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adow Run >>
Track 1. Beauty Maker 1/3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
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31절)
백과 은의 공간. 모든 것은 흰색 아니면 백금색이었다. 벽도 천장도 바닥
도 수술대도 그리고 그 수술대 위에 누운 여자와 그 옆에선 남자조차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곳은 수술실이었다. 수술대 주변을 둘러싸듯 설치
된 각종 장비들은 출입문과 전면의 유리창으로 트여진 한쪽 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과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일한 일탈의 공간인 유리창
으론 그 너머의 공간이 비쳐 보였다. 그 너머는 그 유리란 투명의 막을 경
계로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듯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과도 같은 풍경이었
다. 탁자와 그 양옆에 놓인 가죽 소파, 한쪽으론 조리대 놓인 주방과 침실
로 통하는 문이 엿보였다. 주인에게 거울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는 건지 사
방 곳곳에 여러 형태와 크기의 거울이 있어 지금 현재 그 거실에 거하고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을 비추어 주었다.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으로 그 속에 품어진 날카로운 눈빛과 강화근육을
숨기고 있는 이들. 그들은 똑같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유리창 너머의 수술
실을 주목하고 있었다.
수술실 안에선 수술이 한창이었다. 환자 하나와 의사 하나. 의료기술의
발전은 수술과 치료에 많은 손을 필요치 않게 만들었다.
흡사 금속의 촉수 마냥 천장에서 수술대위로 의료용 로봇팔들이 드리내워
져 내려와 있었다. 흰 마스크와 야간투시경을 닮은 집도의용 안경을 쓴 의
사가 말했다.
"깊이 35, X21Y36부터 X23Y40까지 절단. 반대편도 대칭절단."
금속촉수의 끝에서 뿜어진 보이지 않는 빛의 칼날이 여자의 뽀얀 살을 찢
어내었다. 접촉면의 탄화라는 레이저 특유의 특징에 의해 피도 나지 않아
흡사 플라스틱 마네킹을 잘라내는 듯 보인다. 하긴 비슷했다. 수술대 위의
여자와 마네킹. 이 둘은 모두'남에게 보이기 위한'이란 동일의 목적을 지
닌 '조형물'이다.
"각부 코어텍스 25g 주입."
잘라낸 피부의 틈새로 보형(補形)을 위한 특수젤이 삽입되자 의해 주름졌
던 피부가 팽팽함을 되찾았다.
"피부봉합."
의사의 손이 잘려진 피부를 의료용 풀*로 붙였다.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이
었다. 풀이 갈라졌던 피부를 임시로 붙이고 그 위에 신진대사 촉진기를 가
져다 대었다. 특수전극에 의해 활성화된 세포가 벌려졌던 상처의 틈을 완
전히 매꿔 내었다. 피부는 언제 잘렸던 적이 있었냐는 듯 흔적없이 말끔하
다.
"마취해제."
여환자의 머리 양옆에 놓인 스피커에서 인간의 귀론 인식치 못하는 초음
파를 발산했다. 마취제를 쓰는 마취는 그 위험성으로 인해 이미 5년 전 초
음파최면방식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최면마취상태에 있던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잘 됐겠지?"
그녀는 깨어나자 뜯어내듯 흰 가운을 벗어 재끼며 그것부터 물어 대었다.
흰 가운 밑으로 농염한 몸매가 돋보이는 고급 투피스가 드러났다.
"직접 확인하시죠."
의사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날듯한 걸음으로 단숨에
수술실을 나선 그녀는 거실에 놓인 것 중 가장 큰 것인 전신 거울 앞에 섰
다. 그 거울 속에선 익숙하지만 색다른 미인이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거울 속의 미인도 새로워진 얼굴 위에 만족의
미소를 띄웠다.
"만족하십니까?"
따라나온 의사가 수술용 고무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그녀는 의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을 확인하자 옆의 검은 양복의 사내 중 하나가 의사에게 크레딕 카드
를 꺼내었다. 카드는 거실의 조명아래 황금빛으로 찬연히 빛났다.
"말해두겠는데.."
그가 의사에게 카드를 막 건네기에 앞서 손을 멈추었다. 검은 옷과 선글
라스의 덩치들이 위협하듯 의사의 주변을 둘러섯다.
"저분은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 역시 저분을 모릅니다. 방
금 일은 기억에서 지우시오. 알겠소?"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카드를 의사의 손에 떨구었다. 의사는 휴대
용 단말로 잔액을 확인하고 카드의 금액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시켰다.
"됐습니다. 안녕히가십시요."
"흥!"
의사의 인사가 채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보디가
드에 휩싸여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의사는 안경과 마스크를 벗으며 피식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그의 수술실에서 나가는 인간들은 모두 3부류로 나뉘
어 진다.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나가는 부류, 지금
과 같은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도도한 뒷모습을 보이는 부류, 그리고 마지
막은 살아남지 못하는 부류.
의사는 가운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후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 렌 아라크네 님으로부터 음성메일이 와있습니다. >
HAC(Home Automatical Computer : 가사자동화 컴퓨터)가 음성메시지로 보
지 않은 메일의 유무를 알렸다.
"멜 열어."
< 발신자 렌 아라크네. 발신시작은 5시 38분. >
거실에 사근사근한 특유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급히 만날 일이 생겼어. 오늘 저녁에 8시까지 항상 만나는 거기로 와."
손님인가? 알선책인 렌이 그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대부분 손님의 소개,
즉 사업건이었다.
시간에 여유는 있었지만 따로 할 일이 없었기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걸치고 문을 나서자 쓰레기냄새가 섞인 퀴퀴한 공기가 그를 휘감
았다. 시정부도 포기한 이곳 슬럼가엔 쓰레기 청소차는 커녕 고장난 공기
정화 시설도 수리하려 하지 않는다.
"보안장치가동."
< 가동되었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어지럽게 발에 채이는 쓰레기들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을씨년스런
낡은 건물들이 양옆으로 솟구쳐 있다. 옛날엔 비즈니스 타운이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건물들은 하늘이라도 가려 보이려는 것으로 자신의 헛
된 영광에 대한 미련이 남았음을 풍기는 듯하다.
그 폐허의 그림자 밑으로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놈들은 망설이
고 있었다. 놈들은 쥐새끼처럼 힐끔 거리는게 전부였다. 그저 아무것도 하
지 않은 채 쥐구멍에 햇볕이 들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녀석들. 그들은 그렇
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시궁창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용
기란 요소가 필요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처럼.
"....."
그는 눈을 돌려 녀석들을 훑어보았다. 이곳의 전형적인 청소년 불량그룹
들이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먼저 물을 필요 없이 그들이 그를 찾아오는
이유는 두 가지. 강도 아니면 의뢰. 이번엔 의뢰라고 그는 판단했다.
