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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우수작품상
9월의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 작품
동시 부문: ‘혼자 노는 아이’-정진아 시(어린이책이야기 여름호 발표)
동화 부문: ‘별사이다 한 병’-홍종의 동화(어린이책이야기 여름호 발표)
심사위원
예심: 박신식, 박혜선, 이성자, 서석영, 정혜원, 류근원
본심: 정두리, 전병호, 송재찬, 김재원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시상식: 2011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9월 우수작품상 역시 운영 규정을 준수하였다. 이번 우수작품상은 <월간문학 8월호>, <아동문예 7, 8월호>, <어린이문예 여름호>, <어린이책이야기 여름호>, <아침햇살 여름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예심을 통해 본심 추천 작품(동시 5편, 동화 4편)을 뽑았으며, 본심위원들은 대상 작품을 꼼꼼히 살피고 토론하여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였다. 본심 심사 기간 중에 추석 연휴가 있어 본심 토론 모임을 갖지 않은 대신 좀 더 철저히 심사하기로 하였다. 대체로 지난달보다 작품의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평이다. 앞으로 사무국에서는 우수작품상 선정에 대한 취지를 더욱 알리고, 대상 문예지의 영역을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며, 엄중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수작품상’ 선정이 회원들의 왕성한 작품 활동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9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시 부문
동심을 잘 구현한 시
요즈음 동시가 ‘작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행처럼, 단상에 의지해 소품을 빚어 내는 경향을 경계한다. 그리고 근래에 말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속 없는’ 동시집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손쉽게 시 한 편 만들어 내는 법을 익히거나 남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볼품없는 아류가 되고 만다. 이것들은 모두 치열해야 할 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자기 표절 등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어눌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시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개척해 나가는 한결 같은 자세가 그립다.
이런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정진아의 「혼자 노는 아이」를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정진아는 기존의 시 세계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천 할매집에 살러 왔다’는 말에서 여러 이야기를 유추하게 되듯 ‘나랑 동갑인 그 아이’의 삶은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마을에 하나뿐인 외로운 아이인데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과정에서 보여 주는 치밀한 심리 묘사와 친구를 감싸 안으려는 따뜻함 또는 기다림 등이 동심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시의 제재나 표현 등이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잘 맞추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심사위원: 정두리, 전병호
9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화 부문
돋보이는 작가의 역량
그토록 덥던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더워서 가위 눌렸던 동화들도 산들바람에 살아나고 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보다 여문 작품이 많아서 반갑게 읽었다.
가을 알밤처럼 탱글탱글 여문 작품은 읽는 이의 가슴까지 소복소복 채워 준다.
예심에서 올라온 네 편의 작품, <조각 이불>, <세발고양이>, <별사이다 한 병>, <나무 의자>을 읽어 보니 나름대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조각 이불'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손녀의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작품이다.
'세발 고양이'는 장애를 이겨 내고 달리는 고양이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주위를 살펴보며 생각을 하자는 주제가 좋아 보였다.
'나무 의자'는 주인이 없는 시골집에서 나무 의자와 동물들이 교감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동화적이었고, 낡아서 못 쓰게 된 의자가 늙은 할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이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별사이다 한 병'이었다. 우리가 흔하게 마시는 사이다 한 병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동화를 쓸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부럽기만 하다. 묘사적인 문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고, 할머니가 아빠의 무덤 앞에 별사이다 병을 놓아둔 것을 보고 태기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별사이다를 갖다 주려고 하는 모습이 자못 감동적이다.
다만, 그렇게 친절한 새아빠가 왜 여태까지 태기를 데리고 아빠의 무덤을 한 번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사위원: 송재찬, 김재원
9월의 우수작품상
동시⃒∣정진아
혼자 노는 아이
힐긋, 대문 틈으로
기웃, 담장 너머로
내 마음은
오늘도 순천할매집을 빙빙 돈다
마을에 아이라곤 나 하나였는데
이제 둘이 됐다
순천할매집에 살러 왔다는
나랑 동갑인 여자아이
뽀르르 달려 나와 같이 놀자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다람쥐처럼 신 날 텐데
일주일째 꽁꽁 숨어
혼자 놀려면 얼마나 심심할까?
그래서?
나도 심심하게 혼자 논다.
