그러다가 또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고, 어떤 일을 부닺치게 되고, 사물을 보고 하며는 그만 견물생심이라고, 사물을 보며는 마음이 생기듯이, 가만히 있다가도 다시 그 탐진치 삼독이 다시 일어나요.
그게 잠복환기라고 잠깐 엎드려 있다 또 다시 일어나, 자기 분에 없는 거 '나는 절대 탐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길거리 지나가고 백화점 앞을 지나가고, 창문에 아주 아름다운 옷을 이렇게 걸어놓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그 앞에서 멈춰 서게 되고, 살 생각이 있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는거죠.
잠복환기, 그런 거 다 초연한 것같이 우리가 평소에는 살아 오다가 또 그런 것을 보며는 저절로 다시 갖고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거죠.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일어나고 이런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든 게 다 그래요.
기본적으로 재 색 식 명 수 오욕락에서부터 그 외 온갖 것들, 다 그렇죠. 또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 또는 자기의 그 어떤 공부를 위해서, 결심을 많이 하지요. 각오도 많이 하고 계획도 많이 세웁니다.
그래서 뭣도 안하고, 뭣도 안하고, 뭣도 안하고, 안 할게 많죠, 그리고 좋은 일은 다 하겠다고 계획을 다 세워 놓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계획은 저절로 해태해지고, 안 좋은 것들은 자꾸 보고 듣고 함으로 해서 마음에서 또 생겨서 갈등하다가 결국 져 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요. 그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 그게
여격일학如隔日瘧하나니, 그랬습니다.
마치 날짜를 간격을 두고 생기는 학질과 같다, 학질은 어떻습니까, 하루 멀쩡하다가 또 하루는 아주 심한 그런 열과 몸살로써 고생을 하죠, 그러다가 그 다음날 또 멀쩡합니다. 이게 격일학이라고 해서 날짜를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병이죠, 그런 학질과 같나니
일체시중一切時中에 그러니까 우리 탐진치 삼독이라고 하는 거, 그것은 부처님 법문을 듣고 경전을 읽고 기도를 잘 하고 정진을 잘 할 때는 거의 도인이 다 된 거 같지마는, 세상에 아주 초연하게 이렇게 가벼워진 거 같지마는 그게 결코 그렇게 안된다는 거죠.
저 마음 속에 근본적으로 갈무리 돼 있다가, 어느 순간 그만 사물을 보면 욕심이 문득 일어나고, 미운 사람도 나는 없다 하지마는 그 옛날에 미웠던 사람 누가 말한다든지 그 사람 출세했다든지 하면, 또 미운 생각이 문득 또 일어나 버리거든요.
참 문제예요 그래서, 그러니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모습이니,
일체시중一切時中에 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해서,
일체시중에, 일상생활 속에서 그래요, 모든 시간 속에서
바로 모름지기 加行方便智慧의 힘을 써서, 그렇습니다. 가행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이렇게 하루에 몇 시간 정해놓고 하는데서 더 시간을 배로 늘려가지고 정진하는 것,
기도면 기도, 사경이면 사경, 독경이면 독경, 강의면 강의, 참선이면 참선, 이런 모든 것들을 배로 더 늘려가지고 정진하는 것을 가행정진, 이렇게 해요.
더할 加자, 행할 行자니까 가행정진, 선방에서 예를 들어서 보통 사분 정진으로써 두 시간씩 두 시간씩 이렇게 하면 8시간이죠, 거기다 너댓 시간 더 해서 하면 그것을 가행정진,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24시간 다 하는 것을 용맹정진 그러죠. 보통정진, 가행정진, 용맹정진, 이렇게 세 단계가 있죠, 그러니 막 출가해서 수행에 첫 발을 내 디딘 초심학인으로서는 가행정진을 해야 되는 거죠.