"해 쥐!"
무리 중 가장 어린 소년이 대표나서며 그에게 말했다. 가장 귀염받는 무
리의 막내쯤 되는 듯 하다. 그래봤자 얼굴 못 생긴건 오십보 백보였다.
"돈은?"
"가져왔어!"
그의 물음에 소년은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녀석의 손에 쥐어진 꼬깃꼬
깃한 지폐들. 그들이 몇 달 이상 벌어 - 합법이든 불법이든 -을 모은 돈이
었다. 그런 노력의 결정체를 이 녀석에게 투자하기로 선택된 이유는 그래
도 가장 나이어린 아이에게 성형수술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겠다는 것이
었다.
그러나, 그들의 들뜬 마음들은 다음 순간 피식하는 비웃음과 함께 흘러나
온 그의 말에 싸늘히 가라앉았다.
"그런 껌 값도 안되는 걸로는 택도 모잘라."
"나, 나머진 나중에 벌어서 갚겠어!"
소년이 끝까지 매달지만 그의 말은 가차없었다.
"닥치고 꺼져!"
"이..!"
"그만해. 제이!"
발끈해 막 달려들려는 소년를 말리며 그중 리더격이 나섰다. 그래도 리더
라고 녀석들 중에선 제일 나아 보였다. 얼굴이나 관록 그리고 몸매 면에
서.. 리더는 여자였다.
"다 들었어. 전엔 나중에 갚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이야."
목소리에 B+. 성대를 조금만 손대면 a+급도 충분할 것 같군. 차라리 이정
도 라면 할만한 보람이 있는 소재로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까지는 듣지 못했나?"
"...."
그녀는 침묵으로 자신도 알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 년은 아직도 갚고
있다. 어글리들의 요강이 돼서..
"수술을 받고 싶으면 돈을 더 가져와!"
그는 녀석들의 한가운데를 헤치며 지나쳐 갔다. 거리를 나설 때면 늘상
격는 일이었다. 적어도 녀석들에겐 그는 추함과 혐오라는 절망이 지배하는
이 나락의 땅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탈출구의 하나였기에
파리떼 꼬이는 듯한 치기어린 녀석들의 찝적임은 한시도 거르지 않고 그를
귀찮게 한다.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야! 임마! 넌 뭐가 잘났어! 기술 좀 있다고 생색 내냐? 그러는 너도 같은
'어글리'잖아! 자기 얼굴도 못 뜯어고치는 돌팔이 주제에! 이 개자식
아!(Son of Bitch!)"
그 말에 그의 발걸음이 딱하고 멈추었다. 천천히 뒤돌아 서는 그의 손이
코트 주머니에서 나왔다. 일순 불량그룹들은 긴장했다. 특히 그 소리를 지
껄인 녀석은 표정이 거의 사색이었고 리더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도 굳은
얼굴로 나이프를 빼들었다.
"그래서..?"
그는 손에든 총구를 녀석들 쪽으로 향한 채 손가락에 힘을 가했다. 총구
로 투명한 물줄기가 뻗어나갔다. 녀석들이 기겁하며 물러났고 그들 발치의
바닥이 취익하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렸다. 염산이었다. 고농도의 염산은
한방울만 닿아도 살을 태우고 뼈까지 녹여버린다.
"못생긴 얼굴을 더 추악하게 만들어 줄까? 예쁘게 하는 것만이 성형은 아
니야."
"...가자!"
결국 리더녀석이 부하들을 끌고 물러났다. 그는 염산이 든 주사총(고압으
로 방출해 약물을 몸에 주입하는 주사기, 총의 형태를 닯았다.)을 다시 코
트주머니에 쑤셔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불법성형의사(不法成形醫師).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인간이 미(美)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라는 종이 발생했을
때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본능이다. 고대에는 다산과 건강의 상징
인 풍만한 여인이 미의 이상형이었고 중국 당나라 시대의 미인도들은 모두
하나같이 둥글넙적한 턱을 지녀 그것이 당대의 미의 기준이었음을 말해준
다. 서기 20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에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추
종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더러운 슬럼의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넉넉한 품 큰 옷
에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머풀러가 필수였다. '어글리'이기 때문이다.
못생긴 얼굴에 대한 자기혐오는 모든 어글리들의 공통적인 콤플렉스였다.
완벽한 사회복지가 실현되어 - 적어도 세금을 낼 수 있는 '시민'들에 한
해서는 - 빈부의 격차가 옛 말이 되버린 현재, 인류는 단 두 종으로 양분
되어 갔다.
뷰티(BEAUTY) 그리고 어굴리(UGLY).
다른 말로는 미형인종(美形人種)과 추형인종(醜形人種)이라고도 말했다.
이 두 중의 형성은 전세기 끝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세기말 열병처럼 퍼진
탐미주의(貪美主義)는 배우자의 선택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되었고 유유상종
(類類相從)이란 말처럼 미인들은 미인들끼리 어울려 자식을 낳았으며 그에
떨쳐져 나온 추인들은 추인들끼리 자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자
본과 정보의 독점에 의한 제 2의 암묵적 신분사회가 더해져 그 분화는 더
욱더 심화되었다. 그 자식들은 자신들의 부류속에서 배우자를 만나 유전자
를 섞는다. 결국국 '미'의 유전자는 대를 이어 계승되면서 인종을 창출하
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되어 만들어진 것이 '뷰티'와 '어글리'였다. 상류층
은 뷰티가 되었고 하류층은 어글리가 되어 버린것이었다. 하류로 내려갈수
록 그 미의 결여는 더욱 심해져 이 슬럼에선 중류정도의 얼굴조차 찾아보
기가 힘들어진다.
"여! 닥터!"
슬럼지구의 경계에 다다르자 구역관리순경이 그를 아는 척했다. 이 순경
은 뺏지 단 건달에 불과하다.
"또 데이튼가?"
"문이나 열어."
"딱딱하기는.."
순경은 그가 통행세조로 약조한 약을 건네주자 헤헤거리며 '미'와 '추'의
영역을 나누는 철책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엔 해
롱해롱 맛이 가 있을 것이다.
빛의 거리로 들어서자 잠시 눈이 부셨다. 이에 선글라스의 자동채광조절
기능에 의해 적당한 조도가 맞추어졌다. 렌즈너머로 호화찬란한 빛들이 색
색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밑에선 수많은 뷰티들이 그 늘씬한 다리를 뽐내
며 걸어다니거나 자기들만큼이나 날렵하고 멋들어진 차를 굴린다.
자신만만한 미소와 과감한 노출. 그것이 뷰티들의 특징이자 특권이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걸으며 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 비릿한
웃음을. 저 안엔 그의 손을 거쳐간 자도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라
서였다.
