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무(화승삼성아파트)
이 일대는 대형 신발 업체인 동양고무(화승산업)가 67년 초량에서 옮겨오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고, 현재의 삼익아파트에서 동양고무에 이르는 너비 10m 길이 1km의 도로를 따라 다방, 술집, 옷가게 등이 속속 문을 열었으며 매월 10일의 월급날이면 이 일대가 흥청거렸다. 또 신발 끈과 밑창, 갑피 등을 만드는 영세 신발 부품 제조업체 200여 개가 동양고무, 진양화학, 태화고무 등과 함께 웃고 울었다. 신발 공장 지대의 근로자들이 기거하던, 방 한 칸에 연탄 부엌 하나가 붙은 슬레이트 지붕의 하숙집엔 한 방에 많게는 10여명씩 모여 살기도 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의 신발 경기가 호황일 때는 하룻 동안에만 500~1.000명의 타 지방 처녀들이 몰려와 동양고무 앞에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실제로 81년과 82년도엔 각 회사 차량을 포함해서 146개 업체의 버스가 당감동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신발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이들은 하나 둘씩 이 지역을 떠나갔고, 1997년 화승산업으로 이름을 바꾼 동양고무가 폐쇄되면서 20.000여평에 이르는 이 자리에는 1.811세대의 화승아파트가 우뚝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