마치 군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 훈련을 아주 되게 받듯이요, 훈련소 생활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 내무반에 돌아오면 쉽잖아요. 각자 자기 근무지로 돌아가면 훈련소 생활 반도 안되게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와같이 행자 때는 훈련소라 생각을 하고, 또는 사미 때는 훈련소라 생각을 하고 아주 독한 그런 정진을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방편, 그런 것들이 꼭 도는 아니예요. 아주 부엌에 가서 밥을 짓고, 채공하고, 그릇 씻고, 스님들 심부름하고, 청소하고, 또 그리고는 외워야 할 천수경이다, 초발심자경문이다... 외워야 할게 많고, 그러면서도 예불 빠지면 큰일 나고요, 또 대중 운력에 빠져도 안되고, 그래서 해야 할 것을 다 합니다.
그런 것이 꼭 도는 아니예요. 그래서 방편이라는 말을 쓰는거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의 방편으로써, 도를 깨닫는데 하나의 방편으로써 좋은 그런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편이라는 말이 여기 이제 들어가고 그 다음에 지혜, 그렇게 살 줄 아는 것이 그게 지혜입니다. 꾀부려가지고요, 편안하게 사는 거,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정진하고, 자기 힘이 있고, 젊음이 있고, 신심 날 때는 아주 그저 앞 뒤 돌아보지말고, 몸도 돌아보지말고, 열심히 살 줄 알고, 자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 노력할 줄 아는거, 이게 지혜로운 삶입니다.
꾀부려 가면서 자기 몸 하나 도사리면서 그렇게 사는 거, 그건 정말 어리석은거지요. 얼른 보며는 지혜롭고 꾀많은 거 같지마는 그런 마음 쓰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머리나 돌려쌓고 그런 사람들, 대중처소에 보면 꼭 그런 사람 꼭 있어요. 가행방편과 지혜의 힘을 써서
통자차호痛自遮護언정
아주 심하게 스스로 막고 보호할지언정, 그러니까 내 정진을 방해하는 것은 막고, 그래서 내 정진하는 일을 보호한다 이겁니다. 주변에 꾀부릴 일, 장애가 될 일,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거 스스로 막아야지요.
통자차호, 그것도 스스로 막는데 아주 아프게 심하게 '자기 자신에게는 아주 철저하게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하라' 하는 그런 말이 있지요.
통이라고 하는 게 아플 痛자인데,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도록 스스로 그렇게 독한 마음 먹고 스스로 막을 것은 막고 내 자신을 보호할 것은 보호할지언정
기가한만豈可閑謾으로 유담무근遊談無根하야
어찌 가히 한만, 한가하고 느슨하게 해 가지고서 遊談無根이라, 근거없는 소리를 놀이삼아 지껄여대는거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온갖 무슨 정치 이야기, 연예인들 이야기, 세상에 사건 사고, 온갖 외부의 이야기까지.
막 출가해 가지고 발심해서 불도를 철저히 닦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이 이런저런 세상사에 기웃거리고, 또 그걸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히히닥거리면서 근거없는 확인도 안 해보고 근거없는 소리를 그렇게 계속 하면서 즐기고 논다며는 그게 뭐겠습니까, 모양이 아니죠.
허상천일 處喪天日
헛되게 천일을 죽인다, 이말이야. 시간을 죽인다, 날짜를 계속 죽이는거죠.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시간 죽이기입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시간 죽이기입니다. 시간 죽이기가 인생살이인데 이왕 가는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고 보람되고 내 자신에게 유익하게 보낼 것인가, 요는 그거예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란 바로 그겁니다. 어차피 하루는 가는 거예요.
허상천일, 날짜를 죽이는 것입니다. 시간 죽이기인데, 헛되게 죽여서는 안된다는 거죠. 허虛자가 교재에 처處자로 잘못돼 있는데 헛될 허虛자 입니다, 허망할 허자, 허상천일하고 헛되게 시간을, 天이라고 하는 것은 날짜를 죽인다 그래요.