그와 반대로 주변의 뷰티들은 그를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혐오스런 벌레라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선 이방인이었
다. 슬럼에서도 다른 형태의 이방인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세의 홍해처럼 뷰티들 사이로 갈라진 길을 걸었다. 어글리라도 세
금만 낸다면 시민으로서 뷰티와 맞먹는 기본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 통행
과 거주이전의 권리 또한 그 권리 안에 포함되기에 어글리중 몇 안되는 세
금내는 시민인 그는 - 비록 수입의 대부분은 불법수입인지라 탈세가 당연
하지만 - 당당히 뷰티들의 사이를 걸었다. 물론 다른 어글리 녀석들이라면
이곳엔 나설 생각을 하는 인간도 몇 없을 터이다.
산책 삼아 한참을 걷다보니 약속장소인 고급레스토랑 앞에 당도했다. 다
가가자 멋드러진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나비넥타이를 맨 훤칠한 키의
웨이터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그를 맞았다.
"이런 더러운..! 어딜 들어와! 어서 꺼지지 못해!"
환영이 열렬했다. 그를 모르는 걸 보니 신참인 모양이었다.
"닥치고. 지배인이나 불러."
"이 어글리 자식이 어디라고!"
"나같은 어글리가 되고 싶나?"
웨이터의 이마에 주사총이 겨누어졌다. 급격하게 변하는 녀석의 표정은
웨이터의 얼굴근육이 잘 발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아이구! 닥터!"
소란스러워지자 그제서야 지배인이 튀어나왔다. 그 멋드러진 콧수염은 여
전히 잘 다듬어져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닥터 디! 이놈이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몰라뵌 겁니
다!"
지배인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고 웨이터녀석까지 머리를 숙여 사
죄하게 했다.
"따라오십시오. 렌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벌써 왔나?
디가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은 아직 몇십 분 여유가 있었다.
지배인이 그를 안내한 자리는 스테이지가 한눈에 보이는 특등 자리였다.
그곳은 디와 렌의 고정석이기도 했다. 돈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또 한바탕 했어?"
렌이 미의 여신도 울고 갈 듯한 미소를 지으며 디를 반겼다. 옆의 지배인
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해댈 만큼 렌의 미소는 뇌세적이었다. 디 역시
약간은 기분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지배인이 손수 그의
외투를 받아주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급하게 보자고 하다니. 아무리 특급 손님이라도 이
런 법은 없었잖아."
"미안.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 말이야."
쭉뻣은 콧날 아래 위치한 요염의 진홍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갔다. 최고급
포도주마져도 렌의 입술위에는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뭔데?"
"치.. 닥터는 여전히 차갑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아니면
'보스(both)'는 자기취향이 아냐? 요샌 잘 안아주지도 않고 말이야. 설마
날 두고 바람이 난 거야? 아 싫어. 정말!"
가슴에 손을 대며 눈을 흘기는 렌의 동작에 주변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눈빛과 동작하나로도 남자를 발정난 개처럼 사정시킬 수 있고
여자를 지리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마(魔)의 뷰티. 과연 2년 연속 '뷰티
오브 뷰티(Beauty of Beauty)(*)' 다웠다.
미의 정점(頂點), 역시 렌은 디,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다. 하지
만, 소재는 소재일 뿐. 디는 피그마리온(PYGMALION - 자기가 만든 상아
조각상을 사랑한 키프로스의 조각가이자 왕.)이 아니었다. 또, 그 누구에
게도 그런 감정 따윈 가져 본적이 없었다. 그의 가슴속엔 사랑이란 감정자
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듯하다.
보스(Both)라는 것은 양성(兩性)이라는 말이었다. 정확한 학술용어로는
간성(間性)이라고 불리며 남자, 여자, 게이에 이은 제4의 성별이었다. 자
녀유전부모선택권리법(*)에 의해서 자녀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게된 부모
들 중에선 자신의 취향이나 또는 자식에게 스스로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양성을 택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이
들 보스인데 중성적인 미모로 뷰티들 중에서도 빼어난 미인 많기로 유명하
여 한때 크게 유행했었다.
디는 렌의 가식된 연기에 조소로 답했다.
"별로 내키지도 않는 일 안하니까 살 것 같았을 텐데."
렌이 좋아하는 체위는 후배위나 식스나인. 섹스시 디의 추한 얼굴이 보지
않기에 이런 체위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것만 봐도 렌의 진짜 맘은 어렵잖
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디이기에, 그리고 사업파트
너이기에 랜은 닥터 디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소리야? 난 지금도 디의 품을 생각하면 몸이 달아오른다고."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줄께."
렌과 디는 항상 즐겨찾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시켰다. 스테이지에는 요즘
한창 잘나가는 아이돌이 출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러브송
이 소화작용에 어떤 영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저 귀엽고 깜
찍한 외모 때문에 기분 좋아한다.
노래가 끝나고 영상이 바뀌었다. 리얼홀로그램(실제와 거의 차이를 찾아
볼수 없는 고해상도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CG걸(Computer Graphic Garl -
3차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돌)이 미디어스페이스
(Media-Space - 텔레비전 및 방송이란 형식을 띄는 여러 엔터테이먼트 세
계)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을 몰아낸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가슴에 단 마크가 낯선 걸 보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신생 그래픽회사의
작품인 듯했다. 스캔들 없고 방송펑크 없으며 프로그램만 입력하면 못하는
것 없는 완벽한 엔터테이먼트. 그것이 바로 CG걸들이었다. 그녀들과 맞설
수 있는 살아있는 연예인은 뷰티들중에서도 거의 없는 편이다. 물론 렌은
소수의 그 맞설 수 있는 자들 중 하나다.
웰던(바짝 익힘)으로 조리된 타조고기(*)를 썰면서 렌이 이야기를 꺼냈
다.
"전부터 항상 묻던 건데 말이야. 오늘은 꼭 답을 들어야 겠어."
그 말에 고기 썰던 디의 손이 멈추었다.
"왜 닥터는 수술하지 않아? 역시 중이 제 머리 목 깍는 다는 거야? 아니면
실력없는 남에게 맡기기가 싫은 거야?"
"...."
디는 렌의 별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무시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 '제이드'란 여자 때문?"
그 한마디 이름에 디의 입에서 입맛이 사라졌다.
"무슨 소리야?"
디는 양손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물었다.
"오늘 내 뷰티센터에 한 여자가 찾아왔어. 그런데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드
라고. 참나! 한때는 그래도 뷰티 오브 뷰티였던 이가 그 꼴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어떻게 확인했지?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가명을 댔을 텐데.."