수상 소감
나를 찾아와 준 ‘혼자 노는 아이’
지난 주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큐슈에 있는 구주산과 아소산 등반을 했지요. 일본에 머무는 이틀 내내 산에만 오르다 왔습니다. 구주산 7시간, 아소산 5시간. 그 12시간 동안 지독한 유황 냄새와 안개와 비바람의 악천후 속에 화산재로 뒤덮인 바위산을 올랐더랬지요. 집에 돌아와 온몸, 구석구석 마디마디가 다 아파서 끙끙대고 누워 있던 중에 ‘우수작품상’ 선정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수상 소감을 쓰려니 실감이 납니다. 좋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특히, 이 작품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혼자 노는 아이’는 제게 각별한 아이입니다. 20년 만에 첫 동시집을 내고 한참을 갈팡질팡했었습니다. 도무지 시가 되지를 않아서요. 그러다가 주말농장, 열댓 평 되는 밭에서 여름 내내 밭농사에 매달리던 중에 ‘혼자 노는 아이’와 만났고, 다시 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제 혼자 노는 아이는 혼자 놀지 않습니다. 친구도 생겼고, 세상을 배워 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혼자 15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기도 하고 무작정 올레길, 둘레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시간을 채우고 나면 제 시도 조금은 깊어지겠지요. 그날까지 긍정의 힘을 밑천 삼아 열심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삶의 원고지를 채워 나가겠습니다.
약력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1988년 《아동문학평론》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등단 20년이 되던 2008년 첫 동시집 《난 내가 참 좋아》를 펴냈다. 1991년부터 방송작가로 일했다.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만남이 삶의 에너지가 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요즘은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갖고, 열심히 여행을 다니며 틈나는 대로 둘레길, 올레길을 걷는다.
9월의 우수작품상
동화∣홍종의
별사이다 한 병
차 례
1. 초록빛 은행잎
2. 별을 묻은 곳
3. 별이 가득한 밤
4. 별사이다 한 병
1. 초록빛 은행잎
학교 수업이 끝나자 해가 살짝 기울었다. 뜨겁던 햇살이 부드러워졌다. 딱 놀기 좋은 날이다. 교문을 지키고 있는 노란 학원 차가 아니면 말이다. 바람이 머리칼을 살살 건드렸다. 이마가 간지러워 “푸핫!”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은행잎들이 포르르 포르르 소리를 내며 바람과 놀고 있다. 너무 요란스럽게 놀았는지 화단에 초록 은행잎이 수북이 떨어졌다. 태기는 허리를 굽혀 은행잎을 주웠다. 한 잎 한 잎 주워 모으다 보니 어느새 책 두께만큼 되었다. 손이 뿌듯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태, 태기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태기는 깜짝 놀랐다. 햇빛을 등져서인지 그림자처럼 캄캄했다. 태기는 이마를 찡그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할머니였다.
“하, 할머니가 어, 어떻게…….”
태기는 말을 더듬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도 할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가 기울어서 인지 그림자가 할머니의 키보다 더 길었다.
“할미와 어디 좀 갈 데가 있어서…….”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손 그림자가 먼저 태기의 몸에 닿았다. 태기는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서야 태기의 몸에서 그림자가 떨어졌다.
“학원 가야 해. 늦었단 말이에요.”
태기가 툴툴거렸다. 교문 밖, 학원 차가 떠나는 것이 보였다. 뛰어가도 따라잡기는 다 틀렸다.
‘난 이제 죽었다!’
엄마의 화난 얼굴이 확 덮쳐 왔다. 새아빠의 얼굴도 보였다. 그리고 혀를 쏙 내밀며 고소해하는 동생 세민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학원이 문제가 아녀. 이 할미와 꼭 갈 데가 있어서 그랴. 다시는 안 그럴겨.”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핏 보니 할머니의 두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태기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 학교에 온 할머니는 오히려 태기가 붙잡고 싶을 만큼 잠깐 얼굴만 보고 갔다. 마치 누가 보면 큰일 날 것처럼. 이번처럼 어디를 가자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 몰라. 가, 가자고요!”
태기는 교문을 향해 앞장을 섰다. 학원 차는 떠났고 지금 간다고 해도 이십 분은 늦었다. 영어 선생님은 늦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지각한 벌로 영어 단어 스무 개 외우기 숙제도 낼 것이다. 그럴 바에는 아예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교문 밖에는 택시가 한 대 서 있었다. 까만색 몸에 고깔처럼 노란 모자를 쓴 모범택시였다.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타지 않는 택시였다. 요금이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그거 타! 얼른 타!”
