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에비대왕 - 그 옛날 고조선의 어느 왕 역사의 흐름속에 있어왔고, 아직도 우리 무의식 깊이 자리잡고 있는 에비
바리데기 - 에비에게 버려진 일곱째 딸
길대부인 - 대왕의 정비. 일곱 딸을 낳은 어미
딸
청난이 - 첫째
홍난이 - 둘째
세난이 - 셋째
네난이 - 넷째
다난이 - 다섯째
막난이 - 여섯째
사위
청파 - 靑派
홍파 - 紅派
우파 - 右派
좌파 - 左派
중파 - 中派
한파 - 막난공주에게 청혼한 젊은이
일직사자 - 저승 사자
월직사자 - 저승 사자
할배 - 바리데기를 주워서 키운 부
할멈 - 바리데기를 주워서 키운 부
팔도꾼 - 八道軍. 아들 여덟은 둔 농사꾼
막장승 - 팔도꾼의 막내아들
맏장승 - 맏아들
아들들 - 나머지 아들 여섯
마름 -
희광이 - 왕을 호위하는 천하장사.
마별사 - 馬別使. 바리데기를 찾아나선 왕의 신하
한군졸 - 대왕의 호위병
두군졸 - 대왕의 호위병
화덕이 - 대장간 주인. 화덕장군이 된다.
화덕이의 일곱 아들들
아들 - 바리데기와 막장승 사이에 난, 아홉 살배기
사내들, 군사들,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 팔도꾼의 일곱 아들로 나온 배우들이 나중에 화덕이의 일곱 아들로 나온다.
<때>
옛(古) 조선의 어느 때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던 시기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던 시기 정교가 분리되어 가는 혼동기 우리 민족심성의 원형질이 확립되어가던 때
<일러두기>
에비 -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어린아이가 울면 "에비 온다! 에비가 업어간다!"고 겁을 준다.
이 연극은,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그 무서운 에비의 실체에 대한 근원푸리이며, 신화적 인물 에비가 주인공인 영웅서사시이고 비극이다.
바리데기와 아비대왕 -
옛날 삼나라를 다스리던 어비대왕이 딸만 일곱을 낳으니 부아가 치밀어 그 마지막 딸을 버리라 명하니, 왕비 길대부인이 아기를 강물에 띄워 보내며 바리데기라 하며 슬퍼하였다--- <서울지역좌가>
무당들의 시조로서 섬겨지는 바리공주 또는 바리데기는, 망인을 천도하는 진오귀굿 말미에 불려지는 좌가로서 전하여진다. 바리공주 이야기는 다양한 서술구조로 전국에 퍼져 전승되고 있는 우리 민족 서사문학의 백미이다. 이 희곡은 좌조신화 바리데기에대한 인류문명사적 해석이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아차려--- 천부인 세 개를 주어 인간의 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병도 편>
천부인은 하늘이 내린 신권적 제왕의 상징물으로
검북 거울 - 선단고기
검곡 옥거울 - 일본 황실, 삼종의 신기
삼지창 방울 명도 - 우리 좌욕에 그 흔적과 근거가 있다.
언어 - 이 희곡에 쓰여진 사투리식 대사는 특정 지방색을 나타내는 방언이 아니다. 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연극의 언어표현이다.
[장] 1장 황천강(黃泉江)
부왕 에비대왕에게 버려진 바리데기가 떠내려온 강가. 나이든 뱃사공 내외가 갓난아기, 바리데기를 키우며 살고 있다. 손님을 건네다주고 돌아오는 할배가 새벽빛 안개 속에서 나룻배를 갖다댄다. 사납게 우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할배] (배에서 내리며) 서천 꽃밭을 찾아간다는구먼
[할멈] 꽃밭인지 가시밭인지 개똥밭인지는 가봐야 알 것이요, 거기도
[할배] 옛다! 이놈의 잉어가 승천을 하다말었나 용트림 한 번 지랄 맞구먼. 푹 과 먹소. 젖이 뽀얗게 나올 것이네
[할멈] 내 배에서 나오지도 안한 딸년 멕이라고 젖이 나온다요. 이 나이에
(사납게 우는 바리데기)
[할멈] 뭔 지지배 울음소리가 천둥번개를 때린다냐. 시끄러버. 알것다 이것아 너도 지집으로 태어난게 원통하냐 (사이) 서러우면 워쩔거냐 그대로 살아야지. 살아나서 이담에 아들 많이 낳아서 원수 갚아라
(바라데기 더 크게 운다)
[할멈] 아이고 이 까시러지는 성깔머리하고는 ( 사이 ) 이년 팔자도알아볼 알쪼여. 나중에 이년 땜시 속 작작 끓게 생겼소
[할배] 줘보소! (아기를 받으니 울음을 멈춘다)
[할배] 어이구 우리 공주, 벌써 애비를 알아보네
[할멈] 그것도 지집이라고 벌써 사내를 알아본다요. 요상시러운 사주를 타고 난 것이여 그것이. 그래 생부모한테 버림을 받은 것이여 ( 사이 ) 우리 이거 내다 버립시다!
[할배] 연만 오십에 하늘이 주신 자식이여. 뭔 복바가지 깨지는 소리
[할멈] 줏어 키운 자식 그것도 딸년한테 뭔 영화를 되받는다고 지금에서 똥귀저기 빨아댄다요. 난 싫소
[할배] 두고보소! 커서 우리 내외 꽃가마 태워줄 효녀가 분명타
[할멈] 죽어서 탈 꽃가마가 뭔 소용이요. 우리끼리 그냥 삽시다
[할배] 이걸 좀 봐! (바리데기의 배냇저고리를 꺼낸다)
아까 그 손님이 그러는데 여기 수(繡) 놓은 이 글자가 임금 왕 字라네.
[페이지] 006
아마도 이 물길 꼭대기에 있는 궁궐에서 떠내려보낸 왕실의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득 들더라지
[할멈] 아이고, 지집이 뭔 임금 왕이다요. 아들 바라다가 딸년이 나오니깐 내다버리면 죄스런 마음에, 나중에 사내로 환생해서 살아보거라 그런 바램으로 사내옷 껴 입혀 흘려보낸 것이구만.
[할배] 글면 왜 임금 왕이여?
[할멈] 사내가 왕 아니요, 지집은 죽어지내야 하고. 그렇구만 이 년은 죽어야 할 팔자여. 왜 우리가 남 팔자에 껴서 말년고생을 한다요. 기냥 강물에 흘려 버립시다
[할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할멈] 마누라 말이 말 같지 않소!
[할배] 내 꼭 키울 거여. 그래달라고 우리덜한테 온 목숨이시다
[할멈] 내 속에서 나온 아들도 아니고 그것도 딸년을 --- 난 싫소
[할배] 아따, 딸년도 하나 못난 주제에 뭔 말이 많어
[할멈] 아들은 나 혼자 난다요. 맨날 그놈의 삿대로 강물만 젓어대는데 어떻게 새끼를 낳아!
[할배] 내 삿대가 어때서, 아직도 새벽이면 널직한 포장을 세우는 기둥인디
[할멈] 낳으면 될 것 아니요. 좋소, 우리 시방 아들 하나 낳아봅시다
[할배] 뭔 소리여?
[할멈] 일리 와봐요 (방으로 잡아끈다)
[할배] 나 시방 배고픈디
[할멈] 난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고 고여있는 물인 게 그 삿대질 할만할 것이요
[할배] 고인 물도 출렁대면 무섭더라
[할멈] 물결이 일어야 용이 난다네. 어디 우리도 한 번 청룡 황룡같은 아들 하나 낳아보자구요
(둘이 안으로 든다)
(툇마루에 놓인 바리데기 자지러지게 운다)
[할멈] (문 벌컥 열며) 저기, 에비 온다 에비! 뚝!
[장] 2장 궁(宮)
에비대왕의 침전. 향(세 발로된 솔) 에서 향연이 타오른다. 하늘이 내린 천부인(청동검 방울 거울) 이 신비한 빛을 발한다.
[페이지] 007
잠들어있는 왕에게, 저승에서 온 일직사자 월직사자가 스며든다.
[일직사자] 에비야!
[월직사자] 에비야!
[에비대왕] (꿈결 속에서 뒤척이며) 누구?
[일직] 일어나!
[월직] 그만 가세!
[에비] 가다니 어딜?
[일직] 살만큼 살았으면 가야지
[에비] 네 이놈!
[월직] 어허!
[에비] 이 나라의 에비이고 왕이다. 말을 함부로 놓지마라!
[월직] 갈 길이 바쁘다. 말꼬리 잡고 농탕치들말고 따라 나서라!
[에비] 그래도 이놈들이! 제 할 일 마음대로, 내 갈길 내 뜻대로 정하고 행하는 것이 왕이다. 네놈들이 뭐관데 감히 내게 하대를 해대고 명하느냐
[일직] (모습을 드러내며) 일평생 명령만 내리고 살았으니 우리가 하는 말이 고깝기도 할 것이다. 허나 어쩔거나 죽음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한걸 이제 그 고단한 육신에서 벗어나게
[월직] 저 백성들이 애도소리 장관일 것이다. 어기어차 북망산 가자!
[에비] 그럼 너희들이, 물럿거라!
[월직] 알았으면 벌떡 일어나 절 넙죽하고 따라 나설 거지 아직도 반말을 뾵그리고 뻗대네 이놈이 (몽둥이 치켜든다)
[일직] 말게. 그래도 일국의 제왕이 아니던다. 평생 누린 영화복락에 미련인들 오죽할까 (에비에게) 걱정 말게 좋은 데 가게 힘좀 쓸 테니
[에비] 아이고 안됩니다. 난 못 죽어요.
[월직] 안다, 알아. 할 일은 태산이요, 일생 마무리요, 후회막급이라 뭐 그러고 그렇겠지 지겹다 맨날 듣는 그 소리. 왕이면 왕답게 그냥 가자
[일직] 뒷일은 산 사람들의 몫. 대왕이 할 일은 딱 하나, 빨리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야 저들의 살림살이 산 자를 위한 것이 된다.
[에비] 난 못 죽어. 죽어도 못 죽어. 저리 가라이 허깨비들아!
[월직] 히히히 우리보고 허깨비라네.
[일직] 에끼 이놈아! 네가 여태 산 세월이 헛것이고 시방부터가 진짜여
[월직] 암, 가보면 알지.
[에비] 갈 만 한가, 거기?
[월직] 그 이름 말인가, 그러고 말고
[에비] 어떤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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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직] 가보면 알지. 어이 가세
[일직] 거기 좋다는 증거 딱 하나만 일러준다.
[월직] 저승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봤는가. 없지. 얼마나 좋은 데면 그 많은 인명들 중에 다시 돌아온 인사가 없겠나. 절대 안 오지. 왜 다시 와, 골 아픈 세상
[에비] (운다) 그래도 난 못 갑니다. 절대로 아직 안 갑니다.
[월직] 거긴 못 가고 안 가고 그런 데가 아니고 어째든 가는 데여. 가거라!
(몽둥이 치켜든다)
[에비] 못 간다 (칼을 빼든다) 종묘사직과 제 억조창생을 누구한테 맡기고 내 어찌 저승을 가겠느냐. 나 아니면 안된다. 난 아직 죽을 순 없다.
[월직] 아들 뒀다 뭐해, 맡겨. 다 알아서 한다.
[에비] 내가 그 아들이 하나 없는데 어찌 하란 말이냐
[일직] 만백성의 아들들이 그대 에비대왕의 아들들이 아닌가
[에비] 어떻게 일궈 예까지 온 왕국인데, 이 나리 이어 받을 자는 오로지 하나. 내가 낳고 키운 아들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나를 잇고 잇는다. 내 아비도 할아비도 그리하셨다. 나도 그리해야 한다. 내 아들도 그럴 것이고 그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도 그리하고 그럴 것이다. 난 아들을 낳지 않고는 죽지 못한다 안 죽는다 이대로 살아야한다. 아들을 낳을 그날까지
[월직] 그 나이 먹도록 아들 하나 낳지 못하고 여태 뭐했나 그래
[에비] 삼신할미가 나한테 무슨 원수를 졌는지, 낳다하면 딸이요또 딸이요 딸 딸 딸 딸 여섯을 낳고, 갖은 정성에 치성을 드려 낳는 마지막 애도 또 딸, 그래 열불이 치밀어 그걸 내다 버린지가 벌써 십여년, 그 뒤 온갖 약처방에 벼라별 방중술을 갖다대도 아들은커녕 줄줄이 쏟아지던 딸도 뚝. 그럴진대 내 어찌 그대들을 따라 나설 수 있으리오 (사이) 뭔 수가 없겠소. 아들 하나 얻을 묘수가?
[월직] 그 나이에 아직도 그것이 힘을 쓰나?