그러니까 정말 인신난득人身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사람 몸 만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고 누누히 이야기 하고 있는 우리 절 집안, 불교 집안에서, 정말 이런 값지고 소중한 가르침을 만났는데 그렇게 함부로 세월을 보내고 날짜를 죽인다며는 그 무슨 불법 만난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성인의 가르침을 만난 보람은 바로 이왕 가는 세월이고 이왕 가는 날짜인데 이것을 참으로 의미있고 보람있고 나에게 유익하게 보내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다 보면 결국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이익하고 유익하고 복된 사람, 다른 사람의 사표가 되고 모범이 되고 그래서 빛이 되고, 그래서 그 빛이 여러사람들에게 이렇게 나눠지고, 그거는 저절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그런 사람을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현명하게 지혜롭게 열심히 정진하면서 사는 사람은 저절로 그런 삶을 살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가행방편 지혜의 힘을 써서 아주 통절하게 스스로 막을 것은 막고 보호할 것은 보호할지언정, 어찌 한가하고 부질없는 일들로 무근원, 근거없는 소리를 놀이삼아 떠들어대서 세월을 죽이고, 헛되게 세월을 죽이고
욕기심종이구출로재欲冀心宗而救出路哉리오
심종을 바라보아서 출로를 구하고저 하리오.
심종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종지, 마음이 근본이고,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마음입니다. 마음 깨치는 일이지요.
그래서 심종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것은, 심종이라는 것은 보조 지눌스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선불교가 아주 완전히 무르익은 그런 시대, 또 선불교를 제창한 그런 보조스님의 불교관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심종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마음을 깨닫는 것, 도를 깨닫는 것, 이것을 심종이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저 하리오, 구제할 救자가 아니고 구할 求자라야 되지요.
출로, 생사에서부터 벗어나는 길,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길, 그게 출로입니다. 마음을 깨달아야 말하자면 생사해탈이 가능하니까, 헛되게 세월을 보내 가지고는 그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단견지절但堅志節하야
다만 뜻과 절개를 굳게 해 가지고서
'내가 이 불문에 출가를 해서 정말 부처님의 공부를 평생을 통해서 아주 열심히 잘 하겠다'고 그렇게 마음 먹었으면 그것을 아주 날이 갈수록 굳게 굳게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게을러지고 또 게을러지면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늘 그렇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저 활줄처럼 언제나 팽팽하게 날이 서 있는 게 아닙니다. 게을러지죠, 게을러지면 또 일으켜 세워서 다짐하고, 또 게을러지면 또 일으켜 세워서 다짐하고, 수없는 다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책궁비해責躬匪懈하며
자기 자신을 몸을 꾸짖어서 해태함을 해태하지 않게 하며
지비천선知非遷善하야
그른 것을 알아 선한데 옮겨서, 잘못된 걸 몰라서 잘못하는 일이 극히 드물죠. 그리고 그 몰라서 잘못하는 일은 또 아주 소소한 것입니다. 대개 알고 잘못해요.
그러니까 그른 줄을 알았다면, 그 그른 것을 선한 곳으로 옮겨 가지고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렇죠. 이게 잘못인데...하면서 다 저지르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얼른 마음에 바꿔 먹어 가지고서 이것을 선한데로 옮겨서
개회조유改悔調柔어다
고치고 뉘우쳐서 아주 조화롭고 부드럽게 할지어다. 그렇게 해야겠죠.
늘 고치고 뉘우쳐서 아주 사람이 수행자답게, 뻣뻣하고 퉁명스럽고, 지 멋대로 지 고집대로,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많이 받은 사람 같이 아주 유연하고 부드럽고 조화롭고 그렇게 돼야 된다는거죠.
근수이관력勤修而觀力이 전심轉深하고
부지런히 닦고 닦은 관의 힘이 점점 더욱 깊어지고,
관의 힘이라는 것은, 화두를 드는 사람은 화두하는 그런 공부의 힘이 관력이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한 그런 기도의 힘이 관력이고,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은 경전에 대한 지혜의 눈이 밝아지고 경전 공부에 더욱 득력을 하는 그런 일이 관력이고,
또 다른 관을 한다, 무슨 백골관을 한다든지, 무상관을 한다든지, 자비관을 한다든지, 수식관을 한다든지, 이렇게 관법이 많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각자 자기 취향대로 그런 관법을 하는데 그 관법을 하는 그런 힘이 더욱 더 깊어진다 이거예요. 열심히 하면 더욱 깊어지죠.
