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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Ambalaṭṭhika-Rāhulovāda Sutta, M61)
라훌라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외동아들로 잘 알려져 있다. 라훌라 존자는 7세 무렵에 출가하였다. 라훌라 존자를 출가시키면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마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하여 라훌라는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전승되어 오는데 그 가운데서 최초의 경은 아마 본경일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본경이 설해질 때 라훌라 존자는 7살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A.iii.126) 본경은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보호구역에서 암발랏티까라는 대나무 숲의 숙소에 머물고 있는 라훌라 존자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세존께서 해거름에 좌선에서 일어나셔서 라훌라가 있는 곳으로 가시자 라훌라 사미는 물 대야에 발 씻을 물을 준비하여 세존께 가지고 갔다. 세존께서는 발을 씻으신 후에 물을 조금 남겨서 라훌라에게 보여주시면서 “알면서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은 이와 같이 조금 남은 [하찮은 물]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시면서 이런 방식으로 라훌라 존자를 엄하게 교계(敎誡)하셨다.
그런 뒤에 세존께서는 다시 거울을 예로 들어서 “라훌라야, 그와 같이 거듭 비추어보고서[返照] 몸으로 행위[業]를 해야 한다. 거듭 비추어보고서 말로써 행위를 해야 한다. 거듭 비추어보고서 마음으로 행위를 해야 한다.”라고 교계하신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고구정녕하면서도 엄하게 라훌라 사미에게 항상 거듭해서 비추어보고 반조해 본 뒤에 행동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세존의 자상하신 가르침이 어디 부모의 자식교육에만 해당되겠는가. 이 가르침은 세존께서 입멸하신 후 130여 년 뒤에 인도를 통일한 아소까(아쇼카) 대왕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서 그의 명령으로 바위에 새긴 아소까 대왕의 칙령에서도 이 경의 일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칙령은 모든 출가자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1)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주1> 주석서에 의하면 본경은 라훌라 존자가 일곱 살 때 설하셨다고 한다(MA.iii.126)
2. 그즈음에 라훌라 존자(2)는 암발랏티까(3)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셔서(4) 암발랏티까로 라훌라 존자를 만나러 가셨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자리를 마련하고 발 씻을 물을 준비하였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셔서 발을 씻으셨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주2> “라훌라 존자(āyasmā Rāhula)는 부처님의 외아들로 부처님이 출가하시던 날 태어났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하셨다. 즉 「사미의 질문」(Sāmaṇera-pañha, Khp.2)을 설하셨고, 「라훌라 상윳따」(S18), 「라훌라를 교게한 긴 경」(M62),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M147)과 본 「암바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M61) 등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처음 까필라왓투를 방문했을 때 일곱 살이었던 이 라훌라 존자가 부처님의 가사 자락을 잡고 유산의 상속(dāyajja)을 요청하자 세존께서 법의 총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의 은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셨으니, 라훌라 존자는 그를 스승으로 출가했다.
그때 세존께서는 ‘어린 동자들이란 적절한 얘기도 하고 적절치 않은 얘기도 하기 때문에 그에게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시면서 라훌라 사미를 불러 ‘라훌라여, 사미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너는 이야기할 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모든 부처님들이 버리지 않으신(avijahita) 열 가지 질문(puccha)과 쉰다섯 가지 설명(vissajjana)으로 구성된 「사미의 질문」(Khp.2)을 설하셨다.
세존께서 다시 생각하시기를, ‘어린 동자들이란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보지 않은 것도 보았다고 하고, 본 것도 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에게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눈으로 보게 하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맨 처음 물그릇에 물을 조금 남기신 것(§3)과 쏟아버린 것(§4)과 뒤집어엎으신 것(§5)과 다시 바로 세우신 것(§6)의 이 네 가지 비유와 그 다음에 코끼리의 두 가지 비유(§7), 그 다음에 거울의 한 가지 비유(§8)를 보이시면서 본 경을 설하셨다.
