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받은 국가유공자증보다 급사시 의사의 사망진단서 문구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 글쓴이:고인의 장남 윤일호 (2011.4.8)
내 아버지 고 윤우상씨는 분명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씨로부터 국가유공자증을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월남전 참전 해병대 청룡부대원이셨다. 그리고 현재 동작동 국립묘지 충혼당에 납골되어 잠들어 계신다. 2006년 4월11일 오전, 고엽제로 인한 당뇨병 악화로 보훈병원에서 눈 합병증 수술을 앞두고 전날도 혼자 혈당조절 차 병원을 다녀오신 분이 갑자기 쓰러져 호흡장애가 발생했고, 119의 다소 어설펐던 응급조치는 뒤로하고 중앙대병원에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 가족의 곁을 갑자기 떠나셨다. 원인 모르는 의사는 간단히 “심인성쇼크,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으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망자는 국가유공자이기에 현충원으로 모셔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증 받은 후 국가로부터 매월 20여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었는데, 사망원인이 ‘당뇨에 의한 합병증’이라고 사망진단서에 명시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그 연금을 어머니에게 승계할 수 없다는 국가보훈처로부터의 통보를 받았다. 억울하면 국무총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해도 된단다. 즉 의학적 사인을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여 입증하고 아버지의 연금을 되찾으라는 말과 진배없는 얼빠진 행정편의인지 국가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국무총리실에 이의서를 제출하였고, 사망당시의 보훈병원 통원자료(중증 당뇨 합병증 증명)와 인터넷에도 무수히 있는 ‘당뇨병과 심근경색’ 관련 의학정보를 첨부하였으나, 일언지하에 사망진단서 문구에 ‘당뇨가 빠진 심근경색’이니 어쩔 수 없다는 성의 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상식 선에서 생각해도 뻔한 정황인데, 그 당시 ‘부검’을 해서라도 가족이 사인을 명시했어야 된다는 황당한 논리만 반복되었다. 국가유공자가 사망 후 국가(보훈처)가 유가족을 이런 식으로 대접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좀더 신중히(?) 서류처리를 했을 텐데 하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튼 이 글을 읽는 ‘고엽제로 인한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는 국가유공자나 가족은 꼭 당사자가 사망 시 담당 의사에게 사망진단서에 ‘고인의 국가유공자증’을 보여주고 ‘신중히 사인’을 기입하도록 하고 (의사들은 보편적으로 심인성쇼크, 급성심근경색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 안되면 부검이라도 꼭 해서 국가보훈처에게 보훈대상자 혜택관련 효력정지의 일말의 꼬투리라도 제공하지 말기를 신신당부하는 바이다.
아무튼 유야무야 시간은 흘러 아버지의 5년차(2011.4.11) 추도식을 앞두고서 가슴에 묵직한 것이 계속 커지고 있어서 이렇게 잠을 설치다 글을 쓴다.
돈 몇 푼의 연금 승계유무가 중요하겠는가?
아니면 유가족이 느끼는 그 의미가 중요하겠는가?
어머니께 승계된 연금은 ‘국가존속에 대한 자긍심’이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추억’이며 대대로 이어질 ‘가문의 명예’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였지만 국가(보훈처)는 가족에게 상처만 남겼다. 말싸움 꺼리도 되지 않는 사안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더렵혔고 유가족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내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가유공자증이 사망진단서 보다도 효력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실(국가보훈처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족들의 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허탈케 한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동생 둘이 아버지 없이 결혼을 했고, 할아버지를 모르는 손자도 많이 태어났다. 이제 아버지는 ‘현충원 항아리 할아버지’란 애칭으로 불린다. 현충일이 임박하면 보훈처에서 편지도 온다. 그러나 읽어보는 사람은 없다.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몰상식적인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처사가 상처로 남아, 유가족들도 보훈관련 국정시스템에 대해 불신하고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훈청장이 편법으로 자신을 국가유공자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특혜를 받게 한 일이 있었다. 그게 대한민국 보훈처이고 시스템이니 나와 같은 분함을 가진 국가유공자 가족이 한둘이 아님은 명약관화하다.
최근 연평도 포격 및 천안함 사건등으로 많은 숭고한 희생과 영웅이 나왔다. 모두 국가유공자들이다. 내 아버지 또한 목숨을 걸고 피값으로 국가부흥에 일조했음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 숭고한 희생과 그 과정에서 얻은 병마(합병증)로 인해 평생 고통 받은 고인과 가족의 아픔을 보듬고 배려하라고 만든 기관인 국가보훈처가, 이처럼 황당한 일 처리를 일삼으며 억울하면 행정소송하라는 이상한 기관으로 유가족에게 자라잡고 있으니, 분명 개선해야 할 시급한 사안인 것이다.
탄원서(2008.7.2)에도 언급했지만 가족에게 이젠 아무 상징적인 의미도 없고, 국가유공자 유가족으로서 자긍심도 국가적 배려의 지속성도 상실한, 아버지의 국가유공자증은 누구에게 반납해야 하는지 국가보훈처에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증서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희생이 국가로부터 이 정도의 종이 쪽지 효력 받게 없다는 허탈감과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배려할 줄 모르는 국가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커지기 때문이다.
l 저와 같은 상황의 국가유공자 유가족이 계시면 제 메일 dolsem@hanmail.net로 연락바랍니다. 힘을 합해 잘못된 국가보훈시스템을 개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