[에비] 어름, 나는 왕이다. 왕은 아침마다 솟아오른다, 저 하늘을 향해
[월직] 그거 부러운 일일세
[일직] 가만, 아들이 하나 있긴 있는데 이상하다 (수명?를 뒤적인다)
[에비] 아들이 있다구. 낳을 수 있지요, 아들! 아이고 (절한다)
[일직] 어허, 그 일곱째 여식을 버린 것이 화근이로다. 그 딸만 안 버렸으면 아들이 하나 나오게 되있었는데 쯔쯔쯔
[에비] 그깐 딸년 하나 버린 게 뭐 어쨌다고
[일직] 그 버리데기의 원한이, 세상에 나올 동생 즉 에비의 아들 앞을 앙칼진 가시나무로 천만근 바위덩이로 가로 막고있어. 뿐인가 성난 파도가 돼서, 훼방이 만방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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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 그년 몹쓸 년이로고
[일직] 그 딸, 찾아 들여! 허면 아들을 보겠노라
[에비] 그렇지요. 아들은 하나 있어야겠지요.
[일직] 그럼. 그래야 제삿밥 제대로 받아먹지
[에비] 낳을 수 있겠지요
[일직] 틀림없다. 내가 보증한다.
[에비] 그러하다면 아들 낳을 때까지 난 죽을 수 없음이다. 썩 물러가라!
[일직] 아니 이거 (당황해 쩔쩔맨다) 이러면 안돼는데
[월직] 당했다. 직무유기로 삭탈관직되기 전에 그냥 내래쳐! (몽둥이 치켜든다) 지옥이라도 한걸음에 가겠거늘 에이! 인정도 사정도 없는 것들. 못 간다. 좋다 이대로 날 데려가면 천기를 누설한 너희들의 죄 낱낱이 고하리라!
[월직] (무릅 조아리며) 아이고 대왕, 그것만은 제발! (일직사자에게) 좋은 게 좋다고 협상하자!
[일직] 좋다. 대대로 대물린 종묘사직을 받아들고 이어갈 아들 하나 얻고 죽겠다는 에비의 뜻이 그토록 과열하니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 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대왕의 죽음을 유보한다. 단 제왕의 하루는 보통사람 한 달과 같으니, 왕이 죽는 그 날까지 대왕이 다스리는 땅위에 사는 삼십인의 사람목숨을 매일 무작위로 우리가 걷어간다.
[에비] 나 대신 멀쩡한 인명들을 죽이겠다고
[월직] 날마다 날마다, 하루에 삼십 명
[일직]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적정기간 즉 일년이 지난 후부터는 사망자의 숫자는 날마다 날마다 기하급수로 더해진다.
[에비] 내 아들로 해서 수많은 내 나리 백성들의 목숨이 끊어진다!
[월직] 안되겠지 그냥 가도록! (사이) 아들 하나보다야 백성들 목숨이 중하지. 그것이 제왕의 도리가 아닌가
[에비] (잠시) 영웅은 피를 먹고 자란다 했다. 내 뒤를 이을 왕은 영웅이 분명하다. 가라!
[일직] 그대, 저들을 어여삐 여기는 군주라면, 한시 바삐 아들을 보도록 해라!
[월직] 젠장할, 당분간 힘좀 써야겠다! (허공에 대고 몽둥이를 휘두른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단발마의 비명소리, ?소리. 침상에서 굴러 떨어진 에비, 체단으로 달려가 방울을 흔들어댄다. 비명소리 곡소리 크게 메아리치는데 동녘이 밝아온다))
[페이지] 010
[장] 10장 팔도꾼의 집
아들 팔 형제 거느리고 땅일궈 먹고사는 팔도 농사꾼의 집. 농사꾼의 집이 그러하듯 여러 농기구들과 곡식더미가 보이는데, 풍족한 살림과 만석지기의 넉넉함이 엿보인다. 청동기와로 만든 조약한 농기구와는 다르게 ?? 보습으로 만든 쟁기 눈에 띤다. 어머의 주검 앞에서 곡을 하는 팔 형제와 며느리 손주들.
[팔도꾼] 허이 허이!
[아들들] 아이고 아이고!
[팔도꾼] 이 마누라야, 이 많은 아들들 데리고 나 혼자 우째 살라고!
[막장승] 엄마야!
[팔도꾼] 우리 막둥이 장개도 못 들었는데 가다니 네가 가다니. 허이 허이!
[막장승] 아이고 엄니, 눈좀 떠봐라 안 뜨면 나도 죽을란다 (몸부림친다)
[맏장승] 이러면 안된다 절리 가거라
[막장승] 큰형은 섧지도 안나 눈물도 안 흘리고
[맏장승] 야 이놈아 나도 죽것다. 아이고 어머니 (대성통곡한다)
[마름] 맏상주가 이럼 넘들한테 흉잡히지. 먼저 요기를 때우셔야 네댓새 멋들어지게 곡을 하시지. 안으로 가요! 우선 먹고 봅시다
(나머지 아들들이 큰형과 막내를 잡아끌고 안으로 든다)
[마름] (따라가는 며느리들에게) 아낙네들은 곡소리 계속 내시고!
[팔도꾼] 더 크게 울어 들! 지집들이 이때 아니면 언제 맘놓고 울어보것냐. 그래야 넘보기도 좋니라
(며느리들의 곡소리 우렁차다)
[팔도꾼] 으이구 배라먹을 놈의 여편네 같으니라구, 죽을 때가 따로 있지. 이 바쁜 때 죽어 하필. 저 들에 널어논 곡석들 언제 걷우고 타작해 쟁여 놓으라고. 평시에 그렇게 뺀들거리고 엄살을 피더니 이젠 일 안해 좋것다. 지미럴! (코 푼다)
[마름] 일 하나야 잘하셨지오. 아들 팔형제에 손자가 스물. 여하간 복 많이 받으시고 가셨습죠.
[페이지] 011
[팔도꾼] 갈데 가더라도 가을걷이나 끝내고 가지. 여건 경우가 아니네 허이! 그나저나 자네, 부고를 어떻게 돌렸기에 발걸음들이 없어.
[마름] 그게 돌리긴 죄다 돌렸는데 돌림병이 돈다고 겁들을 내나봅니다.
[팔도꾼] 그럼 이 마누라가 돌림병으로? 아니야 저 혼자 떡에 꿀 발라 먹다가 관격에 급살인데
[마름] 글세 그게 이상하다니까요. 꿀 찍어먹는 떡에 급살이 왜 옵니까. 아랫동네에선 멀쩡하게 잠자던 아들 삼형제가 새벽녘에 황천길에 올랍답디다. 예사 돌림병이 아니라고 사방이 난리오.
[팔도꾼] 아이쿠 (관에서 급히 떨어진다) 돌림이다 돌림! 얘들아, 니 에미 쓰던 살림살이 옷가지 죄 내다 불 살라라! 얘들아! 니 에미 돌림병으로 죽었단다. 오늘 중으로 내다 묻어야해. 나와라! (안으로 들어간다)
((뒤뜰에서 불길이 솟는다))
[아들들] (서럽게 울며 뛰쳐 나온다)
[마름] 물러서요. 그러다 병 옮으면 어머님 따라가요.
[맏장승] 나도 간다. 엄니 나 데려가!
[맏장승] 이리와 우리, 엄니 따라 죽자, 우리
[맏며느리] 아이고 내가 죽으면 이 집 살림은 누가 하고!
[맏장승] 임금이 죽으면 궁녀들이 따라 죽는다고 안하나
[맏며느리] 시엄니가 임금이요. 나 좀 살려!
(모두 뜯어 말린다)
[막장승] (안에서 나오며) 아이고 성님, 더 큰일 낳소, 저기. 뒷간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나길래 가보니깐 아버님이 이래고 앉아 고개를 갸웃등 갸웃등 거리면서 혼자 웃고 계셔 이러고 이히히히 (흉내낸다)
[맏며느리] 설움이 넘치면 웃음보가 터지면서 실성한다는데!
[맏장승] 아이고 줄초상이다!
[모두] 아버님! (운다)
[팔도꾼] (괭이를 들고 나오며) 왜 들 그래? 엉 니 애미 다시 살아났냐!
[모두] (피한다)
[맏장승] 괜찮습니까?
[팔도꾼] 괜찮긴 이놈아 니 에미가 돌림병으로 죽었는데, 빨리 묻어버려야지
[막장승] 아버님이요.
[팔도꾼] 나야 아직 열 색시 거느려도 끄덕 없는 몸이다.
[막장승]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히 이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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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꾼] 뭣들해, 짊어져! 해 넘기 전에 묻어야 동티가 안나
(아들들, 관을 메고 나간다. 며느리들, 곡소리 낸다)
[마름] 어디로 모시죠?
[팔도꾼] 저걸 보내고 나 혼자 우째 사노!
[마름] 저번에 봐논 황토마루로 모셔야겠습죠?
[팔도꾼] 아무래도 아들 며느리들한테 짐이 되겠지, 나?
[마름] 평토장으로 할까요, 봉우리를 올릴까요?
[팔도꾼] 늘그막에는 등긁어 주는 손길이 중요혀---
[마름] 떼는 금잔디로 해드려야겠지오?
[팔도꾼] 자네, 그 참한 색싯감 한 번 알아봐야겠어.
[마름] 이참에 막내도령 장가 마저 보내시게요.
[팔도꾼] 내가 급해.
[마름] 히히히 그러지요.
[팔도꾼] 되도록 젊고 어릴수록 좋아. 내 아들도 더좀 봐야겠고
[마름] 부기다남에 다다익선이라! (나간다)
[팔도꾼] (혼자 웃는다)
((멀리, 관을 메고 가는 아들들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자, 나타난다))
[일직] 어허 저 에미 참 안됐다. 한참을 더 살 운명이었다. 이 집은 그냥 지나 가야했다. 저 막내둥이 불상타!
[월직] 뒷간 가서 웃는 애비도 있다. 그나저나 에비대왕, 어떻게 아들을 보려나?
[일직] 삼천궁년 뒀다가 뭣에 쓰나. 남 걱정 말고, 우리 좀 쉬자
[월직] 삼천궁녀? 그거다. 애맨 목숨 잡지 말고 우리도 삼천궁녀 맛좀 보자.
[일직] 에이구 안될 소리. 에비가 빨리 아들을 봐야 우리가 편하다.
[월직] 에비한테 그 아들을 낳아줄 궁녀를 찾아주자!
[일직] 그 좋은 ???이다.
[월직] (몸에서월경도를 꺼내 보다가) 아뿔싸, 따로 있다.
[에비] (나가 떨어져서 치를 떨며) 가까운데 멀리 있다.
[월직] 이거 우리가 알려주자.
[일직] 떽기 놈! (사이) 하늘 땅 사이에 이런 일이!
[월직] 해와 달 사이에 그런 인연이!
[일직] 산천초목도 무시시 떤다.
[월직] 꼬인다, 꼬여!
[페이지] 013
[장] 4장 궁
((정곡. 왕의 딸들과 사위들이 늘어서 있다. 왕좌는 비어있고, 옆자리에 정비 길대부인이 골머리를 싸안고 앉아있다.))
[청파 우가촌에 돌림병이 돈다더이다.
[홍파] 마가촌에선 멀쩡하던 제방이 터져 수십 명이 물귀신이 ?다더이다.
[청파] ?가촌에선 마른하늘의 벼락이 때려 삼십명의 아이들이 갔다더이다.
[길대] 가다니 어디로?
[청난] 북망산이요.
[홍파] 양가촌에선 가뭄으로 백여 명이 놓았다더이다.
[길대] 놓다니 뭘?
[홍난] 숟가락이요.
[우파] 어디든 제 갈 데로 가서 살게 해줘야 겠습니다. 이러다 큰일 납니다.
[좌파] 그럼 혼란이 오지요. 제도가 문제입니다. 뭔가 혁신이 필요합니다.
[중파] 백성들한테 자유도 주고 제도의 혁신도 가져야겠습니다.
[길대] 나라굿 한 번 크게 해야겠다.
[막난] 옛날에는, 나라에 흉조가 들면 임금의 목을 잘라 하늘에 받친다더이다.
[청난] 그럼 아바마마 목을 치라는 게야
[홍난] 그럼 이 나라는 누가 다스리고
[청파] 여럿이 모여 의논하고 합의를 해서 뽑을 수 있지
[홍파] 조직이 필요해요
[좌파] 그렇지요. 새로운 조직과 혁신이 이 나라 살길입니다.
[우파]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과 왕통!
[막난] 전통은 그렇다 치고 왕통은 누가 잇죠. 아들이 없는데
[홍난] 사위는 자식이 아니니?
[청난] 그야 맏사위가 해야지.
[홍난] 누구 맘대로
[네난] 인민이 원하면 인민의 마음으로
[세난] 선조들 마음을 지켜주고 이어갈 이로
[청난] 뭐야?