"나도 그 정도 발은 있어. 알아보니 제이드란 본명이 나오더라고. 그리고
닥터가 기뻐 할 만한 소식하나. 그녀가 성형을 의뢰해 왔어."
"크크크.."
디 자신도 모르게 배속으로부터 진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드디어!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27년..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았던 시
간이었다.
결국 디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어 재꼈다.
"후하하하하하!"
"디!"
그의 입밖으로 터져 나오는 광소에 렌이 당황했다. 하지만, 웃음은 멈추
지 않았다.
"크흐흐흐흐!"
그는 웃으며 생각했다.
운명의 신은 정말 잔인한 장난꾸러기다!
< to be continue >
@의료용 풀
의료용풀의 사용은 현대 의학 일부에서도 조금씩 사용되고 있다.
@ 뷰티 오브 뷰티(Beauty of Beauty)
매년 열리는 미스코리아와 같은 미인 선발대회의 챔피언, 성별, 기혼등 출
전에 있어선 어떤한 제한도 없다. 오직 얼마나 아름다운가 만을 심사함.
@ 자녀유전부모선택권리법
부모가 자녀의 유전적인 요소를 선택 할 수 있다는 권리를 명시한 법. 성
별 및 지능, 체모와 눈동자의 색, 키, 비만 등의 체형, 근시와 유전병 등
을 선택, 정제한다. 단 게놈클리닉에는 상당한 돈이 듬으로 옵션으로 몇
가지씩만 하는 것이 보통. 그나마 돈없는 어글리에겐 강 건너의 이야기다.
@ 타조고기
먹이를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력이 강한 타조는 미래의 식량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근육질이기에 그 육질의 양과 맛에서도 뛰
어나다.
<< Shadow Run >>
Track 1. Beauty Maker 2/3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
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31절)
기분이 좋았다. 간 효소의 분해량을 초과해 혈관을 돌아다니며 디의 뇌
기능을 마비시키는 에틸 알콜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디는 몽롱하지만 아직은 사고력엔 지장이 없는 상태로 길을 걸었다. 지저
분한 네온사인들이 슬럼지구의 밤거리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인다. 그
밑에서 진한 화장으로 부족한 부분을 가린 '정크뷰티(Junk-Beauty)'들이
손님을 유하고 있다.
정크뷰티..
말그대로 쓰레기 신세로 추락한 뷰티들이다. 몰락한 뷰티이거나, 어글리
에서 용케 수술을 했지만 잘못되어 재수술을 받아야 할 녀석들이 돈을 벌
기 위해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어글리들의 욕망과 열등감의 배수구로 벌리
는 창녀들이었다.
"오빠!"
"닥터!"
몇몇 그를 아는척하며 다가왔지만 디는 무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년들
도 그가 자기들 정도의 얼굴은 눈감고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든 디의 호감을 사보자고 아양을 떨어댄다. 몸을 줄테니 대신 수술해 달라
는 년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디에겐 메스를 드는 데는 돈이외는 것은
하등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저, 잠시만요."
또, 어떤 골빈 년인가하여 짐짓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부드러운 손이 디의
소매를 잡았다.
짜증나는군.
"뭐야?"
그네들은 특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전신을 가리는 길고 품 넓은 검은
옷. 가슴께의 십자 목걸이가 내온 불빛에 빨간 광택으로 반짝였다. 손에는
두꺼운 책이 들려있었다. 그것은 성경. 그녀들은 수녀들이었다.
"난 신 따윈 안 믿어."
디는 대뜸 그렇게 말하며 손을 뿌리쳤다.
종교란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정신적인 기둥이
다. 그건 가진 것 없고 기댈 것 없는 녀석들이 마지막으로나 비벼보는 언
덕인 것이다. 그런 흐잘대기 없는 것에 금쪽같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녀
석들은 한마디로 멍청이다. 디에겐 종교따윈 의미였다.
"저.. 조금만 제 말을 들어보세요.."
디의 곁에 선 수녀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다른 수녀들처럼 어글리의 추
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장님이었다. 싸구려
인조의안조차 마련할 돈도 없는 모양이다.
"비켜."
디는 장님수녀를 가볍게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때 뭔가 번쩍였다.
"큭!"
어깨가 타는 듯이 아팠다. 눈앞이 일그러지듯 흔들리며 올라갔다. 외마디
의 소리들이 늘어붙는 듯히 들려왔다. 레이져 붉은 빛의 화살은 정확히 디
의 몸을 앞에 뒤에 관통해 지나갔다.
디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꼬끄라지고 있었다. 무릎이 꺽이고 배와 가슴이
뒤따른다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정신이 몰롱 해져갔다. 아픔은 없다.
통증마저 느낄 새가 업는 것이다. 디는 옆으로 돌려진 얼굴앞으로 무언가
가 다가옴을 막연히 보았다.
십자가..?
불이 꺼져 갔다.
그들이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겠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디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화를 내었다.
[왜 그런 가당치도 않은 고집을 피우는가?]
[비용도 동문회가 다 댈 것이고, 최고의 기술진이 시술해주겠다는 데 뭐가
불만인가?]
그들의 제안에 불만은 없었다. 단지 디는 자신의 얼굴을 바꿀 맘이 없었
을 뿐디다.
바꾸면 못 알아볼 것만 같았다. 자신을 버린 그녀가, 버림받은 그녀의 아
들을.. 물론 현재의 그는 어머니를 닮지 않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의 어
머닌 예전의 얼굴이 아닌 것이다.
[추하기 그지없는 어글리를 우리 명예스런 대 S대 의학부 졸업생명단에 올
릴수는 없네! 자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마지막 수단을 강구할 수밖
에 없어!]
마지막 선고.
그들은 디를 제적했다.
불이 켜졌다.
"거기서지 못해!"
"와하하하하!"
"꺄르르르르!"
"니녀석들!"
뭔가 왁자지껄한 소리와 톤높은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내 디의 고막을 자
극해 왔다. 디가 눈을 뜨자 앞에 보이는 것은 지저분하고 노랗게 변색된
벽과 천정이었다. 그 벽한 켠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는 벌거숭이의
그림하나가 덩그렇히 걸려있다. 성화였다. 그는 성화의 예수가 내려다 보
는 간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큭!"
디는 상체를 일으키려다 오른 어깨로부터 퍼져오는 극심한 통증에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오른 어깨엔 흰 고형제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누가 한 깁스 솜씨인지 형편없었지만 팔을 고정시킨다는 기능은 그럭저럭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어! 저 아저씨! 눈 떳다!"
"깻다! 깻어!"
"수녀님!"
다시 한번 더 소프라노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가 누워있는
침대는 아이들로 포위되었다. 추한 얼굴의 어글리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의 침대 옆에 놓인 디의 물품들이 신기한 듯 만지며 장난쳤
다.
