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판서공할아버지가 호성원종(扈聖原從)3등공신(三等功臣)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일등공신으로 만드는 데 하루를 보냈다.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은 임진왜란 때 선조왕이 의주로 피난 갈 때 그곳으로 따라가서 끝까지 왕을 지켜준 공신들이다. 1, 2, 3등급이 있고, 등급에 따라 특전이 주어졌다. 1등 공신에게는 ① 벼슬아치의 품위를 한 계급 더 올려주고, ② 아들과 손자에게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리로 특별 채용해주는 혜택을 부여하며, ③ 죄를 지었을 때 그의 후손에까지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④ 그 부모에게 관직과 명예의 칭호를 내려주며, ⑤ 아들과 손자 중에서 실제 근무처는 없고 관직 명칭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한 계급을 더 올려주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제 새벽에도 전날 번역해 놓은 글을 다시 한 번 들어다 봤다. 혹시 글을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중요한 내용이거나 어려운 글을 작성하고 나면, 시간 간격을 두고 열 번 정도는 더 들어다 본다. 작성해놓은 글을 들어다 보면, 수정할 부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피를 말리는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우선 번역 과정에서 혹시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원문과 번역문을 다시 빠른 속도로 쭉 한 번 읽어본다. 쉽게 읽어지고,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고, 원문과 번역문의 뜻이 같은 것으로 확인되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넘어간다.
한문을 번역하다가 보면 원문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자기 전공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한문을 볼 때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원문을 수십 번도 더 읽어보고, 옥편을 찾고, 혹시 축약된 표현이거나 전문용어가 아닌지 이래저래 백과사전도 찾아보면서 하루 종일 그 놈과 씨름을 한다.
난 지난 일 주일 동안 한문으로 되어 있는 판서공할아버지와 감찰공할아버지의 짧은 족보 글을 붙들고 그것을 이해하고, 정확한 말로 번역해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생판 처음 보는 한자와 전문용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불교경전은 웬만한 불교학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넣어 조금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처음 보는 경전도 대부분 그들보다 정확하게 번역해낸다. 그런데 집안 족보 한문 글은 번역이 만만하지 않았다. 문제가 풀릴 때까지 쉬지 않고 파고드는 성격 때문에 이번에 완전히 탈진 상태에까지 도달한 적도 있다.
어제 새벽에 그 전날 조우제 아제에게 보내준 판서공할아버지와 감찰공할아버지의 족보 내용을 다 읽어본 뒤에 <13충록(忠錄)>을 꺼내어 거기에는 판서공할아버지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한 번 살펴봤다. 보다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고는 흥분했다. 족보에는 판서공할아버지가 조정(朝庭)의 훈장(勳章)대장에 호성원종(扈聖原從) 3등공신(三等功臣)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나와 있는데, <13충록>에는 일등공신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조우제님께 <13충록>의 그 부분을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준 뒤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넣었다. “아제 위의 것은 <13충록> 중 판서공에 관계된 내용인데, 여기에는 호성일등훈권(扈聖一等勳券)으로 되어 있고, 선무훈록(宣武勳錄)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3등공신으로 되어 있는 족보 내용도 이 <13충록>의 내용에 맞춰서 1등공신으로 수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곧 아제가 답신을 보내왔다. “발견은 잘 했다. 그런데 족보를 고친다는 것은 문제인데, ---” 그래서 내가 즉시 <13충록>이 언제 처음 간행된 책인지 살펴봤다. <함안조씨십충실록(十忠實錄)>은 목판본 책인데, 함안 원북 서산서원에서 1784(정조8)년에 처음 발행한 책이었다. 나는 조우제 아제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아제 1784년에 간행된 <함안조씨십충실록>의 기록이 족보의 기록보다 우선 되는 것이 아닌지 검토해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 뒤에 당시 조정의 훈장대장 기록을 확인하기 위하여 인터넷에 “국가전자도서관”을 쳐 넣었다. 그러니 그 홈페이지의 주소창이 떴다. 