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서 유전자조작식품(GMO)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우리 몸에 알러지 반응처럼 예상치 못한 질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고, 생태계 질서도 파괴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GMO가 상품으로 승인되고 재배면적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국적기업의 농업지배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자조작 기업과 다국적 농식품기업의 결합
1998년 세계 최대 곡물 기업인 카길과 세계 최대의 유전자조작 종자기업이자 농화학기업인 몬산토가 합작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신젠타-ADM, 콘아그라-듀폰의 제휴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농화학 기업과 다국적 거대 곡물기업이 결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몬산토는 현재 재배되는 GMO의 8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농화학기업으로서 몬산토의 주된 전략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자사의 농약과 비료에만 반응하는 종자를 만들어 파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몬산토의 강력한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죽지 않는 유전자조작 콩을 만들어 종자와 농약을 함께 파는 전략이지요. 계약을 통해 농민은 비싼 종자료와 기술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고, 종자를 비축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받습니다.
카길은 현재 세계 곡물 거래의 50% 이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카길, ADM, 콘아그라 등 미국에 본부를 둔 다국적기업은 전 세계에 대단위로 곡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저장의 시설을 갖추어 유통을 지배하고, 음료·육류·가공식품 제조에도 관여하며, 거대 식품업계와 제휴하여 전세계 식품체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카길 스스로의 언급처럼 “미국 플로리다주의 탬파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하고, 이 비료로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대두를 생산하고, 가공된 대두상품은 태국으로 출하되어 닭고기사료로 쓰이고, 이 닭고기는 다시 가공처리되어 일본과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출하”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이처럼 다국적식품복합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싸게 원료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구매하고, 가공 후에는 이를 가장 비싼 값으로 판매할 곳을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물색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오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며, 그로 인해 초래되는 제3세계 농민들의 몰락과 기아문제는 다국적기업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국적 기업이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로 단작하는 농업방식은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 농기계 등 석유문명에 의존한 것입니다. 또한 물 자원을 고갈시키고 토양을 황폐하게 하여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들고, 생계를 목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소농들을 토지로부터 내쫓아냅니다. 이처럼 ‘녹색혁명’은 제3세계에 많은 폐해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데, 그 한계점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선택한 새로운 전략이 바로 GMO입니다.
예를 들어, 유지 성분을 줄인 담백한 감자 칩 생산을 위해 유전자를 조작한 감자를 개발하거나 토마토 캐첩 생산을 위해 수분이 적은 토마토를 개발하는 것, 또한 유통기한이 오래가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등 유전자조작은 다국적기업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이는 오로지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며, ‘과연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계 농업 지배를 위한 두 가지 전략
다국적기업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한 시장 확대이며, 또 하나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명공학과 특허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1986년)는 이들의 요구에 의하여 GATT 내에서 무역자유화를 위한 농업협상을 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루과이 라운드의 미국 측 초안은 농무부 출신의 카길 전직 부사장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하죠. (이런 의미에서 “우루과이라운드는 사실상 카길 협상이라고 불려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후 들어선 WTO는 농업 개방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아니라 지적재산권협정(TRIPs) 등을 내세워 강대국과 거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을 강제하는 기구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미 간에 이루어진 FTA는 WTO보다 더 강화된 차원에서 자유무역을 강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하게 한미 FTA를 추진하게 하는 숨은 주역은 다국적 농산기업들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의 4대 선결과제였던 쇠고기 수입은 미국과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최근에도 검역 문제를 일으키며 TV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Excel 쇠고기’는 다국적기업 카길의 육류 가공 부문의 제품입니다. 이 소는 철저히 사료작물의 생산단계부터 다국적기업의 식품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고 가공 유통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소는 몬산토의 라운드업 제초제를 뿌려 키운 유전자조작 콩과 살충성이 있는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먹고, 성장촉진 목적으로 유전자조작으로 생산된 몬산토의 호르몬제를 맞는 한편, 도축 후 폐기되는 부위로 만든 카길의 사료를 먹고 자랍니다. 또한 기름을 짜내고 남은 유전자조작작물의 찌꺼기는 유전자 오염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카길의 비료에 포함되어 토양에 뿌려지거나 사료로 재활용 됩니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시스템은 매우 유기적이어서 한 부문에서 차질을 빚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FTA 협상에서 문제의 쇠고기를 막지 못하는 것은 GMO 농산물 생산과 수출에 기반한 다국적기업의 강력한 요구가 FTA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FTA 이후, GMO가 몰려온다.
‘한겨레’가 입수한 협상단 내부 문건(‘한-미 자유무역협정 연장 1일차 협상계획’)을 보면,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에 섬유 관세양허와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가 연계돼 논의됐다는 정황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또 한국 협상단이 섬유 관세양허 품목을 더 확보하려고 LMO의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GMO가 재배되고 있지 않으며, 자연 환경에 유포되는 경우는 매우 극소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3대 종묘회사(서울종묘, 홍능종묘, 중앙종묘)도 IMF를 계기로 다국적기업에 인수, 합병됨으로써 유전자조작 종자가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 FTA 이후에 실질적인 심사 체계가 완화되어 승인이 이루어진다면, GMO가 환경에 유포될 가능성이 좀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현행 식품 표시제는 간장과 기름, 동물 사료 등 가장 많이 GMO가 쓰이고 있는 상품에 대해서 표시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FTA 협상에 이후엔 이러한 법 개정도 무역 장벽으로 판단되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현 상황에서는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한 GMO가 우리 가족의 밥상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 가족을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는 너무 분명합니다.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결국 FTA를 반대하는 일이 되고, 더 나아가 세계의 기아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다국적기업을 반대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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