우리 보통 운동도 평소에 운동을 안하던 사람이 운동을 자꾸 하잖습니까. 그러면 근육이 생겨요, 다리에도 근육이 생기고 팔에도 근육이 생기고 없던 힘도 생기고 그렇게 합니다,
우리 정신은 더 합니다, 정신의 근육은 더 잘 생겨요. 금방 아주 정신력이 강화되고 공부하는 힘이, 눈에 안 보이죠.
우리의 팔에 근육이나 알통은 눈에 보이지만, 정신의 알통과 정신의 근육은 물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느껴요. 자신은 느낍니다. 그거 못 느끼면 공부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열심히 하며는 반드시 육신은 육신대로, 그런 운동을 하며는 힘이 붙게 돼 있고 정신세계는 정신세계대로 열심히 정진하며는 그 정진의 힘이 붙게 돼 있어요.
근수이관력勤修而觀力 부지런히 수행한 그 관의 힘이 점점 깊어지고
연마이행문鍊磨而行門이 익정益淨하리라
연마한 수행의 문이, 연마하고 연마한 게 우리 그 수행이죠, 염불도 좋고 염불 소리도 처음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 단순한 염불이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안 불러 본 사람은 서툴다고요.
그렇지만 열심히 부르면 아주 익숙해지고, 절도 마찬가지고, 다른 염불도 그렇고, 경전을 읽는 일도 그렇고, 좌선하는 일도 그렇고,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꾸 익숙해지는거죠.
수행의 문이 익정하리라, 더욱 더 맑아지리라, 연마한 수행의 문이 더욱 더 맑아지리라.
불교는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무식하게 표현하면, '공짜가 없다'고 하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다. 또 '공짜가 없다'라는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이렇게도 뭉뚱그려서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과법 또 인연법, 연기법, 이걸 불교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부처님도 무수히 연기의 도리를 말씀하십니다. 그게 뭡니까.
우리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것이 헛되지 않고 그대로 결과로 돌아오게 돼 있다 하는 것입니다.
너무 미련하고 어리석게만 하지 않는다며는, 당연히 지혜롭게 해야겠죠. 바로 그겁니다 . 그게 자기 노력한만치 돌아오게 돼 있고 결과가 있게 돼 있다. 참선을 하든지, 경을 보든지, 기도를 하든지, 무슨 일이든지 그렇습니다.
그게 공짜가 없다는 이치죠. 그러니까 자기가 마음쓰고 노력한만치 사람이 지혜로워지고 또 어떤 정신력도 강화되고 그래요.
근래 간화선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이 고조돼 가지고 곳곳에서 간화선 간화선 하는데, 요즘 사람들에게 간화선을 해서 옛날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이렇게 화두 일념이 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요즘 사람들은 온갖 지식 정보가 옛날 사람에 비해서 천 배 만 배 더 많기 때문에 그만치 우리의 머리는 복잡하고 산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사실은 집중하는 정진을 해야 할 그런 차제인데, 그래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동안 화두 일념이 된다고 하는 것은 참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에 매달리는 그런 노력, 화두에 마음을 집중하려고 하는 그런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는 어떤 정신력이 생겨요. 다시 말하며는 정신의 근육이 생기고 정신의 근육이 오래가며는 정신에 뼈가 생기고 그렇습니다.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런지 모르지만 그래요. 우리 육신에도 운동 안 하던 사람이 운동을 하면 알통이 생기고 근육이 생기잖습니까.
근육만 키우는 운동하는 사람들, 더러 나오는 거 보며는 아주 대단하죠. 어떻게 사람의 몸이 저럴 수가 있겠는가, 놀랄 정도로 그렇게 근육이 발달합니다. 우리 정신도 우리가 기울여서 그렇게 노력을 하며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정신에도 그렇게 근육이 발달해요.