네 가지 필수품(paccaya)에 대해 갈애를 거둘 것(taṇhā-vivaṭṭana)과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해 열정과 욕망(chanda-rāgappahāna)을 버릴 것과 선우를 가까이 의지함(kalyāṇa-mitt-upanissaya)에 큰 요체를 보이시면서 「라훌라 경」(Sn.58)을 설하셨다. 존재에 대해 열정과 욕망을 버릴 것을 설하시면서 『상윳따 니까야』 제2권 「라훌라 상윳따」(S18)을 설하셨고, ‘나는 아름답다, 나의 피부는 광채가 난다.’라고 자기 몸에 관하여 세속적인 열정과 욕망을 버릴 것을 설하시면서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을 설하셨다. 이 중에서 「라훌라 경」(Sn.58~59)은 이 무렵에 설하신 것이 아니라 출가 생활 전반에 거쳐 끊임없이 경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설하셨고, 「라훌라 상윳따」(S18)는 일곱 살부터 처음 구족계를 받을 때까지 안으로 위빳사나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설하셨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은 열여덟 살의 사미 시절에 세속에 바탕을 둔 열정과 욕망을 버리게 하기 위해 설하셨다. 본서 제4권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M147)은 처음 구족계를 받았을 때 해탈을 성숙하게 하는 열다섯 가지 법이 무르익자 그로 하여금 아라한과를 얻게 하기 위해 설하셨다. 「사미의 질문」(Khp.2)과 본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M61)은 일곱 살 때 설하셨다.”(MA.iii.125~126)
<주3> 주석서는 “암발랏티까(Ambalaṭṭhikā)는 대나무 숲(죽림정사, Veḷuvana)에 거주하는 자가 근처에서 정진할 수 있도록 지은 여러 집들 가운데(padhāna-ghara-saṅkhepe) 한거(paviveka)를 원하는 자들이 머물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pāsād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MA.iii.124) 복주서는 “여기서 암발랏티까는 멋진(sujāta) 어린 망고 나무(taruṇ- ambarukkha)를 말하는데 이 근처에 건물을 지어서 암발랏티까라 하였다.”(MAṬ.ii.59)라고 덧붙이고 있다.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암발랏티까는 왕의 정원(rañño uyyāna)이었으며 이 정원의 정문 근처에 어린 망고나무(amba-rukkha)가 있었기 때문에 암발랏티까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DA.i.41) 그러나 『디가 니까야 복주서』에서는 “어떤 마을(ekagāma)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DAṬ.i.66)고 다른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주4> “‘홀로 앉음에서 일어남(paṭisallāṇā vuṭṭhita)’이란 과의 증득(phala-samāpatti)에서 출정하신 것이다.”(MA.iii.124)
3. 그러자 세존께서는 물그릇에 물을 조금 남기시고 라훌라 존자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에 물이 조금 남아있는 것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5)이란 것도 이같이 조금 남은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5> ‘출가수행’은 sāmañña(사문에 속하는 것)을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사문의 법(samaṇa-dhamma)”(MA.iii.127)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조금 남은 물을 쏟아버리시고 라훌라 존자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그 조금 남은 물이 버려진 것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것도 이같이 버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물그릇을 뒤집어엎으시고 라훌라 존자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이 엎어진 것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것도 이같이 엎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물그릇을 다시 바로 세우시고 라훌라 존자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이 바닥나고 비어있는 것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알면서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것도 이같이 바닥나고 빈 것에 지나지 않는다.”
7. “라훌라야, 예를 들면 왕의 코끼리가 마차의 깃대만 한 상아를 가졌고 건장하고 혈통 좋고 전쟁에 능숙하다고 하자. 그 코끼리는 전쟁터에 나가 앞발로도 죽이고 뒷발로도 죽이고 몸의 앞부분도 사용하고 몸의 뒷부분도 사용하고(6) 머리도 사용하고 귀도 사용하고 상아도 사용하고 꼬리도 사용하지만 코는 보호한다. 이를 본 코끼리에 타고 있는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왕의 코끼리는 마차의 깃대만 한 상아를 가졌고 건장하고 혈통 좋고 전쟁에 능숙하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 앞발로도 죽이고 뒷발로도 죽이고 몸의 앞부분도 사용하고 몸의 뒷부분도 사용하고 머리도 사용하고 귀도 사용하고 상아도 사용하고 꼬리도 사용하지만, 코는 보호하고 있다.(7) 왕의 코끼리는 목숨까지 내놓지는 않는구나.’
라훌라야, 이 왕의 코끼리가 마차의 깃대만 한 상아를 가졌고 건장하고 혈통 좋고 전쟁에 능숙하다. 그 코끼리는 전쟁터에 나가 앞발로도 죽이고 뒷발로도 죽이고 ··· 코까지 사용한다. 이를 본 코끼리에 타고 있는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왕의 코끼리는 마차의 깃대만 한 상아를 가졌고 건장하고 혈통 좋고 전쟁에 능숙하다. 그 코끼리는 전쟁터에 나가 앞발로도 죽이고 뒷발로도 죽이고 ··· 코까지 사용한다. 왕의 코끼리는 참으로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이제 왕의 코끼리가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라훌라야, 그와 같이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어떠한 악한 행위라도 저지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라훌라여, 그러므로 너는 ‘나는 농담으로라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고 공부지어야 한다.”
<주6> “몸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사용해서 적군 총사령관의 방패와 지휘봉 등을 떨어트린다.”(MA.iii.127)
<주7> “코를 입안으로 말아 넣어 보호한다.”(MA.iii.128)
8. “라훌라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그와 같이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몸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말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마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9.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몸으로 행위를 하려고 한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이제 몸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몸의 행위는 나도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될 것이다.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이제 몸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몸의 행위는 나를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둘 다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 몸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를 해야 한다.”