뒤따라오던 할머니가 소리쳤다. 차에서 내려 맨손 체조를 하고 있던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뒷문을 열어 주었다. 기사 아저씨의 옷차림이 근사했다. 태기가 생각해도 할머니는 부자가 아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고모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좀 모시고 와.”
기사 아저씨가 먼저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걸음이 흔들렸다. 태기는 얼른 할머니를 부축했다. 태기의 몸에 할머니의 몸무게가 실렸다. 가벼웠다.
“어디 가는데 그래? 진짜 갈 거예요?”
태기가 다시 물었다. 할머니는 숨이 차는지 대답을 못하고 가슴을 들썩였다. 태기는 택시에 할머니를 먼저 태우고 망설였다.
“어여, 타.”
할머니가 옆자리를 비우며 손짓을 했다. 할 수 없이 태기는 할머니 옆에 탔다. 택시는 안이 널찍하니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자, 출발합니다. 다시 모시고 오는 걸로 하고 이십만 원입니다. 손주도 들었으니까 다른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기사 아저씨가 뒤 비춤 거울에 두 눈을 걸며 말했다. 기사 아저씨의 눈과 태기의 눈이 딱 마주쳤다. 태기는 흠칫 놀라 잡고 있던 할머니의 손에 힘을 꾹 주었다.
“할머니, 어디 가는데? 진짜 돈 있어요?”
태기는 걱정이 되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우, 운전이나 잘 하우. 내 알아서 몇 만 원 더 얹어 줄 테니.”
할머니가 기사 아저씨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태기가 보란 듯이 쥐고 있는 지갑을 열어 보였다. 초록색 만 원권이 빽빽했다. 태기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거 은행나무 잎 아녀?”
할머니는 그때까지 태기가 쥐고 있는 초록 은행잎을 만지며 말했다.
“아직 떨어질 때도 안 됐는데 왜 땄누.”
할머니가 얼굴을 찡그렸다.
“따긴 누가 따요. 떨어진 거 주웠는데.”
태기는 얼굴을 찡그리며 버릴 곳을 찾았다. 깨끗한 차 안이라 은행잎을 버릴 곳이 없었다. 귀찮지만 차에서 내릴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여기다 넣어.”
할머니가 태기의 마음을 아는지 지갑을 벌렸다. 태기는 할머니의 지갑 안에 초록 은행잎을 넣었다. 할머니의 지갑이 불룩해져 지퍼가 닫히지 않았다. 어떤 것이 돈인지 은행잎 인지 잘 구별이 안 되었다.
“색깔도 참 곱다.”
할머니가 지갑에서 은행잎 하나를 꺼내 택시 유리창에 붙였다. 햇빛이 통과하면서 은행잎이 말개졌다. 은행잎의 가느다란 잎맥들이 핏줄처럼 보였다.
“이 고운 것들이 왜 떨어졌누. 어쩌자고 떨어졌누.”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꾹꾹 찍어 냈다. 그깟 은행잎이 떨어졌다고 울다니. 울 일도 참 많았다. 태기는 기사 아저씨 보기에 그런 할머니가 창피했다. 기사 아저씨가 뒤 비춤 거울로 할머니와 태기를 넘겨다봤다.
“지들이 떨어지고 싶어 떨어졌겠어요? 사연이 있겠지. 허허허.”
기사 아저씨가 맞장구를 쳤다. 다 태기가 잘못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태기는 기분이 나빴다.
“정말 제가 일부러 딴 것이 아니라니까요!”
태기가 소리를 쳤다. 기사 아저씨가 깜짝 놀랐는지 차가 기우뚱했다. 그 바람에 눈물을 찍어 내던 할머니의 손이 태기의 허벅지 위에 떨어졌다. 창에 붙었던 은행잎도 팔랑거리며 날렸다.
‘치, 다시 한 번 그랬단 봐라.’
태기는 그것 보라는 듯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2. 별을 묻은 곳
차를 탄 지 한 시간 반쯤 지났다. 택시가 멈춘 곳은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공동묘지였다. 그때까지 할머니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할머니가 어디 아프시냐?”
기사 아저씨가 차 문을 열어 주며 걱정을 했다. 태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기가 먼저 내렸다.
