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쟁이 할머니네 국밥집
이명박 대통령 선거 운동시절에 이후보에게 "쌈박질 좀 그만 해라,이놈아,국밥 푹푹 처먹고 경제살려라"는광고 멘트를 함으로 화제가 된 욕재이 강정순 할머니가 있었다. 당시 경제가 어렵던 시절에 이 할머니의 욕설은 서민들의 가슴을 후련 하게 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오래전 전주에 가면 이봉순 할머니 국밥집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소탈하기로 소문 난 박정희 대통령이 한번은 전주에 간 모양이다. 저녁에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새벽에 속이 출출하여 콩나물 해장국을 주문해 달라 청을 했다.
비서관이 그 유명하다는 국밥집에 가서 국밥 한그릇을 호텔로 배달해 달라 주문을 하였다. 그러자 욕쟁이로 소문난 이봉순 할머니가 그냥 둘리가 없었다.
"와서 처먹든지 말든지 허제, 뉘 종년 났는가, 해장부터 뭔 놈이 국밥 한 그릇을 배달 하라는 것이여,시방!"하고 쏘아 붙였다.
기가 죽은 비서관이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박대통령이 껄껄 웃으며 그 집을 찿아갔다. 편한 옷을 입은 뱍대통령을 힐끗 쳐다본 할머니 입에서 거침없는 욕이 쏟아져 나왔다.
"이놈 봐라,니놈은 어쩌면 그리도 박정희를 꼭 닮았다냐? 누가 보면 영락 없는 박정희로 알겄다. 이놈아 박정희 닮았응게 계란이나 하나 더 처 먹어라."
이제 故人이 된 朴統, 그리고 할머니의 일화의 허구와 사실을 論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다만, 당시 절대 권력자의 관용과 포용, 그리고 낮은자의 권력에 지배 받지 않는 개성 넘치는 일갈이 권력의 남용과 횡포 거기서 태생하는 아부와 부정이 요동하는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신탄리역 금방의 양평 손두부 식당을 운영하는 변영임 할머니의 욕도 만만치않은 모양이다.
손자 같은 군인들이 음식을 먹으러 오면 으례 "뭐 처먹을거여?" 라고 묻는다. '아무거나 처먹죠!"라는게 군인들의 대답이다. 밥을 깨잘거리고 잘 먹지않는 사람을 보면 "밥을 든든히 처먹어야 나라를 지키제,이 썩을 놈들아."라고 쏘아 부친다.
"할매,오래오래 사시이소,그래야 자주 찿아오제"라고 어리광을 부리면 "알았다.이새끼야, 말이라도 고맙다 .배 터지게 처먹었으면 싸게싸게 꺼져라,이새끼들아," 이런 욕지거리와 웃음이 반찬이 되어 배가 잔뜩 불러 나오는게 욕쟁이 할머니 식당의 풍경이다.
청주의 욕쟁이 원조 김유례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충북대학교에 기부했고(현시세로 백억원의 가치), 욕 팡팡 해가면서 칼국수 장사를 하여 20년 동안 의지 할데 없는 노인 40여명을 가족 처럼 돌본 양양의 욕쟁이 대표 서정순 할머니는 재작년 성신 여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욕쟁이 할머니들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하는 짓거리들이 바르지 못하고 경우에 어긋 나는 것을 못 참아 퍼부은 일장 훈게가 아니였나 생각한다.
깔끔한 제복을 차려 입고 공손한 말투와 의례적 미소로 손님을 대하는 신식 레스토랑 보다는 투박한 손에 푸짐하게 듬뿍 담아 내놓는 음식과 걸쭉한 욕을 한 바가지 씩 퍼부어 양념이 따로 필요 없는 그런 욕쟁이 할머니 집이 싫지 않은 것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너무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고객을 상대하는 직장마다 친절을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하고 한두번만 손님의 불만이 쏟아지면 가차 없이 문책을 당 한다. 요새 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먹고살려면 아무리 속이 뒤 틀리고 배알이 고여도 쓸개 빠진 사람 처럼 연신 굽신거리며 실실 웃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이다.
양반과 平民
요즘만 그런게 아니고 이조시대 양반 사회에도 그런 고역은 있던 모양이다.
옛날 강원도 정선에 빌려다 먹은 곡식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간 양반이 있었다. 이것을 딱하게 여긴 상민[常民]하나가 찿아와 대신 빚을 갚아 줄테니 양반을 팔라고 제안하였다. 춘궁기에 제 식구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는데 까짓 양반 명색을 어디 써먹을 데가있는가,하고 날름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상민 앞에서 양반 행동 지침을 읽어 내려 가기 시작하였다.
"양반은 새벽 네시만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켜고 눈은 콧등을 슬며시 내려다 보고, 무릅을 꿇고서 얼음 위에 표주박을 굴리듯이 술술 막힘 없이 글을 내리 외어야 한다. 배가 곺아도 참아야 하며 추운 것도 견디어 내야하며 입으로 가난 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한다.
하인을 부를 때는 긴 목소리로 부르며 걸음을 걸을 때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법이다. 글씨는 깨알처럼 잘게 써서 한줄에 백자씩 써야한다. 손에는 돈을 만지지말고 쌀값을 묻지 말아야한다.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아야 하며 밥을 먹을 때에도 의관을 정중히 쓰고 먹어야하며 맨 머리로 먹어서는 안된다.
국물을 먼저 떠먹지 말아야 하며 물을 마실 때에도 넘어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하며 수저를 놀릴 때에도 소리를 내어서는 안되며 냄새가 나는 생파를 먹지 말아야한다.
춥다고 화로에 손을 쪼이지 말며 말할 때에는 침이 튀지 않게하며 소를 잡아 먹지 말며 돈을 놓고 놀음을 하지 말아야한다.
무릇 이와 같은 여러 행실이 양반과 다름이 있을 때는 이 증서를 가지고 관가에 가서 다시 재판을 받을 지어다,"
천냥이나 주고 양반문서를 산 상민이 이를 귀기울여 듣다가 그만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관아를 뛰쳐나가 버렷다. 그 후로 한 평생 양반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요약]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여도 현실에 만족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세상은 그런 대로 살아갈만 하다 여겨지게 될것이다. 내 처지에 무리한 욕심이나 의욕은 자칫 우리의 심신[心身]을 황페하게 만들게 되는 단초가 될수잇다.
세상을 좀더 폭 넓게 이해하고 받아 들일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간다면 우리의 건강과 삶은 더욱 윤택하여 질것이다.
우리들의 靑春!! 그 시절 이역만리 이국[移國] 땅에서 운명 처럼 할퀴고 간 전장[戰場]의
상흔[傷痕]은 비록 고통으로 우리의 老年을 어둡고 우울한 상자 속에 가두어 놓았지만,
결단코 포기하거나 용기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의 남은 여생[餘生]은 분명히 밝고 빛나리라 믿는다.
비록 말은 거칠은 욕[辱] 일지라도 그 속에 우리의 고달픈 삶을 따뜻이 녹여주는 속 깊고
애정어린 욕쟁이 할머니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