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눈물아롱 아롱 피리불고 가신 ~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서정주의 “귀촉도”란 시는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정수리,
어쩌면 이렇게 처량하고 애 간장이 녹을 것 같은
정도의 슬픔의 정수리위에 있는 귀촉도
눈물아롱아롱 이모습은 진달래 피는 봄날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날
부부간의 인연을 마감하고 저승길로 가는
꽃상여에 요령소리 구슬픈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잘라 신을 삼아줄걸]
[차마 아니솟는 가락 눈이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
이 부분은 무어라 형용 할 수 없는 동양의 애상적 정조, 슬픔의 백미다.
이 시를 접하면 어느 이른 봄날 간다는 말도 없이
하늘로 떠나버린 사람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살아 생전에 만날 때 인연의 기쁨보다
헤어질 때의 슬픔이 더한 고통인 것은 누구나 아는 부지의 사실이다.
그 이별이 특히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어 지는 이별이라면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우리 고시에 이런 애상적인 시가 많은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숱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온
역사속에서 우리 서글픈 민초들의 삶이 한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아있어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귀촉도는 뜻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불교적인 싯귀들을 보며 시인의 마음속에 녹아있는
서방정토나 극락으로 해석하면 될 듯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가 말하듯이 시기적으로 봄날이다.
죽은 님에 대한 그리움이 피 빛으로 물들고 두견새(뻐꾸기)의
피울음으로 진달래가 피었다는 전설이 말하듯이 진달래와
두견새는 서로 시기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지 만
진달래는 4월초에 피고
두견새는 진달래가 지고 난 5월에나 오는 철새라서 시기적으로 둘은
동반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은 우리 시를 보면 이런 오류가 나는데,
시에서는 문법이나 문자의 오류를 따질 필요는 없다.
왜?
시인은 세월을 넘고 모든 현실을 초월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두견새올날을 기다리며 ~
전윤희의 옛시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