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 사회생활 1년 남짓한 햇병아리, 그리고 이름도 흔하디 흔한(?) '옥경이'란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대학도 그곳에서 졸업했는데 홀연히 전라남도, 그것도 '섬마을 선생님'으로 떠난 그녀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실붕괴' '흔들리는 공교육' '거리로 나선 교사'등 교육문제가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요즘엔 교사라는 직업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많아 햇병아리 최옥경(25) 선생님이 문득 생각났던 것이다.
"2층에 서면 바다가 보이는 교실, 좋지 않아요?"
77년 5월생인 최옥경(사진) 선생님은 경상도 처녀다. 작년 2월 국립경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도덕 선생님'으로 교단에 섰고 이제 1년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첫 직장은 '경상도'가 아니었다.(사진을 이메일로 보내달랬더니 액자에 고이넣어 보내왔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창마리 안좌중학교'.
이곳이 최선생님의 근무지다. 목포에서도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 안좌중학교는 전교생 97명에 11명의 교사가 오손도손 지낸다. 섬마을 치고는 작지 않은 셈인데, "2층 교실에서는 바다가 보인다"며 자랑부터 늘어놨다.
"어디서 살아요?"라고 물었더니 "전 직원이 마당 하나를 두고 학교 관사에서 함께 산다"고 했다. 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교사공동체처럼 들렸다.
◇ "교사는 순수한 영혼을 대한다"
"고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께서 '법관은 평생 죄인을 다루고, 의사는 아픈 사람만을 대하지만, 교사는 순수한 영혼을 대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에 감명받아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최옥경 선생님은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대학 4학년 2학기 때, 밤늦게 공부하다가 힘들고 불안할 때면 문이 열려진 교양학관 강의실에 불을 켜고 들어가 교단에 서서 내 앞에 학생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날 공부한 내용으로 혼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내가 선생님도 되고, 내가 학생도 되어 1인 2역의 배우가 된 거예요. 그렇게 하고 다시 도서관에 앉으면 마음속엔 불안함 대신 희망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죠."
"제 직업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겁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생활지도·진로지도까지도 한다는 점에서 학원강사나 학습지 선생님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겠죠"
교사가 갖추어야 할 요건은 어떤 것일까?
최선생님은 첫째, 해당 교과목에 대한 전문적 지식 둘째,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업 기술 셋째,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라고 말하면서 "세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섬마을 선생님의 대답 다웠다면 지나친 말일까.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 활용'이 용이하다는 점을 들었다. 방학 중에 계절제 대학원을 갈 수도 있고, 해외 연수나 기타 여러가지를 배울 수도 있고, 학기 중에도 해당 수업 시간외에는 독서나 컴퓨터 관련 공부도 할 수 있으며 퇴근 시간도 일정해서 방과후 시간은 활용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또한 일반 직장은 직급에 따라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데, 학교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평교사이기 때문에 비교적 평등한 직장 사회라고 말한다.
'직업상 나쁜 점'에 대해 물어보자 "수업과 잡무의 병행"을 첫손에 꼽은 최선생님은 힘든 점을 수다 떨듯 조목조목 늘어놨다.
또 "모든 공립학교 교사는 정기적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거처문제와 부부의 별거 문제, 그리고 자녀들이 전학을 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어요"라면서 '처녀'선생님 답지 않은 대답도 덧붙였다.
◇ "도덕은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
지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안좌중학교는 '효도방학'이란 걸 했다. 효도방학전에 가진 도덕 수업시간에는 도화지와 색연필 등을 이용해 '효도권'을 만들었다.
방청소, 설거지, 15분 안마, 자유 이용권 등의 티켓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리고 그것을 '효도방학'기간동안 부모님이 마음껏 사용한 뒤 효도권 뒷면에 도장을 찍어주면 그것으로 수행평가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같은 '효도권'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효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반응을 물어봤죠. 한 아이가 '우리 엄마가 또 한 번 했으면 좋겠데요'라고 하자 다른 아이들 모두 '우리 엄마도..'라며 입을 모았어요."
"그때 다른 교과와는 달리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도덕 교과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래서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 도덕과목의 교과목표는 뭐냐'고 묻자 최선생님은 "한국인으로서 바람직한 인격 형성! 근데 너무 거창하죠?"라며 웃어넘겨버렸다. 하지만 최선생님의 방식이라면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도덕성 상실시대'에 사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도덕적 판단능력을 길러 준다는 점에서 사명감과 함께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라는 최선생님은 이내 진지한 선생님이 되어 교육현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작 학부모님을 비롯한 사회는 도덕교과에는 무관심한 것 같아요. 영어, 수학 점수에는 높은 관심을 갖지만, 우리 아이의 도덕 수행평가 점수에는 관심이 거의 없지요. 우리 아이가 학교 선생님들께 예의는 바른지, 친구들을 잘 돕는지, 이런 일이 살아가는데엔 더 중요한데…"
◇ "직장에선 실수 투성이, 아이들에겐 친절한 안내자"
"저는 아직 너무 어리고 부족해요. 지식면에서도 그렇고, 수업 기술면에서도, 업무 처리면에서도, 그리고 아이들을 대할 때도 감정이 앞서서 먼저 혼을 내고 나중에 후회를 할 때가 많아요."
대학을 졸업한지 3일만에 '섬마을' 안좌중학교로 부임해온 최옥경 선생님은 자신을 '실수 투성이'라고 했다.
"처음엔 나이 많은 선배 선생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는 그녀는 하지만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포부를 밝혔다.
'요즘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만은 않다'라며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교실붕괴다 뭐다 해서 교사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걱정스런 눈길까지 보내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최선생님.
최선생님은 "실제로 학교에는 예의 바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더 많고, 박봉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지식 교육에, 인성교육에 인생을 맡기고 계신 선생님들이 더 많다는 것을 믿어주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식 두세명만 키워도 다들 '속상해서 못 키우겠다.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지 않아요? 한 교실에 그런 아이들 삼사십 명을 앉혀놓고 가정에서 있는 시간 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느새 바다같은 마음으로 꿈을 펼치고 있는 최옥경 선생님. 그녀의 '봄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