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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트레킹 루트 곤도고로 고개를 넘다
곤도고로 고개(Gondogoro La)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재작년 여름 산악인 김형주씨의 차라쿠사 등반대를 따라 파키스탄의 K7 지역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하산 도중 사이초에서 우리와는 다른 방향에서 내려오는 외국인들은 만났는데, 바로 그 고개를 넘어오는 트레커들이었다. 그때는 관심이 없었지만 훈자에서 히말라야에 정통한 한 산악인으로부터 그 고개가 ‘궁극의 트레킹 루트’란 말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나이에 나도 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사람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파키스탄의 오지란 말만 듣고도 손을 내젓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은 실패했다. 금년에도 함께 추진하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다리 부상으로 단념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여름 모험지를 찾고 있던 오지탐험의 고수이자 차라쿠사 원정대 일원이었던 김만수씨가 함께 가자고 나선 것이다. 결국 그의 주선으로 6명의 곤도고로라 트레킹대가 구성되었다. 그동안 여러 번 함께 트레킹했던 노장 양근수씨, 일산산악회의 이규현씨, 그리고 두 여성대원이었다. 팀의 이름은 분위기에 맞게 ‘와일드 트레커즈’로 정했다.
와일드 트레커즈
7월24일 우리 일행은 타이항공 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방콕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밤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트레킹을 책임진 액션트래블 파키스탄의 사장이면서 가이드인 아슈라프가 나와 있었다. 차라쿠사 원정대에서 알게 된 성실한 친구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파키스탄산악회 부회장 집으로 가서 규정에 따른 일종의 입산신고를 했다. 앞으로 겪어야 할 무수한 검문과 신고 등 복잡한 행정절차의 시작이었다. 검문소에 제출하는 허가서 사본만 14통이나 만들었다고 한다. 유독 K2 지역이 그렇다는데 내년부터는 간소화될 것이라고 한다.
폐차장에서 가져온 듯한 일제 4륜 구동차는 아슬아슬한 산길을 마구 달렸다. 오프로드를 했다는 한 대원은 그런 험로는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흔들리는 차 속에서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되어 첫 야영지에 도착했다.
7월29일 실질적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강변의 모래와 자갈길을 따라 줄라(3,180m)까지 올라가는 비교적 순탄한 길이었지만 작열하는 태양이 우리를 괴롭혔다. 온도계는 38℃를 가리켰다. 목적지 근처에서는 강을 건너가는 케이블이 끊어져 바로 눈앞에 야영지를 보면서도 1시간 이상 돌아가야 했다.
초열지옥 속의 강행군
다음날 파유(3,485m)까지 가는 길 역시 초열지옥 속의 강행군이었다. 점심도 그늘은커녕 풀 한 포기 없는 뜨거운 땅바닥에 앉아서 먹어야 했다. 나는 우산을 폈다. 선두와 후미가 벌어지고, 그 중간에 끼어 있던 나는 표지가 없는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다행이 마주 오던 일단의 파키스탄 군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기진맥진한 나를 보고 안 되었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파유로 가는 길까지 데려다 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자기들 구역에 들어왔다고 동포 관광객을 쏘아죽인 군인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국인이 점령했다
8월1일, 우리는 호불체(3,930m)를 향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빙하지역에 들어서면서 한낮의 열기는 좀 식었지만 고도가 점점 올라가고, 얼음과 너덜지대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중 가이드나 포터 없이 올라가고 있던 3명의 체코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호숫가에서 스프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 구수한 냄새가 그 동안 파키스탄 음식만 먹고 있던 우리를 자극했다.
명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콩코르디아
8월3일, 5명으로 줄어든 우리는 고로1을 거쳐 고로2(4,400m)로 향했다. 본격적인 빙하지역이었다. 바닥은 시원했지만 한낮의 열기는 여전해서 최고 43℃를 기록했다. 8월4일 드디어 콩코르디아(4,720m)에 도착했다. 빤히 보이는 야영장이 실제로 가려면 몇 시간이 걸렸다.
콩코르디아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실망했다. 온통 바위와 돌뿐이었던 것이다. 5월경에 오면 눈에 덮인 콩코르디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바로 밑은 빙하이기 때문에 하룻밤 자고 나면 텐트 바닥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야영장의 위치도 오염 등의 이유로 2년마다 옮긴다고 한다.
머리를 들어보니 정상이었다. 정상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10시쯤 된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산길은 장난이 아니었다. 경사도 급했지만 모래와 너덜로 덮여 무척 위험했다. 그 밑에는 얼음이었다. 로프가 깔려 있었지만 나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바지가 찢어지고 다리와 엉덩이가 온통 찰과상이었다. 잘못하면 까마득한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 있었다. 얼음이 녹으면서 돌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험지역은 계속 나타났다. 야영지 후스팡(4,500m)이 빤히 보였지만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기진맥진해 한 대원의 도움으로 겨우 텐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날 다른 대원들은 15시간 이내로 산행을 마쳤는데 나는 그보다 3시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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