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의 존재
물론 성경과 기독교 초대교부들의 문헌에는 너무나도 많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와 자료들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충분한 증거가 되지만, 불신자나 무신론자들에게는 객괸적인 역사적 예수를 증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닌 제 삼자의 문헌과 자료에도 역사적인 예수는 언급되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문헌적인 기록이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역사적인 예수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 타키루스
1세기의 로마 역사학자인 타키루스가 기록한 내용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있다. 네로황제의 화재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결과적으로 소문을 없애기 위해 네로는 일반 대중들이 아주 싫어하며 증오하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던 어떤 계층에게 그 화재의 책임을 뒤짚어 씌우고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의 기원이 된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디메라황제의 통치기간에 가장 해로운 미신을 퍼뜨렸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의 총독 가운데 한 사람인 본디오빌라도의 손에 극형을 당했다. 그 결과 잠시동안은 잠잠했지만 이 미신은 그 악의 원천이었던 유대에서 다시 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온 세상에 들어온 모든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들의 중심지인 로마에서조차 인기를 끌고 있었다.”
2) 요세푸스
요세푸스(주후37-100년)는 유대인 역사가로서 로마정부를 위하여 일하였다. 그는 두권의 유명한 저술을 남겼는데, 유대전쟁사(주후 77-78년)와 유대인상고사(주후94년경)이다. 요세푸스는 비록 예수를 믿었던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신구약 성경이 지닌 역사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확증하여주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의 역사적인 기록은 아주 중요하다.
요세푸스의 글 중에 놀라운 내용이 있다.....
William Whiston(1667-1752)이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1736년에 요세푸스의 헬라어 유대사에 대해서 영어번역분(Authorized English Version)을 발행하는데 그 18권 63F를 보면 이러한 구절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당시에 예수가 있었는데 만일 예수를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이라면, 그는 지혜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었고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자신에게로 오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 왜냐하면 그는 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요세푸스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 재판관을 소집해 그리스도라고 불리던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와 다른 몇사람들(또는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을 앞에 세워 놓았다. 율법을 어긴 죄목으로 정죄를 받자 그는 그(야고보)를 돌로 쳐 죽이라고 내어 주었다”
3) 탈루스
탈루스는 주후 52년경에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작가들에 의하여 탈루스의 글이 인용되어져 왔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라는 작가가 탈루스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지진과 어두움의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무서운 어둠이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고 바위들은 지진에 의하여 갈라졌으며, 유대를 비롯한 여러 지방이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역사 제3권에서 탈루스는 태양의 일식이었던 이 어둠을 ‘까닭도 없는 어둠이 내게로 몰려왔다’고 말하고 있다”(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의 연대기)
4) 유대인의 탈무드
탈무드 중에서 주후70-200년 사이에 기록된 중에서 예수의 기록이 있다. 가장 중요한 사본으로는 산헤드린 43A가 있다.
“유월절 전야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 처형이 있기 40일 전 한 전령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배교하도록 미신을 조장하고 미혹시킨다는 죄목으로 그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누구든지 그의 편을 들어 변호할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 변호하라’는 영이 내려졌으나 아무도 그를 위해 변호하지 않아 그는 유월절 전야에 십자가에 달려 초형되었다”(바빌론 탈무드)
이미 40일전부터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사실과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예수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5) 마라 바 - 세라피온
시리아인인 마라 바 - 세라피온은 1세기 후반에 그의 아들 세라피온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내용에 예수가 언급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아테네인들이 얻은 유익이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벌로 기근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느니라. 피타고라스를 화형시켜 시본사람들이 얻은 유익이 무엇이더냐? 단숨에 그들이 살던 곳은 사막이 되어 버렸느니라. 그들의 현명한 왕을 죽여 유대인들이 얻은 게 무엇이냐? 바로 그 후에 그들의 나라는 멸망하였느니라.”(대영박물관 시리아사본 추가본)
6) 사모사타의 루시안
사모사타의 루시안은 2세기의 헬라 저술가로서 비기독교인이었던 그는 기독교인에게 냉소적인 비판을 싣고 있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까지 어떤 한 사람- 그들에게 고상한 의식을 소개해 주고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된 특별한 한 사람-을 예배하고 있다. 잘못된 길로 빠진 이 작자들은 자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우습게 여기며 기꺼이 헌신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들 가운데서 아주 흔한 모습이다. 그리고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들에게 처음 법을 제시해 준 그 사람에 의해 그들은 회심한 바로 그 순간부터 형제이며 헬라의 신들을 거부하고 그가 준 법에 따라 십자가에 처형당한 성인을 예배한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대단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은 모든 세상적인 좋은 것들을 경멸하고 그것들을 공동의 소유물로 여긴다”(사모사타의 루기안)
7) 본디오 빌라도의 칙령
현재 본디오빌라도의 칙령이라는 문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주후 150년 경에 저스틴이 쓴 글에서 그것이 인용되어있다.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다는 표현은 그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못을 가르키는데 사용된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달린 후 그들은 그의 옷을 제비를 뽑았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 사람의 옷을 그들은 나눠 가졌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본디오빌라도의 칙령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8) 젊은 폴리니
젊은 폴리니라고 불리는 자는 로마의 저술가이며 행정가였다. 그는 주후112년에 트라얀 황제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초기기독교인의 예배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정해진 날, 동이 트기 전에 만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일 때면 그들은 가사를 바꿔가며 하나님께 하듯 그리스도께 찬양을 드리고 그들 스스로 그 어떤 악행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사기나 도적질, 또는 간음을 하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9) 코란
예수에 대한 증거는 이스람교의 경전인 코란에서도 발견된다.
코란에서는 계속적으로 일정하게 예수를 "이사 이븐 마리암(Isa ibn Maryam)"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는 뜻이다.
또 코란에서는 예수를 "알 마시(Al-Masih)"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메시야라는 뜻이다. 물론 코란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실존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코란과 회교전승 문헌에는 예수에 대한 글이 상당히 많은데, 예수가 메시야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언급되어있다.
10) 유대인 랍비들의 문서
유대인 랍비들의 문서에 종종 "예수 벤 판데라"(Jesus Ben Pantera)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것을 번역하면 “표범(Penther)의 아들”이 된다.
유대인들의 호전적인 열심당원들이 흑표범이라고 별명을 부친 적은 있었지만, 예수님은 열심당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할 중요한 것은, 헬라어에서 “동정녀”라는 단어는 “판테라스”(Panteras)라는 것이다.
동정녀의 아들을 헬라어로는 예수 밴 판테라스(Jesus Ben Panteras)가 되는 것이다.
또 어느 유대 랍비의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된 것이 있다.
“예수에게는 다섯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마타이(Mathai), 나가이(Naqai), 네제르(Nezer), 부니(Buni), 그리고 토다(Toda)이였다.”
마타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마태를 말하고 있다. 토다는 다대오(Thaddaeus)를 말한다는 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니가이는 니고데모를 뜻한다고 추측하여 보며, 부니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라는 아람어, 막3:17)로 보여진다.
네제르는 아마 예수님에게 처음 붙여주고(사11:1), 제자들에게 붙여준 칭호(나사렛)였다는 점에서 착각을 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혹시 바울에 대해서는 랍비문서에 언급이 없었을까?
어느 랍비의 문서에는 한 가마리엘의 제자가 있었다는 글이 있다. 그리고 “그 건방진 제자가.....”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