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 MA6900 그 설계와 음질을 살펴본다매킨토시 앰프에 대한 필자의 추억은 남다르다. 춥고 배고팠던 무명의 클라리넷 연주자 시절, 문자 그대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오디오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JBL 스피커와 매킨토시 앰프와의 만남이야말로 최상의 매칭이라는 선배의 말에 현혹되어, 충무로와 청계천의 오디오 숍을 전전했다.
필자의 처지로는 세퍼레이트형 프리와 파워 앰프의 세트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그 혈통의 막내둥이 MA6200이라도 들여놓고 싶어서였다. 쇼윈도 밖에서 가게 안에 진열되어 있는 매킨토시 앰프들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주인장과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마치 여인네가 목욕을 하는 장면을 훔쳐보다 들킨 소년마냥 겸연쩍은 모습으로 후다닥 도망치듯 그 장소를 피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그때가 오디오에 대한 열정이 가장 강렬했던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도 당시 가슴 깊이 각인되어 있던 청색 글래스 패널의 매킨토시를 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렇게 열병을 앓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의 형님에게 자금을 융통해서 결국은 꿈에 그리던 MA6200을 손에 넣게 되었다. '너 아니면 난 어떻게 해?'하며 한동안 희희낙락 동거하던 마란츠 모델 2285B 리시버 앰프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MA6200의 박스를 뜯으며 느끼던 뿌듯한 마음은 지금도 한 장의 사진으로 추억 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을 졸이며 MA6200을 처음 듣는 순간, 소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별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행복하고 뿌듯한 마음에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그후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MC2205, MC2250, MC7270 파워 앰프, 그리고 C34V, C22 신형 프리앰프 등이 필자의 집을 들락날락했었다. 1990년대초에 필자가 멀티앰프 시스템에 빠져들면서 매킨토시 앰프들과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지만, 매킨토시에 대한 애틋한 향수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간 MA6200은 MA6800으로 업버전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MA6900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1994년 말경에 MA6800이 발표되었다니까 MA6900으로 진화하기까지는 7년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 동안 오디오 세계의 주변 환경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고,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MA6900의 탄생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전통과 변화
MA6800과 MA6900은 피상적으로 살펴보면 별로 변한 부분이 없는 것 같다. 특히 MA6800은 매킨토시 분리형 앰프에 적용되었던 회로적 특성과 노하우가 대부분 그대로 투입된 제품이다. 우선 매킨토시 프리앰프의 충실하면서도 다채로운 기능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그 후속기인 본기도 회로적 특성으로 보면, 완성도란 점에서 별로 부족한 점이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두 모델의 공통점은 프런트 패널의 아름다운 불빛과 VU 미터, 매킨토시만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출력트랜스를 비롯, 충실한 포노 EQ, 모터 드라이브 방식의 볼륨과 리모트 컨트롤 등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외형상 달라진 부분은 그래픽 이퀄라이저를 4밴드에서 5밴드(30Hz, 50Hz, 500Hz, 1.5kHz, 10kHz)로 세분화시킨점, MA6800에서는 두 줄로 배열되었던 레이아웃을 일려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한층 세련되게 보인다는 점 등이다. 또한 리어 패널의 입출력 단자가 부착된 부분도 세퍼레이트 형과 마찬가지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채용한 점이다. 과거 나사 조임 방식의 스피커 단자도 바나나 플러그 접속이 가능한 일반 스피커 단자로 바뀌었다. 따라서 아무리 굵은 스피커 케이블이라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변신이라 할 수 있다.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톱 패널을 열어보았다. 한꺼번에 내부가 파악될 수 없는 회로의 배치로, 내부에 크롬 도금을 해서 거울처럼 보이게 한 점도 독특하다. 파워앰프부의 초단과 그래픽 이퀄라이저부의 전원은 독립적인 정전압 레귤레이터를 사용했고, 전원 평활콘덴서에는 75V/25,000㎌짜리가 채용되었다.
