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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江華島) 마니산(摩尼山)을 가다.
글 쓴 이 고 학 영
9월24일, 22시30분 어둠속에 배낭을 메고 차에 오르니 빈자리가 없다. 승차인원 48명이라 하신다. 장거리 무박(無泊)산행이라, 추가인원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임원들과 함께 의논 해 보지만 별 묘안이없다.
서둘러 차내 진행을 마치고, 바닥에 앉으니 오히려 편안하다. 천안 휴게소에 이르니 0시10분이다. 환한 불빛에 오가는 사람이 그만그만 하다. 밤의 정적속에 고속도로와 휴게소에서만 차들로 붐빈다. 얼마를 달려왔는지 전등사와 초지진으로 가는 이정표가 어렴풋이 보인다. (승객은 차내에서 졸기라도 하지만, 기사는 밤새 달려 왔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시계는03시5분을 가르킨다.
초지진 방향으로 접어드니 강화제2대교가 눈앞에 펼쳐진다. 밤하늘에 은하수가 땅에 내려왔는가? 물위로 떠있는 교량에 불빛이 이어지니 대구에서는 볼수없는 광경이다. 화도주차장에 이르니 03시30분이라. 주위는 어둡고 가로등이 있기는하나 어디 밝은날만 하겠는가? 화장실을 향하니 불은 꺼져있어 음산하고, 스위치를 켜보지만 반응이없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자세나 이곳 관리자들이나 아직은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어둠속을 헤치며 48명 전원이 山 오르니, 행열은 길어지고 선두와 중간 후미 3개조로 나뉘어 워키토키(무전기)로 연락하니 행진이 일사불란(一 絲不亂)하다. 산행길은 순조로와 손전등이며, 해드램프로 밝히니 산행분위기는 무르익어 농(弄)으로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고요의 적막을 깨뜨린다.
개울물은 촬~촬~촬~ , 물소리가 요란하다. 소나기로 물이 불어서인가? 보이지는 않으나 소리로서 알겠도다. 기도원 근처에 이르니 숲속이 환하다. 새벽예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어둠을 밝히는 광명세계라 그러한가...? 20여년 전에는 그저 조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을 뿐이었는데...
얼마를 더 오르니 우측으로 환한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어, 바위에 새겨진 글을 살펴보니 “단단학회(檀檀學會) 수련장(修練場 ”이라고 어렴풋이 보인다. 산 오르면서 살피니 저만치 몇사람이 보인다. 아직은 이른시간인데... 도량전체에 불이 켜져있으니... 새벽예불을 하시는가 보다.
오를수록 경사는 더 심해진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니 후미에 오르는 회원님들은 아직 기척이 없다.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다시 합류하여 오르는데, 참성단까지 계단이 916개라는 사람, 혹은 918개라는 사람 의견이 분분하다. 이곳은 성소(聖所)요, 하늘로 오르는 문(門)이 있으니... 마음으로 열어야지, 발아래 계단으로는 열수없는 문 이라오...!
경사는 가팔라서 숨은 가빠지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윗도리를 벗어 가방에 챙기니, 저만치 山 아래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하늘에는 별빛이... 땅에는 불빛이... 어둠속에 밝음을 토해내니... 아~아~, 얼마만에 보는 야경(夜景)인가...? 천리(千里)를 멀다않고 달려왔으니, 이만한 야경쯤이야 당연한 보상(補償)이 아니겠는가?
오를수록 시야는 더욱 넓어져, 마니산 주변야경은 볼수록 아름다워라...! 참성단(塹星壇) 부근에 이르러서는 저만치 강화읍내로 분별되는 곳은 불빛으로 아롱지고, 화도면 부근의 야경은 어디까지가 육지며, 바다인지 분간조차 어렵도다.
긴숨을 내어쉬고 마지막 오르니,참성단(塹星壇:사적제136호) 주위는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안내판에 건전지로 밝혀보니 10월3일과 봉화(烽火) 채화시만 개방하신다니 아쉬운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참성단 동쪽방향 너럭바위에서 일출을 보기로하여, 밤 하늘의 별과 주위의 야경을 조망하는데... 삼태성이 바로 머리위에서 빛나고 북두칠성은 그리 멀지않은 위치에서 빛나고있으니... 그옆에 찬연히 빛나는 별이 북극성인가? 북두칠성은 하늘의 자미원세계(紫微垣世界:북 극성주위)를 돌면서, 천국의 정사를 기획하고, 천하 각 나라의 정사를 예시하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관하고 있다하니...