10.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몸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하고 있는 이 몸의 행위는 나도 해치고 다른 사람도 해치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는 중지해야 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하고 있는 이 몸의 행위는 나를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몸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는 계속해도 좋다.”
11.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 난 뒤에도,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몸으로 행위를 했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친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했던 이 몸의 행위는 나도 해친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해친 것이고 둘 다를 해친 것이다.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를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힌 뒤 미래를 위해 단속해야 한다.(8)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했던 이 몸의 행위는 나를 해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친 것이 아니다. 이 몸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들을 공부 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주8> 이 방법은 본서 「밧달리 경」(M65) §13과 제4권 「요소의 분석 경」(M140) §33 등에 정형구로 나타난다.
12. “라훌라야, 네가 말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말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말로 행위를 하려고 한다. 나의 이런 말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이제 말로 행하고자 하는 이 말의 행위는 나도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될 것이다. 이 말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말의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이제 말로 행하고자 하는 이 말의 행위는 나를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둘 다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말의 행위를 해야 한다.”
13. “라훌라야, 네가 말로 행위를 하고 있다면, 너는 그 말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말로 행위를 하고 있다. 나의 이런 말의 행위가 나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말로 행하고 있는 이 말의 행위는 나도 해치고 다른 사람도 해치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말의 행위는 중지해야 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말로 행하고 있는 이 말의 행위는 나를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말의 행위는 계속해도 좋다.”
14. “라훌라야, 네가 말로 행위를 하고 난 뒤에도, 너는 그 말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말로 행위를 했다. 나의 이런 말의 행위가 나를 해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친 것은 아닐까 이 말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말로 행했던 이 말의 행위는 나도 해친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해친 것이고 둘 다를 해친 것이다. 이 말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말의 행위를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힌 뒤 미래를 위해 단속해야 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말로 행했던 이 말의 행위는 나를 해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친 것이 아니다. 이 말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들을 공부 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15. “라훌라야, 네가 마음으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마음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마음으로 행위를 하려고 한다. 나의 이런 마음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마음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이제 마음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마음의 행위는 나도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될 것이다. 이 마음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마음의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이제 마음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마음의 행위는 나를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둘 다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마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16. “라훌라야, 네가 마음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면, 너는 그 마음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마음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 나의 이런 마음의 행위가 나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마음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 이 마음의 행위는 나도 해치고 다른 사람도 해치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마음의 행위는 중지해야 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 이 마음의 행위는 나를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마음의 행위는 계속해도 좋다.”
17. “라훌라야, 네가 마음으로 행위를 하고 난 뒤에도, 너는 그 마음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마음으로 행위를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의 행위가 나를 해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친 것은 아닐까? 이 마음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마음으로 행했던 이 마음의 행위는 나도 해친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해친 것이고 둘 다를 해친 것이다. 이 마음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마음의 행위를 몰아내고 부끄러워하고 진저리를 쳐야 한다. 몰아내고 부끄러워하고 진저리를 친 뒤 미래를 위해 단속해야 한다.(9)
라훌라야, 만일 네가 반조하여 ‘내가 지금 마음으로 행했던 이 마음의 행위는 나를 해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친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의 행위는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들을 공부 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주9> 말의 행위(vacī-kamma)에서는 그것이 해로운 것이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 것이라면,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혀야 하고, 그리하여 미래를 위해 단속해야 한다고 했지만 ‘마음의 행위(mano-kamma)’에서는 실토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해로운 생각들을 얼른 몰아내고 부끄러워하면서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8. “라훌라야, 몸의 행위가 청정했고 말의 행위가 청정했고 마음의 행위가 청정했던 과거세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10)은 모두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몸의 행위가 청정했고,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말의 행위가 청정했고,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마음의 행위가 청정했다.
라훌라야, 몸의 행위가 청정할 것이고 말의 행위가 청정할 것이고 마음의 행위가 청정할 미래세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도 모두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몸의 행위가 청정할 것이고, 이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말의 행위가 청정할 것이고, 이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마음의 행위가 청정할 것이다.
라훌라야, 몸의 행위가 청정하고 말의 행위가 청정하고 마음의 행위가 청정한 지금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도 모두 이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몸의 행위가 청정하고, 이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말의 행위가 청정하고, 이같이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마음의 행위가 청정하다.
라훌라야, 그러므로 여기서 너는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몸의 행위를 청정하게 하리라.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말의 행위를 청정하게 하리라. 계속해서 반조함에 의해 마음의 행위를 청정하게 하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한다.”
<주10> “여기서 ‘사문이나 바라문들(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은 부처님들이나 벽지불들(paccekabuddhā)이나 여래의 제자들(tathāgata-sāvakā)을 말한다.”(MA.iii.129)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셨다. 라훌라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M61)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