증폭 회로는 좌우 대칭으로 이미터(emitter) 저항을 부착한 일본 도시바제를 채널당 6개씩 채용했는데, 임피던스가 낮아지면 출력이 증가하는 일반적인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와는 달리 2Ω, 4Ω, 8Ω 구동 시에도 정격 200W의 출력이 엄격히 유지된다. 이는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이면서도 출력 트랜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출력석을 고정시키는 방법도 나사를 사용하여 고정시켰다. 안전 장치에 대한 배려도 완벽해서 전원 단자에 서지를 채용하여 갑작스런 벼락등에 대응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길이가 긴 내부 배선재에는 일일이 단열과 절연, 그리고 전자파에 대응하는 고급 익스팬더를 사용한 점도 돋보인다. 또 전원을 넣었을 때 일정한 시간차를 두어 전원을 공급하는 1접점짜리 릴레이를 사용한 점이나, 별도의 파워 가드 회로를 채택하여, 스피커의 보호대책에도 완벽을 기한 점도 매킨토시답다. 게다가 MA6800과는 달리 OP앰프보다는 디스크리트 방식의 회로를 많이 채용한 점도 신뢰감이 갔다.
풍부한 입력단자가 구비된 점 역시 매킨토시의 전통 그대로인데, 그러면서도 특히 CD1에는 밸런스 단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RCA 타입 단자들인데, 비록 PCB 타입이기는 하지만 접촉 저항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수명도 긴 고급형의 셀렉터 릴레이를 채용한 점이다. PCB 기판에는 에폭시 양면 기판이 채용되었는데, 출력 DC 전압을 조절 할 수 있도록 조절 포인트 2개를 마련한 점도 특징이다.
또한 포노 EQ에는 채널당 1개씩 8핀 필립스제 OP앰프가 투입되었다. 한편 샤시 밑면에는 철망을 채용했고, 또 뒤쪽 좌우에 히트 싱크가 부착되어 있는 등 방열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전면 프런트 패널 쪽에 큼직한 트랜스 3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전원 트랜스를 중심으로 좌우에 출력 트랜스가 장착되어 있다.
안정된 사운드
비교 시청을 위해서 MA6200이나 MA6800이 함께 준비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MA6900만으로 시청했는데, 첫번째로 들어본 음악부터 느낌은 대단히 신선했다. 솔직히 말해 MA6200에 대해서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MA6200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불만도 없지 않았다. 스테이지가 좁은 데다가 해상도도 그리 뛰어난 편은 못되었고, 부드럽지만 두루뭉실한 음이었던 것 같다. 모든 매킨토시 앰프들이 음질적인 면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듯이, MA6900 역시 이러한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보다 진전된 설계의 회로를 채택한 덕택일 것이다.
대편성 관현악곡들을 들어보니, 제법 무게가 실리면서도 중후한 멋이 풍겨나온다. 소릿결이 부드러워 목관 악기의 울림이 아름답고 거친 맛이 없으면서도 고역의 해상도도 훌륭한 편이었다. 또한 투티에서 에너지감도 훌륭했다. 타체트 레이블에서 나온 현악 앙상블을 들어보니, 음을 분석적으로 들려주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은 편으로, 온도감도 잘 전달되었다.
성악에서도 유연한 표정이 잘 살아났으며, 바리톤의 무게감도 품격이 있게 표현된다. 또한 습도감과 온도감도 적절히 가미되었다. 마침 시청용으로 들어온 PSB 플래티넘 T6 스피커와 연결해서 들었는데, 조금 뒤쪽에서 노래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분명 성악가의 개성은 잘 파악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에서는 음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표현되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충실한 사운드로 , 재즈의 분위기도 충분히 감지되었다.
리듬의 비트도 나무랄 데가 없었고, 특히 중역대의 테너 색소폰의 울림도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의 앰프라면, 부담없이 그리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싶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하이파이저널 63호 나병욱님 글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