“늙으면 다 힘이 없는 거유.”
할머니가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을 했다.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챙기며 차에서 내렸다.
“좀 일찍 내려오셔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가 손을 휘휘 내저어 기사 아저씨의 손을 뿌리쳤다. 태기는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네가 할머니 좀 부축해 드려. 어서.”
보다 못한 기사 아저씨가 태기에게 말했다. 태기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 할머니는 언제 힘이 없었냐는 듯 언덕길을 앞서 올랐다.
“할머니, 여긴 왜요?”
‘귀신 나올 것 같아. 무서워 죽겠네.’
태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언덕길 양쪽으로 봉긋봉긋한 무덤들뿐이었다. 어떤 것은 돌로 띠를 두르고 비석도 세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나무와 풀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며 서로 키 재기를 하는 무덤들이다. 우거진 풀 사이사이로 배추흰나비처럼 꽃송이가 보였다.
“무슨 꽃이지?”
태기는 지나치면서 꽃가지 하나를 뚝 꺾었다.
“애비 주려고?”
그것을 본 할머니가 불쑥 말했다. 애비라니…….
태기는 들고 있던 꽃가지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태기는 가슴이 우당퉁탕거렸다. 너무 가슴이 뛰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태기는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태기가 두 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태기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도 여섯 살 무렵이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고 아주 잠깐 고모 집에서 할머니와 살았던 기억부터다. 누구한테도 아빠의 무덤이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태기가 열 살이 되던 해 엄마가 새아빠와 결혼을 했다.
“별을 묻어 놨는디, 별을 묻어 놨는디.”
할머니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 무덤 저 무덤을 기웃거렸다. 무덤은 풀과 나무가 우거져 비슷비슷했다.
“이를 어쩌누. 이를 어쩌누.”
할머니가 울상을 지었다.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태기는 억새꽃 대궁을 뽑아 질겅질겅 씹었다. 달큰 쌉싸래한 풀물이 입안에 고였다. 가끔 우거진 풀 속에 할머니의 몸이 파묻혔다. 그럴 때마다 태기는 겁이 나서 목을 길게 빼고 할머니를 찾았다.
“봐, 여기여. 이렇게 별을 박아 놓은 곳이 느 애비 무덤여.”
드디어 할머니가 아빠의 무덤을 찾은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몸을 세우고 손짓을 했다. 태기가 얼른 쫓아갔다. 할머니가 무덤 앞 풀을 헤치며 초록색 병 하나를 집어 올렸다. 별 일곱 개가 그려진 사이다 병이었다. 무덤 앞에는 몇 개의 병들이 거꾸로 박혀 있었다. 별을 묻어 놓았다는 할머니의 말이 그때서야 알 듯했다.
“잘 봐 둬. 느 애비여.”
할머니가 무덤 앞 풀들을 손으로 쓰러뜨리며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무덤을 끌어안았다. 풀 속에 할머니의 몸이 폭 파묻혔다. 할머니는 어깨가 들썩거리며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마치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할머니의 손에 쓰러졌던 무덤 앞 풀들이 바람을 짚고 다시 일어났다. 태기는 일어나는 풀들을 발로 꾹꾹 눌렀다. 그렇게 하자 풀들이 얌전하게 누웠다.
“이 할미 죽으면 가르쳐 줄 사람도 없어. 에이구, 불쌍한…….”
할머니가 종이접시에 사과 한 알을 올렸다. 소주병을 따 술도 한 잔 따라 놓았다. 풀 섶에 숨어 있던 바람이 먼저 달려들어 종이접시와 술잔을 흔들었다.
“절 올려. 두 번 하는겨.”
할머니가 일어서 이마에 손을 대고 큰절을 했다. 태기도 따라서 엎드렸다. 훅! 하고 흙냄새가 코를 막았다. 두 번째 절에서 할머니는 땅에서 머리를 떼지 않았다. 곁눈질로 할머니를 보면서 태기는 때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할머니는 잠이라도 자려는 듯 했다. 태기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할머니, 나는 아빠니까 절을 한다고 쳐. 그런데 할머니는 아들인데 왜 절을 해요?”
태기가 머리를 살짝 들고 물었다.
“흐훗!”
갑자기 할머니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먼저 죽은 사람이 어른인겨. 나이가 어려도. 흐훗!”
