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을 생각하면...
예전에 '가을동화'에서 은서의 엄마역할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없이 가냘프게 눈물 흘리며 '은서도 주세요...'라는 선우은숙 앞에서
우는듯 헤헤거리고 웃으며 '그집 전재산을 다 주면 은서를 드리리다'라던 그 처량하면서도 억척스럽던 모습.
그 모습이 가장 기억 난다. 왜인지는 몰라도..
고두심을 생각하면...
물론, '꽃보다 아름다워'의 아성이 가장 크겠지만,
나에겐... '엄마야 누나야'에서의 모습이 가장 먼저 그려진다.
어두운 색 옷을 입고 말아올려 묶은 머리에 차가운 표정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있던 모습.
역시나 왜 그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도 그럭저럭 잘 나갔었지만,
어느순간부터 엄마역할의 최고봉에 이른 김해숙.
물론, 중년에 딸의 남자와 순수한 사랑에 빠진 '경축! 우리사랑'에서의 역할도 잘 어울렸다. ㅋㅋ
김해숙을 보면 어느새 고두심이 떠오른다.
그만큼 역시나 엄마역할의 최고봉인 고두심.
원래 '김해숙VS 고두심'이란 제목을 쓰려 했는데...
내 얕은 지식으로는 둘을 어찌 갈라놔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and가 되어 버렸다.
요즘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에서의 김해숙은 무서운 엄마,
그리고 주말드라마 '잘했군 잘했어'에서의 김해숙은 억척스러운 엄마.
주중엔 무섭게 굴다가 주말엔 억척스럽게 변하는 이중인격을 보이고 있다. ㅋㅋ
고두심이 그러하였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바보같이 웃기만 하던 그런 역할과
'인어공주'에서의 억척스런 역할, '엄마야 누나야'에서의 차가운 역할 등등을 소화하며 다중인격까지 보여줬던. ㅋ
두 배우 모두, 현 드라마가 갖고 있는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최대로 끌어내 연기하고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지금 드라마들은, 젊은이들이 주연을, 나이든 배우들이 부모로 조연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파란만장한 삶의 주연을 꿈꾸며 가슴에 불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중년배우들에게 설 자리란,
연기도 제대로 배운적 없이 그저 아름답고 멋지기만 한 어린 배우들의 엄마 아빠로 한정되어 간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PD역을 맡은 송혜교가 '늙었으면 이모나 엄마 역할이나 해~'라던 대사가 기억난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인걸.
그런 슬픈 현실속에서,
나는 그저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조용히 살지는 않겠다고 발악하며 빛을 밝히는 배우들이 있는데,
김해숙과 고두심이 그러한 존재인 것 같다.
이 둘은 지금 당장 어떤 옷을 주든, 탈의실에 들어가 금방이라도 갈아입고 나와 연기할만한 배우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단지 중년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큰 비중을 갖지 못하고 여전히 '엄마'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만약, 이러한 배우들이 더욱더 늘어난다면, 분명 그들만의 자리를 갖게 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