그러니까 기도라든지,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일이라든지, 이게 일념이 되면 더욱 좋지마는 일념이 안되면 일념 되도록, 끊임없이 정신을 갖다 모우고 도망가면 갖다 모우고, 갖다놓고 도망가면 또 갖다놓고, 그 화두 들다 보면 화두 놓치고 한 시간 동안 좌선하는데 화두가 수 백 번 도망가고 수 백 번 잡아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도망가고 잡아다 놓고, 도망가는 거 잡아다 놓고 하는 거, 그러다 보면 한시간 얼른 가버리죠. 그렇지 않으면 졸고, 그래서 혼침昏沈 아니면 도거掉擧요, 도거 아니면 혼침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혼침 아니면 망상이고, 망상 아니면 혼침이다, 그런 뜻이죠. 그렇더라도 그런 노력이라도 아주 열심히 기울이면 거기에 말하자면 집중력이 생긴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연마이행문鍊磨而行門이 익정益淨한다, 근수이관력勤修而觀力이 전심轉深하고 鍊磨而行門이 益淨한다 하는 그런 말씀을 부연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장기난조지상長起雜遭之想하면 도업道業이 항신恒新하고 상회경행지심常懷慶幸之心하면 종불퇴전終不退轉하리라
내가 초심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죠.
장기난조지상長起雜遭之想하면 도업道業이 항신恒新하고
장기, 기를 일으킨다. 늘 일으킨다 무엇을, 만나기 어렵다 난조難遭, 어려울 난難자인데 글자가 오자가 또 많네요. 어려울 난자,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 생각을 늘 일으킬 것 같으면, 불법 만나기 어렵고 사람 몸 만나기 어렵다. 정말 우리가 사람 몸 받고 났으니까 뭐 사람 몸 받기가 뭐 그렇게 어려운가, 그건 도대체 이해가 안되죠.
그러나 깨달으신 분들이 인생의 전후좌우를 과거 수많은 생과 또 미래의 우리가 흘러갈 것을 환히 꿰뚫어 본 그런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대로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사람 몸 받기 어려운거거든요.
거기에다가 설사 사람 몸 만났다 하더라도 불법 만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또 불법 만나도요, 정법 만나기가 또 그리 어려워요. 불자들은 많은데 정법을 행하는 사람은 참 많지가 않습니다. 정말 백 명에 한 두 사람 될까 말까 해요.
스님들도 마찬가지예요. 전문적으로 출가해 가지고 전문적으로 불교에 몸 담고 공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디 전문가답게 공부를 해야 말이죠.
정말 전문가다웁게 공부에 한 2~30년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에만 2~30년을 그렇게 머리를 쓰며는 왜 정법을 모르겠습니까. 알게 되지요.
그런데 그렇게 안하니까 모를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스님들도 그렇지마는 일반 신도들은 더욱 정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정법을 사람의 몸 만났고 불법 만났고 거기서 정법을 만났다며는 참 이런 것들이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늘 일으켜야 돼요. 장기, 늘 일으킬 것 같으며는
도업道業이 항신恒新하고,
도 닦는 업이 항상 새롭다, 매일 매일 새로운거죠,
경전을 읽어도 새롭고, 아주 신기하고 다양하고 기분이 아주 경쾌하고 아주 기분 좋은 그런 시간이 되는거죠 늘, 금강경 읽어도 읽어도 즐겁고, 읽어도 읽어도 신기하고, 또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런 뜻을 또 거기서 발견해내고요, 어느 구절도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회경행지심常懷慶幸之心하면 종불퇴전 終不退轉하리라
항상 품는다 상회, 항상 품는다 무엇을,
慶幸之心, 경사스럽고 다행하다고 하는 마음을 항상 품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았는가. 그리고 내가 크게 높은 벼슬 안하니까 시간이 있어서 이렇게 불법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그것도 너무 다행이고,
또 내가 너무 돈을 너무 많이 가졌거나 재산이 많다며는 그거 심부름 한다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높은 자리 심부름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그 돈 심부름 하느라고 불법 공부하기가 어려울텐데 다행히 돈도 별로 없고요, 먹고 굶지 않을만치 살고 있으니까, 아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항상 자기 처지, 거기다가 불법까지 만났다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회경행지심常懷慶幸之心이라, 항상 경사스럽고 다행하다.
난 하루에 불법 만난 이 사실을 생각하며는 복권이 백 억대의 복권이 매일 한 번씩 터진다. 일년 365일 매일 매일 그냥 백 억짜리 복권이 터지는 것과 똑 같다, 이렇게 생각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사실 그거 하고는 비교가 안되지마는, 우리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며는 그렇습니다. 어찌 백 억짜리 복권에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가 안되지요. 그렇지만 백 보 양보해서 이제 하는 말입니다.