"아저씨! 이거 뭐에요?"
"바보야! 그거 안경이라는 거야!"
"아냐! 썬글라스야!"
"와! 이거 봐. 물총이다!"
"쏴볼까?"
아이하나가 물총을 디에게 내밀었다. 디는 자유로운 왼손을 내밀어 재빠
르게 주사총을 빼앗았다. 어차피 DNA인식 기능이 달려 있어서 디가 아니면
발사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총구가 자신을 향하는 것은 기분 나쁘기 그지
없었다.
"만지지마!"
"으아아앙!"
신기한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가 빽빽 울기 시작했다. 연쇄작용으로 이어
다른 애 몇도 같이 울음을 터트렸고 몇몇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군.
디는 귀를 틀어막으며 다시 누워 버렸다.
그 소동은 수녀들이 달려와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여긴 어디지?"
애들을 내 보낸후 디가 수녀들에게 물었다.
"고아원이예요."
그 장님수녀가 대답했다. 그날 밤 디를 붙들었던 수녀였다.
고아원. 성당이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어글리들의 복지시설이다. 뷰티들
은 부모가 없다해도 이름부터 다른 최고급 국립양육기관에서 먹이고 재워
준다. 아름다운 얼굴자체가 특권이자 재산인 것이다. 하지만, 어글리들은
시당국이 어디서 나고 죽어가든 신경도 쓰지 않기에 이렇게 종교단체가 사
비를 털어 돌보는 곳 밖에는 복지시설이 없다. 그나만 이런 손길조차 해택
받을 수 있다면 그건 행운아다. 대부분 버려져 죽어가거나 스트리크 키드
가 되어 버린다.
"어린 천사의 둥지죠."
"웃기는 군.. 천사들은 저렇게 못생기지 않아."
디는 장님수녀의 말에 콧방귀를 꿨다.
고금을 막론하고 천사의 이미지는 극치의 미와 순결함이었다. 타락천사조
차 요염하고 위험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지는 마당에 추악한 천사가 그려진
미술작품은 어디에도 없다. 거리의 아이들을 집 없는 천사라 부르던 시대
는 반어법이 되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갑자기 습격을 받으셨어요. 눈앞에서 레이져광선이 오른 어깨를 뚫고 지
나갔다고 하더군요."
오른 어깨.. 젠장..
디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편으론 안심했다.
조금만 밑이었으면 바로 겨드랑이부분일터였다. 팔의 신경이 모이는 곳,
그곳을 당했다면 메스를 놔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위험했었다.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디의 머리 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가 왜 나를...? 미숙한 녀석이라 죽이려다 실패한 건가? 아니면 의도적
으로 상처만 입힌 것인가...?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 무리하지 마세요!"
디가 몸을 일으키자 수녀들이 그를 말리려 했다.
"됐어! 이런곳에 있다간 오히려 상처가 덧나!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하겠
어."
"그,그러시다면야.."
그의 말에 더 이상은 말리지 않고 대신 디를 부축해 주려 했다.
"됐어!"
디는 뿌리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다. 오른팔이외의 몸은 그대로 움직
일 만했다.
"그리고 이건 날 구해준 대가야!"
돌려받은 물품중에서 지갑속의 크래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뇨!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수녀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헌금으로나 해 뒤!"
디는 침대위에 카드를 던지고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저..이보세요!"
"모든 일에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야!"
디는 그렇게 읖조리며 도망치듯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디는 스스로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조금은 흥분되리
라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골동품 시계의 가장 짧은
바늘이 정확히 세 개의 기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드디어 그들이 도착했
다.
모니터로 렌과 검은 정장차림의 여자 한 명의 모습이 보였다. 둘은 보디
가드들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오십시오."
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맞았다. 예의는 갖추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평범한 얼굴의 그녀는 말없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
"그럼 맨 얼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
디의 말에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눈짓을 하자 보디가드들은 알아서 다
밖으로 나가주었다. 렌은 소개자로서의 마치 당연한 권리라는 듯 그 자리
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디는 렌의 눈가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을 포착
했다. 흥분할때의 렌의 버릇이었다. 자신이 더 아름답다는 우월감 그리고
남의 치부를 보며 그 부끄러워하는 광경을 기대하며 랜은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자신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던 인조피부의 가면을 벗겨내었다. 그 안은 가관이었다. 웬만한 어글리
도 저리 갈 만큼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예전부터 많이 쓰이는 표현의 하나인 '얼굴이 무너졌다'고 하면 딱 알맞
을 터였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란 자연스런 미의 결손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던 무리한 성형수술의 결과였다. 고이며 높이 오른 수위가 한번에
터져 나오면 그 홍수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나는 법이었다.
디는 얼굴골격의 변형도 체크와 피부노화도 등의 몇가지 수술에 필요한
사항을 검사했다. 온 신경을 다 쏟아 아주 정성 들여 정확히 체크했다. 결
과도 엉망이었다.
"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건 상당히 심하군요. 아직도
얼굴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디의 말에 다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겁니다. 그 어떤 성형의보다도 더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는 당신을.."
"칭찬 송그스럽군요."
"할 수 있나요?"
디는 간단히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그녀가 간단히 요구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주세요."
"여전히 욕심쟁이시군요. 하하."
"여자는 욕망의 덩어리죠. 무린가요? 데빌핸드(Devil hand)?"
'악마의 손'. 그녀는 뷰티사회에서의 디의 별명까지 들먹이며 교묘히 그를
자극했다. 그녀의 말에는 한마디가 감추어져 있었다.'당신 솜씨론..?'이라
는..
디는 미소지었다.
"당연히 손님이 원하시는 데로 해드려 야죠."
"좋아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려 했다.
"아뇨. 됐습니다. 보수는 수술이 끝난 후 한꺼번에 받도록 하죠. 맘에 들
지 않으시면 안 주셔도 됩니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전 이 짓 하나로 먹고 사니까요."
"맘에 들어요."
"대수술이 될 예정입니다. 한번에 하기는 힘드니 얼굴 골격세포와 밑 표정
근세포, 피부세포들을 배양해서 2차에 걸쳐 차례로 교정 후 이식하겠습니
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죠. 며칠 안 걸릴 겁니다."
오늘은 일단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녀가 먼저 돌아가고 홀로 남은 렌이 디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그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
는게 가능해?"
"내가 허튼 소리하는 거 봤어? 내가 저번에 말했지. 그녀를 '최고로 아름
다운 얼굴'로 만들거라고. 그녀는 내 최고의 작품이 될거야."
"에이.. 설마..."
렌은 끝까지 못 믿겠다는 얼굴을 지었다.
