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39)>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울 가(佳), 사람 인(人), 가인이라함은 ‘아름다운 사람’을 뜻하고, 엷을 박(薄), 목숨 명(命) 박명이라함은 ‘단명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가인박명(佳人薄命) 이란 “여자가 아름다우면 단명하거나, 인생이 불행하다”는 뜻이다.
박명(薄命)이란 수명이 짧다는 뜻도 있지만 원래는 ‘팔자가 기구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가인박명을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쓰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표시할 때는 미(美)자가 가(佳)자 보다 더많이 사용된다.
옛날 신분사회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하류층 여자는 편안히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류층이나 부유층의 첩실이 되거나, 기방(妓房)의 기녀가 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인생행로가 순탄치 못했던 것이다.
가인박명이라는 말은 은 북송(北宋)후기의 대문장가인
소식(蘇軾:1036-1101)의 박명가인(薄命佳人)이라는 시에 등장한다.
소식이 항주(杭州).양주(楊州)등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간에서
나이 30세가 넘은 여승(女僧)을 바라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상상하면서 미인 팔자의 기구함을 읊었다.
비구니를 노래한 칠언율시(七言律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뺨은 우유처럼 희고 고우며
머리털은 옻을 칠한 듯이 검고 윤이 나는구나.
드리워진 발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구슬처럼 영롱하다.
흰명주로 옷을 지어 선녀같은 차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붉은 연지로 입술을 칠하지도 못했구나.
귀엽고 부드러운 남쪽지방 사투리는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같고,
한없는 인간세상의 수심같은 건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옛부터 어여쁜 여자는 대부분이 운명이 기구하다고 했는데,
문을 닫은채 절밖에 나가지 않는 동안에
벌써 봄은 다 지나가고 버들꽃도 떨어지고 말았구나.
이 시의 마지막구절인 “옛부터 어여쁜 여자는 대부분이 운명이 기구하다”
(자고가인다박명:自古佳人多薄命)라는 말에서 ‘가인박명’이 나왔다.
“문을 닫고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이 떨어진다”
(폐문춘진양화락:閉門春盡楊花落)에서 인생무상의 불교적인 정취가 풍긴다.
그러면 과연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거나 팔자가 기구한 것일가?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중국의 4대미인 역시 순탄치 않는 인생행로를 걸었다. 중국의 4대 미인으로는 양귀비와 서시, 왕소군과 초선을 꼽는다.
첫째, 당나라때 유명한 양귀비(楊貴妃)는 미인의 대명사이다. 너무나 황홀한 자태였기에 양귀비를 둘러싸고 안록산의 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름다운 양귀비의 모습이 나타나면 꽃도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하여 수화(羞花)미인이라고 칭한다.
둘째,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서시는 지극히 아름다워서 물고기가 보고는 부끄러워 물밑으로 가라 앉는다고 하여 침어(浸魚)미인이라고 일컫는다.
셋째, 한나라의 미인 왕소군(王昭君) 역시 뛰어난 미인이었다. 허리가 버드나무처럼 가늘고 피부가 백옥같이 깨끗했다. 그녀가 섬섬옥수로 가야금을 연주하면 날라가던 기러기가 정신을 잃고 떨어졌다고 하여 그녀를 낙안(落雁)미인이라고 칭한다.
넷째, 삼국시대의 미인 초선(貂嬋)을 꼽는다. 한나라 재상 왕윤(王允)의 양녀이었다. 모습이 너무나 청초하고 수려해서 그녀가 문밖에 나가면 달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고 하여 폐월(閉月)미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화미인, 침어미인, 낙안미인, 폐월미인 등의 명칭이 그럴듯하다. 원래 중국사람들이 허풍이 많고 과장된 표현도 잘하기 때문에 지어낸 말이다. 그러나 그럴듯하고 문학적이며 아름다운 말들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4대 절세가인(絶世佳人)들의 운명은 한결같이 좋지않았다.
양귀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안록산의 난 때 피살당한 기구한 운명이였다.
서시(西施) 역시 오왕 부차에게 바쳐져서, 결국 왕이 서시의 미모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음으로써 나라가 패망하게 되었다.
왕소군은 흉노족이 침략하자 흉노왕에게 화친의 공물로 바쳐진 기구한 여자였다. 흉노땅에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노래한 “봄이 왔어도 봄같지 않아라”라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노래했다.
초선은 후한 말, 동탁에게 의지했다가 여포로 가는 미인계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었다.
위와 같이 가인(佳人)들의 운명은 우리말로 팔자가 센 운명이었다.
그저 평범하고 수수한 여성이 오히려 복받고 잘 사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 속담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여인의 미모가 아니라 고상함이다” 라는 말이 있다. 외모보다도 내면의 마음쓰임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 유행가에 “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라는 노래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미(美)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성들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태생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로 아름다움은 남을 배려하고 헌신하는 마음씀씀이가 표정을 통하여 외면에 나타났을 때이다. 나는 종교는 달라도 테레사 수녀의 전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가끔 사진을 본다. 테레사 성녀의 주름진 손과 주름잡힌 얼굴은 온통 사랑으로 승화되어 우리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시현하고 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헵번의 청순미는 뛰어나다. 은퇴 후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빈민 아동을 구제하는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다. 육신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아름다움이 윻합될 때 진실로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두고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미(美)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인박명과 더불어 재인박명(才人薄命)이라는 말도 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명이 짧을 때 쓰이는 말이다.
평생 쓸 재주를 미리 당겨서 다 썼기 때문에 일찍 죽는다는 속설도 있다.
요절(夭折)한 천재나 수재의 경우에 흔히 쓰이고 있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도 너무 아름다우면 행인들에게 꺽이듯이, 사람도
아름답거나 또는 재주가 출중할 때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세상사
람들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2022.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