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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00m의 고갯길이다. 옛날에는 화순사람들이 광주에오기 위해서 넘는 고갯길이었고 지금은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이어지는 등산로 구실을 하고 있다. 고개에서 동남쪽으로 뻗는 말잔등같은 능선은 산악인들이 백마능선이란 애칭을 붙여주기 도 한 초원이다. 가을철에 이 능선 위에 피어난 억새꽃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면 마치 백마의 말갈 기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정상을 향하여 왼편으로는 서석대, 오른편으로는 입석대의 장엄한 모습을 볼 수 있고 화순쪽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지공너덜을 지나 규봉에 이르게 된다 |
‘너덜’, ‘너덜겅’은 암석 무너진 것이 산비탈을 덮은 것으로 한마디로 ‘돌바다’라고 할수 있다. 바윗덩 이가 제멋대로 굴러 떨어져 있지만 사이사이에 자라난 관목과 어울려 일대 장관을 이룬다.
너덜은 지구의 화산 활동이 활발했을 무렵 땅 속의 바위들이 솟아오르면서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버리자 산비탈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와 쌓여 형성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멀리서 보면 돌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 중 지공너덜은 산의 정상에서 동남쪽으로3Km남짓이나 돌바다를 형성하고 있으며, 여기를 지나야 규봉(圭峯)에 이르게 되는데 너덜안에는 보조석굴(普照石窟)과 석불암(石佛庵)터가 있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가 이곳에 와서 석굴을 만들고 많은 제자에게 불법을 가르치면서 좌선수도(坐禪修道)하다가 그의 법력으로 수없이 많은 돌을 이곳에 깔아 놓았기에 누가 어느 돌을 밟아도 덜컥거리지 않고, 그리하여 이곳을 지공너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 많은 수억의 돌은 본시 상봉근처에 있는 돌무더기였는데 김덕령장군이 하루아침에 깨뜨렸다가 내던져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 투구봉(467m)
의상봉에서 금곡동을 바라볼 때 오른쪽 봉우리로 김덕령장군의 투구를 닮아서 부르는 이름 이다.
◎ 용추폭포와 용추계곡
무등산 남쪽으로 흐르는 계곡으로 장불재에서 흘러내린 물이 샘물을 이루다가 치마 바위를 거쳐 용추폭포의 절경을 이룬다. 무등산 유일의 천연폭포로 높이 9.8m로 양 편에 각종 활엽수가 무성하여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이, 겨울에는 활짝 핀 설화가 매우 아름답다.
◎ 의상봉(義湘峯 548m).
원효사에서 약간 아래로 바라보면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의상봉(548m)이다. 위는 두루뭉실 하지만 서쪽은 절벽으로 준수한 경관을 이룬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의상봉을 오르려면 꼬막재로 가는 계곡으로 접어들어 왼쪽으로 꺽어 드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일대의 소나무는 거센 서북풍에 시달려 마치 일류 정원사가 다듬어 놓은 정원수와 같다. 마치 천국이 이곳이 아닌가 싶을만큼 최고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 새인봉(璽印峯 490m).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덩이 두 개가 새인봉이다. 정상 높이는 490m.
정상의 바위덩이가 임금의 옥새같다 하여 새인봉(璽印峯) 또는 인괘봉(印掛峯)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새인봉을 오르려면 약사사에서 다소 가파른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 빠르다. 약간 힘이 드는 편이지만 단거리 등산코스로는 무리가 없는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광주시가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남동쪽의 투구봉(감투바위)과 선두암(船頭岩)의 아름다운 절벽도 내려다 볼 수 있다. 선두암은 그 모습이 뱃머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선두암의 절벽은 딱 한 칼로 자른 듯한 10여m 높이에 직각의 벼랑을 이루고 있어 산악인들의 암벽등반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 풍암정
이 정자는 광주 광역시 북구 충효동 풍암제 위에 자리고하고 있어 무등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드러나는 곳이다. 뒤로는 울창한 수목이 둘러 퍼져있고, 앞으로는 원효 계류가 맑게 흐르는 커다란 너럭바위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앞면과 옆면이 다같이 2칸이요, 도리 석초, 도리 기둥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왼쪽에 온돌방이 있다. 1990년에 시 문화재 자료 제15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다. 풍암정은 이곳 출신의 명장 김덕령의 아우인 풍암 김덕보가 세우고 여기에서 도학과 경륜을 강구하였으므로 이른바 풍암정사(楓岩精舍)라고도 한다. 김덕보는 어린 시절 종조부가 되는 김윤제에게서 학문을 익혔고, 성장해서는 우계 성혼에게서 사사하였다.