[홍파] 너, 너무 노골적이다.
[청난] 그러는 넌
(딸들의 악다구니와 편드는 사위들의 고함이 오간다)
[페이지] 014
[길대] 그만! 대왕님 눈 시퍼렇게 살아 계신데 뭔 짓들이냐
[중파] 허허허, 뭐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어느 사이. 숨듯이 나와서 이들을 지켜보던 대왕이 나선다))
[에비대왕] 어이구, 줄줄이 딸려 나온 딸년들 하는 꼬라지들이라니 아 ∼ ! 이래서 아 ∼ 들이 있어야한다.
[사위들] 아버님!
[에비] 시끄럽다. 내가 왜 너희들 에비더냐.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내는 내 아들뿐이다.
[한파] 온누리 만백성의 에비시여! 이토록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나랏사람들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렵게 됩니다. 군왕의 도는 백성들 입에서 나온다 했습니다. 저들을 먹여 살릴 대왕의 뜻, 하나로 내리소서!
[에비] 누구냐 넌?
[길대] 우리 막난공주한테 청혼한 누가촌의 아들이 온데 뛰어난 글재주와 깊은 덕성이 남다른 듯 합니다.
[에비] 저런 아들, 하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좋으련만 (사이) 그래, 우리 막난이가 마음에 드느냐?
[한파] 전 그저 어버이의 높으신 뜻 따르고자하는 아들일따름이오니다
[막난] 싫습니다. 나 혼인 같은 거 안합니다. 혼자 삽??.
[에비] 언제까지?
[막난] 아바마마께서 절 아들 같은 딸로 여겨 주실 때까지요
[에비] 아들 같은 딸! 그거 요새 유행하는 말이냐? 이래서 딸년들한테 글월 문자를 깨우치게 해서는 안돼. 좀 배웠다는 지집들이 꼭 일을 만들어
[막난] 그 지집이란 소리 정말 듣기 싫어요. 왜 여자는 집에만 있어야 하죠. 나도 할 수 이써요. 사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에비] 사내들이 할 수 있는 거는 사내들이 한다. 지집들은 집에 들어 앉아서 사내들이 할 수 없는 걸 해야한다. 그건 바로 아들을 낳는 일램?
[막난] 그럼 우리 같은 딸만 나신 어머님은 여자가 아니고 뭐죠?
[에비] 네가 시방 이에비한테 따지고 있느냐. 네 엄니는 그래서 지집이 아니고 빈집이다. 아들 하나 없는 빈집. 아들이 뭐냐? 알이다. 알에는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이 뿌려져 인간 만물에 열매가 맺고 그 열매 안의 씨가 또 뿌려져 또 열매맺고 해서 이어지고 이어지게 하는 줄기이고 ?이고 빛이고 혼이고 불이다. 세상 밝혀주는 태양이다. 그것이 아들이다.
[청난] 그 아들도 저희 딸들이 낳고 젖먹여 기릅니다. 저희가 낳은 아들도 아버님이 아들이예요.
[에비] 뉘들이 낳은 아이들은 나하고 다른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딸은 딸이다. 그저 뿌려진 씨앗을 받아 잠시 키우다 내보내는 밭이다. 땅은 얼마든지 있다. 씨 알맹이는 나에게만 있다. 내가 뿌린 씨앗이 아닌데 내 어찌 너희
[막난] 더 이상, 있지도 않는 아들 때문에 멀쩡한 딸들을 구박하시고 저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이 한 나라의 에비가, 대왕이 할 짓이요!
[에비] (노여움을 다스리며) 왜 없어. 이제 곧 낳는다.
[길대] 에이그 대왕! 전 이미 달거리가 끊겼어요.
[에비] 너무 걱정 마시게. 삼천궁녀가 있지 않소 (사이) 명하노니 가 고을마다 혼전의 처녀들 세명씩 뽑아 올리되, 나이는 십팔세를 넘지 않게 하고,
[용모] 불문하되 단 무자식 팔자를 타고난 관상은 제외토록 하라! 왕자를 낳아 준 여인의 고을은 대대로 세곡을 면제시키고, 그 고을 촌장한테 크게 벼슬을 내리겠다. 곧 바로 시행하라!
[한파] 명을 거두소서, 대왕! 이는 민심을 두려워하실 군왕이 할 짓이 못됩니다.
[에비] (손짓한다)
((희광이가 쌍도끼를 들고 성큼 나선다))
[중파] 좀 무리가 있을지 모르나 별탈은 없을 듯 합니다. 부디 득남하소서!
(에비가 희광이의 도끼를 뺏어 들더니, 지도가 그려진 탁자 가운데를 내려 박는다)
[에비] 이 에비은 내일부터 나을신궁에서 삼천궁녀와 더불어 왕자를 낳는 천지공사에 전념하겠다. 그 동안 나라굿과 조상님 제사는 국모가 맡으시오. (방울 달린 청동지팡이 - 신대방울 -를 부인이게 준다) 나라땅, 아랫녘은 첫째사위 청파대신이 맡고 윗녘은 둘째사위 홍파대신이 맡아 다스린다 (청동 검을 하나씩 준다) 명심해라! 이 두 개의 검은, 내 아들이 태어나는 즉시 다시 녹여져 하나가 되어 대물릴 에비대왕의 통치권이다
[한파] 한 나라는 하나의 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칼을 쥔 손으로 휘둘려지게 돼 있습니다. 둘로 나뉘어 다투어야할 저 백성들의 고난을 유념하소서!
[에비] 아니다. 한울로부터 내려받은 이 쇳경이 내게 있는 한, 이 겨레의 대통은 언제까지나 내게 있음이다 (청동거울을 내보인다)
[한파] 그 거울도 칼로 치면 두쪽이 됩니다. 갈라진 거울과 땅이 또다시 하나되기 지극히 어렵습니다. 본디 어리석고 탐욕스런 인간들입니다. 그들의 손에 칼이 쥐어죠 있습니다
[에비] 네가 본시 말이 많은 놈이로고!
[청파] 저런 자들이, 국사를 어지럽히는 파당을 만듭니다.
[페이지] 016
[홍파] 일벌백계하소서!
[에비] (손짓하다가 막난이를 보고) 네 뜻도 그러하냐?
[막난] 전 이미 혼자 살기로 작정한 몸입니다.
[딸들] 죽여!
[막난] 늙을수록 젊은이들 말을 색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 가슴속에 꿈틀거리고 용솟음치는 거래사랑의 열정을 헤아려 주어야 합니다. 경거망동은 만백성의 에비가 할 짓이 아닙니다.
[에비] 저 년 먼저 죽어라!
[희광이] (망설인다)
[사위들] 처형하랍신다!
[길대] (갑자기 방울을 흔들어대며 울부짖는다) 내 죄로소이다. 아들 못난 이 몸의 죄로소이다. 날 죽이시오, 날 죽여!
[에비] 멈추시오 그만! 아무 때나 흔들라고 내준 보물이 아니잖소 (사이) (버럭) 막내 딸년들은 어딜 가도 티가 나!
[길대] 왜, 쟤가 막내에요. 바리데기가 막내지요.
[에비] 또 그 버러지 같은 버린 딸년 얘기! (진노를 수습하고 명령한다) 저 잘라빠진 막난이는 다리 몽댕이를 두둘겨서 옥에 가두고, 저 놈은, 그 잘난 혀를 잘라 개한테먹여라! 그리고--- (잠시 깊은 침묵. 사이, 불같이 소리친다) 물러가, 모두 내곁에서!
[모두] (물러간다)
((은밀하게 마별사가 들어온다))
[에비] 저 막난이 다음에 나서 내다버린 일곱째 딸아기 있었지. 그 애 이름을 뭐라고 했던가--- ?
[마별사] (읍하고 나가다 넘어진다)
[에비] (잡아 일으켜주며) 이런 자네도 늙었구먼 (사이) 저 혀짤른 놈, 살려서 곁에 두게! 그 하는 쓸모 없으나 머리와 가슴은 쓸만할 것이다.
[마별사] (절하고 나간다)
[에비] (청동거울을 닦으며 얼굴을 비추어본다) 아버님 할아버님 할아비의 할아버님! 님들의 얼들이 여기 계시고, 나의 얼굴도 이렇게 비치는데, 어이하여 아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고
((방문 벌컥 열리고 할미가 나선다. 지나온 세월만큼 늙은 데다가 노망이 들었다. 걸신들린 아귀병(餓鬼病) 에 걸려 무엇인가 끝없이 먹어댄다.
[할멈] 아고 배고퍼 배아퍼 죽것네. 야이 염병에 땜병에 고꾸라져뒤질 년아. 기껏 키워줬더니 니가 밥을 줬냐 괴기를 줬냐 (이불을 뜯어먹는다) 질긴 거 질긴 거! 꼭 저년 심보 같고 쇠심줄 같은 거. 이게 뭔 냄새? 강 건너서 소 잡는 갑다. 곱창 좀 얻어와! 자글자글 끓여서 훌훌 마시면 아이고 미치는 거 (사이) 내가 미쳤지. 내 평생 소원이 떡뚜꺼비같은 아들 황소같이 키워서 이밥에 고기국에 겸상해서 삼시세때 먹는 건데. 저 아무 짝에도 쓰잘데기없는 바리데기 키우다가 뼛골만 빠지고 (문득) 뼈! 쇠뼈 너무오래 고면 국물이 덴장맞어 못 써. 소금 살살 뿌려서--- 나 혼자 먹을란다 나 혼자 (요강을 뚝배기로 알고 퍼먹는 시늉을 한다)
[바리] 그만 좀 하란게 (요강 내던진다)
(할멈이 어그적거리며 울어댄다. 바리도 운다)
[바리] 오늘부터 안 울기로 마음 먹었는디. 그래라, 못 울지라. 나 평생 울지 않는 계집이 될것인게 (마음 다잡고) 엄니 나 시방 시집가요. 신랑이 땅부자 쌀부자요. 아들도 많고 손자도 많고, 내가 그것들 에미란게. 쌀 괴기 매년 바리바리로 실어다 준다했소, 내 신랑이. 엄니, 나 가요. 아버지한텐 말 안했그만, 불호령이 뻔한 게. 먹을 것도 못 불어오면서 호령만 지른다요, 사내드은. 내가 해요, 내가--- (문득 강을 바라본다) 으째 말도 못함시 그렇게 잘났을까
((마름을 따라, 맏장승과 막장승이 쌀가마 지고 들어온다))
[마름] 이거 어디다, 부려?
[바리] 여기 여기요. 쌀이여 이것이! 하얀 것이 백옥 같네
[마름] 가자!
[바리] 음마, 어따 대고 말을 놓소. 내가 누군디
[마름] 아이구 그러신가! 인사드리시오. 아드님들이오
[아들 둘] (웃는다)
[바리] 이 쌀 필요 없소. 도로 가져가시오
[맏장승] 아니, 이걸 지고 백리 길 되돌아가라고
[바리] 지 엄니보고 승냥이같이 웃어대는 아들이 다 있다요. 나 못 가제!
[맏아들] (웃음 거두고 눈치본다) 어쩌란 말이고?
[바리] 내가 가마를 타고 가고푼데
[마름] 어련하시겠어요. 해도 구비구비 고개 넙는 백리 길을 어떻게 (혼잣말로) 이거 여간내기가 아니네 (사이) 뭣해요. 새엄니께 제대로 인사 올리시오
[할멈] (쌀 쪼아먹다가 문득, 바리데기의 배냇저고리를 마당에 휙 던진다) 훠이! 꼬까옷 입고 가라 잉. 아들 많이 나라!
((물새가 운다. 저 멀리, 급히 되돌아오는 할배의 나룻배가 보인다))
[할배] (배에서) 아가! 바리데가!
[마별사] (배에서) 공주님!
((구름이 간다. 나뭇가지에 걸린 배냇저고리 흔들린다))
[장] 6장 나을신궁(神宮)
((어둠이 내려앉는 저녘 무렵. 가운데, 남? 모양잇 선돌 - 좇바위 - 이 솟아있는데 금줄이 감겨있다. 양쪽에, 문 앞에 ??이 내걸려있는 선녀들의 방들이 줄지어 있다. 홍난이 따라 들어온 선녀들이 - 여러 고을에서 뽑혀 올린 궁녀들 - 홍등 내 걸린 방으로 하나씩 들어간다.))
[페이지] 021
[에비] 너히 아랫녘에선 어째 궁녀를 안 보내는고?
[청난] 더 이상 뽑아 보낼 궁녀가 없어요. 처녀라고는 씨가 말랐어요. 아버님!
[에비] 너희 윗녘은 왜 빈손이냐?
[홍난] 더 이상 보내드릴 재물이 없어요. 가뭄에 홍수에 초근목피로 연명합니다. 아버님, 좀 도와주세요. 아버님!
