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하이얏트호텔에서 ‘2010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전 세계 초·중학생들이 참가하는 영어철자 맞히기 대회다. 출제되는 단어들을 맞히려면 단어의 정확한 의미·발음·어원·예문을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 현지에서 세계대회 우승자들과 스펠링 비 한국대표 후보로 선발된 학생들을 만나 영어 단어 공부법을 들어봤다.
어원에서 단어조합 규칙 익혀
아나미카 비라마니(14·미국 오하이오 인카넛 월드 아카데미 8년)양은 올해 스펠링 비대회의 챔피언이다. 결승에서 마지막 단어인 ‘stromuhr(혈류의 양과 속도를 측정하는 의료기)’의 철자를 맞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비라마니양은 우승 비결로 “단어 조합규칙 분석력”을 꼽았다. 그는 “단어의 어원을 공부할 때 각 철자들이 어떤 규칙을 기준으로 그 단어를 만들었는지 파악했다”고 말했다.
또 “표면적으로 드러난 철자가 아닌, 각 철자들이 갖고 있는 개념과 속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어를 제대로 알려면 단순 암기가 아닌 배경지식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비라마니양은 7살 때부터 7년 째 스펠링 비를 준비해왔다. 그는 “동생과 철자 맞히기 연습을 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리교과 공부를 잘 하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지리명을 잘 암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가족과 게임하며 즐겁게 시뮬레이션
스펠링 비 대회 지난해 우승자인 카비야 시바샹카르(14·미국 캘리포니아 트레일중 8년)양은 시뮬레이션 공부법을 알려줬다. 단어 암기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공부여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시바샹카르양은 “이 단어는 이렇게 발음되므로 저렇게 나타내는구나, 이런 뜻이어서 이런 철자를 쓰는구나라고 분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분석한 단어를 효과적으로 암기하는 방법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단어게임’을 권했다. 아버지가 단어 정보를 말해주면 동생과 경쟁하며 문제를 푸는 식이다. “아버지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주는 중요한 철자가 무엇인지, 원단어는 어디서 시작됐는지, 소리와 의미로 모음 사용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등을 알려줘 도움이 컸어요.”
그의 여동생 반야 시바샹카르(8·레전시 플레이스초 3년)양도 올해 이 대회에 최연소로 참가했다. 동생 시바샹카르양은 “자주 보고 자주 듣는 게 중요하다”며 “사전CD를 이용하면 유사 단어들을 한눈에 묶어 비교·공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끝말잇기 게임으로 혼동하기 쉬운 묵음 공부
이성환(청심국제중 2)군은 지난 2월 스펠링 비한국대표 선발전에서 금상을 수상해 참관인 자격으로 미국 본선 대회를 관람했다. 이군은 국내 대회를 준비할 때 틈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모여 영어 끝말잇기 게임을 했다. 순번대로 돌아가며 주어진 단어 꼬리의 발음이나 철자를 앞 머리로 사용하는 단어를 찾아 말하는 게임이다. 이군은 끝말잇기를 “혼자 하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어 공부를 즐겁게 하고 학습효과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묵음을 이용해 단어를 만들면 다음 사람이 당황하거나 벌칙을 받게 되죠. 이 게임 덕에 단어를 즐겁게 암기하게 됐어요.” 또 친구들과 모의 스펠링 비 대회를 만들어 연습하거나, 스펠링 비 기출문제 자료와 대회 책자를 구해 친구들과 서로 발음이나 의미를 맞히는 게임도 했다.
전자사전 활용해 A~Z까지 반복 학습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동상을 받은 김규리(경기 청솔중 2)양은 전자사전으로 스펠링 비를 준비한 경우다. 전자사전을 갖고 다니면서 A부터 Z까지 수록된 모든 영어 단어들을 훑었다. 특히 발음기호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양한 의미와 예문의 쓰임새를 살펴봤다. 모르는 단어들은 공책에 옮겨 적었다. 발음을 기호 그대로 적고 여러 의미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겉모양이나 발음,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끼리 비교·대조도 했다. 비슷한 단어들끼리는 별도로 묶어 정리했다. 김양은 “발음 기호를 뜯어보며 평소 내가 알던 발음과 표준영어 발음과의 차이를 익히려고 노력했다”며 “그간 간과했던 발음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단어를 공부할 땐 어원을 먼저 찾아본 뒤 발음과 의미를 익혔다. 어원에 따라 철자는 물론 발음도 달라지는 단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 그리기를 활용해 단어의 의미가 주는 이미지들을 각각 그려보니 더 잘 외워졌다”고 말했다.
메리엄-웹스터로 기출문제 분석
민성아(서울 용강중 3)양은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을 집중 활용했다. 이사전은 스펠링 비 출전자들에게 성경과도 같은 학습자료다. 해마다 신조어를 등록하고 사회현상을 담고 있는 ‘올해의 단어’를 발표하는 전형적인 미국 표준사전이다. 민양은 먼저 스펠링 비인터넷 홈페이지(www.spellingbee.com)에서 기출문제를 분석, 각 단어별로 역대 참가자들이 어떤 부분을 틀렸는지 점검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전을 활용해 대회 출제자들이 어떤 단어를 골라 어떻게 출제했는지 역추적했다.
또 윤선생영어교실에 마련된 스펠링 비 대비 강좌에 참여해 강사와 함께 모의연습도 했다.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는 청취력을 기르기 위해 영어단어 받아쓰기를 했다. 민양은 “자주 틀리는 단어는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눈에 익혔다”고 회상했다. “정답을 몰라 고민하느라 나도 모르게 ‘음~’ ‘어~’ 하며 주저하는 소음을 내는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했어요.” 스펠링 비 대회에서 이런 습관은 알파벳 모음을 발음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한국대표선발전에서 우승후보로 선발된 민성아양·이성환군·김규리양(왼쪽부터)이 미국에서 열린 스펠링 비 본선 대회를 참관한 뒤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SNSB, The Scripps National Spelling Bee)=미국 Scripps사가 주최하는 영어철자 맞히기 대회. 1925년 시작돼 올해가 83회째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초·중학생 1000만명이 각국 예선에 참가, 본선 진출자 300여 명이 5~6월 미국 워싱턴DC에서 3일 동안 토너먼트로 실력을 겨룬다. 우승자는 상금 4만 달러를 받고, ABC TV 채널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돼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된다. 이 때문에 쓰러진 가문을 일으키는 대회로 불릴정도다. 2008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과 윤선생영어교실이 매년 2월에 한국대표 선발전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