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라나다 여행기를 접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래서 그라나다의 여러 느낌과 몇몇 에피소드를 살짝 공개하고 다음도시인 바르셀로나로 떠날까 한다.
필자가 그라나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라나다는 그라나다이기 때문이다.
그라나다가 뉴욕이나 파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라나다는 그라나다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문화적 물결도 이곳에 오면 철저히 'Granadize'된다.
[그라나다에 걸려있는, 도자기로 빚어 구워낸 코카콜라 간판. 그라나다에서는 어떤 문화적 유입도 철저히 그라나다 식으로 바뀌고, 소화되어 버리고 만다]
...
그라나다도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예외가 아닌지라, 도로 사정이나 주차사정이 좋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중형승용차를 찾아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고 90% 이상이 액센트 혹은 베르나 급 이하의 차량들이다(근데 '진짜' 액센트, 베르나도 많다).
또한 도로에 주차를 하려면 '평행주차'를 해야하는데 그 간격이 매우 좁은지라 운전실력이 어설픈 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초정밀 주차'를 해야한다.
[골목길에 세워져있는 차량. 벽과의 간격이 1센티정도밖에 안되는 '수퍼 울트라 캡숑 정밀 주차'다]
필자와 죠셉은 헬스가 취미다. 헬스를 다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거 '평생운동'이다.
한 사흘만 안하면 온몸이 찌뿌둥하고, 매사에 의욕도 사라지고, 잠을 자도 잔것 같지 않으며, 낮에 이유없이 졸립다.
[침대 사다리를 떼어내 운동을 하고 있는 죠셉. 몸은 마른 편이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그]
그래서 여행온지 나흘째 되던 날, 그라나다에서 우리 둘은 쥬리타 호스텔 주인아저씨와 알바생에게 물어 택시를 타고 헬스클럽에 갔다.
클럽의 이름은 'fitness first'로서, 2층으로 지어져서 상당히 넓고 깔끔했다.
그리고 안내하는 여직원이 아주 예쁘고 귀여웠다.
반면에 거기 코치는 운동을 어찌나 했던지 몸에 지방이 거의 없었고 눈자위가 푹 꺼져서 삭막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베스타스탤론을 닮은 것이었다.
우리는 운동을 마치고 내려와 아까 귀연 여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데 그 코치가 내려왔다.
아까 내가 수건을 빌릴수 있는지 그에게 질문을 했었는데 그때문에 그나마 우리와 안면을 텄다고 생각하는지 어디서 왔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한국이라고 대답해주고 한마디 덧붙였다.
실베스터 스탤론 닮았다고 말을 해준 것이다.
이때 보통사람같으면 그냥 웃으며 '아, 그래? 고맙다, 그렇게 봐줘서." 정도의 말로 넘어갈텐데, 이녀석 오버하는 녀석이었다.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며 그사이 안으로 들어간 여직원을 막 찾는 것이었다(그녀의 이름은 '엘리'였다).
그래서 스패니시로 막 떠드는데 '엘리'는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한마디도 스페인어를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의 대화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
실베스터:어, 너네! 어디서 왔냐?
필자:한국에서요. 그나저나 코치님 영화배우 닮았어요.
실베스터:(호기심에 찬 눈빛으로)누군데?
필자:실베스터 스탤론이요.
실베스터:(잠시 침묵후)푸하하핫~~~~ 푸헐헐헐~~~~ (갑자기)엘리, 엘리!
(그리곤 이내 사무실안에 있던 엘리 발견, 침을 튀기며)거봐, 내가 뭐랬어, 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다는 얘기 많이 듣는다고 했잖아! 쟤네들이 또 그얘기 하잖아!!
엘리:(밖으로 걸어나오며 표정연기)'어우, 짜증나. 또 저놈의 왕자병 도졌네.'
[그냥 이렇게 생겼는데 좀 어리다고 보면 된다]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서 기차역에 예약을 하러갔다.
그런데 모든 야간열차가 만석. 내일밤도 만석. 야간은 낼 모레에나 표가 있다고 한다.
아찔했다. 이를 어쩐다...?
한참을 죠셉과 의논한 끝에 그 이튿날 주간이동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표를 예약했다.
상당히 억울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여행초반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실수였다.
우리는 이제 실수하지 말자며 바로 바르셀로나 숙소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A 민박이었다(앞으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니어서 영문이니셜로 표기).
전화는 죠셉이 했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끝내고 난 녀석의 표정이 매우 좋지가 않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얘기를 해주었다.
대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보세요, 거기 A민박이져?"
"어, 남학생이야? 몇명이야?" ---(초반부터 반말로 나왔다고 함. 목소리는 한 40대 정도였는데 어르신이면 몰라도 그정도 나이대 사람한테 반말듣는게 귀에 거슬렸다고 한다)
"(꾹 참고)아,예, 두명인데요. 낼 밤 11시쯤에 도착하거든요."
"그래? 거, 내리면 싼쓰역이야. 거기 내려서 전화해."
하고는 죠셉이 말할 틈도 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것이다.
"거 내려서 전화해." "예, 알겠..." "뚝!"
기분이 상한 죠셉이 일단 '불친절'해보이는 민박집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확인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바르셀로나 숙소가 정해졌다.
우리는 그라나다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이튿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나서기 전에 그라나다의 아름다운 추억을 한국에서 준비한 엽서 한장과 조그만 북마크와 함께 주리타 호스텔 아저씨 책상위에 조금 남겨놓았다.
오전 7시 20분이었다.
[창문에 비친 알함브라와 푸른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