[에비] 아버님! 그만! 그놈의 아버님 소리. 딸년들이 부르는 그 아버지 소리, 열불나고 신물나서 더 못 듣겠다. 난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만백성의 에비다. 수만년 이어온 족속의 하나뿐인 임금, 에비대왕이다. 잔말 말고 트집잡지 말고 앙탈 부리지 말고 내 나라의 궁녀와 공물을 올려보내!
[청난] 내 나라라니요?
[홍난] 난 홍파국에 사는데. 홍파국의 임금이신 제 남편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에비나라의 왕에게 공물은 물론 궁녀도 보낼 수 없답니다.
[청난] 그쪽이 그렇다면 우리 쪽도 그래야겠지. 허나 우리를 있게 한 에비님을 버릴 순 없는 일. 가시지요, 아버님. 저희나라로!
[에비] 뭣이 너희나라!
[홍난] 아버님의 거울을 차지해서 정통성을 확보하겠다고! 안돼지, 그건 그 보물은 인민들의 것이야. 내 놔요, 그 거울!
[에비] 내 아들만이 이어받을 이 겨레의 대통지물이다.
[홍난] 태어나지도 않는 아들 부랄 잡고 늘어지지 마시고, 날 따라 가시지요
[청난] 지난 일년 간, 합궁한 궁녀가 수천명. 그들이 먹고 쓴 재물과 곡물이면 아랫녘 윗녘이 다 넉넉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뭡니까 이거. 끝내요, 이젠
[홍난] 저희 나라에 가셔서 외손자들 재롱이나 보시며 사세요.
[청난] 그 손자들야 우리나라가 더 많지.
[에비] 그것들한텐 내 피가 조금 섞여있을지언정 내 씨의 알갱이는 없다. 가거라. 가서 당초 정한대로 공물을 보내!
[청난] 그거 저히나라에 가셔서 받으세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홍난] 예뿐 궁녀들 날마다 갈아드릴테니 저 따라 가세요
[에비] 희광아!
((희광이가 쌍도끼 휘두르며 나온다.))
[에비] 에비를 능멸할 죄인들이다. 벌하라1
[홍난] 저 정도 쌈꾼은 우리나라에 얼마든지 있는 데, 보세요!
((무쇠 창 꼬나 쥔 홍군들 포진한다.))
[청난] 여봐라!
((철궁을 뽑아든 청군들 늘어선다.))
[페이지] 022
[홍난] 아니, 어느새 무쇠로 무장을!
[청난]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참 딱하다. 구리로 만든 꼬챙이 꼬나 쥐고. 아버님 기다릴께요. 마음 변하시면 오세요 (나간다)
[에비] 무쇠, 뭐냐 그게?
[홍난] 세상을 바꿔놀 새로운 물질도 모르면서 아들만 낳겠다고 흥! 가자! 우리도 서둘러야겠다. 철광석이야 우리 웃녘땅에 많다
(급히 병졸들 데리고 나간다)
[에비] 저것들 잡아들여!
[희광이] 아으 아! (도끼 휘두르며 나간다)
[에비] 세상을 바꿔 놀 새로운 뭣이라고, 물질, 철광석? 어리석은 꼬라지들아! 세상이 물질로 바꿔지냐. 세상이 뭐냐. 사람들 사는 데다. 세상은 오로지 사내 그것도 아주 특별한 사내, 나 에비대왕의 피를 받고 씨를 갖고 태어날 사내아이, 내 아들만이 바꿀 수 있다. 세상이 바뀌는 게 뭔가. 왕이 바뀌는 거다. 세상의 왕은 나 뿐이다. 나를 대신할 왕은 내 아들. 그렇다. 아들 뿐이다 (사이) 보아라! 어둠이다. 아들보기 좋은 밤이 왔다. ?은 어둠 속에서 남 몰래 피고, 아들도 피고, 아들도 은밀히 잉태되어야한다. 천기가 누설되면 안 돼지. 아! 하늘과 땅의 기운이 뱀 도아리마냥 엉킨 밤이다. 힘이 모아지고 솟아오른다. 떨린다. 이 마음. 처음 느끼는 설램이다. 오늘은 어디서부터 시작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홍등이 꺼진다) 어흠, 불은 왜 벌써 끄노. 히히 지집은 수줍어할수록 감칠맛이더라. 어디 보자 (첫 방에 든다) 어째 싸늘해 (다음 방으로) 식었다. 숨도 안 쉬고 (다음 방) 뻣뻣해 (다음 방) 아이쿠 냄새! 썩었다 (뛰쳐나오며 다음 방문을 열어본다) 죽었나 모두? 아니 그럴리 없어 (마지막 방문 열어 젖힌다)
((궁녀를 올라타고 있는 월직사자.))
[월직] 아직 안 끝났어, 문닫어!
((방에서 죽은 궁녀들의 혼이 나와 늘어선다))
[일직] (모습 드러낸다) 자, 들 가자. 오늘은 심심치 않겠구나!
[에비] 이놈들, 이것들은 내 아들을 낳아줄 터밭이다. 물럿거라!
[일직] 알아두게, 모레부턴 자네 백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죽어야해. 어떤가, 그만 우리하고 가는 것이!
[에비] 이 에비는 아직 아들을 보지 못했따.
[월직] (바지 추스르고 나오며) 어허 그거 돼다! (늘어선 혼들 가르키며) 여러 가지로 고맙다!
[페이지] 023
[에비] 아이고 아까운 것들! 이것들은 내 아들을 낳야 돼. 도로 물려다고
[월직] 이러면 안 돼지, 물 건너갔어
[에비] (월직이 멱살을 움켜쥐고 몸부림친다) 못 간다. 물어내!
[월직] 그 아들 낳아줄 각시 따로 있다
[에비] 누구, 누구냐?
[월직] 그게 누구냐면
[일직] 안돼. 그거 발설하면 동티난다
[에비] 암도이 에비의 빛을 거역치 못 하리라 (신총을 꺼내든다)
[일직] (거울에 반사된 빛을 맞고는 꼬꾸라진다) 치워!
(궁녀들의 혼??이 다시 살아나려는 듯이 비명 지른다)
[에비] 빛! 그래 나는 빛이다. 온 겨레의 광명이다. 이 빛을 이어받을 내 아들을 낳아줄 여인이 따로 있다니 누구냐, 말해라!
[월직] 그게 그러니깐 아이구 말못해!
[일직] 삼종지도! 그 근처에 있다.
[월직] 에비에게 버림받고, 서방에게 버림받고, 아들에게 버림받은 여자만이 에비의 아들을 낳을 수 있다
[에비] 그게 누구냐!
[일직] 어디 있다. 가깝고 멀다
[에비] 당장 대령해라!
[월직] 우리가? 그러면 죽은 얼굴로 보게 돼. 그 에비가 찾아 나서라!
[일직] 안 찾고 못 찾으면 더욱 좋고. 우린 이만!
[월직] 간다. 가자!
((두 사자, 괴들 데리고 황급히 사라진다))
[희광이] 철! 무쇠! 무서 ∼ !
(다찌그러진 쌍도끼 내던지고 엉엉 운다)
[에비] (화살을 뽑아 들고) 세상에 이 에비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니, 용서 못 한다.
[페이지] 024
[장] 7장 벌판
((나을신궁에서 조금 떨어진 곳. 일직, 월직사자가 죽은 괴들 데리고 간다.))
[궁녀들괴] 에고 에고!
(명감하는 불빛 속으로 사라지는 혼들)
((마별사와 한파가 지쳐든다))
[마별사] 가만, 뭔 소리?
[한파] (고개 젖는다)
[마별] 들어봐라! 구천에 사무치는 ???이다.
[한파] (웃으며 땅에 글을 쓴다)
[마별] 늙고 병든 몸. 들리느니 귀신의 울음소리, 보이느니 저승 길이라! 에끼 이놈! 세월이 유수거늘 너한테는 아니 올쏘냐. 아침나절 흑발이 저녁나절 백발이라. 눈뜨고 헛기침 한 번 하고 나니 황혼 녘에 늘어진 허리 휜 그리자 하나. 바로 나로세 또 너로세!
[한파] (쓴다)
[마별] (읽는다) 오면 가고, 가면 또 오거늘 아들 하나 남겨본들 무엇하리? 에비! 이런 말 도 했다가는 네 혀가 아니라 부랄이 잘린다 (잠시) 저승을 가더라도 가끔씩 이승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오면 누구가 반기겠느냐. 제삿밥 누가 채려주냐. 아들이다, 아들뿐이다
((바리데기와 팔도꾼의 혼인잔치. 차림새나 모양새가 ??같지 않고 꼭 환갑잔치 같다. 차림상 앞에 놓고 앉아있는 바리데기와 팔도꾼에게 아들 며느리들이 절한다.))
[마름] 장남이요! 둘째요! 셋째요! 넷째요! 다섯째요! 여섯째요! 일꼽째요! 마지막으로 막내요! (막장승 보이지 않는다)
[팔도꾼] 우리 막둥이 어디 같노?
[구경꾼] 똥누러 갔어요
[마름] 첫째 며느리!
[팔도꾼] 지집들은 그냥 한꺼번에 해!
(며느리들 모두 절한다)
((막장승이 기웃거리며 들어온다))
[맏장승] 막둥아, 와 절해라!
[막장승] 절은 뭔 절이고, 그냥 먹고 놉시다!
[팔도꾼] 새엄니께, 남동생들 많이 보게 해달라고 해라, 질!
[막장승] 동생이 아니라 아들을 봐야제, 내 아들!
[맏장승] (애비에게) 조만간, 참한 각시 골라잡고 날 잡고 방 잡고 그러자
[막장승] 각시도 각시 나름이요. 내 마음에 들어야---
[팔도꾼] 어째 니 맘에 드냐, 이 애비 맘에 들어야지
[막장승] 내가 데리고 살 각시, 내 맘에 들어야지요
[팔도꾼] 봐둔 색싯감 있나! 무슨 가문, 어느 동네, 뉘집 딸인고?
[막장승] 그게 뭔 소용이오? 내맘이지
[팔도꾼] (버럭) 애비 말 우습게 듣는 놈한테는 줄 거도 없다. 나가!
[막장승] 애당초 내가 받을 거도 없지. 다 형들한테 모거치 될 거고 또 딴배에서 동생놈들 줄줄이 나온다하고 씨버럴! (상을 걷어찬다)
[팔도꾼] 저 놈 잡아라!
[막장승] 뭘 잡어 잡긴 나가라 해놓고 (솟구쳐 나간다)
[바리데기] 아들 많아 봐야 존거 하나 없네. 오매 겁나는 거
[팔도꾼] 아이구 저놈을 그냥! 자네가 낳은 아들은 안 그럴 것이네. (며느리들에게) 뭣해. 어서 모시지 않고!
[맏며느리) 그만, 신방으로 드십시다
[바리] 나 돌아 갈라요. 쌀이고 아들이고 소용없소
[팔도꾼] 쌀 없으면 느그 엄니 어찌 살고
[맏며느리] 여자는 한 번 정한 운명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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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아이고 엄니 아부지! (터 벌리고 떼쓴다)
[팔도꾼] 어쩌면 그렇게 우는 모양새도 구여우냐. 들자, 가 아들 낳자!
[바리] 아들이 뭔 대수여, 이 판에 (상 걷어차고, 분에 못 이겨 씩씩댄다)
[팔도꾼] (안타까워 어쩌지 못하다 울어 버린다) 색시야 이러면 못 써!
[아들들] 아버지! (운다)
[팔도꾼] 이놈들아, 빨리 방으로 모시지 않고 뭣해. 이 애비 죽는 꼴 볼랴!
[아들들] (바리데기 들쳐 메고 신방으로 모신다) 엄니 가십시다
[바리] 봐라! 나 니네들 엄니 안할란다. 아이고 엄니 나 어쩌!
[아들들] 엄니! (죽은 제 어머니 떠올리며 더욱 서럽게 운다) 아이구 어머니!
(며느리들 따라 울면서 때아닌 울음바다가 된다)
[소리] (밖에서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 에비다! 에비 뚝!
[마름] (뛰어들어오며) 에비대왕이요, 에비!
[팔도꾼] 아니 그 어른신이 우째 여길!
[마름] 먼 길 가시다, 하룻저녁 묵고 가시겠다고 저기 동구밖에. 빨리 마중 나가세요. 섣불리 굴었다간 온 동네 결단납니다.
[팔도꾼] 모두 나가 맞아드리자! 만백성의 에비가 아니시냐
((모두 몰려 나간다. 뿔나팔 소리, 풍물소리 드높다.))
[막장승] (들어와서 신방 문을 열어제친다) 나와!
[바리] 내가 니 엄니다
[막장승] 꼴갑! 각시다 넌. 내 아들을 나란 말이다
[바리] 사람 살려!
