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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반팔 옷을 입고 손에는 아이스커피를 들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햇빛, 여름의 문턱에서 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운 이유는 바로 휴가가 있어서다.
해외라도 나가면 좋겠지만 얇은 지갑사정과 오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국내여행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먼 곳만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가까운 곳을 보면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행복해지는 곳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
중앙선 전철을 타고서도 갈 수 있는 곳, 양평은 어떨까?
양수리는 산을 품고 강을 안은 곳이며,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운길산 팔부능선에 위치해 있는 수종사와 마음을 씻어주는 세미원, 강과 강이 만나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곳 두물머리까지…
여름의 문턱에서 양평으로 나는 떠났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바로 수종사가 보이리라
△ 수종사 가는 길을 돋보이게 하는 시
△ 입구를 지나면 경사가 점점 심해진다. 숨도 서서히 가빠지기 시작한다
가는 길은 험하지만 즐거워라~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운길산은 610m로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 멈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조곡선, 초동산, 수종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우리말로는 “큰 사랑산”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별명이 참 많은 산이다. 별명 많은 산에 위치한 수종사, 사찰을 가는 길도 2개, 진중리와 송촌리 두 코스가 있다. 진중리 코스는 운길산 역에서 왼쪽 굴다리를 지나 곧바로 오를 수 있고, 송촌리코스는 운길산역에서 송촌리까지 20분쯤 걸어가야 한다. 내가 걸은 코스는 진중리 코스이다. 등산객들 몇 명밖에 없는 운길산 역을 나와 굴다리를 지나 한적한 마을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수종사 입구에 다다랐다. 하지만 입구는 입구일 뿐, 이제 시작이었다.
귓가에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내 살갗을 새카맣게 만들려고 작정을 했는지 햇빛은 쨍쨍 내리쬔다. 수종사 가는 길은 경사가 좀 있는 편이다. 얼마 걷지 않아 땀이 주르르 흐르지만, 이 땀이 없다면 가는 길조차 심심할 것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는 심해지고 땀과 숨소리는 거칠어지는데, 신기하게도 바람도 거세진다. 나에게는 오르막일 이 길이 바람에게는 내리막일 것이라 생각하면 피식 웃음도 난다. 내려올 때는 바람을 등에 업고 발빠르게 내려올테니 말이다.
운길산역에서 수종사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일주문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경사가 심하고 워낙에 커브가 심한 편이라 차가 올라갈 때면 운전자도 긴장하고 수종사를 향하는 등산객들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제대로 수종사를 느끼고 싶거든 도보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길을 타고 내려오는 차를 만나는 것보다 산기운을 잔뜩 머금은 산바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으니~
△ 한 시간 정도 걸은 후 만나게 되는 일주문
△ 명상의 길
△ 수종사 부도와 5층석탑
날아갈 듯이 8부 능선에 자리잡은 수종사
일주문을 지나 명상의 길을 걷고 다시 돌계단을 오른다. 힘들게 오른 만큼 수종사의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수종사는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갈 듯 운길산의 8부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나 이곳을 오르는 우리들은 날지 못한다. 오히려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으로 올라오니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가볍고자 오르는 절이건만 왜 진정 우리의 몸은 가볍지 않은지…
대웅전 앞마당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탁 트인 한강을 바라본다. 멋진 풍경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오를 때는 절이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지은건지 세조를 원망하게 되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이 사찰이 이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종사(水鍾寺)의 ‘水鍾(수종)’은 ‘물종’이라는 뜻이다. 1458년 조선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하루 묵었다. 세조가 한밤중 자다가 맑은 종소리를 들었는데, 산에 올라가 살펴보니 바위굴 속에 16나한이 있었다고 한다. 종소리는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린 것이었다. 그리고 세조는 왕명을 내려 이듬해 절을 중창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맑고 고왔으면 종소리로 들렸을까? 신비한 유래를 지닌 수종사, 또한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은 이곳을 천하제일의 명소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또한 초의, 다산, 추사의 걸음까지 이 수종사에 멈추게 이르게 했고, 지금의 나까지 이곳에 오게 만들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예전 신라시대부터 있었으리라…
“수종사는 천년의 향기를 품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온누리에 울리며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온 셈이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에 있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 유수종사기, 다산 정약용
△ 500년 넘은 은행나무 앞에서 인증샷은 필수
500년 넘도록 서 있는 의젓한 은행나무, 그 밑에서 잠시 휴식을…
수종사에는 세조가 심었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나이는 무려 500살이 넘는다. 해탈문 뒤에서 의젓하게 서 있는 나무는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이나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산 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모든 깨달음을 다 얻은 듯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보듬어 주는 나무는 수종사의 찻집 삼정헌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천년이 넘게 산을 품고 강을 바라본 이 곳에서는 구름이 끼었던 마음도 눈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진정한 휴가라면 몸과 마음도 즐거워야 하는 법!
△ 푸르름을 가득 머금은 숲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 수종사에 오른 순간 내 마음은 맑아졌고, 더불어 한 평 더 넓어졌다.
마음의 평수를 넓히고, 정화시킨 후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세미원이다.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은 마음을 씻어낸다는 뜻을 가진 곳이다.