종불퇴전終不退轉하리라
그렇게 되면 마침내 퇴전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좋다, 정말 다행하다, 참 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무슨 퇴전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이죠.
불법 공부하는 데 이런 것을 청복淸福이라 그럽니다. 아주 맑은 복이라 그러고, 유루복有漏福, 무슨 벼슬이 높고 돈이 많고 하는 것을 탁복濁福이라 그래요.
불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많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혐오합니다. 어떻게 혐오하느냐 하며는 이건 유루복은 지어야 되니까, 짓느라고 한 생 허비하고, 또 복을 받느라고 또 한 생 허비해 버리고, 그 다음에 복진 타락이라 해서 다 받고 나면 더 안 좋은 데로 떨어져 버리거든요. 그러느라고 또 한 생 허비해 버린다, 그래서 삼생의 원수다. 그런 말을 씁니다.
그게 가난한 수행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처지를 합리화 하느라고 한 소리가 아니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본 사람이 그대로 내용을 알고 하는 말이죠. 그리고 사실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그렇게 많이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누가 달라고 합니까, 절에서 예를 들어서 절에 불사하는 데도 돈 내고 싶고 많기만 하면, 걸핏하면 그런 말 하죠, 달라 안 합니다, 없으면 그 뿐인 거고, 있으면 있는 형편 따라서 그저 적당히 나누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없는데 어떻게 냅니까, 그거 염려할 필요 없어요.
부처님이 법당 지어달라 합디까, 부처님이 집 지어 달라고 해요, 그런 일 없습니다. 괜히 부처님 빙자해서 하는 소리죠. 그러니까 냉정하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냉정하게 자기 소신을 가져야 되는거죠.
늘 우리가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또 불법 만난 것이 참으로 경사스럽고 다행하고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고, 이 보다 더 복된 일이 없다라는 그런 마음을 가질 거 같으면, 늘 부처님하고 함께 하는 것이고 부처님과 함께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세계에 아주 지혜롭고 현명하고 뛰어난 성자들이 수 억 만 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도.
그 세계 외로울 거 같죠, 천만의 말씀. 그 세계에 좋은 도반, 좋은 스승들이 훨씬 많습니다.
세상하고 같이 더불어 살아야 친구가 많고 이웃이 많고 그쪽으로 가 버리면 도반이 없을 거 같고 외로울 거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 그 쪽이 도반이 더 많고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런 생각을 해서
여시구구如是久久
이와같이 오래오래 할 거 같으면
자연정혜원명自然定慧圓明하야
자연히 정과 혜가 선정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서
견자심성見自心性하며
자신의 심성을 보게 될 것이고,
뭐 견성, 견성, 하잖습니까. 자기 마음 보고 자기 마음 깨닫는다는 게 세월 가면 이렇게 살아가면서 또 이러한 자세로써 살아가면, 저절로 보는 거예요. 크게 조급한 마음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스스로의 심성을 봐서
용여환비지用如幻悲智하야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써서, 자비를 베풀고 지혜를 써는 것,
그게 무슨 어떻게 손에 이렇게 잡히는 물건처럼 있는게 아니죠. 그래서 환과 여환이라 그러죠,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다. 우리가 마음내서 쓰며는 있는 것이고 가만히 있으며는 안 나타나는거죠.
자비와 지혜가 그렇습니다. 내가 쓸 때 있는 거예요. 지혜도 그렇고 자비도 그렇고, 그 참 신기하죠. 꼭둑각시와 같은거죠. 꼭둑각시가 예를 들어서 사람이 조종하면 움직입니다. 조종 안 하면 가만히 있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 속에 가득히 자비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을 할 때 그런 작용이 나타나니까,
용여환비지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써서
환도중생還度衆生하야
도리어 중생들을 제도해서
작인천대복전作人天大福田하리니
인천의 대복전을 지을 것이다, 이 세상에 큰 복밭이 될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공부 잘 해 가지고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고 해서, 어리석은 사람에게 불법을 가르쳐 주고, 또 힘 닿는대로 인연 닿는대로 부처님의 지혜를 전파하고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 얼마나 큰 복이 됩니까.