"참! 전에 습격 받은 건 어떻게 됐어?"
"끄덖없어. 아직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상처는 다 나았으니까."
"그래? 다행이야.. 잘 있어!"
렌은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후후후!"
디는 차가 떠나는 것을 모니터로 보며 웃음지었다. 그리고나서 이를 악물
었다.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얼굴은 당신을 닮은 그대로 이것만. 기억에서조차 삭제해 버릴 만큼
난 당신에게 하찮은 존재입니까? 겨우 그것밖에 안됐단 말입니까?"
디는 그밖엔 없는 곳에서, 그밖엔 듣지 못하는 말을 읖조렸다. 그밖에 이
해치 못할 말을.
디의 혈압이 상승했다. 숨막힐듯한 살의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증오가
샘솟았다.
안돼! 안돼! 안돼! 지금은 참아야돼! 감정만으론 아무것도 해낼수 없어!
이성으로서 이겨야해!
디는 자신의 마음을 추수리려 했다.
어굴리면서 뷰티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과대에, 그것도 가장 높은 경
쟁률을 자랑하는 성형외과에 학적을 올릴 수 있게 한 것은 그의 강인한 인
내심과 끊임없는 노력때문이었다. 뷰티들의 경멸어린 시선과 조롱을 참으
며 갈무리해 녀석들의 위에 올라서는 것으로 그는 되갚았다.
그딴건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버린 그녀에 대한 복수심하나
로 그는 이제까지의 모든 인생을 바쳐 왔다.
그것을 대가처럼 이젠 복수의 시간이 돌아와 있었다.
< to be continue >
<< Shadow Run >>
Track 1. Beauty Maker 3/3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
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31절)
< 지정되지 않은 대상이 문앞에 서있습니다. >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디는 뜻밖의 메시지에 고개를 돌렸다. 귀찮
게 하는 놈들을 막기 위해 디는 입구에 방범시스템을 설치했다. 어글리 중
디가 지정한 인간들이 아니면 손님 대접은커녕 따끔한 전기충격과 함께 비
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이 원칙대로일터였다.
손님도 아니고 공격대상도 아닌 대상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화면에 비춰"
"저..."
화면이 바뀌며 문밖의 cctv모니터화상이 보여졌다. 검은 옷으로 몸을 감
싼 수녀였다. 기본 시스템상으로 수녀복은 공격대상이 아닌 것이기에 디에
게 질문을 해온 것이었다.
디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감긴 양 눈. 그 장님수녀였다.
< 어떻하시겠습니까? >
저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온 거지..?
디는 그녀가 참 용하다 생각되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이 슬럼지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인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다니. 이곳은 차 없이 걸
어 출입하다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그런데도 찾아
오다니 정말 무모한 년이란 생각도 들었다.
"문열어줘라."
< 예. 마스터! >
디는 일단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디는 그녀가 귀 위에 자은 몽당연필모양의 물체를 꽂고 있
는 것을 보았다. 시력보조 장비로 소형카메라로 인식되는 영상을 전기신호
로 바꾸어 뇌에 미약하나마 시각정보를 전해주는 장치였다. 가장 값싼 장
비인데다 충전용이라 전기료만 드는 고물이었다. 그래도 그것이라도 있었
기에 여기까지 찾아 올 수는 있었을 터였다.
"무슨 일이지?"
"이, 이거요."
장님수녀는 머뭇거리더니 내게 디에게 내밀었다.
그가 준 크레딕 카드였다. 그걸 보고 디는 미간을 찡그렸다.
겨우 이것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날 만나러 온 건가?
"이건 받을 수 없어서 돌려드립니다."
수녀가 정중히 말했다.
"요샌 헌금도 돌려주나?"
"죄송합니다.."
"흥."
디는 카드를 받았다. 자기가 싫어 안 받는 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고로 종교인이란 예나 지금이나 꽉막힌 녀석들뿐이군..
디는 문득 그녀를 놀려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근데 당신은 확실히 신의 축복을 받은 몸인 것 같군. 눈이 안보이니 매일
어글리 아이들의 그 추한 상판을 보지 않아도 될테니까."
"추한 것은 인간의 기준 일 뿐. 주님이 지으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
다운 것입니다."
바로 수녀라는 직분에 충실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거야 이상이라는 헛지껄임이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분명히 존재하는 현
실이야. 나면서부터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
해. 그 불공평함이 신의 뜻인가? 신도 아름다운 애들을 더 어여뻐할걸?"
"우리는 모두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어버이 앞에서 우리는 평등
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엔 차별이 없는 것처럼 요."
"웃기지마!"
난 버럭 소리쳤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후후후! 그딴 신파조는 이미 물건너 간지 오래
야! 자기가 낳아놓고도 필요 없다고 내버리고 아예 귀찮다고 배속에서 지
워버리는 게 이 세상이야! 웃기지마!"
"....."
그녀는 침묵했고 디는 후회했다. 자신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사연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
이번엔 디가 입을 다물아야 했다.
"볼일 끝났으면 가봐!"
디는 손가락으로 출입구를 가리켰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도하세요. 주님께서 힘이 되어 주실겁니다."
그녀는 여운처럼 그 말을 남긴 채 돌아갔다.
1차 집도가 시작되었다. 수술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녀의 깍이고 겹질러
진 얼굴 뼈대를 프로텍트로 바로잡아 교정하는 2차 수술에 앞선 예비준비
였다. 그래도 범위가 넓었기에 시간은 꽤 걸린 편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보통 몇십분 안에 끝나는 수술이 이번엔 배가 걸린 것이다 그것도
2차에서 더 걸릴지도 몰랐다. 뼈대가 굳기를 기다려 얼굴근육들을 완전히
새로 배열해야만 하는 대수술이었다.
"벌써 예뻐지는 것 같군요."
그런대로 형태는 갖췄다는 디의 말에 그녀가 웃었다.
그녀를 보낸 후 홀로남은 렌이 디를 불렀다.
"디!"
렌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녀가 핸드백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
녀의 손엔 작은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런 돌연한 렌의 행동에 디가 긴장했
다.
"난 용납할 수 없어!"
렌도 긴장했는지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총구의 끝은 여전히
디를 겨누고 있었다.
"뭘 말이야?"
디는 침착하게 맞섰다.
"제이드, 그 여자..! 내가 봐도 예뻐지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어. 확실
히 전설의 뷰티더군! 말해봐! 정말 그 여잘 나보다도 더 예쁘게 할거야?"
"그때 내가 저격 당한게 니가 사주한 일이었군."
렌이 들고 있는 소수경의 레이저권총. 레이져 답게 살상력은 약하지만 머
리나 심장같은 주요 부위를 맞는 다면 충분히 목슴을 끝낼수 있는 무기였
다, 그리고 디를 저력한 것과 같은 무기이기도 했다. 디는 이제서야 명확
해진 의혹에 혀를 찼다.