[막장승] 그래, 살려주고 맥여준다. 넌 내 지집인 것이다 (들쳐업고 달아난다)
((에비가 희광이의 호위 받으며 들어온다.))
[에비대왕] 어디 여덟이나 된다는 그 아들들 한 번 보자!
[아들들] (늘어선다)
[에비] (부러움에 몸서리치며) 좋을시구! 하나는 어데 가고?
[마름] (둘러댄다) 대왕께 올?리 소를 잡느라고 잠시 외양간에---
[에비] 소를 잡으면 쟁기는 누가 끌겠느냐. 괜찮다
[팔도꾼] 과연 성군이시오 (절한다)
[에비] 각설하고! 이렇듯 줄줄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
[팔도] 소인은 그저 밤농사에 충실했습죠
[에비] 어떻게?
[팔도] 밭에 씨뿌리듯이 허허허 밭이 좋았던 게죠
[페이지] 028
[에비] 아니다. 밭이야 뿌려주는대로 받아서 키우고 열매 영글어 주는 땅바닥일뿐이지 필시 비결이 있으렷다
[팔도] 글세 타고난 거시기가 있지 않을까 헤헤헤!
[에비] 네 이놈!
[팔도] 그게 그러니깐---
[마름] (둘러댄다) 여기 쟁기가 있고 보습이 있습니다. 무쇠로 된 보습으로 밭을 갈면 아무리 단단한 땅바닥도 부드러운 옥토가 됩니다. 거기에 씨앗을 정성 드려 뿌리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애비가 단단한 무쇠 보습이라면 저 아들들은 바로 그 열매들 입지요
[에비] 그것이 그 무섭다는 무쇠로 만든 보습이로고!
[팔도꾼] 예, 여기서 동쪽으로 한나절 가면 아주 큰 풀무간이 있습죠
[에비] 내가 가져야겠다, 이리!
[팔도] 예, 원하시는 뭐든 대왕의 것입니다.
[에비] 그럼 저 아들들을 내가 가져되 되겠느냐?
[팔도] 아 예, 전 이 집과 전답을 물려줄 맏아들 하나면 족합니다 나머지는 데려다 쓰십시오. 보기 보다 똑똑들 합지요. 앞날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누가 알겠습니까. 이놈들 중에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어서 큰 일을 할 놈이 하나 없을라고요
[에비] 음, 그럴 것이다 (배가 아파 뒹군다) 나라의 기둥이라니!
[팔도]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일꾼이 되는 거지요 (속없이 웃는다) 사내란 그저일을 해얍지요. 지집을 위해 식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에비] 너희들 뜻도 그러하고1
[아들들] 예!
[에비] 고맙고 갸륵한 일이로다 (사이) 몹시 시장타!
[팔도] 얘들아! 떡 찌고 술 내리고 암퇘지 멱도 따고, 상차림에 정성을 다해야 하다. 아들들아, 너희들의 에비대왕이시다 (아들들과 안으로 든다)
[에비]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기둥! 그건 왕이다. 큰 일! 그건 혁명이다. 이 나라는 내 아들만의 나라 (희광이에게 보습을 준다) 갈아 업어라!
((희광이가 안으로 뛰어든다. 비명소리 몰아쳐 들린다. 피묻은 보습을 들고 희광이 나온다.))
[팔도] (나오며 울부짖는다) 내 아들!
[에비] 나머지 한 놈은 어디 갔느냐!
[팔도] 모른다. 이 애비 걷어찬 놈이다. 당해보거라, 너 에비야!
[에비] 사그리 끌어 모아 불질러라!
((아비규환 장엄한 불길이 솟는다))
[페이지] 029
[장] 9장 들녘
((타오르는 들녘. 일직, 월직하자가 화염을 등지고 나타난다.))
[월직] 잘 탄다. 두쪽으로 갈라지더니, 에비의 나라 불바다 됐다
[일직] 전쟁이다. 저희들끼리 잘도 죽이고 죽는다
[월직] 본래 씨알머리없는 족속들이다
[일직] 씨알이라! 에비의 아들이다
[월직] 언제까지 우리가 놀고먹을 수 있겠나?
[일직] 에비가 아들 볼 때까지!
((양편으로 나뉜 청군과 홍군이 지나간다.))
[홍파장군] 앞으로!
[청파대신] 앞으로!
[홍파] 좌로!
[청파] 우로!
[홍파] 돌격하라, 인민의 이름으로!
[청파] 사수하라, 조국의 이름으로!
((에비가 나타나 거울을 높이 든다.))
[에비] 멈추어라! 이 겨레의 에비가 여기 있다
[청파] 대왕, 어서 이리로 오시와 에비의 위엄을 보이소서!
[홍파] 뺏어라! 저것은 인민의 것이다
[청파] 찾아라! 본이 우리들 것이다
((에비에게 덤벼드는 양쪽 군사들. 희광이가 앞서서 길을 열며 에비를 보호한다. 양쪽 군사들, 보습으로 파인 흙처럼 양갈래롤 쓰러진다. 쓰러지고 싸우고 갈라지는 군사들의 움직임은 춤이 된다. 희광이가 에비를 들쳐업고 내달린다. 양쪽 군사들 멀어진다.))
[청파] 에비 잡아라!
[페이지] 030
[홍파] 에비 죽여라!
((황량한 들판에서 에비가 울부짖는다.))
[에비] 물럿거라! 내가 너희들의 에비다. 왕이다. 빛이다. 맥이다. 괴이다. 넋이다. 하늘이다. 해 떠오는 동쪽 바다에서 해지는 서편 너른 들과 하늘 가까운 저 흰눈 싸인 봉우리에서 만경창과 넘실대는 남녘 바다까지 온 누리 모두 다 이 에비의 품이다. 내 아들의 터전이다.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을 모르느냐. 너희가 나를 모르느냐. 어지하여 나 홀로 여기 두고 나뉘어 쟁투하고 죽이고 죽느냐. 그것을 어찌 나 하나에 업이라 하느냐
((마별사와 한파가 에비대왕을 발견한다.))
[마별사] 대왕, 만백성 구중궁궐 어데두시고, 풍찬노숙이 웬일이시오!
[에비] 이놈들, 여태 어디를 끼질르고 쏴 댕겼더냐. 그래 바리데기는?
[마별] 쌀 세 가마에 팔려 갔더이다
[에비] 어디로?
[마별] 소신 불초하여, 하늘 아래 땅 위로 가셨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나이다
[한파] (땅에 뭐라고 쓴다)
[마별] (읽는다) 한시 바삐 뜻있는 장정들을 모아, 이 난국을 평정하시고 분열된 민심을 다잡으소서. 이 땅은 오로지 하나된 에비의 권능으로 다스려져야하오니다
[에비] 누구의 업이기에 우리 겨레붙이들이 분단되어 쟁투하는가? 누가 저들을 꾸짖어 본디 하나로 만들 것이냐. 너냐, 너냐, 나더냐? 아니다. 내 아들이 해야 한다. 이 몸 이미 늙고 쇠하였다. 보아라, 죽음이 코앞을 얼씬 거리고 있다 (허물어져 흐느낀다) 아들을 낳아야 해. 하여 그에게 이 거울을, 누천년 대물린 이 쇳경을, 이 겨레, 나의 왕국을 물려줘야 (찾는다) 어디 어디 갔느냐
[희광이] (찾는다. 없다) 아까 저기---
[에비] 안된다. 당장 찾아와!
[희광이] 벌써 두 동강! (마냥 울고만 있다)
[에비] 내 아비의 넋이 거기에 있고, 내 얼굴이 거기 있고, 내 아들의 얼이 비춰질 이 흰옷 입은 족속들의 보물이다. 이 손안에 있어야 한다!
[홍파] (바리데기의 배냇저고리 끌어안고 외마디 지르더니, 달려나간다)
[마별사] 거기 섰거라! 너 홀로 될 일이 아니다
((??의 함성이 몰아친遁다))
[에비] 장하다. 너 같은 열혈 청춘이 있거늘 내 어찌 앞날을 탄하리요.
[페이지] 031
내 나중에 크게 널 쓰리라. 그렇다 넌 이제부터 이 에비의 아들이다
[마별사] 에이그,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구나
[에비] 아 아! 이 찢어지는 가슴. 그래 이런 것이 아들 잃은 애비의 마음이구나. 알았다. 이제야 에비의 마음을 알겄구나. 내 아들 내놔 이놈들아!
[군사들] (멀리서) 에비 잡아라!
[에비] (광폭하게 웃으며) 네놈들이 감히 날 잡겠다고 냉큼 달려와 두 무릎 꿇고 그 세대가리 조아리지 못할까!
[마별] 대왕, 이러시면 진짜 아들 못 보시고 서거하십니다
[에비] 죽는다고! (사이, 새삼스럽게 마별사를 알아보고) 아니 이게 누구요. 저런 많이도 늙었구려. 하루에 천리를 내달리던 두 다리는 어데 가고 바삭 말라비틀어진 북어 두 마리가 웬일인가
[마별] 그토록 잽싸던 두 다리로도 달겨드는 세월, 막지 못 했나이다. 이 칼로도 오는 백발 막지 못했나이다
[에비] 그대한테도 찾아왔던가, 그놈들이? * 그놈들 → 저승사자
[마별] 늙었지나 죽어지나 이 몸 오직 대왕의 신하일 따름이오니다
[군사들] 업히소서 (가까이서) 에비 죽여라!
[마별] 업히소서 (에비 들쳐 없고 달아난다)
[에비] 놔라! 저기 내 아들들이 온다. 오너라 나의 족속들아! 내가 너희들의 에비다!
(희광이가 절룩거리며 따라 나간다)
[홍파] 죽여라 에비!
[청파] 놔 둬라! 혼 빠진 껍데기다
[홍파] 하하하 넋나간 뼈다귀다
[청파] 우리 여기서 선을 긋자!
[홍파] 좋다. 당분간 휴전이다
[청파] 좋다. 두고 보자!
(둘의 웃음소리, 허공을 맴돈다)
((두쪽으로 나뉜 군사들의 행렬이 춤이 된다. 양편으로 왕좌가 하나씩 마련된다. 각자 왕좌에 앉은 청파대왕 홍파대왕를 서로 편갈라 에워싼 딸 사위들 신하들. 가운데 홀로 「신대방울」움켜쥐고 엎디어 있는 길대부인. 막난이가 어머니에게 다가가 신대방울을 거세게 흔들어 댄다. 방울소리가 세월을 가르는 바람소리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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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0장 마을어귀
((바리데기가 갓난아기를 어루며 서방(막장승) 을 기다린다))
[바리] (노래하며)
쥐암쥐암 짝자꿍
곤지곤지 짝자궁
우리 아들 잘 한다
질라라비 훨훨 ∼오메 내 새끼. 눈이 크니 잃은 것 잘 찾고, 코가 크니 냄새 잘 맡고,
귀가 크니 도둑 잘 지키고, 입이 크니 밥 잘 먹고, 고추 크니 아들 잘
낳을 것이다. 그렇구말고 내 아들. 도둑놈 같은 니 애비 닮지 말고 날
닮거라. 넌 내 아들인 게. 음마 또 쌌냐? 어디 보자 우리 고추
((남?을 한 막난이(에비대왕의 여섯째 공주) 가 들어온다))
[막난이] 말좀 물읍시다. 여기가 천하대장군과 주둔지 맞지요?
[바리] 장군? 우리 서방은 그냥 도적인디
[막난] 의로운 도적이죠. 어디 가셨죠?
[바리] 밤낮 안가리고 사방팔방 싸돌아 댕기는 서방님 발그림자를 뭔 수로 다 헤아린다요. 헌데 우리 애아범은 뭣하러 찾소?
[막난] 아낙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요
[바리] 아따따, 생기기는 지지배 꽁랑지 같이 생겨 먹은 것이 사내랍시고 여자 무시하고 염병하네 (사이) 헌데 많이 본 얼굴이다. 어디서 왔소, 총각?
[막난] 알거 없소 (바리데기의 아기를 보고) 이브다. 딸이요?
[바리] 눈에 고름 꼈어. 아들이다. 보라, 뿔난 고추!
[막난] (아기 받아든다)
((사내들이 돌로 만든 「장승」을 목도로 지고 들어온다))
[사내들] 어기어 어기영차! 영차 영차 어서 가자 영차!
[막장승] (들어오며 바리에게) 거기, 서리맞은 수수깡 모냥 서있지 말고 퍼득 들어가 밥상 챙겨!
[바리] (막난에게) 잠시, 보고 계시쇼!
[장승] 술도 내리고 떡도 쳐라!
[사내들] 예!
((사내들 몇이 바리데기 따라 들어간다.))
[페이지] 033
((나머지 사내들이 「돌장승」을 세우는데 그 얼굴 생김새가 막장승과 꼭 닮았다.