돈 가지고 예를 들어서 어디에 희사했다, 물론 그것도 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디가서 예를 들어서 급식에 참여해서 봉사 활동 했다, 좋은 일이예요 일단.
그렇지만 그것하고 어찌 부처님 법 공부해가지고서, 중생 제도하고 법 공양 올리는 일 하고 어찌 그게 비교가 됩니까. 그게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은 어디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이렇게 하더라도, 꼭 부처님의 법을 얹어서 같이 전해 줘야, 그게 불자가 하는 봉사활동이고 불자가 하는 복지사업이 되지,그렇지 않고 그냥 복지만 하고, 그냥 봉사만 하고, 그냥 밥만 나눠준다면, 그거는 저기 다른 저급한 종교, 하급 종교에서 하는 거나 아니면 무슨 구청이나 무슨 보건 복지부에서 하는 일하고 뭐가 다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가 어디 그렇게 저급한 것입니까. 아주 명품 종교고, 아주 고급 종교고, 최고의 성자가 가르친 가르침인데 그 가르침을 그만 두고 그냥 밥만 주고, 가서 이렇게 봉사 활동만 한다며는 그건 보건 복지부서 하는거고 저급한 종교 단체에서 하는거지, 불교에서 하는 것은 아니예요.
불자가 가는 곳에는 항상 가서 인과 이치, 인연의 이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 1차 좋고요, 만약에 그런 게제가 안되고 그 기회가 안된다, 안되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러면 조그만 책자라도 하나 갖다 주고, 염불 책이라도 하나 갖다 주고, 하다못해 무슨 확장지라도 하나 갖다 주고, 이렇게 해서 부처님과 인연을 깊이 맺게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연을 깊이 맺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준다면, 그게 불자가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고, 불자가 복지 사업을 하는 것이 됩니다. 이 점을 꼭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래서 여기 보십시오.
용여환비지用如幻悲智하야,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써서 도리어 중생들을 제도할 거 같으면 인천에 큰 복전이 된다. 경제적으로 베풀어 가지고 대복전 아니예요, 법을 펴기 때문에 대복전이라 그래요.
그 스님들 가사를 대복전이라, 또는 복전의라 이래요. 福田衣, 옷 衣자, 복전의라 그러는데, 스님들이 어디 가서 경제적으로 도움 주는 사람이라서 복밭입니까, 그거 아니예요. 부처님 법을 전하니까 복밭이라고 하는 것이예요.
가사가 밭 두덕을 상징하는 것이잖습니까, 밭 두덕을 상징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마니 가사라 해서 그게 한 두덕이 없는 그냥 판대기 가사, 마니가사라고 입죠. 조가 없지요.
그걸 입다가 나중에는 5조, 밭 두덕이 5개로 되어 있는 5조를 입고, 그 다음에7조 9조 11조 13조 15조 17조 이런 식으로 해서 25조까지 그렇게 됩니다.
25조 가사는 다시 거기에 아마 수 백 개쯤 될 거예요, 그만치 연륜이 깊어지며는 정법을 알고 지혜가 출중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제대로 편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돈 많아가지고 여러사람들에게 그런 큰 복밭이 된다는 건 아니죠. 그리고 큰스님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무슨 절하고 그래 하면 돈 갖다주고 하면 그래서 복이 되는 것도 또한 아니예요. 그 분으로부터 정말 인생의 지혜가 되는 훌륭한 가르침을 우리가 전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복밭이 되는거지요.
대복전, 가사를 입고 있는 사람, 또는 가사 그 자체, 가사 그 자체를 복전의라 하니까, 복전의를 입고 있는 사람이 곧 대복전인데, 결코 물질을 세상에 보시해서 복전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거, 이거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법을 전해 줬기 때문에 그래서 복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보통 상식하고 불교적인 사고하고는 달라요. 그 다른 점을 우리 불자들이 아셔야 됩니다.
절수면지切須勉之어다.
그러니까 간절히 모름지기 힘쓸지어다.