장형 김덕홍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제봉 고경명과 함께 금산 싸움에서 전사하고, 중형 김덕령도 의병장으로 활동하여 큰공을 세웠지만 비명에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풍암은 심히 상심하여 세상사와 담을 쌓고, 향리에서 가까운 곳 원효 계곡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호를 풍암이라 하면서 시인묵객과 사귀면서 유인생활을 하였다. 기암 정홍명(1592 ~ 1650)이 쓴 풍암정의 누정 기문에 의하면 당시 서석이라 이르던 무등산은 수석이 기이하고 빼어난 승경을 이루었다. 위 아래 바위사이에 있는 수많은 단풍은 시냇물 쪽으로 흘러내리고, 가을의 울긋불긋한 서리맞은 나뭇잎은 물 속에 잠기어 있기에 ‘풍암(楓岩)'이라 명명한 것이다. 바위의 모양은 넓으면서 평평하여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고 바위 아래 연못에서는 고기잡 이를 할 수 있다. 우산 안방준이 봉정하는 시를 짓고, 당대 사림들은 그의 덕행과 학문을 칭송하였 다. 이후 정조 때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어 사헌부 집의를 증직하고 의열사에 배향되었다. 석천 임억령, 제봉 고경명, 우산 안방준, 기암 정홍명, 풍암 김덕보, 송파 임식, 관해 임회, 송음 정재성, 등의 풍암정 시문이 남아 전한다. 정자의 창건 시기는 풍암정 기문의 내용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가 된다. 만력 갑인년(광해 6년, 1614년) 동짓달에 기암이 풍암정의 기문을 짓고 숭정후 4신미(순조 11년, 1811년)에 이를 판각하여 벽 위에 건다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석천이나 제봉의 시는 정자가 창건되기 전에 이곳 풍암의 승경을 탐승하고 제작한 것인데, 이 풍암정에 함께 현액되었다 할 수 있다. |
◎ 원효 8경 : 원효사 주변 매혹적인 경승
그 비경은 ‘원효팔경(元曉八景)’이라 부르는 것으로 옛부터 누가 이름 붙였는지는 모르나 원효사를 중심으로 낮과 밤, 그리고 계절과 역사에 따라 긴 세월동안 무등산을 빚내주는 경승으로 자리잡았다.
팔경을 감싸안은 원효사는 무등산 북쪽 의상봉을 마주한 원효계곡에 자리하고 있으며, 광주시내로부터 약 12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몰아삼매경에 빠졌다는 원효사는 절 앞으로 놓여진 높고 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서서히 대웅전의 모습이 드러나 마치 하늘을 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한다. 그리고 의상봉과 윤필봉, 원효사 뒷산과 바람재 사이에 분지처럼 포근히 안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협곡을 흐르는 원효계곡의 맑은 물에 취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원효계곡은 무등산 정상 일대의 물이 삼밭실에 고여 산의 북동쪽으로 약 9㎞나 흘러 충효동에 이르는 긴 골짜기이다.
삼밭실은 해발 800m에서 900m 사이에 펼쳐진 고원으로 일명 ‘사양능선(斜陽稜線)’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인삼을 재배하였다고 하여 ‘삼밭실’이라고 한다. 계곡의 상류에는 수검동이 있고, 의상봉 아래에서 원효폭포(일명 洗心폭포)를 이룬다. 이곳에 산장식 호텔이 건립되어 있으나 영업은 중단하였다. 계곡은 다시 흘러 풍암정이 있는 곳에 이르러 충암제가 되어 관개용수로 쓰여지고 충효동으로 빠져서 광주호의 상류가 된다.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고여 무등산 피서지로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이곳의 경승을 누가 이름지었는지는 모르나 원효팔경(元曉八景)이라 부르고 있는데, 원효사에서 무등산 정상에 솟아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운치(無等明月), 저녁 안개사이로 들려오는 원효사의 종소리(元曉暮鐘), 의상봉에 내리는 저녁비(義湘暮雨), 서석대에 감겨드는 뭉게구름(瑞石歸雲), 안양사의 부처님(安養老佛), 삼밭실에 서려있는 충장공의 전설들(蔘田烈蹟), 늦재에서 들려오는 나무꾼들의 풀피리 소리(晩峙草笛), 장쾌하게 쏟아지는 원효폭포의 물줄기(元曉瀑布)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팔경 이외에 또 하나의 숨겨진 비경이 있으니 바로 원효사 누각이다. 원효사 누각은 무등산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는 곳으로 부단히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처소이기도 하다. 누마루 난간에 걸터앉으면 무등산의 정기가 온 몸 속으로 스며들고 아름다운 소나무가 경관을 이루는 의상봉, 의상봉의 오른쪽에 우뚝 솟은 윤필봉, 멀리 정상인 천왕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등산의 경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 무등명월(無等明月) : 원효사에서 무등산 정상에 솟아오른 달을 바라보는 운치
������. 원효모종(元曉暮鐘) : 저녁 어스름 사이로 들려오는 원효사의 종소리
������. 의상모우(義湘暮雨) : 해저물녘 의상봉에 내리는 비의 너울
������. 서석귀운(瑞石歸雲) : 서석대에 감겨드는 뭉게구름
������. 안양노불(安養老佛) : 안양사의 부처님
������. 삼밭열적(蔘田烈蹟) : 삼밭실에 서려있는 충장공의 전설들
������. 만치초적(晩峙草笛) : 늦재에서 들려오는 나무꾼들의 풀피리 소리
������. 원효폭포(元曉瀑布) : 장쾌하게 쏟아지는 원효폭포의 물줄기
◎ 꼬막재(640m)
무등산장에서 규봉암을 향하여 의상봉의 뒤를 돌아 올라가면 꼬막처럼 둥글게 두드러진 고개에 이르는 데 이곳이 꼬막재(해발 640m)다. 여기서부터 규봉까지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 원래 부근에 꼬막같 은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꼬막재 못미처 갈림길에서 왼편 광일목장을 지 나 풍암정을 거쳐 충효리에 이르게 된다. 꼬막재 일대에는 풍치좋은 삼나무와 편백이 울창하다.