△ 너무나도 독특해서 시선을 사로잡는 세미원의 정문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에서 더위 잊기
두물머리 옆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정원이 있다. 이곳은 세미원이다. 면적 18만제곱미터 규모의 크나큰 정원 안엔 연꽃으로 뒤덮인 6개의 커다란 연못과 산책로, 창덕궁 장독대를 묘사한 분수대, 유상곡수(流觴曲水) 등 풍성한 볼거리가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이름이 참으로 독특하다. 수세미도 아닌 세미원이라니. 양평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을 꼭 들리고 주변 근처의 학교들도 이곳을 현장학습 장소로 많이들 찾아오곤 한다.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장자>에 나오는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에서 따왔다. 즉,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곳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곳이다.
△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세미원의 정문 격인 불이문을 지나면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나온다. 시냇물 가운데로 돌다리가 깔려 있는데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돌다리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면서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 항아리분수
수많은 항아리로 장식된 분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을 위해 비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 이 분수는 항아리를 이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항아리 개수도 1년을 연상하는 365개라고 하니.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꽃을 보며 마음 아름답게 하기
△ 잠시 쉬었다가기
△ 내 자체가 빨래인 것 마냥 뽀득뽀득 마음의 대를 벗겨내자
△ 지렁이도 사랑하게 되는 곳, 지렁이 환경학교
특별한 사연을 지닌 곳, 세미원
두물머리 맞은편에 위치한 세미원은 만들어진 배경이 참으로 흥미롭다. 원래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강가로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고, 상류에서 떠내려 온 부유물들로 가득한 불모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작은 노력이 시작되었는데 쓰레기를 수거하고 그 곳에다 수질 정화능력이 뛰어난 연을 가져다 심었고, 이러한 이야기가 알려지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아름다운 물의 정원, 세미원이 탄생했다고 한다.
연꽃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이곳에서는 연꽃을 보고 마음에 느낀 바를 읊은 시와 그림들이 함께 전시 되어 있다. 일 년 내내 아름다운 수련 꽃들을 볼 수 있는 세계 수련관, 수생식물의 환경 정화능력을 실험하고 현상을 교육하는 환경교육장 등, 단순한 정원이 아닌 환경을 가르침으로 재산으로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도 한다. 데이트를 하기에도, 가족끼리 소풍을 나와도 좋을 이곳은 휴가지로도 제격이다.
물과 꽃의 정원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내 발길은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두물머리로 향한다.
두물머리까지 900m거리,
그래! 조금만 더 걷고 4D 입체 바람과 같은 남한강, 북한강의 바람을 쐬자!
앞으로 전진 전진~
힘을 내서 걷기 시작한다.
△ 양수역과 가까이 위치한 두물머리
양평의 대표적인 명소, 두물머리
세미원을 나와 체육공원 앞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왼쪽 물길을 따라 산책로가 나온다. 10분쯤 걸으면 두물머리에 이르게 된다. 금강산에서 시작한 북한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 두물머리는 양평의 대표적인 명소다. 아주 옛날부터 이곳은 서울로 들어가기 전 하루 머물러 가는 쉼터였다. 강원도 산골에서 물길을 따라 온 뗏목과 나무들이 이곳에서 쉬어 갔고, 사람도 같이 쉬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라 불렸고, 지금의 ‘양수리’라는 지명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 서울과 양평을 잇는 양수대교, 이곳이 두물머리
드라마나 CF에서 많이 등장했던 이곳의 모습을 생각하고 찾았다면 평범한 강가의 풍경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느티나무 아래의 돌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잠시 강바람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떠난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과 해질녘 땅거미 내리는 두물머리의 풍경은 서정적이고 애잔한 느낌이며, 낮 시간 때의 두물머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 활기차다.
자가용이 있다면 휴가가 편하고 더 시원할 것이다.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이 시원할 지도 모르겠지만 걸으면서 맞이하는 강바람과 산바람은 비교가 안 될만큼 더 시원하다.
△ 두물머리 산책로
△ 두물머리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세미원의 온실, 석창원
△ 물가를 따라 늘어선 수양버들
△ 두물머리 추억의 기록
△ 배다리
△ 유유히 흘러가는 강
△ 황포돛배
△ 두물머리의 이정표, 도당할매 느티나무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황포돛배가 인사를 하고 두물머리의 이정표 도당할매 느티나무가 인사를 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자연의 품.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음에도 자주 가지 못했다.
오히려 멀리만 돌아다니려고 했었기에 이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시원한 도토리 국수 한 그릇
더위를 완벽하게 날려줄 시원한 도토리 냉면 한그릇까지 먹으면 난 정말 더위를 이긴 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절로 든다. 아무리 이열치열이라고 하지만, 시원한 바람 맞고 시원한 음식 먹는 것이 내 성격상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
먼저 떠난 여름 휴가.
물론 휴가라고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지친 일상에 “휴가” 이 단어만큼 용기를 주는 것도 없다.
“휴가”를 생각하면서 이번 한 주도 힘을 내보자.
그리고 휴가는 꼭 연차를 내서 가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주말에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모든 짐을 던져버리고 훌훌 떠났기에 휴가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
양평으로 떠난 특별한 휴가,
꽉 찼던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속은 시원하게, 이마의 땀까지 식히고 돌아왔다.
참, 주머니도 가볍게 돌아왔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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