거기를 터치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른쪽 상단에 돋보기 모양이 있었다. 그것을 터치하니 그 밑에 전체라는 글이 있고, 그 옆에 밑으로 향한 화살표가 있었다. 그것을 터치한 뒤 서명(書名)을 선택했다. 그런 뒤에 그 옆에 있는 큰 돋보기 표시 앞에 ‘호성원종공신’을 쳐 넣었다. 그러니 여러 개의 원종공신이 나왔다. 밑으로 쭉 내려가니, 호성원종공신록권(扈聖原從功臣錄券)이 나와서 그것을 클릭해서 들어갔다. 조정의 그 훈장수여 대장에는 1등에서 3등까지의 모든 공신들 명단이 다 나와 있었다. 1등 공신 명단 중에 그 책의 6쪽 끝에 판서공할아버지인 “군수(郡守) 조신도(趙信道)”가 있었다. 또 1등 공신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공신이 전(前)부봉사(副奉事) 이순신(李禹臣)이었다. 나는 매우 흥분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판서공할아버지가 3등 공신이 아니라 1등 공신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고, 이순신 장군과 똑 같은 레벨의 공신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 화면을 사진 찍어서 조우제 아제에게 보고 드렸다. 하마터면 판서공할아버지가 영원히 3등 공신으로 족보에 잘못 기재되어 있을 뻔 했다. (사실은 족보에 1등공신으로 나와 있다.) 아제에게 이 사실을 글로 작성하여 카페에 올리려고 하니, 족보책의 그 부분을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뒤에 카톡에 사진이 들어왔다.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아서인지 사진이 희미했다. 연세가 80세가 된 아제에게 사진을 다시 찍어서 보내달라고 말하려고 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옛날 족보책에 그 부분의 내용이 나오는지 찾아봤다. 다행히 있었다. 하지만 그 족보 책에는 판서공할아버지가 1등 공신으로 나와 있었다. ‘아! 족보책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다시 아제께서 카톡으로 넣어준 그 희미한 사진의 내용을 보니, 새로 만든 족보 책에도 1등 공신으로 되어 있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하고 살펴보니, 조우제 아제님께서 족보의 원문을 타이핑해 넣을 때 잘못 쳐 넣은 것이었다. 갑자기 흥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판서공할아버지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레벨의 공신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 해도 내가 글을 작성하는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위하였다. 하지만 그 자위하는 마음도 5분도 채 못 되어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군수(郡守) 조신도(趙信道)”를 찾아서 쳐 넣은 뒤에 이순신 장군의 전(前) 관직명과 이름을 쳐 넣는 순간, 내가 잘못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훈장대장의 한문은 이순신(李舜臣)이 아니고 이우신(李禹臣)이었다. 내가 禹(우)를 舜(순)으로 잘못 읽은 것이었다. 판서공할아버지를 1등 공신으로 복위시켜 드렸다는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어째든 함안조가 17세손(世孫) 판서(장관)공할아버지는 과거(科擧)의 무과(武科)시험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39세의 젊은 나이로 온양군수직(종4품직)에 계시다가 그 다음 해에 대장(大將,정2품,장관급)으로 임명되어, 왕을 잘 호위하여 안전하게 의주로 피난시켜 드렸고, 그 뒤에도 위험에 처한 왕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1등 공신(功臣)이다. 전사하신 뒤 나라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정2품,국방부장관), 국군총사령관[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의 높은 벼슬을 내려주었고, 1등공신 훈장을 내려주었으며, 조정의 훈장수여대장에 기록돼 있다.
첫댓글 참고로 ㅡ이순신장군이 이율곡보다 아홉살아래고 촌수로 19촌아제입니다.우리 신도할배는 한강전투에서 이순신은 노량전투에서 사망했지요.
아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형님. 고려 500년과 조선 500년은 몇몇 엘리트 사대부 집안이 얼키고, 설켜서 이끌어 왔는데, 우리 함안조가 집안은 최상위 0.05% 이내에 들어간 사대부집안이었고, 우리 집안의 그 어느 누구도 애국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고, 의롭지 못 하고 출세하기 위하여 더러운 짓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카페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판서공 할아버지가 계속 3등공신으로 남을뻔 했습니다.^^ 카페를 만들고 자료를 찾아내고 한문을 번역하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관정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관정스님에게 모두 박수를 보냅시다 짝짝짝 짝짝짝짝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