"경고였어! 수술하지 말라는! 그것도 봐 준거야! 완전히 죽여버릴수도 잇
었다고! 넌 나이외엔 다른 사람을 손대면 안돼! 너의 기술은 내 꺼야!"
렌이 그 요염한 입술로 추악한 마음을 내뱉었다.
"참나!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내 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오직
나만의 것이지. 그만하고 총 치워."
디는 어깨를 으슥이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 소파 위에 털썩 엉덩이를 떨어
트렸다.
"아니, 난 알아! 디는 절대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다는 거!"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건 오직 나야! 앞으로 예뻐야 할 사람도 바로 나고!"
"그러니까 내가 말을 안 들으면 날 죽여서라도 너보다 그 여자가 더 예뻐
지는 걸 막겠다? 이거냐?"
"그래!"
간단명료, 단순무식한 논리였다.
"후..."
디는 길게 한숨 쉬며 미소지었다. 예의 비웃음이 섞인. 그가 차분한 어조
로 말했다.
"틀렸어. 다음 뷰티 오브 뷰티 대회에서도 그 여잔 너와 경쟁할 수가 없을
거야."
"왜지?"
"아무리 참가에 제한이 없다지만 참가할 수 없는 부류도 있거든."
"그게 뭔데?"
"죽은 사람이지! 죽은 자는 산자의 영역에 간섭할수 없거든 그게 세상의
'법칙'이야."
기계가 작동했다. 그리고 렌은 다음 대회엔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한가지 물어도 될까?"
"아.. 예.."
고해실 커튼너머로 수녀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저 좁은 창문 너
머론 그 장님수녀가 있었다.
"음.. 뭐라고 부르면 되지?"
막상 디는 자신이 그녀의 이름도 모른 다는 사실을 깨달고 먼저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마리아라고 부르세요.."
마리아 고아원의 마리아.
가장 흔하고 널리 알려진 성모의 이름이군.
"선생님은..."
"그냥 닥터라고 불러.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예.. 고해하러 오셨나요?"
"그런 셈이지."
"어떤 죄를 지으셨나요?"
"살인."
디의 짧고 가벼운 대답에 수녀가 움찔 놀라는게 느껴졌다.
"...저, 정말이신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정당방위였지. 그리고 또 할 지도 모르고. 이번엔 의도적인 연출이 되겠
지만."
"제발 그만두세요.! 그리고 회계하세요.! 주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살인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어요.! 생명은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디의 말에 마리아수녀가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생명과 그 생명을 소멸시키는 행위인 살인에 대한 일반론을 펼치며 호들
갑떠는 그녀. 디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걸 정말 아쉬워 했다.
디는 빈정임을 함껏 담아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군요. 잘알겠습니다. 수녀님!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자식을 죽
인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인 자식..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입니까?"
"그건 둘 다...."
디는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말없이 고해실의 문을 나섰다.
"그분을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세요."
끝머리의 수녀의 말이 디의 귓가에 머물다 희석 돼갔다.
디는 천천히 집도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초침
움직이는 것이 꼭 시침처럼 느껴졌다.
"잘 됐나요?"
성형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깨어나 처음 내뱉는 말은 항상 비슷한 했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울 속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환생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반색했다. 당연했다. 그녀는 디가 심혈을 기울인
최고의 역작이었다.
"얼마죠? 얼마든지 말하세요."
그녀는 달라면 목슴이라도 다 줄것같은 얼굴로 디에게 물었다. 하지만 디
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보석으로 지불하까요? 하니면 채권?"
그녀는 흥분해 마구 말을 주체못하고 있었다.
"그런 듯이 아닙니다. 잠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분과 몇분정도만 차
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이면 족합니다."
"그러죠."
디의 말에 그녀가 쾌히 승낙했다. 자리를 옮겨서 디는 그녀에게 차를 대
접했다.
"안에 거울이 많군요. 거울을 모으시나 보죠?"
어글리가 자신의 추한 얼굴이 비쳐보이는 거울로 응접실을 도배하고 있다
면 확실히 신기한 일이었다. 혹 그가 자학의 취미가 있거나 정신구조가 특
이하지는 않은지 하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자신이 만든 차맛을 음미하고 나서 디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해보세요."
"한 어글리 소녀가 있었습니다."
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소녀는 다른 모든 어글리들이 그러하듯히 뷰티가 되는게 꿈이었습니
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죠."
아직까진 무슨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글리 소녀에겐 성형수술에 필요한 그 큰 돈을 벌 방법이 업었
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래도 건강한 몸뚱아리 하나뿐. 수술비는 몸을
판다해도 일평생을 벌어도 모자르죠. 그래서 소녀는 한가지 생각을 해냈습
니다. 몸을 팔기로 한 겁니다. 정확힌 장기를 팔기로 했죠. 물론 소녀 자
신의 장기가 아닌 자기가 임신한 아이들의 장기였죠. 뭐, 요즘엔 값싼장기
복제기술이 개발되서 물건너 가버린 일이긴 하지만요. 소녀의 아기들 장기
는 아주 비싼 값에 팔려나갔습니다. 심장, 두뇌, 안구, 신장, 간, 폐등등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덕분에 소녀는 단 3년만에 성형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모았죠."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런데 성형수술에 걸림돌은 뱃속에 든 4번째 아이였습니다. 당시 7개월
째. 낙태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죠. 건강상 안좋으니까요. 어쩔수 없이 그
녀는 조기유도 분만으로 뱃속에서 그 아기를 끄집어내고는 아기를 둔 채
병원에서 총총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후 소녀는 최고급 성형수술을 받고
뷰티 오브 뷰티에 올라 온갖 찬사와 시선을 한 몸에 받았죠. 꿈을 이룬 겁
니다."
그녀의 손에 든 찻잔이 천천히 차접시 위해 놓여졌다.
달그락.
그 소리가 냉랭히 주변에 울려퍼졌다.
"이번엔 남은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기는 보육시설로 보내져 그곳에
서 자라났지요. 어머니에게 받은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머리와 추
악한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었고 천재적인 지능을 인정받
아서 어글리임에도 예외적으로 학교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
지만, 소년은 항상 궁금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요.
아이는 청년이 되어 의학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쯤 아이는 알게되었죠.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대해서.. 그후 아이는 의대에서 쫓겨나 불법성형이
나 하면서 먹고살게 된 겁니다. 언젠간 수술 부작용으로 고생하게 될 어머
니를 자신의 손으로 낫게 해드릴 날이 올거란 확신을 가지고."
"...."