정말 불법을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전하는 일에 힘쓰고 힘쓸지어다. 이렇게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계초심학인문' 초심학인을 경계하는 글이죠. 참 보조스님께서 어린 초심학인에게 아주 기묘하고 좋은 말씀을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선지식 경허스님같은 이들도 평생을 이렇게 초발심자경문을 열심히 읽으셨다하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우리도 초발심 자경문, 그거 '행자들이나 공부하고 어린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거죠.
여기까지 초심학인문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내일은 금요일이고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해서 휴강이고
월요일은 발심수행장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염화실 자료실에 발심 수행장을 올려놨습니다.
복사해서 모두 교재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입장을 하셨습니다. 88분
88명이 우리 염화실에 와서 공부하고 계시네요.
(.................)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법석을 빛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無始習熟(생시습득)한 愛欲?痴 纏綿意地(애욕에치 전면의지)하야 暫伏還起(잠복환기)하야 如隔日?(여격일학)하나니 一切時中(일체시중)에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직수용가행 방편지혜지력)하야 痛自遮護(통자차호)언정 ........ 잠잠하던 마음이 어제는 걷잡을수없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가라앉을때까지 힘이 들었습니다. 오늘 큰스님 법문서 이 귀절을 마음에 단단히 새기라고 미리 예습한 것 같습니다. _()()()_
무한히 오랜 세월 이전부터 익히고 익힌 애착 ,욕망,어리석음(삼독)이 의식의 땅 속(아뢰야식,함장식)에 얽혀있다가 다시 일어난다.마치 날짜의 간격을 두고하는 학질과 같나니 일상 생활 속에서 바로 모름지기 가행방편(기도,참선,독경등을 倍로 하는것) 지혜의 힘을 써서 (장애가 될 일을)스스로 막고 보호할지언정 어찌 가히 한가하고 느슨하게 소리없는 소리를 머리 삼아 이야기를 하여 헛되게 천일(시간)을 죽이고 마음의 종지를 깨달아 생사에서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저 하리오.다만 뜻과 절개를 굳게하여 자기 자신을 꾸짖고 해태하지 않게 해서 그른것을 알아 善한데 옮겨 고치고 뉘우쳐서 조화롭고 부드럽게 하면
부지런히 닦고 닦는 관의 힘(화두,기도,경전에 대한 관력)이 더욱 깊어지고 연마한 수행의 문이 더욱더 맑아지리라.늘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일으킬것 같으면 道 닦는 업이 항상 새롭고 항상 경사스러우며(불법을 만났다는 이 사실) 다양하다는 이 마음을 품으면 마침내 퇴전하지 않을 것이다.이와같이 오래 오래 할것 같으면 자연히 선정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서 자신의 心性을 볼것이며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써서 도리어 중생들을 제도하여 인천의 大福田을 간절히 모름지기 지을 것이다.가사는 福田衣를 의미한다.청복-불법을 만나는것,탁복-유루복,_()()()_
()()() ^^*
용맹 정진 하겠읍니다
법문 동참을 어떡게 해야되는지요
매주 월요일~목요일 오후 7시 20분 염화실 들어 오시면 초대장이 뜰겁니다. 클릭 하시고요~ 윈엠프 설치 안하셨으면 새로 설치 하세요~
법문 동참우짜모 댐니까 않되네예
감사합니다,,,_()_()_()_
_()()()_감사합니다..
痛自遮護(통자차호) 但堅志節(단견지절) 責躬匪懈(책궁비해) 知非遷善(지비천선) 改悔調柔(개회조유) ....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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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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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_()_()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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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_()()()_
감명깊게 들었습니다...지눌스님을 다시 보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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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悔調柔(개회조유)어다.-고치고 뉘우쳐서 아주 조화롭고 부드럽게 할지어다. 고맙습니다._()()()_
常懷慶幸之心(상회경행지심)하면 終不退轉(종불퇴전)하리라.-경사스럽고 다행하다고 하는 마음을 항상 품으면 퇴전하지 아니할 것이다.
사람 몸 받아 다행이고 불법 만나 다행이고 정법 만나 다행이고 염화실 만나서 다행이고...세세생생 불법 만나길 서원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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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각합장()()()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염화실이 있어 나무불법승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