[마름] 이젠, 아랫녘 윗녘 졸개들은 물론이요, 그 무서운 에비의 해꼬지도 얼씬 못할 것이다. 천하의 막장승이 버티고 선 터를 어느 허깨비가 범접해!
[장승] 물럿거라 내가 에비다 하하하!
[마름] 암요. 내친김에 쌈박질만 하는 에비의 사위 놈들하고는 결판을 내십시다. 우리 장승어르신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노랫가락이 사방각지 떠돈답니다
[막난] (노래한다)
앞산아 땡겨라
뒷산아 밀어라
장승아 힘써라
어기 영차 갈아엎자
[장승] 못 보던 얼굴인데, 그 목소리 한 번 묘하다
[마름] 네가 분명 첩자 아니면 자객이렷다!
[막난] (돌장승 가르키며) 전국 각지 마을 앞에, 이걸 만들어 세우게 하시오. 나라사람들 모두가 장군을 믿고 의지할 것이요
[장승] 장군? 그저 힘좀 쓰는 사내다. 남들은 의?이라고도 하고
[막난] 빼앗긴 에비대왕이 권세를 되찾을 분은 천하의 대장군 뿐이요. 어서 바삐 거병하시어, 갈라진 겨레땅 하나로 꿰매시오. 내 그대를 돕겠소
[장승] 거 뜻 모를 소리하덜 말고 내 아들이나 이리 내라
[막난] 내 말대로 하시오. 이 몸이 장군 곁에 있겠소 (겉옷을 벗으며) 에비대왕의 막난공주가 장군께 현신이오!
[마름] 에비의 딸이라면 그냥 둘 수 없다
[장승] 오냐, 너 잘 만났다 (칼 뽑아든다)
[막난] (아기를 내보이며) 어디 보자. 듬직스러운거 너 내 아들 하자!
[장승] 에비대왕인지 도끼대왕한테 아버님과 형님들이 몰살당했다. 각오해라!
[마름] 이젠 그 딸년이 와서 무슨 해꼬지 하려고. 우리 도령한테서 손 떼!
[막난] 이 아들의 앞날보다 죽은 아버지의 원수갚음이 중요하단 말이오!
[장승] 송장보다야 산목숨이 중한 건 알고 있다. 해도 이미 뽑은 칼이다
[막난] 사사로운 원한에 흔들거림은 대장부 할 짓이 못되오.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대왕의 딸이 장군을 받을고자 하오
[마름] 에비대왕은 밥빌어 먹는 떨거지 된지 오래다 (장승에게) 아비의 원수와 손잡는 아들을 믿고 따를 사내들은 어디에도 없소 (아기를 가로챈다) 죽이시오. 아비의 원수를 갚으시오!
[막난] 교룡(蛟龍) 이 운우를 만나면 이미 연못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을 나는 봉황도 깃들일 오동나무가 있어야하오. 이제 천군만마 내몰아 토탄에 빠진 이 겨레 구하시고, 만병천자의 위엄을 득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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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뭔 말인지 모르것지만 지집이 문자를 쓰니 새롭다
[막난] 장군은 이제 제대로 된 짝을 만난 천하대장군이요 (절한다)
[장승] (잠시) 이제 보니, 이쁘긴 이쁘다 땡땡한 것이
[마름] 막둥아! 우리 막둥아! 불구뎅이에서 고스라지던 아버님의 외침이요. 막두아, 네가 할 일이 많다. 어서!
[장승] 기왕 뽑은 칼인데 그냥 거둘 수 없다
(마름의 어깨를 베어낸다)
[마름] 부디 에비를 조심하게!
[장승] 내가 에비다 (마구 난자하여 죽인다) 나한테 명령하지마! 사내는 큰일을 해야한다고 가르쳐 놓고--- (운다) 잘 묻어 드려라!
[막난] 장군이 나라를 얻으면 첫 번째 개국공신으로 기록될 것이오
[장승] (막난을 가르키며) 절 들 올려라! 내 마누라다
[막난] 자 이 길로 떠납시다
[장승] 밥이나 먹고 가자!
[막난] 장군을 기다리는 나의 동지들이 방방곡곡에 넘쳐나고 있소. 우리의 갈 길, 험난할 것이나 멀지는 않다. 보시오. 저 광야를!
((뽀얗게 먼지가 일면서, 온 누리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몰아친다. 아기를 안은 막난공주를 따라 장승과 사내들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한파가 붓을 휘두르고 있다. 몰아치는 바람결에 무수히 많은 종이와 휘장들이 나붓기고 뒹군다.))
[소리] 천하대장군 만세! 지하여장군 만세!
[바리] (앞치마에 손 씻으며 나온다) 밥 들 드시시오 (사이) 악! (사이) 아가!
[장] 11장 성문 앞
((멀리 뒤로 성문이 보인다. 일직, 월직사자가 눈먼 소경 부부로 변장하고 나타난다. 둘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손에 든 요령과 산판 흔들면서 들어온다.))
[페이지] 035
소경 부(일직사자) 소경 부 (월직사자) - (노래하며 춤춘다)
어데까지 가나 도랑 건너 가네
어데까지 가니 개울 건너 가네
어데까지 가나 강을 건너 가네
어데까지 왔나 아직 아직 멀고
어데까지 왔나 여태 여태 왔네
[둘] (자리 잡고 좌정한다)
[월직] 온다 와!
[일직] 에비대왕이 아니라 업부바대왕이다
[월직] 아니다. 업이 많는 업이대왕이다
((늙어 꼬부라진 마별사가, 거렁뱅이 꼴로 볼품없어진 에비를 등에 업고 들어온다. 다리 저는 희광이가 따라온다.))
[에비] 아이고 고프다, 배!
[마별사] 가서 밥 얻어 옵지요 (에베 내려놓는다) (희광에게) 잘 뫼시고 있거라! (나간다)
[에비] 아이고 땡긴다, 수!
[희광이] (에비 내려놓고는 표주박 들고 나간다)
[일직, 월직] 어디로 가는 행차요?
[에비] 니 애미 아랫구녕으로 가는 길이다
[일직] 그 늙은이 입 한 번 걸다. 그 입구녕 이 술로 씻어내라!
[에비] 있느냐, 술! (다가 가 한잔 받아 마신다) 묘하다 그 맛, 달면서 쓰고 시면서 떫고 짜면서 맵다. 이것이 인생의 맛이로고!
((바리데기가 걸망 하나 짊어지고 들어온다. 걸망에서 장승이 머리토막(막장승의 얼굴과 꼭 닮게 깍은 나무장승) 을 꺼내 놓고는 좌판 벌리듯이 퍼질러앉아 외친다
[바리데기] 예 좀 보소. 예 좀 보소.
구년 장마 끝에 해 보듯이 여길 보소
깜깜구름 열치고 나온 달 보듯이 여길 좀 보소
[일직, 월직] 뭐가 보여야 보지
[바리] 여기 있는 이 화살 누구인고
앞산아 땡겨라, 뒷산아 밀어라
어기 영차 갈아엎자 힘쓰자던 천하대장군, 바로 내 서방이오
[두사자] 어디 (손으로 더듬어 본다) 에이구, 그 얼굴에 코가 절반이다
[바리] 뿐인가. 왕방울 같은 두 눈이며, 불산지옥 같이 뜨거운 김 뿜어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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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콧구멍에다. 귀까지 찢어진 그 입에선 땅거죽 흔드는 우렛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나온다오.
[월직] 그 잘난 서방 어데 갔나?
[바리] 내가 묻고 있지 않소, 시방!
[일직] 에헤 서방한테 버림받은 지집이 큰소리는!
[월직] 애그, 널 버리고 떠난 서방 찾아 뭣에 쓰게
[바리] 서방인지 원수인지, 그 뿔난 아랫도리가 내 아들까정 데려 갔단 말이오.
[일직] 지집은 울 때가 사랑스럽더라 (더듬는다)
[월직] 꼴에 사내랍시고 곁눈질하니
[일직] 이쁜 건 좋은 것이다
[바리] 남들 다 아는 얘기 집어치고 이 손 치우고, 내 아들 있는 데나 갈쳐주시오1
[월직] 그거이 어째 니 아들이냐. 서방놈 아들이지
[일직] 치워라. 그 아들 역시 에미를 버리리라!
[바리] 떡두꺼비같은 내 아들이오
[일직] 두껍아 두껍아 헌집 부수고 새 집에 들어라!
[월직] 하모! 크면 다 새 구녕 찾아들지. 허이고 설바 지집의 팔자! (운다)
[바리] 참말 그렇소 (사이) 어쩔거나
[월직] 그까짓 아들이고 서방이고 에비고 다 니가 먼저 버려뿌려!
[바리] 그러고 나면 뭔 재미로 살고?
[월직] 설운 사람한테 정주고, 맺힌 ? 풀어주고, 떠난 인연 맺어주고, 싸인 한 털어주고, 배고푼 이 밥주고, 술고푼 이 안주주고, 외로운 이 노래주고, 기쁜 이들과 춤추고 놀아보게 놀아를 보세. 구구장천 떠도는 넋들과 이 강산 신령들 온 누리 백성들과 어깨 비비고 코도 맞대며 해와 달 떴다 지도록 놀아보세 (바리를 붙잡고 한참을 논다)
[바리] 오매 이거 신명지네
[월직] 얼시구 그럴 것이다. 이거 너 해라 (요령과 산판을 준다)
[바리] (잠시) 그래도 아들 얼굴 한 번 보고푼디
[일직] 이런 제기, 지집의 소갈머리라니!
[월직] 저 새끼 보고푼 에미의 마음을 갖고 뭐 어째 다고. 지집의 소갈머리! 이해심 하나 없고, 밴댕이 코구녕 같은 소갈머리는 사내들한테 더 많다
[일직] 지집이 어따 대고 말대답이여!
위 너도 사내탈 벗고 지집이 돼봐! 내 맘 알고도 남는다. 이놈아!
[일직] 내가 이놈이면 넌 이년이다, 이년아!
(둘이 둘구잽이하며 딩군다)
[바리] 그만 들 하시오. 이러다 해 지네
[월직] 네 아들은 며칠 후 저 성안 궁궐에 들 것이다. 니 서방이 천하를
[페이지] 038
평정한단다. 가서 모자상봉하거라. 어이 가!
[바리] 이 은혜 언제 갚을 까모르겠소. 가요, 나 (떠난다)
[일직] (소경 옷을 벗으며) 자네 시방 천기누설했어!
[월직] 홧김에 털어 노니 시원하다 (사이) 에비 근처는 얼씬도 말거라!
[바리] (멀리서) 에비라니 그 뭔 말이요?
[일직] (당황하며) 아니. 근냥 가! 저것이 지 에비를 만나야 이 지긋지긋한 전쟁 살육 가뭄 기근 돌림병 떼죽음이 끝난다
[월직] 애비가 어찌 딸에게 씨앗을 뿌리리. 천륜에 어긋남다.
[일직] 허면 어쩌자는 것이냐!
[월직] 두고보자. 이 땅위의 살붙이들, 그들의 운명이다
[일직] 피의 흐름인가
[월직] 엎친 데 덮친다
[일직] 꼬인 다 꼬여!
((마별사가 밥 한 덩이 얻어 들고 들어온다))
[마별사] 허이고 (겨우 몸 지탱한다) 밥이요. 시절이 하 수상하니 밥 한술 얻기가 극락가기 보다어렵소이다
[일직] 어허, 허리 꺾여 절반이로고!
[마별] 누구? (저승사자를 발견한다) 오셨구려. 내 아직 대왕께 충의를 다 하지 못했는데 (사이) 나중에 봅시다
[일직] 그만 하면 됐네, 가세!
[마별] 안되겠소? (사이) 마지막으로 밥 한술 공양하고. 어디 계시오?
[일직] (에비가 간 쪽에 밥 놓고 절한다) 수라 받아 드시고 꼭 아들 보시오, 만백성의 에비시여! (목이 매여 울지도 못하다가 사그라진다)
[일직] 업히게, 일생을 남 위해 뛰어 댕겼으니 오죽이나 고단할까
[월직] (업혀주며) 이 밥, 그 에비가 먹을 수 있을까?
[일직] 아무나 먹으면 임자라네
((마별사 들쳐업은 두 사자, 저승길 간다 바리데기가 놓고 간 나무장승의 모자기자 보인다. 에비의 밥을 먹겠다는 이 빛을 뿜으며 눈 치켜 뜨는 장승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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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2장 대장간
((대장장이 화덕이가 아들 일곱 데리고 무쇠를 만든다. 일곱 아들이 풀무질하고 시우쇠에 메질 해서 여러 가지 무기를 만든다. 한켜네 완성된 창 칼 도끼 철곤봉 쇠도리깨 사슬낫 등 섬직한 무기들이 빛을 발하고, 한구석에 조약하나마 대포모양의 신무기도 보인다. 메질 하는 쇳소리가 야멸차게 박자를 탄다. 희광이가 풀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풍채 좋은 화덕이가 에비대왕 앞에서 넉살을 떤다.))
