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질문들에 대해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과 기독교전통이 말하고 있는 주일성수의 바른 뜻은 무엇이며, 주5일 근무제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장로교의 표준적인 신앙고백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주일성수의 의미와 방법의 핵심을 명료하게 밝혔다. 칠일 가운데 한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영구적인 도덕적인 명령이며, 창세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안식일이 이 명령을 준행하는 날이었던 반면에 부활 이후에는 안식 후 첫날이 이 명령을 준행하는 날이 되었다. 이 날에는 세상적인 사업이나 오락을 그치고 거룩하게 쉬며 예배와 부득이한 의무와 자선에 치중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고백서에 천명된 주일성수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십계명 가운데 제4계명의 의미가 무엇이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준수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구약의 안식일계명이 어떻게 신약에 와서 일요일에 쉬는 주일성수로 바뀌게 되었는지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 법을 주신 목적은 일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출애굽기 23장 12절에 잘 나타나 있다. 타락한 이후에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인간이 하는 일은 수고가 뒤따르는 고된 노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일을 중단하고 쉬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창조사건을 모델로 하여 6일 동안은 일을 하고 일곱째 되는 날에는 일을 중단하고 쉴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면 일곱째 날에 어떻게 하는 것이 숨을 돌리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20장8-11절과 신명기5장12-15절에 중복하여 기록된 제4계명을 통합하여 읽어야 한다. 이 두 본문은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에 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6일 동안 일을 하고 하루는 쉬는 제도를 세우셨다. 그런데 십계명이 모든 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할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임을 고려할 때 기독교인들은 ‘6일 노동-1일 휴식’의 패턴을 절대적인 생활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만일 주5일 근무제의 의도가 ‘5일 노동-2일 휴식’의 의미로 시행되고 또 받아들여진다면, 주5일 근무제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생활원리와 맞지 않는다.
둘째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있는 명령은 6일 동안에 해야 할 일의 범주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6일 동안은 ‘힘써서’ 일을 하되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네 모든 일’은 직장에서 행하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의 일들도 있고, 사회봉사활동들도 있고, 교회와 관련하여 행해야 할 일들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을 6일 동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제4계명의 뜻이다. 그런데, 만일 주5일 근무제가 5일 동안은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직장에서의 일을 하고, 하루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한 다른 일들을 하고, 하루는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주5일 근무제는 제4계명과 반드시 충돌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로, 십계명은 소극적으로 일을 중단할 것(출20:10;신5:14)을 명령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출애굽사건을 기억할 것(신5:15)을 명령한다. 출애굽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은 예배를 드리라는 뜻이다. 기독교인의 쉼은 비기독교인들의 쉼과는 달라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쉼은 언제나 영혼의 쉼을 의미하는 예배가 중심을 차지하고 예배를 중심으로 육체적인 쉼을 배열해야 한다. 안식일의 쉼은 영혼의 쉼인 예배와 육체적인 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육체의 쉼이 예배의 우선성과 중심성에 손상을 가해서는 안되며, 예배의 우선성과 중심성에 손상을 가할 때는 육체적 쉼이 양보해야 한다. 더욱이 육체적인 쉼을 위하여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자의적으로 변경시키거나 변두리로 밀어냄으로써 예배의 우선성과 중심성에 손상을 가하는 것은 안식일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교인들의 주말여행의 편의를 위하여 금요주일예배를 설립한다거나 주말교회 또는 전원교회를 시도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은 안식일을 특별히 ‘거룩하게’ 하셨는데, 이 말은 구별하셨다는 뜻이다.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는 평일에 드리는 예배와 구별되어야 하며 평일에 드리는 예배로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든 예배가 다 거룩하고 중요하지만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는 특별히 거룩하다. 따라서 여가선용이나 여행이나 레저활동을 즐기기 원하는 교인들을 위하여 주일예배를 평일예배로 대체해서는 안된다. 만일 교회가 그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면 사회구조 전체가 반기독교적인 관행으로 굳어져갈 때 사회구조를 제대로 비판할 힘을 상실하게 된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출애굽기 20장의 육체적 안식과 신명기 5장의 영적인 안식의 명령을 모두 성취시키면서 진정한 전인적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는 전환점을 이루는 사건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일어난 날 곧 토요일 다음날을 안식일계명 준수의 날로 지키는 것은 신학적으로 볼 때나 구속사적으로 볼 때 정당하고 바른 관습이다.
주일성수가 한주기의 사이클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요일 이외에 다른 어떤 날도 주일성수의 날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주일예배는 다른 어떤 날의 예배로도 대체될 수 없으며, 금요주일예배나 토요주일예배등은 모두 금지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전개한 주일성수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주일성수와 주5일 근무제와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우선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6일 노동-1일 휴식’ 제도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질서임을 중시하여 이 틀에 따라서 생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주5일 근무제 그 자체는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에서의 유급노동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조치로서 모든 일의 수행을 5일안에 제한하는 조치가 아니며, 주일성수를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조치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6일 노동-1일 휴식’ 제도와 반드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주5일 근무제가 지향하는 목표인 노동자의 삶의 질의 향상 곧 직장에만 묶여 있던 노동자들에게 가정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목적은 기독교 노동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교회는 주5일 근무제가 잘못된 가치관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주5일 근무제는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부패한 본성의 도구로 쉽게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주5일 근무제의 매력은 2-3일간의 연휴를 중간에 단절됨이 없이 여가활용이나 레저에 온전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을 교회는 일관성 있게 비판하고 교인들이 이런 목적으로 연휴를 쓰려고 하는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될 경우에 바른 생활패턴은 ‘5일 유급노동 + 1일 무급노동 + 1일 주일성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가족들과의 대화와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금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여행일정을 짜고, 주일 하루는 본인들이 소속된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하고 남는 시간은 문병이나 구제 또는 집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휴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근래 들어와서 교인들은 주일날 결혼식만 있어도 예배를 빠지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그만큼 오늘날 교인들의 주일성수의식이 느슨해져 있고 생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주말여행까지도 교회가 공식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교회의 세속화는 한층 더 가속화될 것이다.
주5일제 근무로 말미암아 믿음이 약한 교인들을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할 수 있는 요인이 한층 더 많아진 현실 속에서 교회는 이전보다 교리교육과 생활교육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실시함으로써 이 모든 세태를 과감하게 거스를 수 있는 교인들로 키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