정적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제이드는 시선을 내리깐 채 찻잔의 스푼
만을 돌렸다. 스푼이 부딕치는 맑은 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쳤다.
"그 이야기 누구에게 한 적 있나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택지 A와 B...
그녀는 전자를 택했다. 디도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디의 가슴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조금이나마 적어도 마음 한구석에
선 후자 '..그 아이는 어머니를 미워할까요...?' 이런 질문을 택해주길 바
라고 있었던 것 디였다.
"아무도.."
"그렇군요."
단도하는 듯함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늘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탁자 밑
으로 들어갔다. 핸드백 속으로 들어간 그녀의 손이 스위치를 눌렀다.
곧 디는 신호를 받고 안으로 달려들어온 그녀의 경호원들에 의해 둘러쌓
인 채 마지막 차맛을 음미하는 신세가 되었다.
"먼저 일어나야겠어요.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를 뜨려했다. 경호원들의 대장쯤에게 귓속말로
모종의 지시를 내린 채. 고개를 끄덖인 녀석은 디를 돌아섰다. 장갑을 낀
손에 쥐어진 한 개의 총구가 디의 내 관자놀이에 닿았다. 장갑을 낀 것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는 다면 거짓이겠죠. 자기 환자
로 온 어머니를 수술도중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말입니다. 하
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디는 떠나가는 그녀의 등에 대고 말했다. 마지막 기회였다.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망설여졌을 뿐이었다.
"흥."
그녀는 멈취서는 기색도 없이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끝났다.
디는 맘을 굳혔다.
"정말 매정하시군요. 이거 아십니까? 유전이라는 것을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칙'입니다."
다음순간 빛이 쏘아졌다. 음성키워드입력에 따라 작동된 최대출력의 레이
저 메스들이 수술실을 뛰쳐나온 것이다. 수술실에서 거실로 통하는 유리창
을 통과한 빛의 칼들은 응접실로 들어온 후 벽의 가득 매운 거울들에 요란
히 반사되면서 그 교묘한 각도에 따라 디가 앉은 자리만을 제외한 모든 공
간을 난도질했다.
"아..."
검은 사내들과 디가 만든 최고의 걸작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한 채 그대
로 벌집이 되어 버렸다. 레이저 광선으로 뚫린 지라 피도 나지 않아 주변
은 마치 쓰러진 마네킹들로 가득 매워진 것 같다.
렌과 어머닌 한가지를 잊고 있었다. 이곳은 디의 홈그라운드. '슬럼'과
'불법'이라는 리스크를 앉고 있는 그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장치 하
나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이 아닌
다른 녀석에게 그런 것을 알려줄 일도 없었다.
디의 수술실에서 나가는 3분류중 마지막 하나는 제발로 못 걸어 나가는
자들인 것이다.
"경찰에 연락해라."
<예! 마스터!>
숨겨진 CCTV로 촬영된 영상이 디의 정당방위를 말해줄 것이었다.
디는 제이드의 시신으로 다가가 덩그러히 잘린 머리통을 집어들었다. 렌
과 제이드는 한가지를 더 모르고 있었다. 그가 말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
의 의미를.
디는 제이드의 머리를 탁자위에 놓은 후 표피를 잡아 뜯었다. 그 밑에서
위에 덮힌 눈부신 아름다움만큼이나 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
건 디의 현재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아들을 닮은 어머니의 얼굴. 디가 맘속
으로 상상하던 그리고 수없이 꿈에서 보아오던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이었
다.
자식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
의 얼굴'이다.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인지는 몰랐다. 디는 그저 그쪽으
로 가도 싶었다.
성당옆 고아원 한 켠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 속엔 마리아수녀도
있었다. 그녀는 어글리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며 웃고 있었다.
순간 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름다워..!
디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햇살이 마치 천사나 성자의 후광처럼
역광효과를 내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저 디의 마음에 그 모습들이 진심
으로 아름답게 보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그리고 그 속의 마리아 수녀가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였다. 찬란
히 빛나고 있었다.
이상했다.
뷰티인 마리아는 몰라도 왜 어글리인 아들까지 이처럼 어여쁘게 보이는
거지? 내 정신상태가 좀 불안한 게 아닐까? 아냐. 좀 피곤할 뿐이야.. 그
래. 그럴지도..
디는 그렇게 자위하듯 생각하며 고개를 털듯히 내저었다.
"닥터..."
문득 그녀가 디의 출현을 알아채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안녕..?"
디가 인사했다.
그녀는 잠시 아이들을 다른 수녀에게 맡기고는 디쪽으로 걸어왔다. 그녀
는 구석의 벤치로 디를 데리고 갔다.
"어쩐 일로..."
"그냥.그런데 희한하더군."
디는 화제를 돌렸다.
"뭐가요?"
"잠시 저기서 뛰노는 아이들과 당신이 이상하게 예쁘게 보이더라고. 마치
아프로디테와 그 주변을 뛰노는 큐티트들 같다고나 할까? 어굴리여신과 어
글리 큐피트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데도 말이야."
"웃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웃는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예쁠테니까요."
마리아 수녀는 간단히 디의 궁금을 자기식으로 정의했다.
"그런가..? 웃기 때문에 예쁘다라.. 그럼 당신은 아이들을 웃게하는 사람
이니. 당신이 그 미를 만들어낸 것인가?"
그때쯤 입구 쪽이 시끄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
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고아원 안으로 뛰었다. 제복입은 괴한들의 난입
에 아이들이 소리질렀고 그 속에서 그은 정확히 디를 향해 쇄도해 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군. 그저 말 한마디 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디는 천천히 일어났다.
경관들이 디의 양옆에서 팔을 잡고 그의 손목에 자력식 수갑을 채웠다.
"당신을 시체훼손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과 변호사를 선임할 권
리가 있으며..."
단지 유일한 친자이기에 자신의 것이 될 어머니의 유체를 음식쓰레기 분
쉐기에 넣어 잘게 썰었다는 것이 디의 죄명이었다. 디는 그저 전설의 뷰티
를 원료로 한 비료를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욱더 아름다운 꽃
이 필지도 모르기에..
디는 고아들과 수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우왁스런 손길에 끌려나가
차에 태워졌다.
투명한 유리창너머로 마리아수녀의 얼굴이 있었다. 불안과 슬픔을 머금은
것이 이상하게도 디에겐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디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냈다.
그녀야말로 뷰티메이커가 아닐까?. 나같이 썩어 없어질 살덩이를 주무르
는 자가 아닌.. 어글리 아이들을 아릅답게 변모시키는.. 참되고 영원한 미
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뷰티메이커..
디를 태운 경찰차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그녀로부터 멀어져 갔다.
< Track 1. Beauty Maker Ou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