[화덕이] 으하하하. 이번 난리 통에 재미 좀 봤습죠. 윗녘 아랫녘 왼편 오른편이 서로들 주문을 헤대는 통에 밤잠도 못 자고 그러니 아들 농사도 못 짓고, 여태 아들이래 봐야 저 일곱 놈이 고작이오
[에비] 많다. 장하다!
[화덕] 저 애들 갖고 택도 없소. 밀려드는 주문이 여간 많아야지. 풀무도 서너게 더 확장해야겠소. 보시오, 이 무쇠라는 게 검은 황금 아니오. 내 그 동안 쇠붙이 팔아 번 황금이면 이 나라 사고도 남지. 그래 틈만 나면 양쪽 궁궐에서 힘께나 쓴다는 놈들이, 쥐새끼 방앗간 드나들 듯이 여길 드라든다오. 해도 맘에 드는 놈 하나 없어. 죄다 늑대 아니면 여우고 너구리 아니면 쥐새끼, 다 지네들 속셈만 챙기는 얌생이들이지. 꼴에 지집은 끝없이 밝혀요, 들. 그게 다, 아들들 많이 얻어서 지 씨알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거라. 어리석은 에비의 족속들이지 (웃는다)
[에비] 어떻게 아들을 일곱이나 얻었는고?
[화덕] 저 풀무를 보시오. 저 구녕 안에 불을 쏴대면 쇳물이 녹습죠. 그 쇳물을 꺼내 식혀서 사정없이 두두겨대야 창 칼 자귀 괭이 보습이 만들어지는게요. 저 풀무가 마누라이고 이 물건들이 아들입지오 (윗통 벗고 일하는 아들들 사정없이 내려친다) 힘들 내라 이놈들아! 이러다간 제 날짜에 납품 못 한다
[에비] 이 많은 창칼을 누가 쓰노?
[화덕] 몰라서 묻소. 그야 에비의 사위 놈들 아니요. 양편으로 찢어져 저 난리를 쳐대는 에비의 족속들 말이요. 우리야 그저 창 칼 만들어 팔면 그 뿐 (아들들에게) 서둘러. 대충 철저히 만들어 줘도 감지덕지하는 놈들이다. (에비에게) 제대로 된 무기들은 내 비밀 곳간에 있다오. 그걸 누가 써야 할 것인지는 하늘과 나만 안 다오 하하하 (사이) 요즘 천하대장군인가 하는 농사꾼 아들한테 인심이 기운다던데, 하여간 두고 볼일이오
[에비] (버럭) 인심, 천심은 내게 있다
[화덕] 하하하 여하튼 임심은 천심이오 (무쇠로 칼과 방울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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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됐소이다.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죠
[에비] 거울은 어째 없노?
[화덕] 아 예 무쇠라는 것이 녹이 금방 슬어서, 거울은 그저 청공거울입지요. 새 시대의 새무거닝라지만 옛 것이 좋은 것도 있습니다
[에비] 그렇다. 내 반드시 되찾고 말리라 (받아들고 나간다)
[화덕] 그냥 가시게? 내 평생 외상은 안 해봤는데
[에비] 난, 너 줄 거 없다
[화덕] 이런 딱한 지경을 봤나. 애들아!
((화덕의 아들들이 쇠망치 불쏘시개 들고 다가선다.))
[에비] 이놈들 내가 에비다!
[화덕] 에비고 에미고 우리 그런 거 잊은지 오래 됐어
[에비] 너히가 나를 도와 다고!
[화덕] 뭘!
((풀무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희광이가 갑자기 소리지르며 풀무질한다. 에비와 화덕이가 밀담을 나눈다. 굉으뫄 함께 화염이 솟는다. 쇳물이 넘쳐흐른다. 쇳물을 뒤집어 쓴 희광이가 철도끼 양손에 움켜쥐고 우뚝 선다.))
[희광] 에비대왕이시다!
[화덕] 하하하 아무렴 그렇지요
[희광] 앞서시오. 에비대왕이시다!
[에비] 간다. 에비가 간다 (무쇠칼 치켜들고 무쇠방울 흔들며 나간달)
[화덕] (아들들에게 외친달) 불을 당겨라. 바람을 한껏 불어 넣거라. 물과 불이 합해야 단단한 쇠가 탄생한다. 물로 담금질해서 두들기고 두들겨라! 새 세상이 오는 소리다. 강철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인 것이다
[아들하나] 꼴에 에비라네!
[화덕] 그럼 난 할애비다 하하하!
((아들들이 풀무질 해대며 웃는다. 화광이 뻗쳐오른다. 담금질하며 메질 하는 소리가 우렁차다. 화덕이가 대포에 불을 댕긴다. 대포소리와 가까이 다가오는 말발굽소리가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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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3장 궁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깃발이휘날린다. 좌파 우파 중파의 무리들이 늘어선 가운데 막장승이 「임금의 옷」을 입고 들어 와 왕좌에 앉는다. 목을 줄에 매인 채 끌려들어온 청파와 홍파가 무릎 꿇린다. 「신대방울」을 짚은 길대부인 옆에 어느새 아홉 살 소년이 된, 막장승과 바리데기의 아들이 서있다. 한 쪽에 사관이 된 「한파」가 묵묵히 역사를 기록한다. 막난공주가 두 쪽의 「청동거울」을 하나로 합쳐 보인다. 만세소리 드높다.))
[막난공주] 보아라, 두 동강 난 이 나라 말아먹던 불측도당을 정치하신 대장군. 분단의 억압을 길아엎은 혁명의 아버지. 하나된 이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 하늘 아래 첫 도읍지 흰옷 입은 겨레의 새 임금. 만백성이 어버이시고, 만백년 이이온 에비대왕의 큰 불빛 이어받으사, 우리 민족 불멸의 햇빛 되실 새 시대 새 역사의 위대하신 에비대왕이시다.
[모두] 만세 만만세!
[막장승] 나는 보았다! 일떠섰다! 싸웠다! 이겼다! 우리 이제 하나 되었다!
[모두] 만세!
[장승] 살아보자! 이제 다같이 손잡고 너도나도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 새 시대를 맞이하여 다짐하노라. 지난날의 과오를 씻어내노라! (청파 홍파 가르키며) 저 놈들 모가지를 댕강 잘라라!
[모두] (열광한다)
[막난] 대왕, 극단의 조치는 안돼요 (명한다) 그 지간 반쪽 땅이나마 이 나라 부강케 한 청과는 근신 속죄토록 하고, 끝까지 인민들을 볼모 삼아 저항한 홍파는 목을 매달되 장례는 왕족의 예법대로 한다. 시행하라!
[장승] 아낙네가 어디라고 나서! 칼 이리 내!
[중파] 이 같이 경사스런 날에 피를 보시겠다고요
[장승] 매일 보던 피다 (객석 가르키며) 저들이 원하는 피다
[우파] 마마의 말씀이 올습니다. 과격한 혁명이 성공한 예는 없소이다.
[좌파] 자를 건 자르고, 깰 건 깨고, 죽일 건 죽여야만 진정한 혁명이 됩니다
[우파] 그건 혁명이 아니라 단절이오. 우린 다같은 에비대왕의 핏줄들 아니오
[좌파] 더러운 핏줄! 썩고 곯아터졌소. 도려내야 하오
[중파] 이러지 말고 좀더 시간을 갑읍시다. 우선 하옥하시고정해진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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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대로 처리하심이 좋을 듯하다고 사료됨을 아뢰나이다
[장승] 내가 법이다 (둘의 목을 친다)
((만세소리 곡소리 어지럽다. 청파 홍파의 머리가 장대에 꽂혀 올라간다.))
[장승] 오늘부터 이 나라는 나 그리고 내 아들들의 왕국이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하신 나의 아버님을 「할비대왕」으로 모신다. 불타버린 우리 집터에 천길 높이로 무덤을 만들어서, 매일 제사 올리고 모든 백성들이 반드시 참배토록 한다. 돌과 나무기둥에 내 얼굴을 새겨서 마을 입구에 세워라. 나는 이 땅 어디에나 머물고 있는 신령이고 싶다. 두고두고 이 터전 지켜낼 「천하대장군」이다. 내 뜻과 피와 씨알을 대대로 이어 가야겠다. 불타 허물어진 나을신궁을 중건하고 삼천궁여 꽉 채워라
[막난] 삼천궁녀라니요!
[장승] 아들 (가리키며) 하나 갖고 안되지
[한파] (갑자기 웃다가, 장승 뒤로 가서 등에 뭐라고 쓴다)
[장승] 뭐라고 쓴 게야?
[모두] (고개 돌려 외면한다)
[길대부인] (읽는다) 그놈이 그놈이다. 그리운 에비대왕이여!
[장승] 뭔 뜻이냐?
[중파] 그놈은 지난 번 에비이고 또 다른 그놈은 지금 계신 대왕을 친근하게 여긴다는 뜻둁로서, 그놈이 그놈이니깐 그놈보다 여기 이놈을 더더욱 그리워한다는 뜻이 아닐까 전하여 이롸고자 이렇게 글을 쓰지 않았나 여겨지니, 우리 다함께 대왕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을 적어본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장승] 여하튼 내가 잘하고 있다는 말뜻이지?
[모두] 예!
[막난] 누구 앞이라고 대왕을 능멸하고 들 있어. 저 자와 지금 웃은 것들을 모두 하옥하라!
[장승] 그렇다. 끼리끼리 머리통 맞대고 쑤군대는 놈들은 사그리 집아넣어라!
[우파] 더 이상 가둘 감옥이 없소이다
[장승] 그렇다면 웬만한 놈들은 목을 쳐서 내보내 (한파 가리키며) 저놈의 목은 여기서 끊어라 당장!
[우파] 개국공신의 목을 치면 대왕을 향한 인심이 벌어집니다
[중파] 대왕을 향한 충심을 헤아려주심이 가하다고 사료되는봐 널리 통촉하심이 옳은 듯하여 잠시 말씀을 여쭈옵니다
[좌파] 한 번의 실수로, 핏땀을 나눈 동지를 죽이다니, 누가 대왕의 신하가 되겠소이까!
[막난] 대왕께서 이룩한 치적과 역사를 기록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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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좋다. 적어라! 남겨라! 나와 내 조상들의 피어린 항쟁의 역사를. 아! 나의 오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육대조 할아버님이 꿈을 꾸셨는데, 큰 암소 한 마리가 오줌을 싸는데 몸이 말라 그 오줌을 받아 드시고 오대조 할아버지를 나으셨다. 오대조 할아버님은 꿈에 아니 벼슬을 하셨는데 (사이) 그 다음부터는 네가 더 잘 알 테니 알아서 적어라! 아 생각난다. 어머님의 갑롤런 죽음과 불타 돌아가신 아버님이 의연함. 아버님, 사내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고 날 떠나 보내셨지. 그리고 저 왕자를 낳은 여인. 아들 셋을 전잰통에 잃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또 저 아들을 낳았으니 참 대단하고 아까운 여인이야! 지금도 가끔 보름달이 뜨면 생각나 꼭 달덩이 같았거든. 그 여인은 죽은 걸로 해라! 전쟁터에서 날 구하닥 (운다)
[막난] 모두 물러가라!
[모두] (나간다)
((장승의 아들이 다가온다))
[아들] 어머니!
[막난] 저리 가, 꼴도 보기 싫다
[장승] 아들도 하나 못 낳는 지집이 큰소리쳐, 어디서. 아들아, 이리 오너라!
((바리데기 들어온다.))
[바리데기] 내 아들 내놓으시오.
[장승] 이게 누구고? 어라차차. 너로구나. 허! 버릴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반갑다 (아들에게) 봐라. 널 낳은 엄니다
[아들] 엄니?
[바리] 아가야!
[아들] (막난을 가리키며) 어머니는!
[장승] 그냥 널 키워준 엄니다.
[바리] (다가서며) 어디 보자 내 아들! 내가 니 엄니다. 이제 나하고 살자!
[막난] 저리 가. 내가 키운 아들이다. 이 애만 키운지 아느냐. 무식한 저 사내 내가 키워서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그 고마운 음덕을 알겠거든 그대로 물러가라. 대신 일평생 편히 살도록 해줄 것이다.
[장승] 가긴 뭘 가. 내 곁에 있으면서 아들이나 더 낳거라!
