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古代)에 물길은 길이다.
물길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물자가 오가며, 문화가 흘렀다.
지금의 생초는 물길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들과 물자가 오가며, 문화가 이루어졌기에
큰 마을이 생겨나 번창해 왔었다.
생초 주변에는
북쪽으로는 함양읍 백천리 유적, 거창 개봉과 무능리 유적,
서쪽으로는 남원 월산리와 두락리 유적,
동쪽으로는 합천의 옥천리 유적,
남쪽으로는 산청 중천리 유적과 진주 옥봉 유적등이 네트웍을 이루고 있다
가야 시대 생초 지역은 이러한 유적지들과 연결하며,
백제, 신라, 가야 소가야 등과 소통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물과 덕유산에서 내려온 물이
두물머리 생초 강정에서 모여
남강의 상류 큰물 경호강이 되었다.
큰물은 땅을 깍아 절벽을 만들었고,
맞은 자락에 비옥한 토지를 만들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이곳 생초에
사람들이 모여 큰 고을을 이루었고, 큰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굽이쳐 흘러내려 가는 강가의 비옥한 들판 중에
조금 높은 땅을 골라 집을 짓고,
창고(倉庫)와 공방(工房)을 만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주변 경사진 땅에는 밭을 일구고,
저습한 땅에는 물길을 내어서 넓고, 좁은 논을 만들었다.
넓은 강에는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고,
산과 들에는 사냥과 먹을 것을 채취하였다.
생초는
동쪽에는 오부면(梧釜面)으로 응봉산(鷹峰山, 매봉산)과 철마산,
북쪽에는 거창군 신원면(神院面)으로 갈전산(葛田山),
남쪽에는 금서면(今西面)으로 봉화산(烽火山)),
서쪽에 함양군 수동면(水東面)·유림면(柳林面)으로는 태봉산(胎峰山) 등의 여러 산봉으로 둘러싸였고,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강정에서
경호강(鏡湖江)이 되어 남북방향으로 흐른다.
생초에는
역사와 문화 유적지, 그리고 인물들이 함께 숨쉬고 있다.
선사시대와 가야시대의 유적지, 태봉산의 고분군, 어서리 유적, 어외산성, 상촌리 유적, 하촌리 유적, 평촌리 유적, 갈전리 유적, 월곡리 관지지석묘, 월곡리 관지고분군, 월곡리 고분군, 신연리 생임지석묘, 신연리 생림 유적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산청 생초 고분군(山淸生草古墳群:경남기념물 7)이 있는데 약 100여 기의 고분군으로 큰 것은 지름 9m, 높이 3m 내외이고, 작은 것은 지름 4m, 높이 1m 내외이다. 그외 생초 대포리 민씨고가(山淸大浦里閔氏古家:경남문화재자료 163)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괴, 국어국문학사전 등 각종 백과사전에 등재된
생초를 빛낸 인물은
여말에 고려의 충신 민안부가 있고,
조선 중기에 유호립과 정심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수원성을 사수했고,
한성을 수호하였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의립(李義立, 1562~1642)과
조선 후기에 숙종 어의를 지낸 전염병 홍역치료 태두(泰斗)로 <마진편>의 저자 유이태(劉以泰)가 있다.
유이태는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에서 살신성인의 스승으로 묘사된 유의태(柳義泰)의 모델인물로 일생동안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귀천과 친소, 빈부와 민간을 차별하지 않으며 위민(爲民)•애민(愛民) 정신으로 환자를 치료하였고, 정도(正道), 효도(孝道), 시도(施道), 의도(醫道), 수도(壽道) 등 5도를 펼쳤던 조선의 명의로 유의(儒醫)의 전범을 세운 인물이다.
대구사학회가 간행한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영남인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종 분야에 영향을 끼친 56인이 선정되었고, 신라의 김유신, 최치원, 조선의 정도전,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유성룡, 김성일, 곽재우, 유이태(劉以泰), 일제강점기에 이육사, 현대의 박정희, 이병철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산청인으로는 남명 조식과 유이태,
생초인으로는 홍역치료의 태두 유이태가 선정되어 있다.
생초가 낳은 조선의 명의 유이태가 저술한
홍역치료서 <마진편>과 경험방 <인서문견록>이
일본 오사카의 행우서옥에 소장되어 있다.
생초의 유적지로는
가야 시대에 축성된 어외산성은 자연지형으로 이루어졌고,
둘레 790미터의 태뫼식산성으로,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환려승람 산청>에
독녀성(독獨女城)으로
“돌로 쌓였으며, 둘레가 1,730(795m)척이고,
시냇물(溪)과 샘천(泉)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외산성은 대부분 허물어져 있으나, 성안에 평면 원형의 집수지(우물터)가 있고 갈수기에도 물이 나온다.
생초 소재지에서
올라가는 동쪽에는 동문이 있고, 본통 고개 쪽에는 서문으로 추정되는 입구가 있다.
산성은 해발고도 203m 낮은 산의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으나
남쪽과 동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어 탁월한 조망권을 갖추고 있다.
어외산성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훈련원 봉사를 지낸 임춘계, 그의 선대와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어외산성은
산청에서 함양 및 거창으로 이르는 주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변 지역과 교통로를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된다.
생초가 낳은 인물들의 유적지는
조선의 명의 유이태의
생가(신연 : 마진편을 포함한 7권의 의서를 저술한 혜민국),
서실(송정 : 1714년에 건립하여 1815년 완공하였다),
묘소(갈전 : 1715년 2월 27일 영면하여 잠들고 있는 곳),
이태낚시터(압수: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곳)가 있고,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의립의 생가, 묘소, 공적비가 신연리에 있으며,
용호 박문영을 기리는 와룡정이 강정에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 지역에는 발상지 하나도 없는데
생초에는 전염병 홍역치료 발상지,
새마을금고 발상지가 있다.
경지율은 14.8%에 불과하며, 식량 작물을 위시하여 마늘·양파·딸기·쌈채소 등을 재배한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산청읍과 거창·함양 방면으로 3번 국도가 연결되어 있고,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 금서와 유림,
생초와 거창군 남상면과 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가야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산청박물관,
조각공원이 있고, 해마다 꽃잔디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 숙종실록, 의약동참선생안, 국조인물고, 승정원일기, 동국여지승람, 유이태유고, 마진편, 인서문견록, 묵재집, 산청군지, 산청향교지, 거창군지, 기억하고 싶은 조선의 참 의원 유이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국어국문학사전, 인명사전, 위키리백과, 송도지(松都誌), 고려명신전(高麗名臣傳), 해동충의록(海東忠義錄), 산청박물관도록, 새마을금고50년사.
글쓴이 :
유철호 한의사학박사
생초초등학교 34회, 생초중학교 14회
생초면 월곡리 압수