울음소리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었다. 할머니가 태기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할머니의 웃음을 보자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졌다.
“자꾸 좀 물어 봐. 자꾸 좀. 그래야 니 애비 무덤을 기억하지.”
할머니는 태기가 또 무엇인가를 물어 주기를 바랐다.
“왜 별사이다 병을 묻어 놨어요?”
태기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물었다.
“느, 애비가 좋아했거덩. 사이다 한 병이면 최고였거덩. 답답한 속 뻥 뚫리라고 사다 줬지.”
할머니가 별사이다 병을 집어 치마로 흙을 닦았다. 풀빛보다 더 진한 초록색이었다. 하얗게 닦여진 일곱 개의 별들이 반짝반짝거렸다.
“요새는 이거 구하기도 힘들어. 슈퍼에도 없댜. 거, 뭣이냐 깡통으로 된 것을 주는디 진짜 사이다는 이런 병여. 이렇게 별이 박힌 병이란 말여.”
할머니가 무덤에 칠성사이다 대신 소주를 가져 온 이유였다. 할머니는 병으로 된 별사이다만 진짜 사이다로 여겼다.
“아, 이놈 한 병 벌컥벌컥 들이키면 답답한 가심이 뻥 뚫리겄는디…….”
할머니가 별사이다 병을 들어 올려 마시는 시늉을 했다. 병 주둥이를 향해 혀까지 내밀었다. 할머니는 정말 목이 마려운 듯했다. 진짜 사이다를 마시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이제는 얘 가심에도 별을 묻어 놨으니께 찾아올 거여. 하늘에 천지가 별인디 얘가 잊어 먹겄냐. 그러니 니는 맘 편히 자는겨.”
할머니가 무덤 풀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말하는 ‘얘’는 태기고 ‘니’는 아빠였다. 그것쯤은 태기도 알았다.
“할머니, 할머니!”
산 아래에서 기사 아저씨가 불렀다. 저 멀리 골짜기에 산그늘이 지고 있었다.
3. 별이 가득한 밤
“너한테 해 준 것이 없어도 애비는 애비여.”
할머니가 택시에서 태기를 내려 주며 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있었다. 할머니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태기의 손에 쥐어 주었다. 꼭 태기가 주웠던 초록색 은행잎 두께 만큼이다. 태기가 처음 가져 보는 많은 돈이었다.
태기는 멀어지는 택시의 꽁무니 불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반짝거렸다. 골목길을 들어서다가 새아빠와 마주쳤다. 태기는 숨이 딱 멎었다.
“저, 저 목 마려워요. 사이다 사 주세요.”
태기의 입에서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럼 가자.”
새아빠가 태기의 손을 잡고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새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기는 새아빠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사사건건 태기의 일에 간섭을 하는데 새아빠는 무조건 믿어 주는 편이었다. 태기는 음료수 냉장고 앞에 섰다. 갖가지 음료수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태기는 선뜻 음료수를 고르지 못했다.
“사이다 마신다면서.”
새아빠가 캔으로 된 사이다를 꺼냈다.
“그거 아니고요. 병으로 된 사이다. 별이 그려진 별사이다요.”
태기가 냉장고 안쪽을 들여다봤다.
“아, 그거? 글쎄 요즘은 안 나오는 거 같은데……. 저기요, 병으로 된 별사이다 있어요?”
새아빠가 계산대에 있는 형에게 물었다.
“요즘은 음식점용으로 나오지 여긴 안 나오는데요.”
형이 대답했다.
“봐라. 안 나온댄다. 이거라도 마시지. 똑같은 건데.”
새아빠가 태기의 손에 사이다 캔을 쥐어 주었다. 태기는 사이다 캔을 다시 냉장고 안에 넣었다. 그리고 편의점을 나왔다.
“녀석, 그게 그거지. 늙은이처럼 웬 병 사이다를 찾아. 허허허.”
새아빠가 웃으며 따라왔다.
“어디 갔다 왔는지 말해 주면 안 되겠니?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새아빠가 물었다.
“할머니를 따라서 아빠 무덤에 다녀왔어요.”
태기는 새아빠가 물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얼른 대답을 해 버렸다. 대답을 하고 나자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렸다. 마치 사이다를 마신 듯했다.
“…….”
새아빠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태기가 잘못을 빌었다.