◎ 제1수 원지
광주에는 모두 4개의 수원지가 있으며 이 가운데 제3수원지를 제외한 3개의 수원지가 무등산 자락에 있다.
제1수원지는 증심사지구 버스정류장 입구 왼편에 있다. 일제시대인 1920년 3년간의 공사 끝에 준공 했다. 유역면적은 0.48㎢로 농촌 저수지 규모에 불과하다.
이 수원지는 주로 광주시내 중심부에 거주한 일본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으로, 하루 800t의 물 을 생산해 8천명에게 공급했다.
광주시는 제4수원지가 준공되고 뒤 이어 동복댐이 건설됨에 따라 1970년 2월 제1수원지와 인근의 임야까지 합쳐 장한섭에게 6천970만원에 불하했으며 뒤에 이곳 소유권은 임장춘을 거쳐 현재 청전가 든으로 넘겨졌다. 청전가든은 이곳을 온천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무등산 파괴를 우려하 는 시민의 목소리가 높다.
수원지 주변으로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쳐 있고,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으나 이용하는 등산객은 별로 없고 그 길을 아는 사람들만 간간이 산책코스로 이용할 뿐이다.
◎ 편백나무 숲
제1수원지 상류에 편백나무림이 있다. 현재 주인이 조성한 것이 아니고 일제시대에 사방공사의 일환 으로 일본에서 잘 크는 삼나무를 가져다 무작위로 심어 놓은 것이 나무 스스로 경쟁을 거쳐 지금은 나무가 주는 고마움을 알 수 있는 숲으로 조성돼 있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하늘 끝에 닿을 것처럼 뻗은 거대한 편백나무 수만그루가 만들어낸 상쾌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 편백나무를 한 구루씩 끌어안고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 자연은 개인의 영화를 위하여 파괴되어서는 안된다고-.
◎ 제4수원지
제4수원지는 잣고개 너머에 있는 광주의 대표적 수원지이다. 67년 완공됐으며 지금은 북구 일부지역의 공급수원에 그치고 있으나 여전히 상수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4수원지는 수원지의 기능보다 관광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며 지난 89년 ‘이철규 사건’으로 전국에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청둥오리 수백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 청풍원 휴게소
제4수원지 옆 청양쪽으로 녹음짙은 길을 한참 달리다보면 청옥동 4수원지(석곡수원지)를 건너는 다리 청암교가 보이고 정면에 산바람, 물바람이 만나 푸른바람이 되는 청풍쉼터가 눈에 들어온다. 잔디밭, 체육시설, 놀이터 등을 갖추고 있어 유아들의 소풍장소로 애용되며 여름철에는 한보따리씩 싸 들고 저녁을 먹는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곳이다. 이곳에는 평생을 방랑하며 가는 곳마다 풍자적인 시를 남긴 불우시인 김삿갓(金炳淵)의 시비가 있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시가문화권이, 오른편으로 가면 충민사, 충장사를 거쳐 무등산장으로 오른다.
◎ 충효동 왕버들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6호. 명 칭 : 충효동왕버들 (忠孝洞왕버들). 분 류 : 식물. 수 량 : 3주 지정일: 1985.02.25. 소재지: 광주 북구 충효동 1021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지의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버드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잎도 넓기 때문에 왕버들이라 불리며, 잎이 새로 나올 때는 붉은 빛을 띠므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나무의 모양이 좋고, 특히 진분홍색의 촛불같은 새순이 올라올 때는 매우 아름다워 도심지의 공원수나 가로수로도 아주 훌륭하다.
충효동의 왕버들은 광주호 동쪽 제방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가에서 자라고 있다.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을 상징하던 소나무 1그루, 버드나무 1그루, 왕버들 5그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왕버들 3그루만 남아있다.
충효동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정자가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왕버들도 그 때 심어졌던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가장 큰 나무의 높이가 12m, 둘레가 6.3m이고, 작은 나무의 높이가 9m, 둘레가 6.25m로 세 그루가 고른 크기로 자라고 있다.
※'카르페 디엠 데이(Carpe Diem Day)'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3년 되는 날을 맞이하여 '카르페 디엠 데이(Carpe Diem Day)'라고 이름 붙였다. 카르페 디엠이란 '오늘을 즐겨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이다. 이 날은 그 누구의 생일이나 그 어떤 국경일이나 명절보다도 중요하고 의미있는 날이다. 자기 반성과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첫댓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