이곳 강화는 하늘의 기운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위치에있고, 마니산 기슭에는 혈구(穴口)가 있어 인체에 배꼽에 해당하며, 나라의 중심위치에 있으니, 곧 우주의 중심이라 할수있다.
백두대간상의 속리산 기점에서 칠현산, 수원의 광교산, 인천의 철마산, 부천의 성주산, 김포의 문수산에서 그 맥을 떨구며, 물밑으로 한남정맥의 기운을 이어받고 있으며, 아울러 한북정맥과 예성정맥의 기운도 함께 어울어져 있으니... 강화읍의진산 고려산(436M), 별립산(400M), 진강산(443M)을 거쳐 이곳 마니산(468M)으로 이어지니, 백두의 정기가 오롯이 모여 있슴을 말해주고, 정상에 하늘(乾건) 방향으로 제단(祭壇)을 쌓아 하늘에 제사하니, 어찌 천손족(天孫族)이라 하지 않겠는가...?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일곱(7명)분의 환인(桓仁) 임금이 3301년을 치세(治世) 하시고, 열여듧(18명)분의 환웅(桓雄) 임금이 1565년간 교화(敎化) 하시고, 단군 왕검(王儉) 이래 마흔일곱(47명)분의 배달민족으로 2096년간 이어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근세조선으로 이어지니 9200여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에 어찌 뿌리가 없다 하리요!
아~아~ 한(桓)민족이시여! 우리는 천손족(天孫族)이요! 한(桓)민족임을 알고 하나로 뭉쳐 남북통일, 인류평화로 이어져 세계역사의 중심에서 인류를 제도합시다.
남쪽방향 저만치는 불빛이 찬란하다 못해 녹아흐르고 있으니, 국제공항 영종도라 짐작이간다. 김포에서 이어져 달리는 해상다리 불빛이 그러하고, 관제탑에서 깜박이는 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인간이 빚어낸 문명치고는 가장위대한 업적이 전기불이라, 저 불빛이 지구촌을 밝히고, 우주를 밝히고,인간의 마음까지도 밝힐 수 있어라...! 얼마를 기다렸을까? 8명만 남고 나머지는 하산길로 접어들어 보이지 않는다.
06시20분쯤 되니 동쪽은 서서히 붉어있어, 마니산 주위도 더욱 밝아지고 인가(人家)와 공항주변의 야경도 사라지니, 명암(明暗)이 엇갈리는 두 경치를 오늘처럼 실감나게 느끼는 날도 없었다. 건너편 헬기장 봉우리로 옮겨모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일출을 맞으니 붉은 홍시같은, 노른자같은, 소 혀처럼 내밀드니 어느새 쟁반같이 둥근 모양의 붉은 일광이 나타나니 환호성과 기쁨, 감탄과 즐거움이 온 산천에 울려 퍼지니...
아~아~ 천지의 밝음이 바로 님 이었구려...!
아~아~ 지구촌에 생명의 온전함도 바로 님의 은덕이니...!
무엇으로 감사하고, 무엇으로 보답하리...
445M 고지를 지나 마니산(469.4M) 정상으로 향하니, 능선의 바위들은 마치 시루떡을 포개놓은듯, 자연스럽게 굴곡을 만들어 놓았으니 조물의 신비가 하늘에 닿아있네... 하늘의 광명님(太陽)은 갈수록 더 밝아져 능선의 너럭바위에 앉으니... 동, 남 방향으로 펼쳐지는 바다의 조망이 장관이고, 해변가에는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이로 물이 빠져 섬이 더욱 넓어 보이니 해안의 영토가 늘었다 줄었다, 이것도 조화로다.
마음은 시원하다 못해 시리고, 기쁘고 즐겁다 못해 울고 싶어라...! 정수사(淨水寺)와 함허동천(涵虛洞天) 갈림길에서 정수사로 접어드니, 먼저 하산한 회원님들을 만나니 정상부근에서 일출을 보셨단다. 서로간의 일출의 장관을 얘기하며 30여분을 더 나려오니, 정수사가 저만치 보이고 일주문은 보이지 않으며 그 옆에는 기념품 판매소와 해우소(解憂所)가 있어서 향기롭기 그지없다.
도량(道場)에 들어서니 대웅보전(보물제161호)은 말끔히 보수되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멋은 사라지고, 창방 가운데 문살의 모란꽃과 연꽃이 화병에 담겨져 법당문을 장식하니 아름답기는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 하도다.