“자, 잘못한 것은 아니고. 엄마한테는 그냥 할머니와 같이 있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태기도 새아빠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솔직히 아빠의 무덤은 그냥 그랬다. 마치 풀 우거진 언덕과 다를 바 없었다. 할머니와 같이 오래 있었던 생각이 더 머리에 남았다.
“도대체 어디 갔었어. 응? 학원도 빼먹고 어디 갔다 온 거야. 네가 어린애니? 5학년이면 이제 청소년이야. 왜 안 하던 짓을 해.”
집에 들어서자 엄마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오는 했던 일이었다.
“할머니와 같이 있었대. 이것저것 맛있는 것 사 주시는 바람에 늦은 거겠지. 할머니도 손자가 보고 싶어 그러셨겠지. 자, 들어왔으니까 됐고. 태기는 어서 씻고 방으로 들어 가.”
새아빠가 엄마의 말을 다 막아 주었다.
“노인네가 생각이 없으셔. 그럼 전화라도 해 줘야 될 것 아냐. 그리고 맘 잡고 잘 사는 애를 왜 흔들어.”
엄마의 말 화살이 할머니에게 마구 날아갔다. 태기는 겉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방금 누가 씻었는지 화장실에는 김이 뽀얗게 서려 있었다.
‘태기 바보.’
세면대 앞 거울에는 그렇게 써 있었다. 동생 세민이, 그러니까 새아빠의 아들인 세민이 짓이다. 태기보다 두 살 아래인 세민이는 눈치가 빨라 꾸중 한 번 안 들었다. 이번에도 큰 소리가 나자 꼼짝하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얼마나 살랑거리는지 몰랐다. 엄마도 그런 세민이를 더 예뻐했다. 그렇다고 세민이가 아주 미운 것은 아니다. 얄밉기는 해도 저한테는 새엄마인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서 고마웠다.
태기는 손바닥으로 거울을 휘휘 닦아 글자를 지웠다. 거울에 태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면대의 물을 틀자 다시 거울에 김이 서렸다. 태기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의 얼굴이 거울에 잠깐 떠올랐다.
“하, 할머니. 흑!”
태기는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크게 속상한 것도 없고 크게 야단맞은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금방 그쳐지지 않았다. 태기는 얼굴에 박박 비누칠을 했다.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지만 참고 참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쯤 태기는 푸덕푸덕 얼굴을 씻었다.
“저 녀석이 사춘긴가 봐요.”
안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춘기는 무슨.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 그냥 믿어 봐요. 나는 태기만 보면 든든하고 좋은데 뭘.”
새아빠의 칭찬 소리가 들렸다. 태기는 조심조심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잘 가셨을까?’
태기는 걱정이 되었다. 휴대전화라도 있다면 고모 집으로 금방 전화를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엄마가 잠들기를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반, 여운내 공동묘지, 왼쪽 언덕길로 300미터 정도, 오른쪽 소나무를 끼고, 네 번째 무덤. 무덤 앞에 별사이다 병 다섯 개, 별을 묻어 놓은 곳, 별을 묻어 놓은 곳.
태기는 메모지에 이렇게 썼다. 눈앞에 무덤의 그림이 환하게 그려졌다.
“태기 자니?”
새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태기는 미처 메모지를 감추지 못했다. 새아빠는 부스럭거리며 책상위에 빵과 사이다병을 올려놓았다. 별이 그려진 별사이다였다.
“나 때문에 저녁도 못 먹었지? 괜히 할머니가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셨다고 오버를 하는 바람에. 허허허. 여기 병으로 된 별사이다도 갈빗집에서 사정을 해서 사 온 거다. 허허허.”
새아빠가 느릿느릿 말을 했다. 메모지에 적힌 글을 읽고 있다고 태기는 느낌으로 알았다. 새아빠가 태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나갔다.
태기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날씨가 좋은지 오늘따라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초록색 사이다병에도 자꾸만 별이 늘어났다. 태기는 병뚜껑을 따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매운 트림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4. 별사이다 한 병
할머니가 준 돈이 문제였다. 삼십만 원이다. 엄마에게 몇 번 고백을 하려고 했지만 태기는 기회를 놓쳤다.
‘휴대전화를 살까?’
