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라희 독창회
음악평론가 정순영
오페라를 해석할 때, 작품의 희노애락 심지어 공포심까지 표현하려면 남다른 성악적 기교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천성적인 목소리도 뒷받침되지만 곡의 부분적 해석에 맞는 표현방법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악가 휫셔 디스카우는 “예술가곡과 오페라에서 소리의 미적인 효과도 중요하지만 가사에 맞는 적절한 색채를 내지 못하는 성악가는 연주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8월 4일 영산아트홀에서 있었던 소프라노 김라희 독창회는 드라마틱한 리릭 스핀토의 강점을 살려 대사에 필요한 색채감을 주었고 청중이 함께 공감하는 감성적인 표현과 가창법이 어우러져 음악적 매력이 강화된 연주였다..
1부 첫곡으로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에서 첫곡으로 <그를 본 후로>는 피아노(정태양)의 반주로 차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저음과 고음을 넘나들며 소박하고 애티있는 낭만적 신비를 유도한다.
<2. 그, 가장 고귀한 남자>는 전곡과 대조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힘찬 바이브레이션과 고음역의 발성이 특성적이며 피아노반주와 밀착된 조합을 이룬다. 특히 <4.내손에 낀 반지여>에서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가창력을 보여주며 서정적이고 애수에 젖은 곡의 내면성을 로맨틱하게 전달했다.<6.다정한 남자, 놀라며 나를 보네>는 우울한 분위기의 가사가 시종 떠다는 듯이 계속되며 리릭 소프라노다운 감미로움을 안겨주었다.
독일에서 메조를 하고 귀국해서 소프라노를 한 그녀는 성역대가 남다르다. 가사의 표현력도 정열적이고 벨칸토 창법도 생동감을 준다. .
쿠숑<라일락의 계절>에서 하향하는 선율이 피아노와 고른 응집력을 주며 더욱 아련하게 풀어가는 서글픈 가락과 잔잔한 가사는 미묘한 뉘앙스 마저 남긴다.
후반부의 첫곡, 마스카니니 <경배드리세 신은 죽지 않았다>는 오르간(서지원)의 시작으로 종교적 색채가 물씬 풍기며 피아노와 응축된 화음색이 역동감을 준다. 무대에서 무릎끓고 노래하는 그녀의 연기력에서 캐릭터에 능통한 프리마돈나 기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님도 아시잖아요>는 곡풍의 진가를 보듯, 호소력있고 애절한 감정표현이 설득력을 주며, 리릭적 요소가 짙고 고음의 가사 전달에서 노련함과 간절한 메시지를 준다.
피아니스트(정태양)의 “간주곡” <from the opera ‘Cavalleria Rusticana’>는 귀에 익숙한 곡이라 분위기를 전환한 무대로써, 넓은 도약음과 다이나믹의 변화가 자유롭게 진행되는데 특유의 평온함과 슬픈 분위기가 교차된 곡의 이중성을 리얼하고 열정적으로 표현했다.
푸치니<어느 개인 날>은 강렬한 서주부의 출발이 묵직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부의 등장도 충격적이지만 마치 메피스토 펠리스 여행 묘사처럼 급작스런 템포 변화로 긴장감마저 준다. 파워풀하고 감정이입된 가사전달에서 뛰어난 가창력과 곡의 해석을 읽을 수 있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아! 나는 당신의 입술에 키스했네 >에서 모처럼 소품이 등장하는데 오페라의 연기에 강한 김라희의 무대 제스츄어가 한층 돋보인 피날레 무대였다. 싯적 정서의 표현이 고담적이고 템포의 난이함에도 거침이 없었고 이번 연주회 콘셉처럼 그녀의 체험담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져, 한층 대중적이고 가사의 멋이 풍성했다. 고음에서 저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드라마티코 리릭 스핀토 소프라노로서 정상에 선 오페라 가수의 역량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
이곡은 한층 청중의 애착을 준 무대로서 노래와 연기가 실감있게 전개되어 한편의 오페라를 연상케한다. 특히 소품을 활용한 연기와 아리아에 감정 묘사까지 극치를 이룬 연주였다. 스트라우스곡은 격정적이며 강한 액센트가 강조되지만 이곡에서 주제의 재료가 싯적으로 분배된 인상이다. 이곡은 고음의 풍부한 소화력으로 가사전달에서 시너지 효과를 준 곡이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주기도 했다.
피아노 트릴을 배경으로 소품에 입맞추는 그녀의 연기에서 스트라우스적 곡의 포인트를 움켜잡은 느낌이다.
이번 소프라노 김라희 독창회는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 사이의 프레이즈를 색채감있게 연결시켜, 한층 노래에 스토리적 전개를 구체화한 점에서 작품 해석의 새로운 장을 연 시간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