[바리] 지랄 용춤추고 자빠졌네. 신다버린 짚새기 벗어 던지듯이 내버릴 땐 언제고, 이제 오사 아들을 낳아달라고. 에라 이 썩어문드러진 세상의 사내놈아. 천하의 여자들이 너희 사내들한테, 맨날 알 낳듯이 아들만 낳아주는 암탉이냐. 아니다 사람이다. 지 맘에 드는 사내 골라 살면서 아들이든 딸이든 하늘이 주신대로 기르면서 내 맘대로 살아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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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그 씨도 안멕히는 소리 하덜 말고 내 아들이나 내놔!
[장승] 난 왕이란 말이다. 이 애도 왕이 되어야 한다. 가려거든 너 혼자 가!
[막난] 네가 진정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에미이거든, 조용히 물러가라!
[바리] 아가야, 이리 온. 이 에미하고 가자. 저기 가면 니 할배가 사는 강이 흐른단다. 가서그 가물에 이 시끄러분 세상, 티끌 씻어버리고 그물 던져 고기 잡으면서 할배랑 에미랑 살자
[장승] 가란 말이다. 저거이 어따 대고 청승떨고 있어, 지잡이. 여봐라!
[바리] (외친다) 세상 사람들! 여기 조강지처 버리고 출세한 사내가 있소. 보시오. 내가 낳은 아들이 여기 있소!
[막난] 좋다 (아들에게) 이담에 임금이 될래 저 엄니 따라 가서 거지처럼 살래. 그대는 누군고 우리 왕자님!
[아들] (바리에게) 시끄럽다. 지집이 어디서 가히 이 왕자 앞에서 설쳐대느냐
[바리] 내가 니 엄니란게
[아들] 이담에 난 임금이다 (막난에게) 어마마마 배고파요
[막난] 여기 왕자님 수랏상 차리거라!
(아들 데리고 나간다)
[바리] (외친다) 이리 와라. 그리 가면 에비다! 에비가 업어간다
[소리] 에비다! 에비대왕이시다!
[모두] 에비다. 에비! (몰려나온다)
((희광이가 쌍도끼 휘두르며 뛰어든다. 희광이의 도끼에 머리가 찍혀 죽는 장승. 철갑으로 무장을 한 화덕이의 아들들이 화덕이 감도는 풀무를 밀고 들어온다. 장군이된 화덕이가 에비대왕을 호위하며 들어온다. 군사들에게 끌려 나오는 막난공주와 바리데기의 아들.))
[막난] 배켜라. 물럿거라. 이거 놔! 내가 누군줄 아느냐. 분열된 이 나라 다시 하나로 묶은 혁명의 어머니다. 에비의 딸이다 지상의 여장군이다. (죽은 막장승을 본다 비명도 흐느낌도 없이 한참을 바라본다. 청동거울을 막장승의 얼굴 위에 놓아준다) 이 나라의 에비답게 잘도 죽었구려. 나 또한 이 겨레 에미답게 죽겠소 저승 가선 아들 못 낳는다고 구박하지 마시오. 아니 그럴 짬도 없을 것이오 (사이) 나 죽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리. 아들로 사내로 남자로 에비로 할비로 (웃는다) 자, 여기 누워있는 사내와 같이 날 만들어라!
[희광] 에비시여! 이 따님을 저한테 주소서!
[막난] (희광의 뺨을 갈긴다) 나도 이렇게 사내답게 죽여주세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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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 보내라!
[희광] (막난을 막장승과 같이 도끼로 찍어 죽인다)
[에비] (막장승의 아들을 보고) 더러운 시다. 말려라!
[바리] (뛰쳐나오며) 살려주시오! 그 애는 내 아들이오
[아들] 너도 저것들하고 한패지. 저리 가!
[에비] 넌 누구의 계집이냐?
[바리] 에비에게 버림받고 서방한테 버림받고 하나 남은 저 아들 찾아온 가련한 인생이오
[에비] (너무 좋아 웃는다) 그렇하다면 너의 아들도 너를 버렸다. (아이를 끓는 쇳물에 밀어 넣는다) 나 이제 아들을 낳으리라!
[길대부인] 아 ∼ ! (신대방울과 하나되어 땅을 구른다)
[모두] 에비다, 에비!
((쇳물 끓는 소리. 대포소리가 축포처럼 연달아 터진다.))
[장] 14장 나을신궁
((어둑한 바. 불에 타 폐허가 되어버린 을씨년스런 신궁의 옛터. 남? 모양의 선돌이 그대로 서있는데, 꼭지 언저리가 불에 검게 그슬려 당당한 위세가 한층 돋보인다. 여전히 금줄이 감겨있고 꽃으로 치장도 되어있다 타오르는 쑥내음이 아득하다. 길대부인이 청동과 뮈쇠로된 두 개의 「신대방울」을 움켜쥐고 서있다. 장정 넷이 가마를 메고 들어온다. 흰옷 입은 바리데기가 가마에서 내린다.))
[길대부인] 듣거라. 너 새겨듣거라. 네가 귀가 있어 말을 듣고, 눈이 있어 꽃을 보고, 입이 있어 뜻을 토할 수 있다면은, 말거라 너 말거라. 귀가 있어도 못들은척 눈이 있어도 못본척 입이 있어도 말 말어라. 네가 지집으로 태어나 할 일 뭐있겠느냐 오직 하나 아들 많이 낳고 딸은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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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는 대로낳아서 이 땅의 겨레붙이 두고두고 씨뿌려 열매 거둬 하늘바라기 땅꾸러기로 살고 지고 살고 지고 (한숨 몰아 쉬고) 네가 어느 누구의 태생인지 모르겠다만 저 에비의 뜻, 하늘 같이 받아들고 품어안고 더도 말고 그저 아들 하나만 낳거라. 하면 우리 겨레 만백성의 에미가 되리라. (신대방울을 바리데기 양옆에 꽂는다)
[바리] 엄니!
[길대] 엄니라니 (사이) 이제부턴 그대가 이 나라의 에미이거늘---
[바리] 그냥 불러봤소. 고향에 계신 우리 엄니도 똑 같은 말씀 되풀이 하셨지라. 아들 많이 낳으라고 (사이) 약조는 꼭 지켜주시오!
[길대] 죽은 네 서방과 아들의 제사는 왕실의 법도대로 모셔질 것이다
[바리] 난 버리지않지라, 애비가 서방이 아들이 나를 버렸어도. 저희가 날 버려도, 내 속에는 저희들이 들어 있어라. 이 가슴에 이 배에 (목이 메인다) 그것들 이 속에 담아 두었다가 내 새끼로 또 낳을 것구만. (울음 터진다) 내가 그것들 에미란게
[길대] 그래 그 놈의 아들만 낳아다고
[바리] 엄니들은 딸아 아니다요. 헌데 어째 아들만 많이 낳라고 해쌓소!
[길대] 많이도 아니다. 하나, 부디 아들 하나 낳아다고! (나간다)
((에비대왕이 들어온다. 선돌 아래 제단에 「청동거울」을 놓고 절한다.))
[에비] (거울 디다보며) 보인다 보여! 아들의 얼굴이! (뒤돌아 바리를 보며) 어디 보자! 너로구나. 바로 너였구나. 아들을 보게 해줄 천생의 연분이. 이제야 널 보게 되다니. 어디 다시 한 번 보자! 어허라, 고울시구 이쁠시구. 어디서 본듯한 이 얼굴. 함초롬이 치켜 뜬 그 눈, 꼭깨문 입술, 흘러내리는 이 어깨, 풍부할사 젖무덤, 어하 그 아래는 말할 것도 없이 넉넉한 애기집이로고 (사이) 내 너를 취하여 씨앗을 뿌리리라. 이 몸 아직 아침에 기둥을 세우거늘 어찌 봄날 씨뿌리는 농부가 아닐쏘냐. 딸아. 길게 누워라. 땅이 되어라. 이 땅은 에비의 아들이 뿌리내려 이어갈 땅이니라. 부디 소중히 다루어라!
[바리] 그러지라. 씨를 뿌리든 풀무질을 하든 맘대로 해보시오. 딸을 낳든 지집을 낳든 내 맘대로 할 테니
[에비] 딸은 안돼! 그것들 낳으면 뭣하노. 산 넘고 물 건너 온 족속들이 씨를 뿌릴 테니 어찌 옛님들게 이어받은 넋의 씨앗을 이 땅에 퍼트려 나가리. 저 하늘을 보아라. 저 별들과 같이 나의 자손들이 번창할지니 바로 너로 해서 말미 함이라 (바리데기 옆에 길게 눕는다) 어허라! 흙냄새가 이토록 고소하니 내가 갈 때가 되었는가보다. 서두르자!
[바리] 가시다니 어대로?
[에비] 너에게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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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에비!
((한파가 선돌 뒤에서 뛰어나오며 외친다. 희광이가 쌍도끼로 막아선다. 한파가 바리데기의 「배냇저고리」를 둘 사이에 갖다 놓는다.))
[바리] 옴마, 이게 누구. 지난번 우리 집에 왔던 그 꿀벙어리 맞지라?
[에비] 이 옷은?
[한파] (바리데기 가리킨다)
[바리] 이건 내가 갓난쟁이 때 입던 옷인디
[한파] (겨우 말한다) 바--- 리--- 데기!
[에비] 하늘아! 땅아! 너희들은 알고 나는 몰랐다. 이 무슨 가혹한 운명의 실타래냐. 천인공노할 이 인록을 누가 만들었던가. 나로다. 내가 너를 버렸기에 찾아온 업보로다. 저 하늘에 별들도 부끄러워 숨었다. 어둡다 산천초목도 고개를 돌렸다. 헌데 이제야 풀렸다 나에게 아들을 낳줄 지집이, 내가 버린 딸년뿐이드냐 (선돌로 달려가 머리를 찢는다)
[한파] (바리에게) 에비--- 아--- 버--- !
[바리] 아버지!
[에비] 어디 보자. 그래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구나. 내 딸의 얼굴이. 어디 어디! 이 얼굴. 거울에 달아봐도 영락없는 이 에비의 딸이구나
[바리] 아버지! 널 버린 아버지? (울음 터트린다)
[에비] 울어라. 그래 네가 생겨날 때도 이렇게 애비 품에 안겨서 울었느니라! 이 애비도 울었다. 네가 아들이 아니 것이 원통해서 울고 울었다. 너만 버리지 않았던들 네 사내동생, 내 아들을 보았을 것을! 에라 이 저주받을 에비의 고집통아! 후회한들 무엇하랴. 가슴만 미어지고 허무러지누나! 깨져라! 염통아 터져나가라. 온몸의 실핏줄이 흩어져나가 저 우주의 먼지로 떠돌아라!
[한파] (선돌에 쓰고 에비에게 보인다)
[에비] (읽으며) 버린 딸 찾았으니 이제 아들을 볼 것이라! (사이) 난 이미 아들을 보았다. 네가 내 아들이다. (청동겅루을 준다) 이것으로 가끔씩 나의 이 부끄러운 얼굴을 보도록 해라 가라! 가서 마르지 않는 샘을 파거라. 어서 모셔라! 에비의 따님이시다!
[바리] 아버지! 나 이 사람, 아들 낳을라요. 처음 만날 때부터 생긴 말이요
[에비] 아무렴 그러하지 (신대방울을 준다) 딸아! 이 땅이 에미가 되거라. 겨레의 넋이 네 품안에 있느니라.
((바리데기 신대방울 떠받들고 나간다. 한파가 뒤따른다. 방울소리 속살대듯 울린다.))
[페이지] 048
[에비] 아 이제 잠을 자고 싶다. 꿈도 없이 한도 없이 숨막히는 잠을! (눕는다) 희광아! 죽음이 무엇인고?
[희광] 내 도끼 맞고 가는 것입니다.
[에비] 너의 죽음은 무엇이냐?
[희광] 내 도끼에 내 머리 찍혀, 가는 것입니다.
[에비] 시행해라!
[희광] 에비시여! (운다)
[에비] 이것이 만백성 버려두고 제 씨앗과 족속만을 구하려던 제왕의 말로이다. 집행해라!
((희광이의 도끼가 「에비의 머리」를 찍는다. 스스로 제 머리 찍고 죽는 희광이. 철갑을 입은 화덕장군과 아들들의 모습 보인다.))
[화덕] 우리들의 에비대왕께서 붕어 하셨다!
[아들들] 모반이다. 암살이다 아니다 혁명이다!
[화덕] 국가존망의 위기를 맞이하여 비상대권을 발동한다!
[아들들] 대가 끊긴 왕권을 누가 이어 갈 것인가?
[화덕] 보아라! 새 왕조의 기틀을 잡아 세우고 다스려나갈 나의 아들들이다.
[맏아들] (화덕장군을 가리키며) 엎디어라, 우리들의 에비대왕이시다!
((화덕장군이 앞으로 썩 나선다. 아들들이 무릎 꿇는다. 한 아들이 고개 치켜세우고, 에비- 화덕장군 -를 쏘아본다. 저승사자. 일직 월직이 어둠 속에서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