법당 왼쪽에는 천년의 감로수가 솟아나니, 그로 연유하여 정수사(淨 水寺)라 이름하니 시원하기도 시원하여라! 마니산의 정기가 정수사로 흘러나오니 천세(千歲) 만세(萬歲) 무궁하여라...! 삼성각에 오르니 서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고, 저만큼 손에 닿을듯... 바닷물은 금빛 찬란하여라!
08시30분경 함허동천(涵虛洞天)에 닿아 준비해온 조반을 드시고는 휴식을 취하다. 함허선사(涵虛禪師:1376~1433)의 사리를 정수사에 부도로 모시니 그는 무학(無學)스님의 제자요, 나옹(懶翁)스님의 법손(法孫)이다. 문경 봉암사에서 열반하여 그의 비(碑)가 있고, 그외 가평 현등사, 인봉사 등 등, 다섯곳에 사리가 모셔져 있다하니 한시대를 풍미한 영웅이라...! 사모하는 마음 그윽하여 이곳에 그의 불명을 딴 함허동천이 생겼으니, 사람의 일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묵시적으로 가르쳐주신다.
전등사(傳燈寺)로 향하니 섬마을의 풍요로움이 들녘에서 느껴진다. 하늘의 도우심이 풍우(風雨)를 비켜가니, 올가을 시절은 대풍(大豊)이로고...! 정족산(鼎足山) 전등사는 전형적으로 산지 가람(伽藍) 배치형이다. 도량(道場)을 둘러싼 산세가 마치 솥 다리를 세워앉힌 형국이라 이름지어지고, 천연(天然)의 요새를 이용하여 조선조 숙종4년(1678)에 사고(史庫)를 지어 한때 왕조실록을 보관한적도 있다하고, 1866년 병인양요때에 프랑스군과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부하들과 격전이 있어 승리한 곳으로도 유명하여 장군의 승전비(勝戰碑)가 경내에 있으며, 단군의 세아들(부소,부우,부여)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도 50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니...
최근에는 황우석 박사님도 이곳에 한달에 한번씩 들러 108배를 한다하니... 대웅보전(보물제178호)은 추녀밑에 나체여인상이 받쳐있어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창방에는 연꽃을, 공포위 보머리에는 도깨비를 조각해 놓았으니 국내에서는 유일한 사찰이다.
그밖에도 날아갈듯한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형태의 약사전이 보물제179호로 지정돼있고, 범종(보물제393호)은 송나라 철종 소성(紹 聖 ) 4년(1097)에 제작한 백암산(百巖山) 숭명사(崇明寺)의 종이었슴을 알려준다.
이런 문화유산을 답사 할때마다 의문이 가는것은 상대(上代)로 올라갈수록 그 뿌리가 흐지부지 기록이 전무하거나, 구전되어오는 정도이니, 근세조선의 역사까지도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자꾸 마음에 와 닿음을 솔직히 밝힌다. 회원님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설명도 해드리면서,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이 마음 가득 가득 하여라...
반주(飯酒)가 취흥을 더해주시는지 차내는 갈수록 소란하시다. 안내자는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드리지만... 님들은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우리가 몸받아 이 세상에 온것은 깨달음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정성을 다 하시라고 보내졌다는 것을... ... 나는 정성을 다 하리라! 님을 위한 것이든, 나를 위한 것이든, 불가(佛家)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인연이 있으면 만나고, 다하면 헤어지는 것을... ...
광성보(廣城堡) 입구에 이르니 안해루(按海樓:영조21년,1745년에건립)가 저만치 보인다. 현판만 보아도 이곳은 바다를 수비하는 곳이라는것을 첫눈에 알겠도다. 용두돈대(龍頭墩臺)로 향하니,20여명의 회원님들이 함께 걸어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답사여행을 오셔서 문화재 안내요원들의 설명을 귀담아 들으신다. 좋~을 시 구! 좋~을 시 구!
어재연 장군 형제분의 공(功 )을 기리는 쌍충비각(雙忠碑閣)과 그의 부하 51명의 무덤에도 묵념하고... 공(公)들의 희생으로 양이(洋夷)들을 물리쳤으니... 고종3년(1866) 병인양요와 고종8년(1871) 신미양요때 이곳에 전투가 격열하여,장군과 휘하 병사들은 죽음으로 사수하시니 청사에 길이 빛나도다! 길이 빛나도다!
