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보다 독후감이 더 효과적 아닐까요?>
이현수 형
지난주 월백회 대공원 걷기 때 하신 말씀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펄벅의 ‘대지’ 줄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잖아요?
하지만 언뜻 대답 못했습니다.
남의 글 읽고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게 조심스럽기 때문이지요.
그냥 듣기 좋은 말로 ‘잘 썼다. 좋은 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문학에 대해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형에게 그런 대답은 예의가 아니니까요.
현수 형 역시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남들의 반응이 궁금한 건 당연한 것이니까요.
문단에선 비평가와 소설가가 자주 충돌하는데 그건 서로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평가는 어차피 비평하는 것이 직업이고 작가는 그에 대해 반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작가들은 주장하지요. ‘자신 없으면 비평하지 말아라.’
‘비평할 가치가 없으면 아예 비평하지 말아라’
피카소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모든 이가 좋아할 수는 있나요 어디?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 같은 그림 보고 좋다고 할 사람 몇이나 될는지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사람의 지적 정도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잖아요?
헌데 제가 그날 감히 한 말씀 드렸잖아요? 자기 목소리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한 건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얻은 결과에 비해 효과가 반감 됐으니까요.
만일 그 글을 제가 썼다면 나는 방향을 틀었을 것입니다. 줄거리 소개가 아닌 독후감으로.
줄거리는 바꿀 수 없지만 독후감에선 내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좀 더 효과적이라고 봤으니까요.
나름 이유를 간단히 설명 드려 볼까요?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현수 형이 쓴 글 중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와 모파상의 ‘목걸이’이의 줄거리 소개가 있습니다만 이 또한 같은 패턴이지요.
여기서 저는 이런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현수 형의 글, 대지의 줄거리를 읽는 사람은 어떤 생각일까요? 과연 줄거리가 알고 싶어서 읽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내용의 책인지가 궁금해서 읽었을까요?
책의 줄거리를 읽은 사람은 마치 책을 다 읽은 듯해서 책을 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고 내 생각을 이랬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 준다면 “아, 그래? 흥미로운데?” 하고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까요?
*작가는 왕릉 일가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 했나?
*왕릉이 호화로운 생활 접어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무덤을 마련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왜 땅에 대해 집착하는 것일까?
*현수 형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인간은 결코 자연의 위에 있지 않다는 것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또한 흙에 대한 그들의 집착과 사랑이 우리네 삶과 닮아서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면 읽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서 글을 잘 쓰고 못썼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틀을
바꿨다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말씀드리는 겝니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쓰던 글쓰기의 정답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잘 쓰고 못썼다는 판단은 분명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니까요.
예를 들어 간난 아기가 문 엄마의 젖꼭지를 보고 어떤 사람은 사랑과 행복을 느꼈을 테고
또 다른 이는 외설을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책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의 변화, 새롭게 알게 된 것,
나와 작가의 다른 점과 같은 점 따위를 말해준다면 밋밋한 줄거리와는 사뭇 다른
효과적인 글이 될 듯싶습니다만.
정리하자면 현수 형이 책을 읽게 된 이유를 간단히 적은 다음 줄거리를 요약
하고, 읽고 나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디테일만 조금 더 가미한다면 훌륭한 비평이나 논평이 될 듯 싶습니다만.
현수 형.
혹여 건방진 소리에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바랍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여기시고 곧 잊으시기 바랍니다.
두서없는 글이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정진하소서.
박동진 드림
2023.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