태기는 그 생각을 했다. 무덤에 다녀온 날, 거실에 있는 전화를 못 쓰고 잠들었다. 며칠 동안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휴대전화만 있었다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다. 아무래도 엄마보다는 새아빠와 의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태기는 출근을 하는 새아빠를 따라 나섰다.
“우리 태기랑 같이 나가니까 좋다. 허허허.”
새아빠가 기뻐했다. 골목을 벗어나 태기는 새아빠에게 돈 뭉치를 내밀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새아빠가 태기의 말을 듣고 허락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와 휴대전화를 사 주자고 했는데 잘 됐다.”
새아빠는 단번에 태기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할머니에게 돈을 받은 것을 싹 빼고 새아빠가 사 준 걸로 하자고 먼저 말했다. 그리고 새아빠는 이만 원을 용돈으로 쓰라고 돌려주었다.
새아빠는 참 급했다. 점심시간에 학교로 찾아와 태기에게 휴대전화를 전해 주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아빠와 통화를 하기.”
새아빠는 간지럽게 새끼손가락까지 내밀었다. 태기도 망설임 없이 새아빠의 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무엇인지 뜨거운 것이 목에 딱 걸리는 느낌이었다. 태기는 얼른 침을 삼켰다.
태기는 쉬는 시간에 고모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쉬는 시간에 또 전화를 걸었다.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학교 공부가 끝났다.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오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의 전화번호가 떴다. 태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휴대전화를 사고 처음으로 받는 전화였다.
“아빠가 휴대전화 사 주셨지? 지금 공부 끝나지 않았니? 학원가야지? 학원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 엄마도 일찍 퇴근할게. 아빠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 줄 알아?”
엄마는 쉴 새 없이 묻고 말했다. 마치 ‘휴대전화만 생겼단 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던 듯 했다. 다행히 할머니의 돈 이야기는 모르는 것 같았다. 태기는 새아빠가 믿음직스러워졌다. 태기는 교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원 차에 올랐다.
원어민 영어 선생님의 말이 귓속에 쏙쏙 들어왔다.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 그래도 시간이 더디 갔다. 태기는 몇 번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자, 오늘은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십 분 일찍 끝내 줄게.”
참 별일이었다. 학원 공부를 일찍 끝내 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태기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시간 계산을 했다. 지금 튀어나가 택시를 타고 고모 집에 다녀온다면……. 좀 늦기는 하겠지만 꾸중을 들을 만큼은 아닐 것 같았다.
태기는 부랴부랴 학원을 나왔다. 택시를 잡으려던 태기는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음료수 냉장고에는 병으로 된 칠성사이다가 없었다. 다시 태기는 근처 슈퍼로 갔다.
“아줌마, 병으로 된 별사이다 있어요?”
아줌마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태기는 모퉁이 슈퍼로 다시 뛰었다. 거기도 병으로 된 별사이다가 없었다.
“갈빗집에서 사정을 해서 사 온 거다.”
아빠의 무덤에 다녀온 날, 밤늦게 병으로 된 별사이다를 사다 주면서 새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침 근처에 갈빗집이 보였다. 태기는 앞뒤 재지 않고 갈빗집 문을 열었다.
“아줌마, 병으로 된 별사이다 있죠? 한 병만 파세요. 우리 할머니가 사 오래요.”
태기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런 태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줌마가 냉장고에서 병으로 된 별사이다를 꺼내 왔다. 태기는 만 원짜리를 내놓았다.
“됐다 얘, 나중에 가족끼리 한 번 와.”
아줌마가 돈을 도로 주었다. 태기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재빨리 갈빗집을 나왔다. 태기는 무슨 큰 보물이라도 되는 양 별사이다 병을 꼭 끌어안았다.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축축해 졌다.
태기가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막 택시에 타서였다. 태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택시 타고 영화병원 영안실로 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알았지? 엄마가 너를 데리러 갈 시간이 없어. 알았지?”
엄마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태기는 한참 동안 엄마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새아빠였다.
“태기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까 지금 택시 타고 영화병원 영안실로 와. 아빠도 그리로 가고 있으니까.”
새아빠가 전화를 끊었다. 그때서야 태기는 정신을 차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저씨, 영화병원 영안실로 가 주세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태기는 기사 아저씨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기사 아저씨가 무엇을 물었지만 태기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면서 어지러웠다. 태기는 차가운 사이다병을 가슴에 마구 문질렀다. 그래도 답답한 가슴이 뚫리지 않았다.