오늘날 우리의 번영이 님들의 희생과 피흘림의 결과라니, 부끄럽고 감사해서 무슨말로 위로할꼬... 돈대로 향하니 주위는 삼방(三方)으로 탁트여 적을 공격, 수비 하기에는 최전방이라는 느낌이든다. 조선 숙종5년(1679)에 축조되었으나, 이후 허물어져 1977년에 보수되어 사적227호로 지정되어 역사의 산증거가 되고 있으니...
바다건너 맞은편에 손돌(孫乭)의 무덤이 육안으로도 보이고 고려 고종임금의 몽고난(1232~1270) 피난시에 손돌 어부와 함께 얽힌 슬픈전설이 있으니...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진실과 충성으로 올리는 말씀이 듣는이로 하여금 오해를 한다면, 그보다 더한 답답함이 또 있겠는가?
역사는 피의 얼룩짐과 답답함의 연속인가...? 함께한 회원님들에게 소포(小砲)와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촬영을 해드리니 즐거워들 하신다. 받은 몸은 유한(有限)하여 늙어지지만, 마음은 무한(無限)하여 항상 청정(淸淨)하여라!
손돌목 돈대도 회원님들과 답사하니 전시된 포문은 보이지 않고, 돈대의 빈터만 손돌목의 역사를 대변하신다. 주차장에 이르니 누워서 자는사람, 알밤을 줍겠다고 간사람, 술좌석에 앉은사람 사분오열 흩어지니... 우리의 답사목적은 간데없고 빈차만 주차장에 매여 있으니...
마지막 답사처인 강화 역사박물관과 갑곶돈대로 향하니, 강화의 넓은들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고, 그 옛날 8만대장경판을 판각했다던 선원사지(禪源寺址) 이정표도 보이고, 오두돈대, 용골돈대 등 등, 셀수없는 유적들의 이정표가 나그네의 답사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갑곶돈대의 주차장에 이르니 차는 만원이다. 서울과 인천시민의 문화유산답사의 열기가 어느정도 인지를 가늠케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강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마니산에서 참성단을 답사치 못했던 것을 이곳에서 사진으로 대하니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부근리의 지석묘(支石墓)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어 사진으로 대하니 반갑고, 하점면의 5층석탑(보물제10호), 강화동종(보물제11-8호), 덕진진(사적제226호), 초지진(사적제225호) 등 등, 강화의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연혁(沿革)과 어재연 장군의 교지(敎旨), 강화군의 옛이름이 갑비고차(甲比古次)라는 새로운 사실도 배우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의 양이(洋夷)들과의 전투시에 열에 아홉은 조선수군이 죽어 희생되니 당시 조정의 무능함과 군사력이 얼마나 나약했던가를 짐작케하며, 언제나 목숨바쳐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이는 양민들이나, 공(功)은 그들(사대부)이 가로채니 그 억울함이 모여 동학혁명으로 이어 졌던가...?
이래 저래 “역사는 우리의 거울” 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갑곶돈대에 오르니 탱자나무(천연기념물제78호)가 언덕아래 보호되어있어, 이곳이 북방 한계선이기도 하고, 그 옛날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雲揚號) 사건때 탱자나무를 많이심어 여기에 의지해 적을 섬멸하는데 일조(一助)를 했다하니 쓴 웃음이 다나온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탱자나무에까지...
언덕위에 오르니 포문 1기가 전시되어있고, 그 우편에는 8각정자가 2층으로 지어져있어 망루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곳은 돈대중에도 갑곶돈대이니, 그많은 돈대중에 얼마나 중요한 초소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강화는 2만년전의 구석기시대 유물을 비롯하여,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에 이르기까지, 단군 왕검의 발자취도 더듬을 수 있으니... 조선의 대변자요, 혈구(穴口)로서 그 중심(中心)에 이르니 가히 보석 中에 보석이라! 아~아~ 한 낮의 밝음이여...강화(江華)를 영광(榮光)되게 하소서...!
단기 4338년 9월24일 무박(無泊)으로 강화도 마니산을 가다.
첫댓글 아주 유익하고 체험을 느끼고 너무나 감사 합니다......
무박산행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답사를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아무튼 아름다운 추억이 될것으로 여겨집니다.
오호~~통재라....이 좋은 절경을 보지를 못했어니...
구슬님!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큼니다.
뒷 날 산행때는 동참을 희망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