태기는 사이다병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빨에 병뚜껑이 걸렸다.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키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았다.
“아, 이놈 한 병 벌컥벌컥 들이키면 답답한 가심이 뻥 뚫리겄는디…….”
그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아빠의 무덤에서 빈 사이다병을 흔들며 목말라 하던. 태기는 깜짝 놀라 이빨을 병뚜껑에서 뗐다.
“아저씨, 빨리 빨리요. 우리 할머니에게 이 사이다 드려야 해요.”
태기는 앞자리 의자를 흔들며 기사 아저씨를 졸랐다.
“녀석도 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해. 보면 몰라?”
기사 아저씨가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차들이 꽁무니에 빨갛게 불을 켜고 멈춰 서 있었다.
“우리 할머니에게 드려야 하는데. 우리 할머니에게 드려야 하는데. 으앙!”
태기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태기의 눈물이 초록색 별사이다 병에 뚝뚝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마다 하얀 별이 피어났다. 별들이 빛을 뿜어댔다. 갑자기 택시 앞이 환하게 트였다.
“이제 차들이 빠지는군.”
기사 아저씨가 힘껏 속도를 올렸다. 택시가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수상 소감
손해를 끼치지 않는 글
동화란 ‘자극’이 아니라 ‘보듬어줌’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정리는 제가 동화작가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났을 때 비로소 갖게 된 신념이기도 합니다.
작금의 출판 시장, 특히 아동문학 시장은 ‘자극’의 시장입니다. 걸러 내지 않는 사회문제, 흥미 위주의 생활 그리고 학습을 앞세운 기획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 속에서 순수 동화가 발붙이지 못해 밀려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출판을 고려해 이 시류에 편승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제 글을 돌아보기 위해 쓴 글이 바로 중편동화 ‘별사이다 한 병’이었습니다.
‘이달의 우수작품상’ 수상 소식은 그래서 송구스러웠습니다. 한편,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동화는 ‘생명의 문학’ ‘치유의 문학’임을 늘 가슴 속에 쟁여 두겠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내 글을 읽어 주는 독자들에게 결코 손해를 끼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읽든, 어른들이 읽든 뒤끝이 아릿아릿한 동화를 쓰고 싶습니다. 아들의 무덤에 별사이다 병을 묻어 두는 할머니의 마음이 바로 동화라는 생각입니다. 그 할머니의 마음이 아이의 마음에서 일곱 개의 별이 되어 탄생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62년 충남 천안 목천에서 태어났다.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고, 계몽아동문학상, 율목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동화책으로 《초록말 벼리》 《반달역》 《구만이는 울었다》 《똥바가지》 《오이도행 열차》 《떴다 벼락이》 외 여러 권이 있으며, 어른이 읽는 동화집 《별이 내려오는 마당》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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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분 선생님, 모두 축하드립니다. 어린이책이야기에서 홍선생님 작품 읽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영광을 안게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두분 우수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 건필을 빌며. 이준섭 드림
9월 우수작 수상자로 선정된 두 분에게 축하드립니다
축하, 축하드립니다!
두 분 축하드립니다.
좋은 작품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대학의 문창과 학생과 대학원생들이 읽어야 할 본보기 작품으로 퍼가겠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렬 꾸벅, 꾸벅!
정진아, 홍종의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두 작품 모두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라, 보는 제가 다 흐뭇했습니다.
홍종의 선생님이 수상소감에 말씀하신 동화는 '자극'이 아니라, '보듬어줌'이라는 말씀. 또, 동화는 생면의 문학, 치유의 문학이라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아침 내내 맘이 심란하던 참인데 보듬어줌이란 말이 따뜻하게 가슴에 와 박히네요. 오늘은 그 말에 시간을 할애해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정진아 선생님, 홍종의 선생님 수상을 축하 축하 축하 축하드립니다.
두 분 축하드려요.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먹고 싶네요. 사이다 병...그 하나로 그런 동화를 쓸 수 있다니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정진아 선생님, 홍종의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가을이 두 분께 귀한 선물을 안겨주었나 봅니다. 많이 배우고 도전을 받습니다. 감사!!
앞으로도 좋은 작품 써 주세요! 축하합니다
두 분 정말 축하드립니다...^^
두 분, 베리 베리 축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동화 창작하겠습니다.
정진아 선생님, 홍종의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